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난비九頭難飛
구두조九頭鳥라는 새가 있다. 철혈방이 있는 호북 지역에서 민간 숭배의 대상인 이 새는 구봉九鳳이나 귀차鬼車로도 불리는데, 머리가 아홉이다.
구두조는 하나의 머리가 사냥에 성공하면 남은 여덟이 달려들어 뺏으려 한다. 그러나 한 머리가 먹이를 뺏으면 또 남은 여덟이 합심해 쟁탈한다. 그리하여 먹이를 잡을 때마다 아홉 머리 모두 피투성이가 되며, 극심한 견제에 입에 넣고도 삼키지 못해 맨날 굶는다.
더구나 아홉 머리가 가고 싶은 곳이 달라서 커다란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한다.
구두조가 날기 위해선 먹이를 어느 머리가 먹으나 결국 같은 배에 들어감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황실로 이어지는 든든한 줄을 찾아야 하오.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니, 다들 곳간 한 번 텁시다."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거 같소. 사실 부유하기를 따지면 종남이 우리보다 훨씬 낫지."
"종남이 부유한 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오?"
"우리가 돈을 쓰면 황실은 종남을 치려고 할 거요. 그럼 종남이 더 많은 돈을 써서 다시 우릴 치게 만들겠지."
"하긴. 화산으로 종남을 치는 건 무리가 크지만, 무당으로 우릴 치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아니오?"
누군가의 자조적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사내새끼가 불알 두 쪽 달고 무슨 겁이 그리 많지."
"뭐라고? 그거 나한테 한 소리야?"
서로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삼 대에 이은 철천지원수 같았다. 아무래도 반 시진이나 되는 의미 없는 토론에 짜증이 극에 달한 듯했다.
"다들 그만하지."
공형선이 다툼을 제지했다.
"우리가 여기 모인 건 싸우는 게 이득인지 엎드리는 게 이득인지, 혹시 이번 가뭄을 버틸 더 좋은 방도는 없는지 상의하려고 모인 거요. 계집들처럼 말다툼하려는 게 아니고."
"그럼 공 당주의 고견을 말씀해 보시오."
은도당 쪽 사내가 빈정거렸다.
"어차피 미루는 건 의미 없소. 장삼풍이 죽으면 무당의 성세가 끝나겠거니 했는데, 태극혜검의 출현으로 오히려 더 성하게 생겼소. 호북에서 우리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질 거요."
"그럼 지금 결판을 보자는 거요?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무당을 치는 건 어떻소?"
금검당 쪽의 사내가 불쑥 말했다. 그에 반대편은 물론이고, 같은 편에 앉은 자들마저 코웃음을 쳤다.
"못 이기는 건 제치고, 이겼다고 쳐도 세상이 철혈방을 가만 놔두겠소?"
무당은 소림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강호 문파가 아니다. 도교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거대 종교 단체이기도 하다.
그런 무당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공격하면 굳이 관이나 황실이 나설 것도 없이 민심의 이탈만으로도 철혈방은 미래가 없다.
"전 재산을 바치고 조정의 아량을 기대하는 건?"
무당을 치자던 사내가 또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러면 사람 마음이 다 떠나서 철혈방은 해체될 거요. 각자도생할 거면 굳이 여기 모여서 의논할 게 뭐 있소."
"종남을 먼저 치게 만드는 거 역시 해결책은 아니라고 하니, 다른 좋은 수가 더 있소?"
사내의 말에 모두 눈치만 봤다.
"다들 몸 사리는 거 같으니 내가 말하겠소. 조정에 반항하는 건 어떻소?"
쾅!
격동한 누군가가 상을 세게 때리며 벌떡 일어섰다.
"말조심하시오. 구족을 멸 당하고 싶소?"
"여긴 우리뿐이오. 밖에 전해질 일도 없고, 전해지더라도 증거가 없소.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접고 머리나 굴리시오."
"반대하오."
잠자코 듣기만 하던 구후영이 입을 열었다.
"이유가 뭐요?"
은도당 쪽 사내가 질문했다.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생각을 하면 어쩌자는 거요?"
"고작 그거요? 더 나은 방도가 있는 게 아니고?"
역모를 제일 먼저 입에 올린 사내가 빈정댔다.
"그대가 먼저 말해보시오. 역모하면 살길이 있소?"
구후영이 추궁하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오."
"마 단주,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소?"
왕경초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 말을 듣고 판단은 각자 하시오."
마 단주로 불린 사내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은마단은 북방의 말을 가져다 파는 게 일이오. 돈이 되는 전투마는 다 북방 상인들이 독차지하여, 우린 주로 값나가는 명마나 늙어서 힘없는 말을 싸게 사다 파는 일을 하고 있소."
"다 아는 얘긴 접어두시오."
"명마는 구하고자 마음먹으면 구해지는 게 아니어서 우린 일 년의 반을 대초원을 누비고 다니오. 늙고 힘없는 말은 많이 사다 많이 팔아야 돈이 되기에 초원의 대부족들과 모두 긴밀한 연계가 있소."
마 단주가 대초원을 언급하자 딴지를 걸던 사내도 조용해졌다.
"약 석 달 전에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고, 세 번이나 확인해 봤소. 지금은 내 머리를 걸고 장담할 수 있소. 마교와 북원이 손잡았소."
"그게 말이 되오?"
원이 중원을 차지했을 때 가장 심하게 탄압받은 자들이 백련교도다. 끊임없이 봉기를 일으켜 원의 원기를 상하게 한 것 역시 백련교도고.
"그래서 나도 세 번이나 확인했소. 대초원과 마교 그리고 황실까지."
"황실까지?"
"정확히는 동창이요. 거긴 은자만 찔러주면 입 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잖소."
"북원은 이미 예기를 잃었고, 마교 역시 망하기 일보 직전이오. 둘이 손을 잡는다고 명을 흔들 수 있을 것 같소?"
은도당 쪽 사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거기에 종남을 얹으면?"
종남이 있는 섬서는 관중關中으로 불린다. 지리적으로 그만큼 중심이었던 곳인데, 예전엔 관중을 차지한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있었다.
"한강을 따라 장강에 흘러들면 강남 어디든 갈 수 있고, 황하를 따라 북방 대부분 곳에 병력을 보낼 수 있는 요충지에 원 황실에 부역했던 종남이 있소."
"그래도 어려울 거요. 근 십수 년 동안 중원은 풍년 아니면 평년平年이었소. 식량 비축이 넉넉하여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요."
"바꿔서 생각해 보시오. 대초원의 부족들 역시 말과 양이 살찐 덕분에 입이 잔뜩 늘었소. 그 많은 입을 먹여 살리기 힘드니 어떻게든 전쟁으로 줄이고자 할 거요. 명을 이길 수 있는지와 무관하게, 북원은 반드시 전쟁을 일으킬 예정이오."
"자. 다들 어떤 상황인지는 명확히 파악했다고 보오."
공형선이 나섰다.
"북원과 마교가 연맹했고, 명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거의 확실하오. 이런 상황에 어떤 길이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지 다들 기탄없이 의견을 피력하기 바라오."
"난 구후 장주의 의견이 제일 궁금하오."
은마단의 마 단주가 말했다.
"역사상 성공한 역모를 보면 늘 천시와 지리와 인화가 따라줬소. 앞서도 말한 사람이 있다시피, 근 십수 년은 풍년 아니면 평년이어서 백성의 삶이 안정적이었소. 일단 천시는 아니오. 인화를 따지자면, 무당이 있어 철혈방의 호소가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고, 철혈방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데 무당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을 것 같소. 인화도 아닌 것 같소."
"왕 당주의 생각은 어떠시오?"
공형선이 구후영의 말을 끊고 왕경초에게 질문했다.
'공형선은 역모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구나.'
"솔직히 잘 모르겠소. 마교와 북원이 손잡은 게 확실하고, 곧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역모가 옳은 길인지 확신이 없소. 특히."
왕경초가 구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에 맞서 목숨까지 바친 홍엽산장의 후손이 있는데 우리가 북원과 손잡는 게 옳은 일인지 더욱더 의심되오."
"난 동 방주의 생각이 궁금하오."
대화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는 듯하여 보이자 구후영이 급히 물길을 틀었다.
"나요?"
동엽이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아까 안건을 발표한 거야 철혈대회의 발의인이어서 기회를 얻은 거지, 이런 회의에 낄 자격은 애초에 없었다.
"아까 진무관을 짓는 게 철혈방의 위기란 분석이 인상 깊었소. 그래서 동 방주의 고견이 궁금하오."
딱히 말리는 눈치가 보이지 않자 동엽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역모냐 아니냐가 핵심이 아니오."
"그게 무슨 소리요?"
자신의 주장이 핵심이 아니라고 하자 마 단주가 발끈했다.
"뭘 하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오."
그에 자리한 사람 대부분이 겸연쩍은 얼굴이 됐다.
"결정은 어차피 다수결이오. 다섯이 동의하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오. 그런데 역모와 같은 중차대한 일에 누군가 딴마음을 먹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소?"
"그건 동 방주도 역모에 동의한다는 뜻이오?"
"아니. 끝까지 들어보시오. 솔직히 지금 역모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는 사람 있소? 난 아무도 없다고 보오. 그러니 다른 주장과 달리 이 일로 이리 길게 대화하는 게 아니겠소."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만약 우리가 역모가 아닌 다른 길을 고른다면, 분명히 역모보다 훨씬 어려운 길일 것이오. 그런 길을 가는데 마음이 흩어지면 끝을 볼 수 있겠소?"
"말하고자 하는 게 뭐요?"
마 단주가 질문했다.
"연명장이오. 회의에서 어떤 결론이 나던지 반드시 거기에 따르겠다고 맹세하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서명하는 거요. 연명장은 두 개 만들어 금검당과 은도당에서 하나씩 보관하면 좋을 것 같소."
동 방주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난 의사결정권이 없으니 빠지겠소."
콕 집어 말할 순 없으나, 구후영은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온 거요!"
은도당 쪽 사내 하나가 버럭 화냈다.
"청첩을 받고 온 것뿐이오."
"아까부터 청첩 소리가 거슬렸는데, 우린 홍엽산장에 청첩을 보낸 적 없소."
왕경초가 말했다.
"맞소. 홍엽산장은 처음부터 빼고 가기로 했소."
공형선이 호응했다.
"그럼 우리가 청첩을 위조라도 했단 말이오?"
연무쌍이 버럭 외쳤다.
'이번엔 아니어서 다행이다.'
구후영은 떳떳한데도 왠지 당당할 수 없었다.
"청첩은 담당자가 실수했을 수도 있잖소. 철혈대회가 열리는 게 십수 년 만이니."
동엽이 적절히 나서서 중재했다.
"연명장엔 공증인이 필요하오. 솔직히 호북에서 홍엽산장 장주와 여의경천 연 대협만큼 훌륭한 공증인이 또 어딨소."
"맞는 얘기요. 난 구후 장주가 우리 공증인이 되는 데 동의하오."
공형선이 찬성했다. 홍엽산장이 갖는 명분의 힘은 대단하여 동엽의 말처럼 역모 혹은 역모보다 더 힘든 여정엔 홍엽산장이 있는 게 낫다.
"나도 좋소."
왕경초는 구후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형선이 이미 동의한 마당에 괜히 반대해서 미움을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럼 연명장을 작성하겠소."
[어떻게 하는 게 좋습니까?]
[일단 지켜보자.]
[뭔가 자꾸 거슬립니다.]
[아니다 싶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알겠습니다.]
약 반 각이 지나 동엽이 연명장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들 반대하지 않는다면, 나부터 서명하겠소."
말을 마친 동엽이 붓을 휘둘러 '철혈방주 동엽' 여섯 글자를 연명장 하단에 거침없이 적었다.
'뭐지?'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 작가의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 뜻의 사자성어가 뭐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하나 지어냅니다. 우연히도 구두조가 저 동네 마스코트 같은 존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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