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마지막으로 환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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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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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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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주인 (3)

DUMMY

"뭐, 뭐?"


웨딘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여전히 성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면서 내게 따져 말했다.


"날 밀치면서 어서 도망가라고 잘난 듯 소리치는 거 두 번은 못 봐. 제기랄, 나도 싸울 수 있다고!"


내게 보란듯이 웨딘은 자신의 허리춤에 찬 짧은 검을 반쯤 뽑아들었다.


그때 웨딘은 푸른 빛이 도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가락이 드러난 형태의 반장갑으로 그레인에게 선물 받은 것이었다.


저것도 분명 성법도구일 텐데. 정말로 우리와 함께 가려는 걸까.


나는 어떻게든 그를 말려보려고 당황 속에서 입을 열었다.


"웨디, 넌 성법사······."

"그럼 성법사로서 동행하겠어! 누군가 다치기만 해봐, 다치는 것보다 빠르게 고쳐 버릴 테니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웨딘이 받아쳤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한 거지?"


알 수 없는 울분에 차올라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는 게 분명했다.


웨딘을 더 말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기사들이 진입 작전을 시작하기 위해 곳곳으로 흩어졌고, 백위경과 기사들은 이미 회랑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있었다.


"리베릭! 이리 와라!"


백위경이 나를 불렀다. 더 고민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가자, 웨디. 클레멘, 좀 있다가 봐."

"아, 응! 두 사람 다 조심해!"


클레멘의 간절한 외침을 마지막으로 나는 웨딘과 함께 백위경이 기다리고 있는 회랑의 문 쪽으로 향했다.


회랑을 지나면서 애쉬를 불렀다. 안에 마수가 있으면 애쉬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지도 몰랐다.


애쉬가 정원 반대쪽에서 나타나 빠르게 달려오자 웨딘이 움찔 놀라며 떨어져 섰다.


"애쉬, 완전히 젖었네요······."


빗속을 달려온 애쉬는 푹 젖은 털이 늘어져 있어 무척이나 애처롭게 보였다.


'몸이 무겁군.'


나는 이해했다.

애쉬의 능력 대부분은 후각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가, 젖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움직임도 느려진다.


"알겠어요, 무리하지 말고 보조해 주세요."


애쉬가 말 없이 대답하고는 기사들보다 먼저 열린 문 틈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웨딘, 괜찮겠니?"


백위경은 나를 쫓아온 웨딘을 힐끔 바라보고는 물었다.

웨딘은 각오 단단히 한 얼굴로 백위경을 마주했다.


"문제 없습니다."

"성법사가 같이 와 주면 우리들로선 마음 든든하다만, 만일 위험해지면 지체 없이 물러나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웨딘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백위경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좋아, 그럼 진입하자."


백위경과 제너드 경을 선두로 나와 웨딘, 그리고 백위대의 기사 다섯 명이 에델리아 별궁 1층의 회랑 입구로 들어섰다.


일자로 곧게 뻗어나간 넓은 복도에는 인적이 없었다.


제너드 경은 방향을 가늠한 후 조심스럽게 앞장 서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의 다른 장소에서 아버지와 은위경이 각각 이끄는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팡이를 뽑아들고 주변을 경계하면서 나아갔다.

주의 깊게 마력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위험이 될 요소들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면서도 별궁 가장 안쪽에서 느껴지는 검은 드래곤의 기운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베르타로트는 마력을 감지하기 때문에 내가 마력을 쓴다면 날 알아볼 텐데.


아니······ 날 알아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나는 무엇 하나 확신할 수가 없다.


"······조용하군요."


검을 뽑아들고 신중히 앞장서 가던 제너드 경이 중얼거리자, 백위경이 주변을 경계하며 말했다.


"궁정마법사장과 레이몬드 왕자가 왕국기사들에게 귀족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그들을 신뢰하진 않는 모양입니다."


그랬다면 이 별궁을 왕국기사들이 수비하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는 왕국기사들과 검을 맞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항상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프리우스가 정말로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었다.


"예를 갖춰 모셔야 할 사절단에게 반역이라니. 이건 정말로 심각한 추태입니다······."


제너드 경의 목소리가 분노와 수치심에 잠겨 떨렸다.

백위경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는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해야 할지 찾지 못했다.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집중하지요."


복도를 돌아서자마자 가트라 세 마리를 발견한 백위경이 말을 멈추고 검을 들었다.


가트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낮추고 곧장 달려들었고, 제너드 경과 백위경은 가벼운 동작으로 순식간에 가트라들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가트라 세 마리의 몸통은 거의 동시에 벽에 부딪힌 후 그대로 쓰러졌다.


제너드 경과 백위경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에는 좁은 복도에서 서로의 범위를 빠르게 파악하고는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려 검을 휘둘렀다.


그 노련한 경지는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리베릭과 웨딘은 가급적 물러나 있거라. 복도가 넓지 않으니 주의하고."


백위경이 검은 피가 묻은 검을 털어내며 말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나는 웨딘과 함께 조금 물러났다.


백위경의 말대로 백위대의 기사들은 일렬로 조금씩 떨어져 대열을 유지했다.


우리는 백위경의 뒤에 있었는데, 종종 가트라들이 복도나 빈 방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움찔 놀라는 게 전부였다.


"끝도 없이 나오는군. 어디서 이렇게 나오는 거지?"


백위경은 가트라의 몸통에 꽂아 넣은 검을 뽑으며 말했다.


복도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서너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씩 튀어나오는 통에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장식이 가득한 복도는 마수들의 사체와 피로 을씨년스럽게 변했고, 다른 복도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는 듯 마수들의 비명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수들은 아니예요. 바르쿠스가 가트라들을 불러냈던 것처럼, 검은 드래곤이나 궁정마법사장이 불러내고 있는 거예요."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복도가 넓지 않은 덕인지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일은 없었고, 한두 마리, 많아도 네 마리 정도가 다였다.


가끔 애쉬가 앞이나 뒤쪽에서 불쑥 나타나 가트라들의 목을 부러뜨리고 갔지만, 백위대의 기사들은 애쉬의 도움 없이도 마수들을 상대하는 데엔 더없이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전의 가문기사들은 우리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는데도 쩔쩔매며 도망치기 바빴는데.


"그럼 빠르게 나아가야겠군."


백위경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색색의 유리로 장식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장식들에 시선을 빼앗겼을 것이다.


"저쪽이 정문입니다."


제너드 경이 왼쪽의 붉은 카펫이 깔린 넓은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펫의 끝에는 녹색 유리 장식이 달린 커다란 정문이 있었다. 굳게 잠겨 있었던 문이었다.


백위경은 기사 한 명을 불러 정문을 열고 바깥에 있던 왕국기사들을 데리고 들어오라 지시했다.


기사가 정문으로 달려간 후 백위경은 몸을 돌려 반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쪽이 연회장이겠군요."


붉은 카펫은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 복도의 안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화려한 조각 기둥들이 세워진 복도에 가트라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불경스러운 장면을 또 보게 되다니······."


제너드 경이 분노로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검을 치켜 들었다.

그가 기합을 내지르며 가트라들에게 달려들자, 백위경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복도를 장악한 가트라들을 하나둘 해치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웨딘도 검을 꺼내들고 있었는데 휘두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앞에서 다가오는 가트라들은 백위경의 선에서 정리가 끝났고 뒤에서 다가오는 가트라들은 기사들이 이미 해치워버린 후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죽기 직전의 가트라가 피를 흘리며 웨딘을 향해 입을 벌렸을 때 웨딘은 으아으, 하는 이상한 기합소리를 내며 가트라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손에 묻은 피를 한참 내려다 보더니 한발 늦게 앞으로 쫓아왔다.


"쫓아온 거 후회되지 않아?"


그 모습을 힐끔 보면서 묻자 웨딘은 이를 꽉 물고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건 익숙해지면 그만이야."

"그렇다면야······."

"리베릭, 이쪽으로 와 보거라."


몇 걸음 앞의 백위경이 나를 불렀다.

나는 웨딘과 이야기 하다 말고 백위경의 앞으로 달려갔다.


복도의 가트라들을 모두 해치우고 난 뒤, 제너드 경과 백위경은 연회장의 입구로 보이는 아치형의 문 앞에 도달했다.


문은 물론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위에는 일종의 마법적인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건······."


나는 정교한 구조의 마법진이 중앙의 붉은 에크로니움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시마력을 이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마법진은 이 문 뿐만 아니라 복도의 벽을 통해 다른 문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쪽에도 비슷한 장치가 있는 게 분명했다.


"문을 막고 있는 것 같군."


백위경이 연회장의 문을 밀어 열려고 해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마법진에 가로막혀 손이 문에 닿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이 장치가······."


"으아아악!"


장치 위에 손을 올리자마자 뒤에서 웨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웨딘의 바로 옆에서 가트라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웨디!"


백위경이나 기사들의 검이 그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웨딘이 반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반짝이는 얼음 알갱이들이 한 움큼 쏟아져 나오더니 가트라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키에에엑!


얼굴이 얼어붙어 눈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가트라가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그 앞으로 돌아간 백위경이 가트라의 목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웨디, 괜찮아?"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웨딘에게 달려갔다.


웨딘은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건 푸른 샘의 장갑이구나. 물의 아르바트 일족이 만드는 성법도구지."


백위경이 웨딘의 장갑을 내려다 보더니 대신 설명했다.


"하지만 방금 그건 마법 같았는데요."

"글쎄다, 물의 아르바트의 천성을 담고 있다는 것 말고는 나도 문외한이라. 어쨌든 우린 저 마법진부터 해결해야겠는데, 저게 가트라를 소환한 거냐?"

"아, 네, 맞아요."


나는 웨딘에게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웨딘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있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놀란 심장을 가라앉혔다. 다행히 조금 놀란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나는 다시 연회장의 문 앞으로 돌아갔다.


마법진의 에크로니움 앞에 손을 올리자, 불길한 마력이 손바닥 안에서 일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은위경이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이게 설치되어 있을 거예요. 문을 가로막으면서 동시에 가트라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없앨 방법은?"


백위경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쨌든 강한 마력으로 부딪치면 이런 왕국계 마법은 금방 깨져 버리겠지만, 다른 쪽에 있는 마법진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버지와 은위경이 역시 문 앞에서 끊임 없이 나타나는 가트라들을 상대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거면 되겠네요."


나는 품 속에서 매듭풀이 열쇠를 꺼내들었다.

이거면 연결되는 마법진까지 모두 없애버릴 것이다.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처럼 마법 전체를 풀어버릴 테니까.


"들어갈 준비는 됐어요?"


나는 매듭풀이 열쇠의 머리 부분을 잡고 마법진 앞으로 뻗었다.


"언제든지."


백위경은 씩 웃으며 말했고 제너드 경은 검을 든 자세를 고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매듭풀이 열쇠에 마력을 집중했다.


열쇠에 새겨진 라고트 알투르의 문양이 빛나면서 열쇠의 마법이 문의 마법 장치를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운데에 있던 붉은 에크로니움이 바닥에 툭 떨어지면서 마법진이 천천히 사라졌다.


문과 연결되어 있던 곳곳의 마법진 역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별궁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마법이 사라지자, 연회장의 문이 끼익거리며 저절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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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바위와 늪의 길 (4) 24.03.27 8 0 14쪽
453 바위와 늪의 길 (3) 24.03.25 7 1 13쪽
452 바위와 늪의 길 (2) 24.03.23 8 1 15쪽
451 바위와 늪의 길 (1) 24.03.22 8 1 14쪽
450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6) 24.03.20 8 1 14쪽
449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5) 24.03.18 9 1 14쪽
448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4) 24.03.16 10 2 15쪽
447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3) 24.03.15 9 2 14쪽
446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2) 24.03.13 10 2 15쪽
445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1) 24.03.11 10 2 14쪽
444 폐도의 리베릭 (6) 24.03.09 11 2 14쪽
443 폐도의 리베릭 (5) 24.03.08 12 2 13쪽
442 폐도의 리베릭 (4) 24.03.06 11 2 13쪽
441 폐도의 리베릭 (3) 24.03.04 14 2 13쪽
440 폐도의 리베릭 (2) 24.03.02 12 2 14쪽
439 폐도의 리베릭 (1) +1 24.03.01 1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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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재생 (7) 24.02.17 10 2 14쪽
435 재생 (6) 24.02.16 11 2 15쪽
434 재생 (5) 24.02.14 10 2 14쪽
433 재생 (4) 24.02.12 10 2 13쪽
432 재생 (3) 24.02.10 11 2 14쪽
431 재생 (2) 24.02.09 12 1 12쪽
430 재생 (1) +1 24.02.07 18 2 13쪽
429 파멸 (4) 24.02.05 15 2 16쪽
428 파멸 (3) 24.02.03 11 2 15쪽
427 파멸 (2) 24.02.02 11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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