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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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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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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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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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화

DUMMY

파편화된 어둠이 자리를 잡듯 벌어졌다.

일순 시야를 가릴 만큼 짙은 연기가 퍼지는가 싶더니, 기운을 내뿜었다.


죽음의 기운.

가히 어둠에 어울리는 공격이, 엘리나를 향했다.


“읏!”


목이 감기는 고통에 엘리나는 표정을 구겼다.

마치 어둠이 실질화되어 목을 옥죄는 듯했다. 피부가 어둠에 물들어 고통스러워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우웅!


목에 붙은 탁한 기운을 몰아내고자 마력을 방출했다. 평소 방출해오던 양의 수배나 다다르는 마력이었으나, 이미 어둠은 깊게 드리워 있었다.

어둠은 마력을 무시했다. 꿈틀거리며 움직인 어둠은 엘리나의 기도를 막았고, 그리하여 호흡을 차단시켰다.


검사에게 있어 호흡은 중요 요소 중 하나였다.

쉽게 말하자면 공격 궤도를 만드는 길과도 같았다.

호흡을 함으로서 검로를 만들고, 그 검로를 파고들 수 있었다.


“으으윽!”


다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호흡이 끊긴 엘리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마치 둔화 마법을 맞기라도 한 것 같았다. 생명이 닳아가는 듯한 고통에, 엘리나는 서서히 제 눈이 감겨가는 것을 느꼈다.


슈욱-!


“엘리나!”


그 순간, 뒷발치에서 날아온 단검이 어둠을 꿰뚫었다.

마력 단검은 어둠에 닿자마자 사이한 기운을 모조리 흩트렸다.


“허억! 허억!”


엘리나는 복구된 호흡에 안도하며 미친 듯이 숨을 내쉬었다. 폭우의 부작용만 해도 몸이 부서질 지경인데 나아가 호흡의 차단이라니, 한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


“으읏.”


그럼에도 검을 쥐고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엘리나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황녀이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기에 고고히 자리를 지킨 채 오엘을 응시했다.


“···고맙습니다. 설진 님.”

“별말씀을요.”


시선은 앞으로, 목소리는 설진을 향해 말했다.

어둠 장막이 파괴된 후 들이닥친 공격에 엘리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설진 덕분이었다.

호흡을 조여오는 어둠에 버틴 제 자신의 정신력 또한 한몫했지만, 설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엘리나는 숨을 쉬지 못한 채 발버둥치다 죽었을 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는 들어 올린 검을 오엘에게 겨눴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채운 생각을 완전히 갈아치웠다.


‘생존 이상의 성과를 거두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


오엘의 공격에 버티는 것에 나아가 정체를 파악하겠다는 생각을 관뒀다.

오엘은 흑마법사. 그것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기운을 사용해 공격해 오는 뛰어난 흑마법사였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고,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닌 지금 정면 승부는 무모했다. 엘리나는 곧장 계획을 뒤틀어 수비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설진 또한 엘리나의 생각을 잃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설진의 입장에선 오엘은 미지의 존재가 아니었다. 아까의 어둠 장막도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받으면 터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긴 게임이 아닌 현실이야.’


다만 리아엘라의 길티 실드처럼, 아카멜라의 아포칼립스처럼.

이곳은 변수투성이의 세계였다.


오엘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무언가 숨겨놓은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설진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다시, 정비.’


설진은 다시금 마력을 갈무리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오엘의 입이 열렸다.


“···넌 대체 누구지?”


바로 설진에게.

아무래도 경계하는 쪽은 엘리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아직 헤임 제국에 머물러 있다는 건 50층을 공략하지 못했다는 건데··· 그런데 어찌 어둠을 타개할 수 있단 말인가.”

“보여.”


설진은 묵묵히 대답했다.

말 그대로 보였다.


“네놈의 기운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어딜 공격해야 하는지 보인다고.”


오엘과의 싸움은 설진이 수도 없이 반복해 왔던 구간이었다.

그 덕인지 알 수 있었다.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 어딜 찔러야 공격이 파훼되고 흩어지는지. 알 수 있었고, 보였고, 또한 타개할 수 있었다.


설진은 갈무리한 마력을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싸움이 시작된 이래 오엘에게 직접적인 데미지를 넣진 않았기에 흡혈은 발동되지 않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들이켠 포션이 꽤 많은 회복을 꾀한 듯했다.


마력의 회복. 고통이 동반될지라도 어느 정도 수복된 상처.

이는 설진이 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이를 오랜 시간 지속하긴 힘들었지만, 적어도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는 유지할 수 있었다.


“···처리해야 할 건 엘리나만이 아닌가.”


설진의 말을 듣고선 오엘은 침음을 흘렸다.

동시에 그 또한 생각을 바꿨다.


“힘들어지겠군.”


설진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양 중얼거리며, 다시 기운을 불러들이기 시작한다.


원래는 타인의 방해를 무시하고서 온전히 엘리나의 목만을 노리려 했었다.

허황된 말처럼 보이지만 오엘에게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으니, 타인의 간섭을 감수하고서라도 엘리나의 목을 취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 많이 힘들 거야.”


···지금 눈앞에 있는 암살자가 없었다면.

이미 자신은 엘리나의 목을 취한 채 유유히 돌아갔을 터인데.


오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오엘의 눈에만 보이는 자색 시계가 구름처럼 퍼져 있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오엘은, 갈등하듯 입술을 잘근거리더니 이내 설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황녀 전하! 설진 님! 채린 님!”

“지원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을 모아 데려왔습니다!”


황실 지원군의 도착.

설진이 불렀다던 군사가 도착한 듯했다.


“오엘. 쓸데없는 짓 그만두고 돌아가. 나중에 이쪽에서 찾아갈 테니까.”


정면에선 설진이 단검을 돌리며 입을 열고 있었다.

그 순간 갈등이 멎었다. 오엘은 다소 다급한 손으로 설진을 가리켰다.


“역시 너란 존재는, 내게 큰 방해가 될 것 같구나.”


화르르-.


가리킨 손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하고, 사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불길이었다.

설진은 눈썹을 좁혔다. 저건, 여기서 처음 보는 오엘의 기술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 수 없어 면밀히 관찰하려던 순간,


“···!”


놀란 듯, 아니, 놀라기보단 당황한 듯 눈이 크게 치떠졌다.

이성보단 본능에 기인한 행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엘이 만들어낸 검은 불길에는, 오직 죽음만이 보였으니까. 꼭 타인을 죽이기 위한 일념으로 일구어낸 불꽃 같았다.


“절명화(絕命火).”


직역하자면 죽음의 불꽃.

마치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설진의 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다가오는 불길에 마력 단검을 겹쳐 던져 저항했지만, 불길은 단검을 살라 먹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리지만 막을 수 없었다. 죽음의 불꽃, 절명화는 설진에게 죽음을 고하고자 접근하는 중이다.

다른 공격은 모를지라도 저것만은 보이지 않았다. 기운을 읽을 수 없으니 당연히 타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받으려 한다. 설진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엘리나보단 나를 선택한 이유는, 연나비에서의 접전 때문인가 본데.”

“부정하지 않겠네.”

“···하아.”


한숨이 나왔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공격을 함부로 쓸 수는 없을 텐데.’


조건 없이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공격이라니.

말조차 되지 않는 스킬이었다. 아무리 이곳이 탑이라고 해도, 오엘이 최종 보스라 하더라도 이런 공격을 리스크 없이 사용할 수는 없을 터였다.


‘뭘 희생했을까.’


분명 무언가를 희생했을 터였다. 그것이 생명력이든 흑마법의 기운이든, 오엘은 그에 버금가는 희생을 치렀을 터.

설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지금 자신의 앞에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 별로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워한 쪽은 엘리나였다.

절명화의 불가학적인 기운을 느꼈는지, 그녀는 당황한 채 공격을 쏟아냈으나 불길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나의 공격을 먹고선 위력을 불리는 것 같았다.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 속도에 엘리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설진 님!”


자신이 당하는 건 상관없었다.

헤임 제국은 자신의 영토이니,

제국을 지키다 죽는 건 되레 영광스러운 일이니.


그러나 설진에겐 아니다. 그는 외부인. 노르담의 손님도 플라임 왕국의 사람도 아닌 온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외부인이었다.

그런 외부인이 죽으려 한다. 헤임 제국의 영토에서.

마냥 내버려 둘 순 없었기에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냈지만,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외려 맹렬히 타올라 설진의 목숨줄을 끊어내려 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벅, 저벅.


그런 상황을 본인은 알고나 있는 건지.

설진은 항시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명화를 피해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앞으로 걷는 모습이 엘리나에겐 당황스럽게만 느껴졌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건가.”

“설마, 그럴 리가.”


눈앞 오엘의 말에 설진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보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뭐지?”

“저 공격, 너는 흘릴 수 있냐?”

“음? 무슨 소리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오엘이 반문하려는 찰나였다.

절명화가 설진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머잖아 몸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에 질겁할 법도 했지만 설진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뽑아든 검을 납도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절명화를 받아들였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절명화가 몸에 붙은 순간을 기점으로, 설진의 몸에 막 같은 것이 생성되더니,


화르르-!


불길이, 역으로 오엘에게 향하는 모습을 말이다.


‘지원군을 불렀다. 내가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건···.’


설진은 지원을 불렀다. 그리고 그건, 설진이 싸우고 있음을 알리는 것과 같았다.

설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동료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을만하다 못해 생사고락을 함께 넘긴 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사- 시연에게는 특별한 고유 능력이 있었는데,


“하아. 하아. 설진아!”

“누나.”

“하아. 괘, 괜찮아!?”

“괜찮아요. 리플렉션 고마워요.”


리플렉션(reflection).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한 스킬로, 적의 공격을 반사하는 기술이며.

자신뿐만이 아닌 타인에게도 발동시킬 수 있는 고유 능력이었다.


설진은 파티 시스템을 활용해, 시연이 리플렉션을 사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크한 후 나섰다.

정말 위협적인 일이 생겼을 때 리플렉션을 발동하면 되리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하여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 설진을 죽이기 위해 절명화를 영창했던 오엘은, 이제 역으로 본인이 절명화에 대처해야 했다.


저벅, 저벅.


“그만 돌아가. 돌아갈 수 있으면 말이지.”


그 말을 끝으로 설진은 몸을 돌렸다.

애초에 위풍당당하게 걸었던 이유는 거리를 좁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엘에게 절명화를 반사시키기 위함이었다.


목적이 이뤄졌음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오엘의 앞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발걸음을 옮긴 설진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시연에게 향했다.


“누나, 다친 곳은 괜찮아요?”

“응. 설진이는?”

“다친 곳이 있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에요. 큰 상처는 아니에요.”


상처는 급속도로 치유되는 중이다.

물론 이러한 속도임에도 한 달이 넘게 걸리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예 몸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니.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연의 옆에 다가온 설진은 재차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절명화를 앞에 둔 오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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