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장난 좀 치다가 죽일게
고작 딱 하루, '내일' 일어날 일만 알 수 있는 초능력! 그 초능력이라도 갖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섬뜩한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면, 그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재앙이다.
“봐라, 뭐 또, 이상한 것은 없다고 하드나?”
배계장이 닦달하자 구형사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저, 그게...”
그의 표정을 살펴보면서 배계장은 무언가 특별하고, 놀라운 사실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뭐하노? 퍼뜩 말 안하구로?!”
그때서야 구형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유골 3구의 늑골과 흉골에서 절창에 따른 흔적이 발견됐는데, 특히 치골이 심하게 손상된 걸로 밝혀졌습니다”
“어데? 치골? 거 뭐꼬? 골반에 있는 뼈 말이가?”
“네, 그게 심하게 손상된 걸로 봐서 범인이 피해자들의 질을 도려냈을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과수에서 그래 말하드나? 확실한 기가?"
범행 수법이 너무나 잔혹한 것이 믿기지 않아 배계장은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했다.
"완전히 미친 놈 아이가? 그라모 글마는 인간이 아이다. 괴물이고, 악마다, 악마!"
계장실 문 밖에서 두 사람의 말을 몰래 엿듣는 경인도 충격을 받아 몸이 휘청거렸다.
다음 날, 배계장은 특별수사본부에서 브리핑을 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제주경찰청장이 물었다.
"범인이 성범죄자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거야?"
"그기 90퍼센트 이상 될 낌미더"
배계장이 확신하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던 프로파일러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아냐! 헛다리 짚었어"
자신보다 계급이 낮고, 나이도 한참 어린 그가 반말로 딴지를 걸자 배계장은 욱했다. 청장과 간부들이 있어서 꾹 참았지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해 속에서는 부글부글했다.
"이 사건은 치정이 아냐. 피해자들한테 원한이 있는 면식범이 저지른 살인도 아니고..."
"그럼? 뭐야?"
청장이 물었는데도 프로파일러는 게임을 멈추지 않고 반말로 건성건성 대꾸했다.
"분명히 똘끼가 충만한 놈이야"
그가 청장한테 개념 없이 구는데도 간부들은 인상만 구길뿐 제지를 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이번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라'며 특별히 내려 보낸 프로파일러였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와 짧은 경력에도 벌써 그가 해결한 미제 사건만 5건이나 됐다. 단서 하나 없고,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한 강력 사건도 숱하게 해결했다.
그 역시 똘끼가 있는 캐릭터였다.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추리력이 뛰어났지만, 대인 관계에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소통이 제대로 안 돼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선배 프로파일러가 대놓고 까칠하게 물었는데,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여간 그는 국내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프로파일러로 인정받았다.
"여자를 혐오하는 놈! 특히, 엄마에 대한 증오심이 강한 놈일 거야"
"뭘 봐서? 무슨 근거로?"
청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유골 상태를 보면 알잖아요. 흉기로 흉골과 치골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어요. 분명히 질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도려냈을 거예요. 엄마한테 사랑받지 못했거나 버림받은 것에 대한 증오심이 가학적이고, 잔인한 범행으로 표출된 거죠"
일리가 있는 말이라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이번에는 그가 존댓말까지 써서 청장은 물개박수까지 치며 큰소리로 웃었다.
"아마 피해자들은 미혼 여성이 아니라, 전부 엄마들일껄"
"무신 소리하노?! 을매 전에 피살된 '시대 김밥' 사장은 얼라가 없다 아이가! 니 그것도 모르나?"
프로파일러가 피해자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줄 알고 배계장이 거칠게 몰아붙였다. 프로파일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간부들이 지원 사격을 하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덤덤하게 대꾸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좀 알아봐"
그가 대놓고 무시하자 배계장은 눈이 돌아가서 청장과 간부들이 있는데도 화를 버럭 냈다.
"뭐라꼬?! 니 그래 주디 함부로 놀릴 끼가?!"
"피해자들 인적 사항 다시 조사해봐. 그럼,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게 될 거야"
"아니모? 그라모 니 우짤 낀데?"
배계장이 씩씩거리자 청장이 그만하라는 뜻으로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래! 인적 사항이랑 피해자들의 공통점, 샅샅이 찾아봐"
브리핑을 마친 후, 배계장은 옥상에서 혼자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러다가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노무 쌔끼 이거 주디를 쌔리 뽷뿔라. 어데 그래 눈까리 치트노?! 고마 눈까리 확 파뿔라! 니 그래 나대모 대그빡 뽀사불끼다!"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실컷 욕을 해대고 숨을 몰아쉬는데, 문득 그가 한 말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엄마한테 사랑받지 못했거나 버림받은 것에 대한 증오심이 가학적이고, 잔인한 범행으로 표출된 거죠"
배계장은 심각한 얼굴로 입에 다시 담배를 물었다.
"은선이 글마가 얼라였을 때 어매가 집 나가삣다 캤제"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그가 착잡한 심정과 설렘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심야 생방송 때, 경인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마음이 진정되지를 않아서 오프닝 멘트를 계속 틀렸다.
"왜 저래? 이제는 별 걸로 다 피곤하게 만드네"
이주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짜증을 냈다. 그러다 몸을 돌리면서 경인과 눈이 마주치자 속마음을 감춘 채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생방송을 끝내고 집에 도착했을 때, 경인은 녹초가 돼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침대에 뻗어서 자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잖아"
너무 배가 고프면, 경인은 잠이 들었다가도 깨곤 했다. 다시 바로 잠이 들면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만, 정신이 말짱해져 밤새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뭐라도 먹고 자자"
냉장고에서 샐러드를 꺼낸 후, 정수기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허기진 상태라 라면 냄새가 입맛을 다시게 했다.
"앗 뜨거워!"
갑자기 경인이 두 손에 든 컵라면을 떨어트렸다. 컵라면은 그대로 엎어져서 면발과 국물이 주방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런데도 경인은 바닥이 아닌 주방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누구지?"
분명히 주방 창문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주방 창문이 잠겨 있었지만, 경인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왠지 그가 현관문 앞으로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헉!"
경인이 소스라치며 나지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 현관문 손잡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디지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걸쇠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채워져 있지만 안심이 되지를 않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윽고 디지털 도어락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인은 너무 소름이 끼쳐서 눈앞이 하얘지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이어 비밀번호 버튼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누르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어떡해?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상대를 제대로 본 것도 아닌데, 자꾸만 은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그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오기는 커녕 현관문 앞까지 오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경인은 공포감에 정신이 아득한 상태에서도 TV 뉴스와 언론사 기사에 '오경인 아나운서 피살'이라는 타이틀이 뜬 장면이 떠올랐다. 장례식장 빈소에 자신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는 장면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정신 차려야 돼. 이대로 맥없이 당할 수만은 없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경인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주방으로 뛰어가서 식칼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손에 움켜쥔 채 다시 현관문 앞으로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현관문 밖이 잠잠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분위기를 깨고 갑자기 현관문이 통째로 뜯겨나갈 것만 같았다. 느닷없이 상대가 방에서 뛰쳐나올 것도 같았다. 그렇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서야 문밖에 누가 있는지,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경인은 심호흡을 한 후, 현관문 외시경에 눈을 갖다 댔다. 상대도 외시경에 눈을 갖다 대고 있어서 서로 눈이 마주칠까봐 조마조마했다.
"헉! 뭐야!"
경인이 기겁하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문밖에 은선이 서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현관문 밖에는 전혀 의외의 남자가 서있었다.
'삐리리릿~ 삐리리릿~~'
도어벨이 적막을 깨고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칼끝처럼 날카롭게 들려서 경인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작두날처럼 더 날카롭게 들렸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연쇄 살인범은 어디엔가 꼭 있다. 그들의 자녀들은 어떤 삶을 살까? 우연히 또는 운명적으로 서로 연인이 되는 경우가 없을까? 만약 연인이 될 경우,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고 행복할까? 혹시 그들 중에 아버지의 살인 본능을 물려받은 자녀는 없을까?
- 작가의말
누군가가 죽어야 할 이유는 살인마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상대에게 전혀 통보없이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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