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마지막으로 환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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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달리아
작품등록일 :
2021.12.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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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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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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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땅의 추적자 (4)

DUMMY

"리베릭."


나는 입을 가리고 콜록거리다가 그대로 돌아보았다.

뒤에서 쫓아오던 은위경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애쉬에게 다른 흔적을 찾게 할 수 있나? 마셀라 일행도 그리 멀리 있진 않을 거다."

"그렇겠네요. 애쉬?"


말이 끝나자마자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던 애쉬가 내 앞으로 훌쩍 뛰어내려 왔다.


은위경의 하는 말을 이미 들었는지, 곧장 주변의 냄새를 쫓으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으.'


애쉬가 갑자기 몸을 움츠렸다. 그의 몸이 일순 은빛으로 빛났다가 가라앉았다.


나는 놀라서 그의 앞에 앉아, 목덜미에 손을 댔다.


"애쉬? 왜 그래요?"

'지독한 냄새.'

"냄새? 악마종이 가까이 있어요?"


내 목소리를 듣고 은위경이 다가왔다.


웨딘은 항상 목에 걸고 있는 멜그램을 슬그머니 꺼내 보았다.


멜그램은 일정 범위 안에 악마종이 있는지 알려 주는데, 얼핏 보기로는 검게 물들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다. 이건······.'


애쉬가 당황한 것처럼 말을 멈췄다.


"애쉬?"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애쉬가 이상해 보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는데.


애쉬는 무언가를 털어내듯이 고개를 젓고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 길가의 바위 위로 휙 뛰어올라갔다.


'더 찾아보마.'

"괜찮은 거예요?"


애쉬는 대답 없이 바위 사이를 뛰어넘으면서 앞으로 내달려 갔다.

움직임은 평소와 같은데, 아무래도 상태가 걱정스럽다.


"은위경, 아까부터 애쉬가 좀 이상해요. 화산에 적응하기가 어려운가봐요."


나는 걱정스레 말하면서 다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애쉬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음, 그러고 보면 애쉬를 처음 발견한 게 이 부근이었다."

"어······."


나는 놀라서 은위경을 올려다 보았다.


"애쉬를 처음 발견한 곳이 이 부근이라고요? 하지만 애쉬가 사로잡힌 건 폐도에서라고."


3여년 전 감옥에 갇혀 프리온으로 이송된 애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들었는데.


은위경은 가만히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클라우스 님과 이곳을 방문했을 때, 커다란 늑대 마수가 티르가들을 이끌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퇴치하려 했지만 너무 빨랐고 이곳의 지형은 전투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어."


"그게 애쉬였군요."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애쉬가 이곳에 있었다니.


"클라우스 님이 마법으로 쏘아낸 화살 하나만 겨우 맞았고, 늑대 마수는 그대로 도망쳤다.

그리고 폐도에서 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은 애쉬를 발견했지."


그후로 적위대가 애쉬를 프리온으로 이송해 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만나기 전의 애쉬에 대한 것은 잘 알지 못했다.

애쉬는 워낙 말수도 적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으니까.


"애쉬가 왜 이런 곳에 있었을까요? 폐도의 은월 기사대 소속이었다는 건 알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는 전혀 몰라요."


"글쎄, 알다시피 그는 우리에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건 너뿐이니, 이번 기회에 물어보는 것도 좋겠군."


"알겠어요, 한 번 물어 볼게요."


나는 애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푹신한 흙이 깔린 평평한 언덕 위에서 카일이 잠시 휴식하자며 걸음을 멈췄다.


아르젠은 쉴 여유 따윈 없다고 불만을 내뱉었지만, 카일은 여기서 쉬어야만 나머지 길을 무사히 오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노련한 자경단원들도 여기선 꼭 쉬어요. 이후로는 잠시도 걸음을 멈출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아르젠도 어쩔 수가 없었다.


평평한 언덕은 이 부근에선 가장 안전한 지대였다.


오른쪽에는 까마득한 절벽과 산봉우리가, 왼쪽에는 가파른 비탈과 불이 흐르는 시내가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절벽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검은 바위는 선선한 그늘이 되어 주었다.

그 아래는 불씨 섞인 바람도 없었고 열기도 없었다.


각자 가방을 풀고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고, 건조한 여행 식량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카일은 마셀라와 용병들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라 했다.


여기서부터 불오름 분지의 야영지까지 가는 길이 많지 않다며, 몇 개의 길 위치를 가리켰다.


아르젠과 은위경은 까마득히 먼 바위 지대를 노려보거나 머리 위 절벽 사이의 길을 쳐다보았지만 마땅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애쉬와 함께 구석진 바위 그늘 아래로 들어섰다.


애쉬는 화산의 바위 위를 뛰어다느라 조금 지친 듯했다.


아니, 조금, 탔나······?


애쉬의 꼬리 끝 털이 묘하게 거뭇거뭇하니 말려들어가 있다.


그걸 말했다간 애쉬의 신경이 더 날카로워질 것 같아서,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앉았다.


"어때요? 마셀라의 흔적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여자의 냄새를 구분해낼 수가 없다. 악마종의 모습을 취하거나, 일부러 냄새를 흘리지 않는 한······ 어려워.'


역시 그런가.


델라트리아에서 마셀라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애쉬는 감지하지 못했다.


이전에 키르칸트 시내에서 마셀라를 쫓을 수 있었던 건 일부러 우리를 유인했기 때문이었고.


"어차피 마셀라는 결국 만나게 될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애쉬.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애쉬는 눈을 깜박이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걸 긍정의 의미라고 멋대로 해석했다.


"은위경에게서 들었어요. 애쉬가 여기, 키르크 화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그때 기억 나요?"

'아니.'


너무 빠른 대답에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아, 아니, 그러지 말고 좀 더 생각해봐요. 정말 기억 안 나요? 클라우스 스승님의 공격을 받았고 그 이후 폐도로 갔다던데."

'기억 안 나.'


이번에도 애쉬는 빠르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나는 약간 오기가 생겨서, 애쉬의 얼굴을 붙잡고 내 쪽으로 억지로 돌려 놓았다.


"그럼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 건데요? 여기서 있었던 일과 관련된 거 아니예요? 뭘 알아야 돕죠······."


애쉬는 짧게 으르렁거린 후 몸을 비틀어 내게서 떨어졌다. 더 귀찮게 하면 물어버릴 거란 듯이 내게 이를 내민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나는 그의 사나운 눈빛을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정말로 기억이 안 나.'


짧은 대치는 애쉬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는 것으로 끝났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철창 바깥에 있던 너를 만났을 때다.

그 이후의 모든 기억은 분명하게 남아 있지만, 그 이전의 기억은 아주 흐릿해.'


"아······ 그럼 키르크 화산에 있었을 때의 기억도요?"


'거의 없다. 다쳤던 것은······ 모르겠군.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해야할 일이 있었다는 거다.'


애쉬는 추위를 느끼는 듯이 몸을 가볍게 떨었다.


아니, 긴장하고 있나?

항상 살랑살랑 흔들리던 꼬리가 안으로 말려들어가 굳어 있다.


나는 그의 앞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해야할 일? 그게 뭐죠?"

'떠올리고 싶지 않다.'


애쉬는 단호하게 말했다. 붉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이상하게 보였던 건, 이 땅에 들어선 이후로 머릿속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자꾸 들려오기 때문이다.

네 옆에 있으면 거의 들리지 않으니, 함께 이 땅을 벗어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야. '


"목소리라니."


애쉬가 아까부터 이상하게 굴었던 건 그게 원인이었나.

뱃속이 차가워지는 듯하다.


"뭐라고 말하는데요?"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없다. 기분 나쁜 목소리야. 알 필요 없다.'

"아뇨, 알아야겠어요."


애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이를 꽉 물었다.


"그게 여전히 애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면 내가 알아야 해요. 말해 주세요, 애쉬."


이성을 되찾기 전의 애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목소리.

여전히 애쉬가 그들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그 목소리에 집중해서 들어보고, 내게 말해줘요."


애쉬는 말 없이 생각에 잠겨 나를 바라보았다. 두려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몸을 점점 부풀리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했던 눈높이가 점점 올라가면서······ 이윽고 고개를 꺾어 올려다볼 정도로 커졌다.


바위 그늘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커진 잿빛의 늑대가 붉은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나를 내려다본다.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평소 애쉬를 감싸던 마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애쉬의 붉은 눈동자 속에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드러났다.


온몸에 털을 두르고 있는 체격이 큰 사내의 모습.

애쉬는 나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애, 애쉬?"


당황해서 손을 뻗으려는 순간, 애쉬가 입을 열었다.

목 안쪽에서 끓는 듯한 쇳소리가 흘러나온다.


"'재의 사막에서 칼라드라를 찾아라.'"


평소 머릿속을 울리던 애쉬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낯설고도 고통스러운 음색.

사람의 언어를 할 수 없는 목에서 나온 목소리.


등줄기가 얼어붙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나는 다급하게 애쉬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애쉬."


괜찮냐고, 정신 차리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애쉬의 목덜미가 은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걸 본 순간, 눈앞이 크게 흔들렸다.


숨을 들이마시는 짧은 찰나에 막대한 마력이 애쉬에게로 흘러들어갔다.


잿빛의 늑대는 순식간에 온몸을 은빛으로 빛내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눈부신 빛이 어지러운 시야에 잔상을 남기고 있을 때.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창백한 얼굴의 사내가 내 앞으로 쓰러졌다.


"으헉."


순식간에 막대한 마력을 잃어 정신이 없던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애쉬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했다. 창백한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나보다 덩치가 큰 애쉬의 몸을 겨우 옆으로 밀어냈다.


"으으······."


토할 것 같아.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고 머릿속에서는 깨질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누군가 날카로운 송곳으로 머릿속을 찔러대고 있는 것 같다.

바닥을 기다시피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애쉬가 내 마력을 흡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가져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야만 했던 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애쉬를 돌아보았다.


애쉬가 사람일 때의 모습은 무척 생소하지만 그가 가진 분위기나 느낌은 언제나의 애쉬와 같았다.


그 목소리를 떠올릴 때의 애쉬는 마치 이전의, 이성을 되찾기 전의 악마종처럼 보였고, 지금의 애쉬로 돌아오기 위해서 또다시 내 마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로브를 벗어 애쉬의 몸 위에 덮었다. 추울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어도 어쩐지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난 후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은위경에게 이 일을 전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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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바위와 늪의 길 (4) 24.03.27 8 0 14쪽
453 바위와 늪의 길 (3) 24.03.25 7 1 13쪽
452 바위와 늪의 길 (2) 24.03.23 8 1 15쪽
451 바위와 늪의 길 (1) 24.03.22 8 1 14쪽
450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6) 24.03.20 8 1 14쪽
449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5) 24.03.18 9 1 14쪽
448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4) 24.03.16 10 2 15쪽
447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3) 24.03.15 9 2 14쪽
446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2) 24.03.13 10 2 15쪽
445 기사의 왕국, 수로의 왕도 (1) 24.03.11 10 2 14쪽
444 폐도의 리베릭 (6) 24.03.09 11 2 14쪽
443 폐도의 리베릭 (5) 24.03.08 12 2 13쪽
442 폐도의 리베릭 (4) 24.03.06 11 2 13쪽
441 폐도의 리베릭 (3) 24.03.04 14 2 13쪽
440 폐도의 리베릭 (2) 24.03.02 12 2 14쪽
439 폐도의 리베릭 (1) +1 24.03.01 10 2 14쪽
438 재생 (9) 24.02.21 16 2 16쪽
437 재생 (8) 24.02.19 14 2 13쪽
436 재생 (7) 24.02.17 10 2 14쪽
435 재생 (6) 24.02.16 11 2 15쪽
434 재생 (5) 24.02.14 10 2 14쪽
433 재생 (4) 24.02.12 10 2 13쪽
432 재생 (3) 24.02.10 11 2 14쪽
431 재생 (2) 24.02.09 12 1 12쪽
430 재생 (1) +1 24.02.07 18 2 13쪽
429 파멸 (4) 24.02.05 15 2 16쪽
428 파멸 (3) 24.02.03 11 2 15쪽
427 파멸 (2) 24.02.02 11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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