미친 비선실세가 권력을 되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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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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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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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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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사무실로 전화 주십시오.”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임주한 검사가 돌아간 뒤, 나는 파티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갑자기 닥친 상황이었으나,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또 누군가 이곳을 벗어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놓칠 수 없었다.


바삐 걸음을 옮기다 보니 문틈 사이로 오케스트라의 노래가 새어나오고 있는 파티장의 문앞에 도착했다.

내가 돌아오자 문을 지키고 있던 직원들이 시선을 교환하며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진짜 요란한 걸 좋아하시는군···.’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당당한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문이 활짝 열리자, 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내 발걸음은 문의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야! 서태혁!”


···적의 가득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기 전까지는.

쓸데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회장 안에도 들린 바람에,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호기심까지 더해졌다.


‘귀찮아···.’


모르는 목소리였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지만, 자주 들은 목소리는 아니고···.

내게 이런 적의를 내비칠 만한 놈은, 하나뿐이었다.


아니, 놈들이라고 해야 맞을까.


뒤를 돌아보자 꼴사납게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일회 동아리방에서 봤던 놈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네까짓 놈이?”


‘그때, 나한테 엎어치기 당했던 놈이었나?’


다각형을 만들기 전, 남경호는 단일회에서 멀쩡한 놈을 하나 데려가 기지촌 사업을 같이하라고 했었다.

단일회 놈들이 멍청하다고 했더니, 말조심하라고 먼저 주먹질하다가 바로 바닥에 메다 꽂힌 놈의 얼굴이 이렇게 생겼었던 것도 같았다.


“뭐, 신경쓰지 말고 네 갈 길 가라.”


이런 놈이 이 호텔에 왜 왔는지, 나한테 왜 말을 걸었는지 같은 것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할 일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놈은 내게 무슨 관심이 그리도 많은지 나를 또 붙잡았다.


“왜? 저기 안에서 코쟁이 군인이라도 만날 일 있나 보지? 정신 빠진 양놈 하나 잡아서 저 모임에 끼려고 했나 본데, 저긴 너 같은 놈은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다고. 하일회인 아버지도 초대 못 받은 모임인데, 네가? 하!”

“하. 그놈의 동두천 출신 타령.”


지겨웠다.

애써 무시하려고 했건만, 놈은 선을 넘었다.


회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놈을 무시하고 들어간다면 상황은 깔끔하게 마무리되겠지만,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지저분해지겠지.


여기서 무시당하면, 앞으로도 두고두고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왜 남의 잔칫집에 와서 깽판이야? 초대받지도 못한 주제에. 하다못해 개도 자기가 지키는 곳이 주인집인지, 다른 집인지는 분간하는데, 너도 어딜 지키는지는 알고 지켜야 하지 않겠어?”

“하! 여기가 어딘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멀쩡한 허우대로 직원들한테 거짓말해서 들어가려는 거잖아? 누가 동두천 출신 아니랄까 봐, 주워 먹을 게 어디 없나 하고 돌아다니는 거, 회장도 아냐?”

“모르지.”


남경호야 늦든 빠르든 곧 알게 되겠지만, 이놈이 나불거린다면 좀 더 빨리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담담하게 대답하는 것이 수치심 때문이라 여겼는지, 놈은 기세등등하게 나왔다.


“나와, 새끼야. 여긴 우리 집안 정도 되는 분들도 초대 못 받은 자리라고! 나중에 회장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하. 진짜 수준 맞춰주기 힘드네. 얼른 꺼져.”


나는 턱을 쓰다듬는 척을 하며 입을 가린 채, 안쪽까지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나 내 눈앞의 놈은 똑똑히 들었는지,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다.


“소란 떨지 말고 닥쳐. 경비견은 경비견답게 경호 집에나 가서 집이나 지켜.”

“너 이 새끼···!”


놈은 누가 경비견 아니랄까 봐 개가 으르렁거릴 때 콧잔등을 구기듯이 얼굴을 구겼다.

나는 그저 싸늘하게 비웃어주었다.


“너 같이 손발 움직이는 법도 가르쳐줘야 하는 놈한테 허비할 시간은 없어. 왜? 여기서 걸어서 문밖으로 나가는 법까지 가르쳐줘야 하나? 그때처럼 바닥에 누워서 배우고 싶은 거 아니라면, 꺼지라고.”


은근슬쩍 과거의 수치까지 꺼내 들먹이니, 놈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래도 많이 열받은 것 같았지만, 내가 알 게 뭔가.


나는 다시 몸을 돌려 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싸늘한 비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만이 내 얼굴에 가득했다.


뒤에서 씩씩대는 단일회 놈, 그리고 미소 짓는 나.

누가 봐도 명백한 상황이었다.


“문 닫으세요.”


내 지시에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쿠당탕-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 꺼져! 야, 서태혁! 서태혁!!”


그러나 단일회 놈은 지력에 쏟았어야 할 스탯을 끈기에 쏟았는지, 기어코 직원들을 뿌리치고 회장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잔잔하게 깔리던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멎은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긴장 어린 침묵 사이에서 나와 놈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 저 머저리.’


분명 제 아버지도 급이 안 돼서 초대받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의 뒤를 봐줄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곳에 들어오다니, 그 정도 분별력도 없는 건가.


뒤를 돌아보자 놈이 회장 한가운데에서 씩씩대고 있었다.

놈과의 대화에서 하일회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으나, 짜증이 솟구치는 건 매한가지였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여기서 이미지를 망칠 수는 없었다.


“서태혁, 너 이 새끼···!”


짜증이 날 정도로 단순한 놈은, 회장 한가운데에서 내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려는 듯, 온몸의 근육에 힘을 주고 있었다.

모욕받았으니, 그대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려는 걸까.


자칫하면 그때처럼 되돌려줄 심산으로 놈의 행동을 찬찬히 살피고 있으려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세월이 긁고 지나가 거칠어졌으나, 여전히 단단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내가 아는 한 이런 목소리를 가진 노인은 하나뿐이었다.


단호하다 못해 안광을 뿜어낼 듯한 기세로,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곁엔 언뜻 보면 검은색으로 보일 법한 짙은 네이비 색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함께였다.


‘저 사람은···!’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이므로,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최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 새끼, 아니, 이 친구가 조금 길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너무 과하지 않게,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면목 없습니다.”

“됐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느냐.”

“하, 할아버지···?”


나는 옆에서 숨을 거칠게 들이쉬는 단일회 놈을 한번 흘긋 바라보았다.

자신이 방금 들은 것을 부정하고 싶기라고 한 건지,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정중한 손짓으로 놈을 가리켰다.


“잘 모르는 친구인데, 갑자기 달려들더군요. 하일회인 자신의 아버지도 초대받지 못한 곳인데, 제가 와선 안 된다면서 말입니다.”

“뭐라? 하! 내 손자를 소개하는 자리에 내 손자가 와선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더냐! 그리고, 하일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단일회 놈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시선도 자신을 향하자, 놈은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춘부장께서 하일회 회원인 줄은 미처 몰랐소.”

“···.”

“그러나 이곳은 내 손자를 내 친우들께 소개하는 자리요. 내가 춘부장을 초대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소?”

“······.”


놈은 연신 침묵을 지켰다.


‘단일회란 놈들은 이런 놈들뿐이지.’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앞에선 꼬리를 내리고, 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군림하려 드는 놈들.

새삼스레 역겨웠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소란을 일으키셨군. 돌아가시오.”

“···예.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놈의 목소리가 썩 유쾌했다.

몸 양옆에 딱 붙인 놈의 양팔이 주먹에 들어간 힘을 감당하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니까.

한마디 덧붙일까 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이미 소란은 일으킬 대로 일으켰으니까.


“아, 그래. 한 가지 더.”


놈이 문을 향해 돌아서려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놈은 금방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인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물론 젊은이들이 나아가는 방향은 다르겠으나, 시간이 지나 내 손주가 내 나이가 돼서도 내 손자와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오.”


언뜻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라는 말 같았지만, 그 속뜻은 정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일회 자제인 놈과 재벌의 손자인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내 손자가 늙었을 때 너의 권력이 남지 않아 마주칠 일도 없을 테니,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는 뜻.


즉, 하일회의 권력은 곧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돈은 오래 남는다는 말이었다.


“···큽.”


할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젊은 남자가 터질뻔한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놈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붉어진 얼굴로 허둥지둥 이곳을 빠져나갔다.


“잠시 소란이 있었군요. 담소들 나누십시오, 하하하!”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할아버지의 선언에, 사람들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멈추었던 오케스트라의 활은 계속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다소 활동적이고 힘찬 템포의 곡은 회장의 분위기를 빠르게 고조시켰다.


“저런 질 나쁜 놈은 어디서 알아 온 게야.”

“민망하지만, 저 친구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를 질투하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에잉··· 쯔쯧. 멍청한 군인들 애새끼 아니랄까 봐.”


할아버지는 단일회 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놈이 빠져나간 문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멍청한 단일회 놈에게 할애할 관심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내 두 눈은 짙은 네이비 색 양복을 차려입은 젊은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 이분이···.”

“아! 그래.”


할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이 누구를 데려왔는지 깨달은 모양인지, 옆자리에 서 있던 젊은이를 가리켰다.


“인사하거라, 태혁아. 이분은···.”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소개하지요.”


30대에 갓 접어든 것 같은 젊은이의 입술이 벌어지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형제’의 강연우라고 합니다.”


강연우는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휘어진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은 직선이었다.


객관적으로 미남인데다 큰 키에, 거리낌 없는 발성, 당당한 태도까지 가진 남자였다.


‘형제 그룹 회장, 강연우.’


그는 부의 초석을 닦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형제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와석 건설을 유일하게 견제하고 있는 형제 건설이 이 남자의 소유였다.


남경호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 남자가 잘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도허의 비자금 입수 루트가 될지도 모르는 가족 회사를 깔아뭉갤 이도 이 사람뿐이었고.


“처음 뵙겠습니다. 최노명 회장님의 외손자, 서태혁입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강연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사과를 가볍게 넘겼다.

할아버지는 내가 젊은 재계 인사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흡족한지 아까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흐뭇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제가 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외조부께 부탁드렸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젊은 친구들한테는 인기 없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젊은 분을 만나니 저도 좋습니다.”

“예전부터 존경해온지라 뵙게 되어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매섭게 장명자와 와석 그룹 이야기를 시작할 틈만 찾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단일회 놈이 여기 찾아와준 것은 천운일지도 모른다.

놈의 행패를 사과하는 척 단일회의 이야기를 시작해 남경호와 남준호로 자연스럽게 흐른다면, 재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효과적으로 꺼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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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화 - 시즌 1 完 +1 22.01.14 268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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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화 22.01.12 177 6 13쪽
45 45화 22.01.12 212 9 13쪽
44 44화 22.01.11 231 11 15쪽
43 43화 22.01.10 265 11 16쪽
42 42화 22.01.10 221 8 16쪽
41 41화 22.01.08 372 12 16쪽
40 40화 22.01.07 391 11 12쪽
39 39화 22.01.06 399 15 13쪽
38 38화 22.01.05 413 14 14쪽
37 37화 22.01.04 466 16 14쪽
36 36화 22.01.03 518 16 15쪽
35 35화 22.01.02 590 17 13쪽
34 34화 22.01.01 649 21 13쪽
33 33화 21.12.31 677 22 13쪽
32 32화 21.12.30 813 22 12쪽
31 31화 +1 21.12.29 940 21 12쪽
30 30화 +1 21.12.28 1,074 24 14쪽
29 29화 21.12.27 1,174 28 12쪽
28 28화 +1 21.12.26 1,091 23 13쪽
27 27화 21.12.25 1,067 20 15쪽
» 26화 21.12.24 1,051 20 13쪽
25 25화 21.12.23 1,103 21 13쪽
24 24화 21.12.22 1,120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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