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사또 육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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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오복
작품등록일 :
2021.12.09 20:42
최근연재일 :
2022.03.3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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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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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7화

DUMMY

영서 나리는 저를 아끼십니다.


따로 집을 만들어 내어 주실 정도로 아끼시지요. 하여 본인이 아닌 다른 사내들과 제가 말을 섞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퍽, 퍼억, 퍽!


“···진비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다른 이들과 말 섞지 말라고.”


나리는 하늘 아래 무서울 게 없는 분이십니다. 거기에 불같은 성격까지 지니고 계시지요.


퍽, 퍼억!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주제도 모르고 아무것이나 탐낸 이들의 잘못이지.”


네가 저놈에게 미소를 지어주었구나, 네가 저놈과 말을 섞더구나, 하는 이유를 들며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어라 말을 내뱉거나 불만을 토해낼 순 없었습니다.


나리는 대단하신 김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니까요. 억울하여도 하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제 옆에 사람이 떠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요.


그게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저를 아낀다 말하며 해주시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나리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그때, 산뫼 나리를 만난 것입니다.


“이산뫼라 하오.”


영서 나리가 저를 자랑하시겠다 부른 술자리에 산뫼 나리가 계셨습니다. 순해 보이는 인상이 눈길이 가는 사내였지요.


그 뒤로도 두 분은 자주 만나곤 했습니다.


산뫼 나리는 그때마다 아닌 척하면서도 흘끔흘끔 제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나리 딴에는 몰래라고 생각했겠으나, 제 눈에는 전부 보였습니다.


그 풋내나는 눈길에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였지요.


“미안하오! 그대가 이미 영서의 사람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 품어버렸어···.”


“···예?”


“그러지 말아야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하고 다짐했는데.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대만 보이고, 머릿속에서 그대 생각이 떠나질 않아.”


“···.”


“이게 잘못된 줄 알면서도 연정을 품어버렸어. 말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속이 답답하고 입안이 간질거려 참질 못했어.”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꾸며지지도 않았고, 희대의 문장가처럼 멋진 말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서툴기 짝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었습니다.


“이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그러질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참질 못해 그댈 곤란하게 만들었어. 정말 미안하오.”


그래서 받아주었습니다.


답답한 마음과 상황 속에서 일탈하고 싶은 충동적인 선택이었으나, 그 순진함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또한 산뫼 나리 역시 고귀한 양반이니, 들킨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들처럼 손대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고요.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윽!”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내 뒤통수를 아주 거하게 쳤어.”


주먹부터 나갔던 전과 달리, 산뫼 나리는 멱살을 붙잡고 경고하는 것만으로 끝이 났습니다.


“내 이번에는 특별히 자네의 가문과 아비의 얼굴을 보아 넘어가지. 허나 다시는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그때는 가문이고 뭐고 내가 그댈 가만두지 않을 거거든.”


웃음이 나왔습니다.


산뫼 나리 정도 되면 저분도 어쩌지 못하시는구나. 화가 나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시는구나. 이제까지 쌓였던 모든 것들이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해서 붙잡았습니다.


“내가 잠깐 미쳤었던 게지. 잠깐 머리가 돌아 해선 안 될 짓을 한 게야.”


이 모든 걸 그만두려는 나리를요.


“나리, 이대로 끝내실 겁니까? 진정으로 저를 영영 보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허나···. 애초에 해선 안 될 짓이었어.”


순전한 사내 하나 꾀는 일이 무어가 어렵겠습니까.


그렇게 저희는 영서 나리의 경고도 무시하고 계속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고서.


정말 경고 그대로 가만두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꺄아아악!”


한 치의 망설임도 두지 않고 창으로 산뫼 나리를 찌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컼, 쿨럭···.”


“그러게, 내가 경고하지 않았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창을 들고 산뫼 나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번 걸리면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 * *




“그 이후는 사또께서도 아실 겁니다. 산뫼 나리의 시신을 치우고, 벽지를 바꾸고, 신발을 치우고.”


“···.”


“이 정도면 충분히 답이 되었는지요?”



-띠링!

「 단서7. ‘진비의 증언’을 발견했습니다! 」



하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걸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임자 있는 사람을 좋아한 이산뫼? 위험할 걸 알면서 받아준 진비?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김영서?


‘확실한 건 사람이 죽었다는 거지.’


누가 원인을 제공했고, 상황을 부추겼고 간에 그 과정에서 살인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사또는 이번 일로 나리가 벌을 받으실 것이라 보십니까?”


“사람을 죽였어. 당연히 처벌받아야지.”


당연한 거 아닌가? 어째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리는 어떤 벌도 받지 않을 것이고, 저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곳을 나가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또는 백성을 아끼며 불의를 모르시는 강직한 분이시지요. 그리고 아직 현실을 잘 모르시고요.”


내가 현실을 모른다고?


“이제 곧 깨닫게 되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진비는 내 어깨너머 뒤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서 이방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가보십시요.”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진비를 뒤로한 채 이방에게로 달려갔다.


“헉, 사또! 허억···.”


“왜, 무슨 일이야?”


이방은 허리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애썼다.


“사또, 헉, 저기, 흐, 동헌에 김, 김영서가 와있습니다.”


드디어 납시셨군.


진비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니 당장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때맞춰 잘 와줬다.


“어서 가보자고.”


“으예? 예에···.”


아직도 헉헉대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방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김영서가 난리 칠 것 같거든.’


독이 바짝 올랐을 테니 애먼 사람을 잡고 있을지도 몰랐다.


타다다닥


이방과 함께 서둘러 동헌으로 달려가자 동헌의 앞마당에는 폭발하기 직전의 김영서가 서 있었다.


“당장 사또를 불러오지 못하겠느냐!”


잔뜩 흥분해 어깨를 들썩이는 놈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저 새끼 눈이 맛 간 거 같은데?’


움찔


번들거리는 김영서의 눈을 마주치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이제 오십니까, 사또.”


꿀꺽


“관아에서 행패는 좀 아니지 않나?”


“제가 이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아무도 건드리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할까?


아무도 때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당당한 놈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여기까지 제 발로 온 이유가 뭘까.”


이유야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 번 떠봤다.


“진비, 어디 있습니까.”


“아, 진비? 그쪽은 지금 옥에 있지.”


김영서의 이마와 꽉 쥔 주먹에서 힘줄이 튀어나왔다.


“진비의 집에서 이산뫼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증거가 나왔어.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구속이 당연한 거 아니겠어?”


“···.”


“사실 이쪽은 진비보다 그쪽이 이산뫼를 살해한 범인에 가깝다고 보는데 말이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김영서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렇게 보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살해 도구인 창을 잘 다루지 못하더라고. 서투르게 휘두르는 무기에 쉽게 당해줄 리가 없잖아?”


“···.”


“그렇다고 그 집의 노비들이 주인의 창을 함부로 휘두르지도 않았을 테고, 그럼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김영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참, 사또.”


그러다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관할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나면 무조건 관찰사로 보고해야 한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건 왜?”


김영서의 말대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관찰사에 보고를 해야 했다. 지금도 대충 상황만 마무리 짓고 나면 바로 보고할 생각이었고.


‘저놈이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갑자기 그런 사실을 확인하는 이유가 뭔지 의심스러웠다.


“아니, 어서 보고하시라고. 관찰사에도 보고하고, 형조에도 보고하고.”


놈의 저의를 알 수 없으니 찜찜했지만, 그렇다고 보고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동안 나도 진비 옆에 함께 있으면 되겠습니까?”


심지어 직접 옥으로 들어가겠다고?


“어이! 거기 너, 옥사로 안내하거라. 친히 내 발로 걸어 들어가 주지.”


김영서는 비뚜름하게 웃으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놈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또, 지금 당장 보고를 올리시렵니까?”


“그래야지, 별수 있나.”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면 알게 될 것이다. 김영서가 왜 저렇게 행동한 것인지.




* * *




쾅!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내 눈앞에 있는 서신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 이번 사건은 조용히 덮으라. 」



덮으라니, 조용히 덮으라니!


쾅!


다시 한번 세게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사또, 도대체 무어라 쓰여 있기에 그리 화를 내시는 겁니까···?”


형방의 물음에 대한 답은 나 대신 이방의 입에서 나왔다.


“관찰사께서 말씀하시길, 이번 일을 이제 그만 덮으라 하시네.”


“예? 아니, 어찌···.”


형방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어떤 얼굴인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이 죽었다. 증거가 명확했다.


그런데 덮으라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후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걸 거야. 다시 보고를 올려야겠어.”



「 번복은 없다. 사건을 그만 덮으라. 」



‘아니 대체 왜? 어째서?’


김영서가 김씨 가문의 사람이라서?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사람이 죽었다. 일의 크기가 작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때였다.


똑, 똑, 똑


“사또, 이방입니다.”


“···들어와.”


‘응?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이방이 자신이 왔음을 알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하기에 고개를 들어 살폈다.


“왜 그러고 있어?”


곧장 들어올 줄 알았던 이방은 문가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저 사또, 그것이···.”


그런 이방의 행동이 이상해 다시 한번 물어보려던 찰나, 문가에 서 있던 그를 밀어내고 누군가 들어왔다.


‘누구?’


이방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사또, 관찰사 윤행원 님이십니다.”


관찰사라면, 내가 보고를 보낸 그 관찰사?


“이, 이곳까지는 어떻게···.”


“일단 앉지. 앉아서 얘기해.”


헙! 경황이 없어서 나보다 높은 상급자한테 자리도 권하지 않고 계속 세워놔 버렸다.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얼른 달려가 관찰사님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뺐다.


“자네 아직도 김영서를 풀어주지 않았지?”


관찰사 윤행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널브러진 종이들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말고 할 것도 없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주상 전하의 뜻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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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4화 22.03.29 109 4 12쪽
123 123화 22.03.28 109 3 12쪽
122 122화 22.03.27 10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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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20화 22.03.25 10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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