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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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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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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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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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DUMMY

다음날 아침, 국경경비병과 상인 일행은 애합문을 통해 봉금지역으로 들어갔다. 세현과 승호도 창을 들고 그들을 뒤따랐다.

그곳은 밖에서 볼 때는 잡목과 풀들이 우거졌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다니던 길이 있었다. 일행은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군관이 일행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군관은 말에서 내려 키 작은 소나무 아래 앉았다. 상인 우두머리는 시종을 시켜 짊어지고 온 술병을 군관 앞에 풀어놓았다. 군관은 세현과 승호를 불러 술을 권했다. 군관은 술에 입술만 적시고 세현과 승호에게 마음껏 마시라고 했다. 승호는 한 잔을 마시고 그만 두었고, 세현은 술을 계속 마셨다.

“마실 만큼 마셨냐?” 군관이 세현에게 물었다.

군졸들이 군관의 물음에 병장기를 들고 일어섰다.

“야 이놈아, 죽이기 전에 술 좀 먹여주려고 했냐? 지금은 이만 먹는다. 나머지는 네놈 박살내고 나서 먹지 뭐.” 세현이 군관을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군관은 갑자기 불손한 말투로 욕을 내뱉는 세현을 노려보았다. 세현과 군관 사이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이 오갔다. 그러다 군관은 세현의 눈빛에 기가 죽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이놈아, 무서워서 부하들 뒤에 숨으려고 그러니?” 세현이 군관을 비꼬았다.

“저놈이 어디서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 군관은 자신을 보고 있는 부하들 때문에 눈을 부라리며 대거리를 했다.

세현은 술병을 군관에게 내던졌다. 군관은 살기가 실린 술병을 겨우 피했다. 그 사이 세현은 몸을 날려 군관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뒷덜미를 잡힌 군관은 목이 졸려 나오는 기침도 제대로 내뱉지 못 했다.

“승호야, 창 들어.” 세현은 군관을 집어 들어 군졸에게 던지며 말했다.

승호는 나무 옆에 기대둔 창을 움켜쥐었다.

“저 새끼들 잡아라. 아니, 죽여 버려.” 군관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후 악다구니를 쳤다.

군졸들은 세현의 기세에 겁이 질렸지만 상관의 명령에 병장기를 움켜쥐고 세현과 승호에게 다가갔다.

“네가 다 처리해. 이게 실전이야.” 세현이 창을 움켜쥔 승호에게 말했다.

승호가 망설이며 세현을 쳐다보았다.

“저놈들 다 오합지졸이야. 네 상대가 아니라고.”

“혹시 사람을 죽이면 어떡하지?”

“야, 뭔 소릴 하는 거야? 저놈들 걱정하게 생겼어? 안 그러면 우리가 죽는다고.” 세현이 대꾸하다 승호가 상대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죽일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양주에서 승호가 쥐새끼를 주먹으로 패죽이고 죄책감 때문에 인간구실을 못하고 산 시절을 떠올렸다.

“야 이놈들아, 뭐하는 거야? 빨리 처리하지 않고.” 군관이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악을 썼다.

“승호야, 사람은 쉽게 안 죽어. 그런 것 걱정하지 말고, 어젯밤에 연습한대로 실력 발휘해봐.” 세현이 거리를 좁히는 군졸들을 바라보며 승호를 격려했다.

승호는 결심을 한 듯 다시 한 번 창을 움켜쥐었다. 그 때 병졸들은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창을 든 병졸 둘이 승호를 찔러왔다. 승호는 동시에 날아드는 창 둘을 양쪽으로 밀어내며 막아냈다. 그 사이 칼을 든 병졸 셋이 승호의 빈틈을 공략했다. 승호는 창을 휘둘러 다가서지 못 하게 한 후 찌르기로 반격했다. 승호가 다섯 명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동안 나머지 다섯 명은 승호의 뒤를 공략하려고 했다.

세현은 승호의 뒤쪽을 방비하기 위해 창을 움켜쥐고 승호의 뒤에 섰다. 창을 든 세 병졸들은 세현의 기세에 눌려 접근하지 못 했고, 칼을 든 두 병졸들은 그들보다 더 뒤에 서 있었다.

“계속 밀리면 힘 빠져. 제압할 수 있는 놈부터 먼저 제압해.” 세현은 수비하기에만 급급한 승호에게 말했다.

승호는 고개를 끄떡였지만 상대가 다칠까봐 겁내며 수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명희 가출했을 때, 실전에서 이런 놈들 다 제압했었어. 병신이 된 놈들도 둘이나 있었지만 명희가 사과하고 보상했어. 그놈들은 명희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놈들이야. 난 일부러 죽이지는 않지만, 그런 놈들을 죽였다고 사과하지도 않아. 명희가 사과하고 나서 나에게 그러더라. 세상이 도적을 만들었지 어느 부모가 도적을 만들고 어느 누가 스스로 도적이 되고 싶어 하겠냐고. 세상의 제일 큰 도적은 황제와 고관대작이라고. 그래서 부상당한 도적에게 보상한 거라고.” 세현은 공격을 망설이는 승호에게 명희 얘기를 꺼냈다.

승호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명희가 그리웠다. 창끝이 어깨를 스쳤고 피가 났다. 아프지는 않았다.

세현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도와주지는 않았다. 세현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세 자루의 창이 세현을 찔렀다. 세현은 들고 있던 창을 던져버리고 세 자루의 창모가지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왼쪽으로 휘둘러 날렸고, 병졸 셋은 세현의 힘에 못 이겨 뒤로 날아갔다. 세현은 양손에 창 세 자루를 들고 무릎을 세워 그 위에 내리쳤다. 세 자루는 동시에 반 토막이 났다. 세현은 그걸 집어던졌다.

먹구름이 몰려왔다. 승호를 상대하는 군졸들은 세현이 승호를 도와주지 않는 것을 눈치 챘다. 그래서 세현을 꺼리지 않고 승호를 공격했다. 승호는 옆구리에 또 한 번 칼을 먹었다. 피가 튀었다.

“야, 넌 화 낼 줄도 몰라? 이놈들 아무 원한도 없으면서 그저 돈이나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이려고 하잖아? 내가 왜 명희를 좋아하는 줄 알아? 화내야 할 때 제대로 화낼 줄 알기 때문이야.” 세현이 소리쳤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승호는 세현의 말에 또 다시 집중력을 잃었다. 창이 팔뚝을 찔렀다. 또 다시 피가 튀었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모두들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승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하늘을 쳐다보던 사람들 모두 승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를 공격하던 병졸들은 동작을 멈췄다. 승호의 상처를 입었던 어깨, 옆구리, 팔뚝에서 동시에 피가 솟구쳤다. 그러고는 갑자기 지혈이라도 한 듯 피가 멈추었다.

“그래, 내공은 그렇게 쓰는 거야.” 세현이 마치 괴수로 변신한 같은 승호에게 말했다.

승호는 세현의 말을 듣지 못 했다. 창을 움켜쥐고 몸을 날렸다. 승호를 공격하던 창 두 자루가 공중에 날렸다. 잠시 후 칼 세 자루도 공중에 날렸다. 병졸들은 뒤로 물러섰다. 그 중 두 명은 피를 흘리며 괴로워했다.

다시 한 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승호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들고 뒤쪽에 서 있던 군관에게 다가갔다. 군관도 칼을 뽑아들고 공격에 대비했다. 승호는 군관에게 몸을 날리며 칼을 내리쳤다. 군관이 그 칼을 머리 위에서 받았다. 겨우 버티다 칼을 흘리며 몸을 뺐다. 그러자 승호가 옆구리로 칼을 휘둘렀다. 군관이 그 칼을 막았지만 그의 칼은 승호의 괴력을 못 이기고 공중에 날렸다. 승호는 칼을 내던지고 군관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군관은 승호의 팔을 잡고 캑캑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발을 땅에 닿지 않았다.

“그만 놓아줘. 그러다 죽겠다.” 세현이 다가와 승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승호는 군관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서 양손으로 얼굴의 빗물을 닦아냈다.

“다친 데는 괜찮아? 어쨌든 넌 번개 치는 날은 무적일 거야.”

“모르겠어. 근데 번개 치는 날은 힘이 솟아나긴 하는 것 같아.” 승호는 별다른 감흥 없이 대꾸했다. 그러고는 상처를 살펴보니 뼈나 힘줄도 다치지 않았고 이미 지혈이 된 상태였다.


군관은 승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현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장사가 틀어질까봐 발만 동동 구르는 상인 우두머리에게 장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는 반색을 했지만 군관의 눈치를 보았다. 군관은 수치스러워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 세현은 군관에게 장사하러 가자고 했다. 군관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번 거래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상인 우두머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군관 앞에서 좋다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일행은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후, 반대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손을 놓고 그 소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조선인 한 명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는 일행의 낭패한 모습을 보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약속시간에 오지 않아 여기로 찾아왔소.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소?” 조선인이 한어로 외쳤다.

“아니오, 통역관. 별 일 없었소.” 상인 우두머리가 대꾸했다.

“심 군관님, 어디 다치셨소?” 조선인이 군관에게 물었다.

“아니오, 그런데 오늘은 별일 없을 것 같으니 둘이 알아서 거래하쇼. 우린 이만 철수하겠소.”

“먼저 들어가시겠다고요? 그러면 저희가 거래하고 품목과 가격은 돌아가서 보고하겠습니다.” 상인 우두머리가 군관에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게. 그리고 함부로 입 놀리지 말고 조심하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거래 마치고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군관이 아무 대꾸 없이 뒤돌아서서 부하들을 이끌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약속장소로 가서 거래합시다. 우리 일행은 내가 갈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기로 했소.” 조선인이 제안한 후 세현과 승호를 보고 나서 물었다. “저들은 누구요?”

“일행이오. 거래하는 곳까지 따라갈 것이오.” 상인 우두머리가 대꾸하고 나서 수하들에게 떠날 채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럼, 나는 먼저 가서 기다리겠소.” 조선인은 왔던 길로 말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조선인은 먼저 앞서 갔고, 상인 일행은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그 길을 뒤따랐다. 금세 거리가 벌어졌고, 조선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승호야, 넌 피도 흘리고 했으니 천천히 와라. 난 먼저 가서 저 조선인한테 이것저것 좀 물어볼게.” 세현이 승호에게 말하고 나서 말을 달려 조선인을 쫓아갔다.


“잠깐만 기다리쇼. 같이 갑시다.” 세현이 말을 달리며 앞서가는 조선인에게 외쳤다.

조선인은 그 소리에 반응하며 말고삐를 천천히 잡았다. 말은 속도를 늦추다 멈추었고, 조선인은 뒤를 돌아보며 기다렸다.

세현은 말을 세우고 기다리던 조선인에게 말을 걸려다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무표정한 그에게 희로애락조차 초월한 같은 풍모를 느꼈다.

“왜 그러나?” 조선인이 자신을 관찰하는 세현에게 물었다.

“역관님, 내 조선인 친구랑 많이 닮았소.” 세현이 말을 꺼냈다.

“자네한테 조선인 친구도 있나?”

“금방 뒤따라 올 거예요.”

“아까 부상 입은 친구를 말하는 건가?”

“예.” 세현이 짧게 대답한 후 과거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십일 년 전 무신년에 조선은 난리가 났었죠? 그 때, 소년 셋에 소녀 하나가 조선에서 돛단배를 타고 표류하다 청나라에 들어왔어요. 한 명은 괘서까지 붙인 역적이고, 남매는 참수당한 역적의 자식이고, 또 한 명은 친구를 따라온 소년이었죠. 넷 다 지금은 내 친구인데, 그 중 한 친구의 성이 장(張)씨이고 지금 말을 타고 뒤쫓아 오고 있어요.”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하던 조선인은 세현의 말에 슬픔으로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어보지 않은 표정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승호가 도착해서 말을 세웠다. 그러고는 말없이 서 있는 세현과 조선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선인을 응시하다 그의 시선을 받았다. 조선인은 승호를 바라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것처럼 어색했다. 어색했지만 그래도 따뜻했다.

“아버지!” 승호가 태어나서 처음 호부(呼父)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조선인도 말에서 내려 달려오는 승호를 끌어안았다. 이십칠 년 만에 상봉한 부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상대의 숨결을 음미했다.

세현은 말을 탄 채로 그들을 바라보며 부자의 정을 부러워하다 돌아간 아버지를 그렸다.

“우선은 약속장소로 가면서 이야기하자.” 장희수는 승호의 등을 토닥이며 말에 타라고 했다.


조선의 밀무역 일행은 장사를 마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뗏목을 이용해 압록강을 건넜다. 삭주에 도착해서 밀무역한 물품들을 창고에 넣고 각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장희수도 승호와 세현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장희수는 이미 승호가 남매와 준과 함께 돛단배를 타고 조선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손돌에게 들었다고 했다. 그 후에는 부디 살아 있길 기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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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손돌 22.06.25 134 1 13쪽
103 의인(義人) 22.06.24 142 2 11쪽
» 상봉 22.06.23 139 2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40 1 11쪽
100 인삼주 22.06.21 140 1 12쪽
99 국경 22.06.18 135 1 12쪽
98 엄마 22.06.17 139 1 11쪽
97 가출 22.06.16 138 1 12쪽
96 22.06.15 152 1 12쪽
95 거래 종료 22.06.14 141 2 11쪽
94 사부 22.06.11 140 2 11쪽
93 핑계 22.06.10 144 2 11쪽
92 가보(家寶) 22.06.09 167 2 12쪽
91 감정(鑑定) 22.06.08 157 2 12쪽
90 가슴 시린 백발 22.06.07 153 1 11쪽
89 두 번째 검 22.06.04 146 2 12쪽
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43 2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51 2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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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백발처녀 22.05.28 1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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