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후계자 - 4
1.
나에 비해 밀리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다 체력과 마나 역시 무한에 가깝게 회복시키는 존재를 쓰러뜨리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다.
하지만 내가 쌓아온 기술과 감각이 일말의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던 싸움에 한 줄기 희망을 불러왔다.
내 손끝에서 이끌린 마누엘을 통해 구현된 수십, 수백개의 검격들 모두가 적의 방어에 막혀 의미를 잃거나,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공격 한 번, 한 번이 쌓이고 쌓이자 의미가 없어 보였던 공격들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키잉-!
그리고 마침내 114번째 검격에서 적은 빈틈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마누엘에 놈의 검푸른 칼날이 막으려 했으나, 마누엘은 그런 놈의 방어를 무시한 채 예상치 못한 검로를 그리며 놈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물론 팔이 잘렸다 한들, 놈은 곧바로 복구해 낼 수 있겠으나 내 공격에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건 양측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상대적으로 밀리는 기술과 전투감각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를 무적에 가까운 재생능력으로 상쇄함으로써 한치의 밀림도 없이 나를 막아서는 듯 해 보였던 놈이었으나 방금 전의 일격 만큼은 아무런 대처조차 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공격을 허용했고, 안개에 휘감싸인 놈의 팔이 잘려나가자 아무런 얼굴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동그란 구 위에서 미미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 달걀귀신이나 다름 없는 그 텅 빈 얼굴에서도 표정이 느껴지는데?"
[ ..신기하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대체 왜 방금의 일격을 막을 수 없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어.]
"그게 바로 경험의 차이라는 거지. 당신이 골방 안에 틀어박혀 편하게 괴물들을 움직이며 세상을 가지고 놀때, 나는 직접 발로 뛰며 당신이 풀어놓은 괴물들을 막으러 다녔거든. 무한에 가까운 재생능력이 있다 해서 그 격차를 메꿀 수 있을거라 생각했나? 이 이름 조차 버린 존재야?"
검술을 비롯해, 모든 무술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진화했다.
적을 죽이겠다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명제를 위해 수많은 존재들이 끊임없이 고민했고, 무인들의 검은 번뜩이는 영감과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무술은 한단계 더 발전한다.
그리고 나는 과거와 현재를 종합해 가장 위험한 전쟁터 속에서 최악의 적들을 상대해 왔다.
하루하루, 매 순간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 속을 걷는 고통이었으나 그 고난을 통해 내 검을 더욱 담금질 할 수 있었고, 결국 나는 이 자리에 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를 단련시킨 건 당신이나 다름없는거지. 이거 고마워해야 하나?"
놈은 내 검격을 완벽하게 받아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검을 받아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내 의도에 이끌려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백 번의 의도가 쌓인 끝에, 결국 적은 내가 원하던 대로 완전히 빈틈을 노출 할 수밖에 없었고.
한 번 빈틈이 노출 된 순간, 적의 방어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딱 완벽한 정석에 가까운, 아무런 변수나 생각이라고는 들어있지 않은 별 볼일 없는 적의 기술은 이미 내게 완전히 파악된지 오래였고, 시간이 지날 수록 놈의 몸의 재생속도가 따라가지 못 할 정도로 안개로 뒤덥힌 몸에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기울어진 분위기를 뒤집고자 놈 역시 반격을 노리며 발악 해보았으나, 내 검은 일말의 변수조차 차단한 채 죽음이라는 선택을 강요했고, 마침내 끝이 보이려는 순간 놈의 보이지 않는 입이 열렸다.
[역시 대단하군. 나와 같은 반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네. 파프날 경.]
"하, 이제와서 추하게 가족임을 어필해서 살아볼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좀 실망인데."
[무슨 소리. 나는 그저 순수하게 자네가 이루어낸 검을 칭찬하는 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강한 힘을 쥐고 태어난 주신이나 불멸자들과는 다르게, 자네의 힘은 재능과 끝없는 노력의 결과물이지.]
나를 향해 칭찬을 내뱉는 놈의 말 속에선 순수한 감동만이 느껴졌으나, 그랬기에 나는 더 불안해졌다.
저 인간이 정말로 포기했다고? 이렇게 쉽게?
- 작가의말
개가 사람 소리를 하면 더 무서운 법이죠.
글을 찾아주시는 모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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