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대충 잠깐의 휴식 같은 스토리

33. 대충 잠깐의 휴식 같은 스토리
협상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처음에 별사탕이 뭔지 몰랐던 밀러는 그 안에 들어있는 설탕의 맛을 보더니 바로 거래를 승낙했다.
물론 고작 저 작은 종이봉투에 든 내용물만으로 거래에 임한 건 아니었다
추가로 10개의 별사탕이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조건으로 다음 거래에 한해서 소를 최소 암수 2마씩 운반해주기로 협의를 마쳤다.
그리고 밀러는 그날로 사탕수수밭을 거의 쑥대밭으로 만들다시피 하며 배에 싣고 떠나버렸다.
덕분에 사탕수수가 어디서 자라는지 알게 됐으니 이제부터 다이난들에게 여기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거름이랑 물이 좀 필요하겠네"
생각난 김에 캠핑카를 끌고 와서 음식들을 무차별적으로 꺼내 사탕수수가 심어져 있던 땅 여기저기에 쌓았다.
대충 내 키만 한 높이의 식재료 탐이 열 개가량 생겼을 때 나는 차에서 미니 서치 라이트를 가지고 나와 음식들을 태워서 거름으로 만들어버렸다.
미리 껍질은 따로 제거해서 모아놨기에 지금 저기에서 타고 있는 것들은 순수한 양분이 될 거다.
이제까지의 경험상 이곳 땅은 이 거름을 섞어 주면 작물을 엄청난 속도로 성장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냈었다.
"자, 물이다"
불길이 사그라져 모두 거름이 된 걸 확인한 후에는 싱크대에 연결된 호수를 통해 밭에 충분한 물을 공급해줬다.
이걸로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남은 건 호빗들이 알아서 해줄거다
그러니가 지금 내 옆에 있는 다이난 같은 호빗들이 말이지
"앞으로 여기도 부탁해"
"음, 정재의 부탁이면 상관없지만, 난 이거 별로던데. 텁텁하기만 한 걸 왜 그렇게 많이 가져가는 거야?"
"저걸 대량으로 정제하면 설탕이 되거든"
"설탕? 그건 정재가 이미 많이 가지고 있잖아? 차라리 그걸 주는 게 낫지 않아?"
"너 여기 신경 쓰는 게 귀찮아서 그러지?"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결과가 너무 별로니까. 그럴 시간에 차라리 고구마라도 한 번 더 보는 게 좋아"
"그런 말 하지 말고. 대신 이거 줄게"
말과 함께 밀러가 환장했던 별사탕 한 봉지를 내밀었지만, 그 어리숙한 인간과는 달리 다이난은 오히려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끔찍한 표정은 덤이었다.
"우엑, 그걸 왜 줘? 지금 협박하는 거야?"
"왜? 달곰해서 좋아했잖아"
"그거야 그걸 먹고 어떻게 되는지 몰랐을 때나 그렇지. 저기를 봐!"
다이난은 필사적으로 별사탕에서 떨어지며 한 곳을 가리켰는데 그곳에는 호빗들이 위협을 받았을 때나 볼 법한 털로 된 공이 하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통은 저 꼴을 봐서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미 이 땅에서 시간을 보낸 게 반년이다.
동물들도 그 정도 부대끼고 살다 보면 구별이 슬슬 되는데 말도 하고 개성도 있는 녀석들을 구분하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홉은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거야?"
"엉, 잘라도 잘라도 계속 털이 자란대. 이게 다 정재가 준 그 망할 별사탕 때문이잖아"
"쩝, 나도 이게 그런 효과가 있을 줄 알았냐"
내 말에도 별사탕을 보는 다이난의 표정은 펴지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다이난을 비롯한 다른 호빗 꼬맹이들도 이 별사탕 때문에 한동안 고생을 했었으니까
'별사탕 발모제라... 나름 신박하면 신박하긴 한데'
건빵이 키를 키우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호빗들은 노골적으로 건빵을 요구했었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선을 넘은 건 아니고 적당히 투정을 부리거나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대가로 요구하는 정도라 나도 가끔 한 조각씩 넘겨주곤 했다.
그러다가 건빵에 있던 별사탕의 효과가 궁금해진 나는 혹시나 있을 부작용을 경계해 몇 조각으로 쪼게 다이난들에게 먹여보았었다.
가뜩이나 작은 별사탕을 더 쪼갰으니 당연히 한 명당 돌아가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별사탕을 먹은 당일에는 딱히 의심될만한 변화는 보이지가 않았다
"하루는 지켜볼 걸 그랬지?"
"몰라! 이게 다 멍청한 정재 때문이야!"
"크흠"
다이난의 갈굼에도 이번에는 반박할 말이 없다.
처음 먹어보는 식품은 최대한 조심하는 게 당연한 건데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게 사실이니까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이미 알사탕을 먹었던 펜릴이 진화를 한 걸 보고 나서 막연하게 사탕들은 전부 그런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지레짐작 한 내 잘못이지 뭐
어쨌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고 잠시 방심을 한 탓에 홉의 더 달라는 말에 무심코 남은 별사탕을 다 주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차 싶어 다시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홉 저 자식이 짱구가 초코비 털어 넣듯이 별사탕을 입안에 다 때려 넣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눈앞에서 털이 자라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봐야 했다.
'되게 징그러웠지, 내 잘못만 아니면 바로 라이터로 태워버렸을 거야 아마'
영화나 에니메이션에서 온몸의 털이 자라는 모습을 봤지만 그걸 실사로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털이라고 인식을 하고 보지 않으면 온몸에서 기생충이 맹렬하게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라 좋게 말해 비위가 상하고 솔직히 말하면 역겨웠다.
맹렬하게 자라던 털들은 홉을 거대한 솜사탕으로 만들고 나서야 그 성장세를 멈췄다.
정확히는 그 뒤로도 조금씩 자라고는 있었지만 그전처럼 미칠듯한 속도로 털이 자라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정재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어른들이 다들 웃었단 말야!"
아무 효과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다른 호빗 꼬맹이들도 다음날이 다들 털북숭이가 돼서 마을로 들어왔다.
오죽하면 펜릴들이 한순간 못 알아보고 당황해 했을까
다행히 냄새랑 목소리를 듣고 정체를 파악했지 그게 아니었으면 다이난들은 그날 펜릴들에게 물어 뜯겼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이난들은 당일의 해프팅으로 끝났다.
다들 집에서 이발과 면도를 하고 다음날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으니까
다만 홉은 벌써 한 달째 계속 저런 솜사탕 같은 상태다.
"펑키 파마가 생각나는데... 왠지 저기에 펜을 꽂아 보고 싶어"
"내 친구 괴롭히지 마 바보 정재!"
상쾡이 눈을 하고 보는 다이난의 모습을 보니 아쉽게도 펜 꽂이는 포기해야 할 모양이다.
"쩝,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해서 주도록 할게"
"이상한 건 그냥 주지를 마! 멍청한 정재 같으니라고!"
하지만, 너희가 너무 테스트하기 좋은 조건들인걸....
그러게 왜 주는 족족 넙죽 받아먹고 그래
* * *
"조만간 원래 세계로 돌아가 보긴 해야 할 텐데, 되게 가기 싫으네"
리자드맨과 하피들에게 받은 금도 있겠다. 내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원래 세계에 한번 다녀오긴 해야 할 타이밍이긴 했다.
시끄럽고 사건 사고가 잦은 이곳의 단점 중에 제일 큰 단점은 항상 심심하다는 거다.
여기에 있는 종족들은 전부 다 생존에만 몰입하는 이들이라 다 같이 뭔가 놀 거리도 없고 볼거리는 더 없다.
요즘에는 그나마 내가 원래 세계에서 사온 장난감들 탓에 마을에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지만 나로서는 노인정에서 어르신들 고스돕 구경하는 것보다 더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상황이다.
"적당한 걸 사오던가 정 없으면 못 봤던 예능이나 드라마라도 가지고 와야지"
정말 진심으로 말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심심함에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밤일로 인해 말라 죽던가
"아, 새로운 정력제도 좀 구해봐야겠네. 이대로는 정말 죽을 거야"
공진단, 녹용, 홍삼 같은 한약뿐만 아니라 복분자, 삼지구엽초, 새삼과 오미자 같은 정력에 좋은 약초도 생각날 때마다 털어 넣고 있는데 점점 힘이 딸리는 게 느껴진다.
특히 약초들은 그냥 먹어도 되고 달여서 차로 먹어도 좋다고 들어서 이후에 모든 물을 다 저 약초들로 달여먹고 있는데도 이렇다.
피로가 누적되는 건지 아니면 내 여인들이 점점 성욕이 강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이럴 때 산삼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산삼이 정력에 좋은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산삼이잖아?
백년 된 녀석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그 산삼이면 점점 꺼져가는 내 양기를 레벨업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거 처분하는 것도 일이네"
하피족과 리자드맨족에게 받은 예물도 적은 양은 아니다.
이쪽으로 안목이 없는 내가 봐도 크기도 작고 여기저기 상처도 많은 게 귀금속의 가치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문제는 양이었다.
웬만한 주얼리 샵을 열어도 될 정도의 양이면 한 번에 처분하는 것도 꽤 큰일이었다.
"이번에는 좀 나눠서 처분하고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귀금속 말고 다른 방법으로 돈을 구해보도록 해야겠어"
이번까지 하면 반년 사이에 세 번이나 금을 판 게 되고, 이번에는 거기에 보석도 추가됐다.
귀금속이라는 상징이나 양에 비해 얻게 되는 돈이 적어서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횟수가 늘어나면 결국 의심을 사게 될 거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저쪽 세계의 돈으로 교환될 만한 물건을 찾는 게 여려 모로 좋았다.
"내가 여기서 살긴 하겠지만 원래 세계에서 쓰던 물건들은 많이 있을수록 좋으니까"
다른건 몰라도 당장 아기들 관련된 용품이 필요하다.
이 마을에는 종족 불문하고 한창 베이비 붐이 일고 있고 그건 각 종족의 고향 마을도 마찬가지다.
나로 인해 물이 보충된 땅에서는 작물이 다시 자라고
마을 구성원들이 대거 빠져나간 덕에 이래저래 여유가 생긴 각 종족의 마을들은 다시금 멈췄던 번식을 한 덕에 우리 마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쪽도 나름 베이비 붐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아쉽게도 70%가 죽는 게 또 이 땅이다.
"우리나라도 개화기까지만 해도 돌이 되기 전에 많이 죽었다고 했었지"
돌 잔치를 거창하게 하는 이유라고 했던가?
영유아 사망률이 하도 높아서 돌까지만 살아도 마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같이 즐길 정도였다고 했지
비슷한 맥락으로 장수했다는 의미로 환갑도 잔치를 벌였고
"일단 산모와 아기를 위한 약은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문제는 그걸 그대로 줘도 될까?"
단순 별사탕으로 한 종족이 솜사탕이 되서 돌아다니는 판에, 제대로 된 약이면 어떤 효과를 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든 막을 방법은 있다.
이세계로 와서 새롭게 나타나는 부가 효과는 이 땅에서 자란 재료와 섞거나 2차 가공을 하면 거의 사라지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다.
"약을 내 맘대로 가공해도 되나? 그러다가 약 본연의 효과가 떨어지면 그것도 문제인데"
다른것도 아니고 산모와 아기가 먹게 될 약이다.
그런것에 전문 지식도 없는 내가 맘대로 가공을 했다가 오히려 잘못되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에휴, 일단 그건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면 생각해보자. 지금은 우선 산모들이 먹을 영양제와 각종 예방약만 있으면 되겠지. 그 정도는 대충 이곳의 물이랑만 섞어서 물약으로 줘도 충분할 테니까"
물론 그것도 사실 위험하다.
산모의 상태에 따라 먹어야 하는 약이나 보충제의 종류가 다를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돌아다니면서 부작용이 적은 보충제나 영양제 위주로 사올 생각이었다.
"에효, 원래는 편하게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려고 했었는데 어째 점점 내가 촌장이 아니라 마을의 마당쇠가 돼가는 기분이란 말야"
뭔가, 아니 되게 많이 억울하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산모건 신생아건 싹 무시하고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에는 아직 내 인간성이 건강하게 터를 잡는 중이다.
"예물들도 팔고 적당한 영양제도 찾아서 사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네. 에렐리야와 시엘리스에게 말을 해놔야겠다"
아무리 가치가 낮아도 양이 양이니만큼 최대한 분산해서 팔 생각이라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차피 당분간은 내가 필요한 일도 없을 테니까 지금 후딱 갔다 오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밀러도 어제 돌아갔으니 다시 방문하는데 몇 달은 걸릴 테고, 이때 아니면 자리를 비우기도 쉽지 않을 것 같으니까'
요즘들어 밤마다 무서워지는 내 여자들을 떠올려보니 점점 더 나를 혼자 두는 시간이 적어지는 기분이다.
마을의 다른 엘프들이 하나둘 임신을 하고부터는 로테이션이 아니라 무려 둘이 같이 덮쳐오는 중이라 살짝 무섭기도 하고
".....최대한 정력에 좋은걸 구해와야겠어."
장어라거나 야관문이라거나 굴이라던지
기존에 가져온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실하고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바로 교체해야지
획기적으로 강해질 수는 없어도 부스러기라도 모아서 종합 능력치를 1이라도 올려야 살아남는 시가다.
흔히 말하는 깻잎 한 장 승부 같은 거라고
* * *
보름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적어도 내가 차원을 이동한 이후로는 가장 오랜 시간을 난 원래 세계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수확도 있었던 세계 탐방을 하고 돌아온 지 일주일
나는 내가 밀러와 이세계를 너무 얕보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말았다.
- 작가의말
금요일이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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