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야 하는 독주 (5)
* * * * *
이튿날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레프타의 워프 게이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안시아와 연결토록 하겠습니다. 지면에 새겨진 노란색 안전선 밖에서 그대로 기다려주십시오.”
- 위이이이이이이잉~. 치칙, 치지지지직...
그는 나디아의 주먹 크기와 비슷한 마정석 5개를 동력원 삼아 가동되는 게이트를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그래, 이거라면 확실히 귀환의 단서가 된다!’
그가 대충 보기에도 워프게이트의 출력과 내구력 등등, 상위 차원으로의 연결을 위한 기본적인 문제들이 산적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발견했다는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와 같은 의견은 마계 차원문 연구에 참여한 디마우스와 아카반, 그리고 베스퍼의 생각과도 대동소이했다.
‘으으, 무조건 이 장치를 분석하고 응용해야 해.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마계 차원문 개방에 매달 순 없잖아? 내가 무슨 마왕강림에 환장한 흑마법사도 아니고... 엇?! 만약 실력 좋은 흑마법사를 한 놈 붙잡아 동참시킬 수만 있다면? ...오!’
‘허허허, 보면 볼수록 이게 답이구먼! 소모될 마정석 수량이 어마어마하겠으나 그래도 어찌 산제물에 비할까.’
‘연구 난이도가 대폭 하락할 수도 있겠는걸? 마계 차원문을 무한정 개방할 것도 아니니 말이야.’
위 마법사 3명의 희망은 오드노아의 적극적인 협력이 대전제였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리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염려하는 부분은 진정 따로 있었다. 이들 모두 루카스가 오드노아의 집권층을 상대로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대략적으로 언질 받은 까닭이었다.
“나는 빠른 성과를 원합니다. 그래서 게이트를 보유한 그들에게도 진실을 전한 다음, 협조를 구하고자 합니다.”
“””!!!”””
처음부터 세 사람의 동행목적은 ‘중재’에 있었다. 보안관계상 루카스가 세부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당근보다 채찍에 특화된 그의 면모를 경험한 체험자들로썬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 하겠다.
‘전쟁만은 안 된다, 전쟁만은!’
자칫 어느 한쪽이 급발진할 경우, 오드노아가 이기든 지든 간에 트로돈의 침략방어에 있어 치명적인 전력상의 공백이 발생되는 고로 어떻게든 최악은 면해야 했다.
실제로도 그들은 워프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본인들의 차후일정을 싸그리 폐기시키고 따라붙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원인은 저 멀리 평야를 가득 메운 오드노아족 아홉 지파의 대단한 군세도, 샌더스 수장과 원로회 등의 최고 집권층이 주축인 환영단 때문도 아니었다.
“...맙소사.”
“허허...”
“세상에나...”
밑에서 올려다보는 시야로는 한 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인사를 건네온 거대한 존재는 그만큼 특별했다.
{어서들 오너라!}
오드노아 일족조차 통상 100년에 1번 겨우 볼 수 있다는 행성의 대변자, 바로 2대 정령왕인 ‘네타-라카나르 (Neta-Racanar, 새로운 의지)’가 친히 루카스 일행을 맞이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행성의 의지를 대변하는 자, 너희들이 정령왕이라 일컫는 자다. 나는 이 상황이 썩 내키진 않으나, 일단은 환영토록 하겠다.}
루카스가 전날의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폴라와 페이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의 놀라움은 이루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우와아아~!”
나디아의 순수한 탄성처럼 반투명한 드래곤 형상의 정령왕은 표면적인 위압감부터가 대단했다. 그가 환영인사를 건네며 펼쳐낸 날개는 마치 지평선 끝자락에 맞닿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것이 정령왕의 진정한 면모...”
비단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디마우스가 실감한 힘의 크기는 겨우 한 조각에 불과했던 1대 정령왕의 조각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 실체는 문자로 배워 익힌 어림짐작을 가뿐히 초월하고 있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덩치는 작지만 2대 소왕들이 이면세계로부터 차례로 나타나 정령왕의 양 옆으로 보좌하듯 늘어서자, 아카반 총장조차 잔뜩 긴장하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고위마족의 날선 화답이 아니었더라면, 오드노아의 영역에 발을 들인 방문자들은 이곳을 찾은 목적조차 깜박 잊었을 것이다.
“후훗, 매우 깜찍한 환영인사로군. 예상한 그대로다.”
정령왕의 허장성세를 히죽 비웃어준 루카스는 나디아를 야스민에게로 보낸 뒤 앞으로 천천히 나섰다.
“그렇다면 나 또한 정식으로 인사해줘야 도리겠지.”
{...?}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
그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이후로 형성된 분위기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성큼성큼 벌어지는 그와 일행 사이의 거리만큼 그가 내뿜는 기운도 차츰 변질되더니만, 어느 때부턴 그의 외견 또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 트득... 트드드드득...
{그, 그만둬라!}
라카나르가 다급히 외쳤으나, 피식 콧방귀 뀌며 다짜고짜 본연의 형상을 취하는 루카스를 저지할 방도가 없었다.
{젠장! 소왕들이여, 날 보조해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오직 한 가지. 이면세계를 이 지역 일대에 한시적으로 동화시킨 다음, 마족 특유의 존재력이 외부로, 특히 선계에서 알아채지 못하게끔 전면 차단하는 행위가 최선이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당연히 이 작업의 난이도는 그리 만만하진 않았다. 그게 말처럼 간단했더라면 아리사엘이 천상의 규율을 어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령왕은 면적이 클수록 불리함을 잘 알았기에 이면세계와 동화시킬 범위를 서둘러 제한했다. 루카스의 일행이 있는 장소부터 자신의 뒤편, 오드노아 수뇌부가 위치한 자리까지였다.
{크으으윽...}
그렇게 영역을 좁게 한정했음에도 라카나르의 방어행위는 녹록하지 않아 보였다. 존재의 격차가 너무 큰 탓이었다.
지난번 아리사엘이 나섰을 때와 같이 루카스가 처음부터 마력을 통제하지 않고 폭주했더라면, 그의 필사적인 노력도 하등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천신들의 어줍잖은 화신체만 겪어본 2대 정령왕으로서는 굉장한 실책이었고, 또한 낭패였다.
{이, 이 바보 같은! 당장 그만둬라! 이 행성을 신들의 전쟁터로 만들 셈이냐?!}
{네 주제를 알고 자존심을 세워라, 철부지 정령왕이여.}
{......}
{나는 대악마들의 지배자이신 루치펠의 직계자이자, 그 분의 의지를 마계에 실현하는 자다. 내가 진심으로 경고하건대, 너의 막말은 내 귀에 상당히 거슬리고 있다.}
좀 전의 위용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령왕의 몰골이 송연해진 반면, 루카스는 그를 태연히 올려다보며 할 말을 계속했다.
{확인차원에서 그대에게 묻겠다. 나를 향한 너의 적개심은 이 행성의 의지를 대변하는가?}
{그, 그렇지 않다!}
{하하하! 그렇지 않다? 그 따위 시건방은 제발 영멸시켜달란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군.}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듯 ‘신어’로 오가는 내용을 이해한 존재는 정령왕과 소왕들뿐이었다. 그러나 눈 뜬 장님이 아닌 이상,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만으로도 누가 포식자이고 누가 피식자인지는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정령왕이... 쫄았어?’
’그것도 자기집 앞마당이나 진배없는 이면세계 내에서?’
‘아무리 태어난 지 4천 년도 안 된 미숙한 정령왕과 소왕들이라지만... 이건... 좀...’
특히 라카나르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전군을 움직여야 했던 샌더스 수장과 파렐 대장로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아 극구 반대했었건만...’
‘젠장, 기선제압은 얼어 죽을! 당당하게 제압하겠다던 놈이! 도리어 제압 당해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한편, 정령왕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눈치챈 루카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빠르게 되돌아왔다. 장난을 질질 끌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일으킬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못다한 장난기를 발산할 대상을 바꿨다. 그렇게 그는 어쩔 줄 모르는 오드노아 수뇌부를 향해 매우 괘씸하다는 눈초리와 더불어 대형폭탄을 투하했다.
“만나서 반갑다. 내가 바로, 너희가 열심히 찾고 있던 마왕이다.”
“””!!!”””
그가 터트린 혼란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았다.
* * * * *
의미심장한 첫 회동 이래로 샌더스 총통과 원로회 장로들의 안색이 100년은 족히 늙어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지금 트로돈의 침공과 라호나바스가 문제가 아니게 됐습니다.”
“끄응...”
호언장담했던 정령왕은 ‘나 몰라라~.’하며 소왕들과 함께 이면세계로 호다닥 내뺐기에, 그 암울한 근심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마계 차원문을 개방하는 일에 협력하라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심지어 워프게이트의 설계도와 계산식을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미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서 나름대로 조사를 해왔다는 뜻이잖습니까!”
“몇 번을 양보해도 이건 아닙니다! 그가 데려온 마법사들이 게이트를 연구하다 보면, 머잖아 행성이동용 웜홀생성기의 존재까지도 눈치채버릴 겁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누가 뭐래도 그건 우리 종족 최후의 도피수단입니다!“
”그렇습니다! 행여 웜홀생성기를 활용해 운좋게 마계차원문을 열었다손 치더라도 심각한 파손이 동반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건 우리 종족의 구명줄을 스스로 끊는 짓이나 다름없어요!”
입에 거품 문 장로들의 열변 중에 틀린 주장은 없었다. 그러나 공허하게도 거기서 끝이었고, 뾰족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때문에 샌더스 총통은 하소연으로 일관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본전도 못 건지고 사태만 악화됐다고 하겠다.
“...(중략)... 하여 저희의 입장을 부디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루카스 님.”
“음, 그래. 미안하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
“휴우~, 너른 이해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아니다, 내가 마족답지 못했던 거다.”
“...예에?”
“다시 정확히 표현해주마.”
“?”
”너희가 내게 협력하지 않으면, 도마뱀 따윈 문제도 아니게 만들어주겠다. 나는 가장 먼저 재봉인 했던 정령왕의 조각과 소왕을 이 땅에 풀어놓을 것이다.”
“헉!!!”
루카스의 인상 깊은 협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도마뱀들을 찾아내서 내게 협력할지를 물어볼 거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설마 트로돈이 긍정한다면 그들 편에 붙으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래, 입장은 너희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명심해라, 먼저 기만한 쪽은 너희였다.”
“크윽...”
무릇 달리는 말에게 채찍을 후릴 때도 강약을 조절해야 하는 법. 루카스는 자신의 목적이 이 행성이 아님을 피력하여 요정족의 긴장감을 대폭 줄여줬다.
“샌더스 총통, 오해가 없게끔 미리 못박아둔다. 난 이 행성에 관심도 없고, 그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계통일에 있기 때문이다.”
‘마계 통일?’
생뚱맞게 튀어나온 단어는 초점에서 조금 벗어난 질문을 던지게 했다.
“현재 마계가 분열되어 있단 말씀이십니까?”
“맞다. 그대는 엔마노란 마족을 들어봤나?”
“그 마족은 비스마우어 일족이 신봉하는...”
”그렇다. 참고로 엔마노는 내 손으로 영멸시켰다. 내가 이 땅에 강림한 바로 그 날에 말이다.”
단순 거짓부렁으로 치부하기엔 그의 어투가 너무나 확고했다.
”이것으로 충분한 답이 됐길 바란다.“
“...예.”
”그럼 그대는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라. 종족의 미래를 책임지는 총통으로써.”
“......”
가만 되새길수록 치가 떨리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곰곰이 따져보면,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난민생활의 돌파구일 수도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다!’
샌더스 총통은 고위관료들과 장로들이 모두 참석해야 하는 최고회의 소집을 명령한 뒤에 파렐 대장로와 비밀리에 접선했다.
참고로 오드노아의 ‘최고회의’는, 종족의 명운과 즉결된 정책실행 여부를 다수결로 정하는 결의대회로써, 원로회 구성원은 물론 행정각부의 장까지 총 출석하는 자리였다.
가장 큰 특색은 이 소집권한은 총통과 대장로뿐 아니라 원로회 구성원 과반 이상 또는 10인 이상 장관들의 합의에 의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정당한 사유 없이 이 요청을 연 2회, 누적 7회 이상 무시하는 총통의 행위는 탄핵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최고회의는 독재자의 폭주를 견제할 오드노아 특유의 제도적 장치인 셈이었다.
어쨌거나 샌더스 총통은 대장로부터 설득시키고자 애썼다. 재적인원 3/5이상의 찬성표를 뽑아내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었다.
“대장로님. 어쩌면 이는 오래도록 시달린 굴레를 끊어낼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샌더스 총통! 그대가 정녕 미친 게요?!”
“예, 제 판단이 추방 전 비스마우어 일족이 내세웠던 논리와 똑같다며 면박을 주신다 한들, 극구 반박은 못하겠습니다.”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래도 저는 그들과 엄연히 경우가 다름을 알아주십시오. 전 이 땅에 없는 마족을 무리하게 강림시키자는 미친 계획이 아니라, 이미 강림해 있는 마족을 강력한 무기로써 유용하게 활용하자는 지혜인 겁니다.”
“......”
샌더스 총통의 합리화는 의외로 설득력이 강하고 듣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하물며 마계통일을 운운하는 고위마족 중의 고위마족입니다. 대장로님도 그가 단순히 기세를 퍼트린 행위만으로 당대 정령왕님을 궁지에 몰아넣은 광경을 목격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솔직히 제겐 천신들의 힘을 감히 저울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가 얼마나 강력한 마족인지 가늠 못하겠습니다. 허나 그 마족이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라호나바스를 상대하는데 큰 보탬이 되리라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크흠...”
정령왕이 절절 매던 모습을 회상한 대장로의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초월자 라호나바스야말로 역대 조상들이 줄곧 패퇴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위마족이 우리 편에 서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라호나바스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저는 워프게이트 뿐 아니라 웜홀생성기를 그 값으로 치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승리를 가정한다면 엄청난 손해까진 아니나... 그래도 썩 내키진 않는구려.”
아무리 종족의 안녕에 비할 순 없을지라도 행성이동용 웜홀생성기 제작에 투입되는 자원•시간•인력 등은, 평균수명 1,000세를 자랑하는 오드노아를 기준으로도 등골이 휘어져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였기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대장로님, 어차피 저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개뿐입니다. 고위마족과 거래하여 조만간 도래할 위협에 맞서거나, 아니면 저희가 내부적으로 미리 점 찍어둔 행성들 중에 한 곳으로 이주하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말은 그리해도 샌더스 총통은 이미 고위마족과 거래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이신 듯 하구려.”
“예, 좀 전에 참모들을 통해 확인해본 수치가 너무 처참했기 때문입니다.”
샌더스는 중대한 결론을 아무 근거 없이 내리는 부류가 아니었다.
”저희가 최악을 상정하여 일정을 앞당겨 대비해 왔음에도, 현재로썬 전체 인구의 61%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만일 35%미만이었더라면 주저 없이 도주하는 편을 강하게 밀어붙였을 겁니다.”
“허허...”
오느노아가 트로돈에게 맞서 최후에 최후까지 항쟁하는 이유 중 지도층이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는 명목은 바로 ‘인구수 조정’이었다.
이를테면 포기해야 할 인구비율만큼을 대규모 부대로 편성하여 최후항전 때 과감히 갈아 넣은 것이었다. 어차피 구성원 모두를 타행성으로 대피시키지 못하기에 눈물을 머금고 단행하는 일종의 자구책이라 하겠다.
참고로 과거 인구손실비율 통계는 평균 27.6%. 다시 말해 오드노아가 행성이주를 선택할 때마다 동족 3분의 1을 포기해왔으며, 지금 당장 이주를 감행할 경우엔 61%의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과거와 비슷한 30% 내외 수준이라면 성인남성들을 위주로 차출해도 희생양이 거진 충족될 겁니다. 그리하면 차후에 감내해야 할 문제는, 늘 그러했듯 무너진 남녀 성비율과 그에 따른 사회문제 정도겠죠. 그러나 전체인구의 60%이상을 버려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선 어디서 어떤 반발이 있을지는...”
심한 경우, 버려질 패로 선별된 몇 만 명이 폭동을 일으켜 동족상잔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 부분은 격하게 공감하오. 나 역시 상상조차 하기 싫구려.”
“게다가 더욱 끔직한 문제는 그 이후론 고위마족까지 종족의 적으로 상정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겁니다. 화풀이한답시고 다른 행성까지 쫓아올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2시간 후로 예정된 최고회의에서 샌더스 총통의 의견을 적극 지지하리다. 대신 웜홀생성기의 존재는 숨기는 걸 원칙으로 하십시다. 그래야 찬성표를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을 게요.”
“감사합니다, 대장로님. 종족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후우... 우리 총통께오서 이 늙은이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는구려.”
“죄송합니다. 허나 이번 결의안은 우리 종족이 알면서도 삼켜야 하는 독주입니다. 각료들은 제가 책임지고 다독일 터이니 꼭 좀 힘써주십시오.”
“허이고오오...”
이후 몇 차례의 휴정을 강제해야 했을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오가던 최고회의는, 다행히 샌더스 총통의 제안을 실행하는 쪽으로 결의되었다.
다만 이렇듯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본토의 방어 공백기를 노린 침입자들이 있었음은 아무도 인지 못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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