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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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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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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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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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DUMMY

아침은 밝았다. 찾아올 비극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처럼.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그렇게 만들 터이니까.


“교란석은 회수해둘게요. 왕, 녀님.”

“음. 그렇게 하라.”


아무리 플라임에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받았다 해도, 루이와 릴리에, 란과 린이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녀를 플라임이라 부르긴 힘들었다.

설진은 어제와의 괴리감을 곱씹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왕’에서 잠시 뜸을 들이다 ‘녀님’으로 끝맺었다.

겨우 끝말을 완성시킨 설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즐겁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윽고 왕녀의 위엄을 발산하며 교란석 회수를 긍정한 플라임이 있었다.


퍼석-.


파묻친 교란석은 총 열. 개중 세 개의 교란석을 회수한 설진은 적당한 주머니에 넣고 교란석을 보관했다.


딱히 의미가 큰 부연 설명은 아니지만, 교란석은 일회용이었다. 가격이 싼 대신에 한 번 쓰면 효능을 잃어버리는 광석이라 더는 쓰지 못했다.


‘뭐, 그래도 회수해가지 않으면.’


그렇다고 마냥 버린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큰일이 된다.


재활용을 못 한다는 이유로 회수하지 않는다면 흔적이 남는다.

교란석은 사람이 머물렀음을 알 수 있는 가장 확고한 증거가 되곤 했다.


그리하여 다 쓴 교란석은 회수 후 처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지금은 버릴 곳이 없으니 적당한 크기의 주머니를 가져와 임시로 보관해두는 것이고.


넘겨받은 일곱의 교란석을 전부 주머니에 넣어 보관 처리를 끝낸 설진은 몸을 일으켰다.

야영과 함께 철야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부턴 진짜 일을 시작할 차례였다.


아침은 기습에 유리한 시간이 아니나 지금부터 있을 일은 기습보다는,


“출발할까요?”


일반적인 유린에 가까울 터였다.


화염 계열 마법에 능통한 플라임, 왕국의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암살자 루이, 수준급의 실력을 지닌 릴리에, A급 모험가 란과 린.

무엇보다 설진과 그 일행이 있었다.


처음 에피소드를 마주했던 그때와는 현저히 다른 상황이었다.

설진에게는 강한 무력이 있었다. 곧은 정신이 있었다.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갈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할진대, 질 리가.

생각을 마친 설진은 란과 린의 인도에 따라 걸음을 옮겨나갔다.


지금부터는 다시 첫 단추를 끼울 시간이었다.


* * *


“네, 네놈들은 대체···!”

“커어-.”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마음껏 사방을 뛰어다니며 자유로운 공수 전환이 가능한 설진과 루이의 활약 덕분이었다.


기척을 죽여 가며, 차근차근 암살해낸 덕에 적은 사기를 잃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사기를 잃는다면 수적 우세는 의미를 잃는 법이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보내 주어라.”


촤악-!


생포한 적에게서 충분한 정보를 들었다고 생각한 플라임은 그리 명했고, 루이는 망설임 없이 묶인 적에게 검을 내리쳤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깔끔한 일격이었다.


단 한 번에 적을 절명시킨 루이는 숨을 골랐다.

직후, 적에게서 캐낸 정보를 곧바로 정리했다.


“레지스탕스··· 쓸데없이 그럴듯한 이름을 쓰고 있군.”


왕실을 노리고 있는 조직의 이름은 레지스탕스.

왕실을 노리는 이유는 왕실 정책에 불만을 가진 탓.


다만 애석하게도 적의 규모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레지스탕스는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조직, 하나를 잡는다 해서 다른 하나를 잡기란 힘들었다.


말 그대로 꼬리만 끊은 상황. 단편적으로 보면 정보를 얻었으니 좋은 상황임은 맞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좋다고까지 할 만큼 희소식은 아니었다.

상대가 점조직이란 사실을 알았으니 수색에 드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 적 리더의 정보조차 모르고 있으니.


결국 아주 단편적인 성과에 불과하다고.

많고 많은 조각 중 단 하나만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플라임 왕녀님. 적 조직의 이름과 목적은 알았으나, 아직 자세한 규모와 실력은 잘 알지 못합니다.”

“···.”

“감히 한 말씀 올리건대, 일단 복귀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저희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말이 맞다.”


깊은 고민 끝에 플라임은 루이의 말에 동의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루이는 레지스탕스에 대해 생각해, 대처할 방안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 했다.


그 말이 옳다고 여긴 플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건 맞으나, 루이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정보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었다.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가장 든든한 진짜 회귀자가 존재했으니까.


점조직 소탕 이후 그들은 왕실로 복귀했다.

적어도 첫 번째 단추만큼은 완벽하게 끼운 것 같았다.


* * *


시간이 흐른다.

결코 헛되지만은 않은 시간이.


“투기장이 있어요.”

“투기장?”

“합법적으로 허가받지 않은 불법 투기장이요. 노름판을 벌여 승부의 결과를 예측하고, 승과 패를 나눠 돈을 분배하는 곳이죠.”


설진이 플라임에게 찾아가 제일 먼저 공유한 정보였다.

투기장. 레지스탕스의 자금 확보와 썩은 귀족들의 유흥을 위한 곳.


적어도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았으면 몰라, 불법으로 진행되는 투기장이었다.

왕실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는 만무. 진드기처럼 악영향만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설진은 플라임에게 말해 투기장의 처리를 당부했다.


“투기장 문제는 해결했다. 설진의 말이 맞았어. 불법적으로 일을 벌이고, 거기에 모자라 사업을 더욱 확대하려 하더군. 단절하는데 고생 좀 했지.”

“고작 사흘 만에요? 엄청나게 빠르시네요.”

“후후, 든든한 정보망과 왕실의 군사력이 있는데 못할 이유가 없지.”


단추를 끼워나가겠다는 설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설진은 플라임에게 왕국에 위협이 되는 정보를 전달했고, 정보를 전해받은 플라임은 왕국의 곪은 부위를 도려나갔다.


물론 왕국의 곪은 부위가 마냥 왕실과 동떨어지지만은 않았다.

어떨 때든, 또 어떠한 상황에서든 부정하고 싶은 치부는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로이다스 로반델트.”

“···뭐?”


그러니까, 왕녀라면 이런 일에서조차도 냉정해야 했다.

또한 익숙해져야 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의 간부에요. 1회차 때, 레지스탕스의 자세한 목적과 전력을 진술한 인물이기도 했죠.”

“자, 잠깐만.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로이다스가 레지스탕스라고?”


설령 그것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부하의 동생임에도, 말이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지, 이해하고 싶지 않아하는 건지.

설진은 그런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플라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와 똑같았다. 플라임은 로이다스를 죽이는 데 망설임을 품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지만.”


그러나 망설임은 찰나.

플라임은 일국의 왕녀였다. 겨우 정에 휘둘릴 정도로 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플라임은 로이다스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몇 번의 조사 끝에 로이다스가 레지스탕스의 간부라는 정보를 취합해낸 그녀는,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로이다스가 레지스탕스라면··· 죽여야겠지.”


그 누구도 쉬이 하지 못하는 선택을 했다.


로이다스의 증언은 설진이 설명했던 부분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한 플라임은 계속해서 곪은 부분을 도려나갔다.


비단 투기장이나 레지스탕스 쪽으로 배신한 귀족들만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도 손을 뻗었다.

그렇게 설진의 정보 아래 플라임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더 나은 왕국을 만들기 위해.

웃을 수 있는 왕녀가 되기 위해서.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그리고 그즈음, 세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확인한 레지스탕스가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치기 시작했다.


* * *


오른은 본디 레지스탕스의 간부가 아니었다.

오른은 왕실의 귀족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레지스탕스와 싸우는 귀족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으로 오른은 변했다.

탑의 오른은 과거의 오른을 레지스탕스로 물들였다. 그리하여 플라임을 죽이려 했고, 플라임을 죽임으로써 염원석의 발동 조건을 충족하려 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탑의 오른이 없는 지금의 오른은 레지스탕스가 아닌 왕실 귀족이 되어 플라임을 지지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필 유언으로···.’


연나비에서 오른과 싸울 때, 승기를 잡아 오른이 죽어갈 때.

그는 설진에게 부탁했었다. 플레임 에피소드에 있는 오른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말이다.


그저 보잘것없는 목숨 구걸이라면 가차 없이 짓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른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눈으로 왕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자 호소했다. 구걸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유언이었다.


아무리 설진이라도 그런 부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오른이 완전무결한 악이었다면 모를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또한 나름대로 삼국을 구할 방법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설진과의 이상 충돌이 벌어졌을 뿐.

애석하게도 설진과의 싸움에서 패했을 따름이었다.


-“그때, 날 죽지 않도록 해줄 수 있겠나?”


그때 당시, 오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설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떨결에 수락한 자신이 내뱉은 말도 떠올랐다. ‘곧 죽을 사람이 욕심은 많아서.’ 그렇게 말한 자신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중요한 건 어찌 되었든 간에 약속을 했다는 점이고, 설진은 그 약속을 못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오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재차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거였나.’


플라임의 점조직 소탕 이후, 정확히는 불법 투기장의 처벌 이후 레지스탕스는 활동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그런 반란군을 막으려면 인원이 필요했다. 플라임은 오른을 시켜 레지스탕스를 소탕코자 했고, 오른은 명을 받아 군사를 데리고 출정했다.


그랬던 오른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었다.

보아하니 레지스탕스 중에서도 실력 있는 인원이 몇몇 있는 모양인데, 그들과의 싸움에서 패해 죽을 위기에 처한 듯 보였다.


“허억, 허억. 이젠 젠장!”


오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죽음을 직감한 얼굴, 허탈감과 허무함이 섞인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갈등은 잠시였다. 결국 약속을 이행하겠노리라 생각한 설진은 오른의 상황에 개입, 오른을 노리는 간부들을 모조리 격퇴했다.


“너, 넌 뭐야!”

“대체 어디서!”


아무리 레지스탕스의 간부라도 한들 설진과의 차이는 거대했다.

과장을 보태 하늘과 땅 정도. 최종 보스를 죽인 설진과, 고작 한 조직의 간부의 전력은 그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빠르게 난도질, 그 후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뒤에서는 오른이 어벙한 얼굴로 설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진은 저 얼굴을 대체 어떤 감정을 가지고서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오른과 마주쳤다.


“어, 자, 잠깐. 그게··· 고맙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하던 것도 잠시, 이윽고 설진이 제 목숨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른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나, 탑의 오른과는 정말로 큰 차별점이 있었다.


설진은 인사를 받으며 몸을 돌렸다.

이걸로 약속은 지킨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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