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등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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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비
작품등록일 :
2022.01.27 17:15
최근연재일 :
2023.06.19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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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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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알프의 기억 - 사르칸 섬멸전(8)

DUMMY

뿌옇게 일은 모래바람 너머 알프의 눈에 보인 건, 한 소년의 몸통이 꿰뚫리는 장면이었다.



알프는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것 같았다.



"안 돼."



미친듯이 뛰고 또 뛰었다. 아까까지의 부상과 고통은 마치 신기루였다는 듯 온데간데 없었다. 온 몸 구석구석에 피가 맥동했다.




"안 돼, 안 돼!!!"




하지만 거세게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헤치고 도달한 그곳에는, 처참한 광경만이 있을 뿐이었다.



구덩이에서 나타난 사르칸의 자식인지도 뭔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마물의 팔이 에드가의 몸통을 꿰뚫었다.



"에드가!!!"



에드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에드가가 힘겹게 고개를 떨어가며 알프를 쳐다봤다. 에드가가 입에서 연신 피를 울컥 쏟아냈다.



"아..버..."



알프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위를 파악하는 걸 잊지 않았다. 에드가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둘도 고통스러워하며 땅바닥을 기는 중이었다.



세쌍둥이와 번개의 정령왕의 계약무기인 번개창은 서로의 의식을 하나로 완전히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서로의 고통 또한 서로가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아아, 안 돼. 안 돼, 얘들아!!"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이제 에드가는 바로 몇 걸음 앞에 있었다.




"도..망......."




에드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물이 에드가의 복부에서 거칠게 팔을 뽑아냈다. 에드가의 육신이 힘없이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안 돼!!!!"



한발짝 늦게 도착한 알프가 바닥에 엎어지며 에드가를 부여잡았다.



"안 돼, 안 돼!! 에드가...."



에드가의 복부에 뚫린 구멍을 본 알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알프는 고개를 홱 들어 마물을 올려다봤다. 마물은 아직 알프를 경계 대상에 놓고 있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알프를 적당히 의식하면서도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바로 앨런과 레비였다.


둘은 어느새 일어나 번개창을 함께 쥐고 있었다. 아이들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알프!!!"




둘에게서 파지직, 소리와 함께 막대한 전류가 흘러넘쳤다.




"에드가를 데리고 멀리 도망쳐!!"




그리고 다시 한 번 둘은 마물에게 말 그대로 번개와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콰르릉!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온 둘이 창을 마물에게 쭉 뻗었다. 마물의 쇄골에 번개창이 그대로 꽂혔다.


쌍둥이의 속도에 마물이 저항도 못한 채 저 멀리로 날아갔다.




"아..버.. 쿨럭!"




에드가는 힘겨운 목소리로 알프를 불렀다. 알프의 떨리는 손이 에드가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 안 돼.."




알프는 급변하는 상황에 머리 속이 잠시 새햐얘졌다. 무엇부터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알프가 왼손에 찬 흑철권갑을 벗어던지고 에드가의 허리띠에 달린 자그마한 주머니들을 허겁지겁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치유의 마법서가 한 장 쯤은 있을 것이었다.



"에드가, 정신 차려야 해. 젠장..! 지금 당장 지혈을.."



주머니 속에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자, 알프가 마법서를 홱 꺼냈다.



"찾았다! 치유의 마법서야!"



알프가 다급하게 에드가의 손을 집고는 마법서에 에드가에 손을 가져다댔다. 알프의 손이 나뭇가지 떨리듯 덜덜 떨렸다.



"제발, 제발, 제발.. 에드가, 마력을 넣어... 제발..!!"



알프는 마력을 쓰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혐오스러웠다. 에드가의 복부에서 울컥거리는 피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하지만 에드가의 손에서는 마력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었겠지.



"아..버...지..."


"안 돼, 에드가, 말 하지마. 어서 마력을 불어넣어! 조금만이라도 좋으니까..제발..!"


"아버...지...."


"제발, 부탁이야. 이렇게 널 잃을 수 없어..!"


"신기..한.. 느낌이에요...."


"에드가.. 제발..!!"



알프는 이제 거의 흐느끼다시피 했다. 알프가 차마 에드가를 쳐다보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에드가의 이마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많았는데도... 신기하게 지금은... 행복했..던.. 기억들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에드가는 알프의 손을 맞잡고 꽉 잡았다. 에드가의 손이 점점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에드가..! 돌아가기로 했잖아. 다 같이 돌아가기로...."


"아버지...."



에드가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흩어져갔다. 알프의 눈물이 에드가의 이마에 뚝, 뚝 떨어졌다.



"돌아가요.. 부디..."



알프는 고개를 들어 에드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에드가의 눈은, 죽음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올곧았고, 또 빛났다.



"앨런과.. 레비와.... 같이.. 돌아가요.. 저도 같이.... 있을 테니까..... 언제나...."



하지만 죽음은 전장에 선 소년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에드가의 눈에 깃들어 있던 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취를 감췄다.


알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에드가의 뺨을 연신 어루만졌다.




"아, 안 돼! 제발, 차라리 날 죽여, 차라리 날....!"




알프는 이 모습을 보고 있을 존재들에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에드가를 데려가지 말라고.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라고.



만약 천신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어째서 자신의 목숨을 대신 거둬들이지 않는 것일까.




"아아아아아아!!!!"




알프는 절규했다.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 깊고 처절한 절규였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와 슬픔이 절규에 섞여 주위에 울려퍼졌다.




'..... 움직여.'




목 놓아 울 시간도, 에드가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을 시간도 알프에게는 없었다. 알프는 검을 바닥에 꽂고 지지대 삼아 힘겹게 일어났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앨런과 레비를.. 지켜야 해.'




알프는 공허한 눈빛으로 방금 전에 앨런과 레비가 마물과 같이 날아간 궤적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다시 몸을 움직였다.




"앨런...!! 레비!!!"




세차게 불어대는 모래바람은 그칠줄을 몰랐다. 이 요새 전체를 휘감고 있기라도 한 듯이 주변 시야는 뿌옇게 먼지가 피어 올라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아까부터 살갗이 타들어가는 듯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가 연달아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알프는 그 방향으로 그저 터덜 터덜 뛰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들은, 알프를 다시 탑으로 인도했다.


맨 처음 이 모든 게 시작된 탑으로.




별안간 모래바람이 확, 하고 빠르게 걷혔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 알프가 주위를 빠르게 탐색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 젠장.."




요새의 상공 저 높이에는 알프의 눈으로도 보일 만큼 거대한 마법진이 점점 그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작전이 성공한 셈이었다.


그리고 마법진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곧 이 요새에 유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 20분...."




알프는 저 구덩이 밑에서 에드가가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그 뒤로 적어도 10분은 더 흘렀을 게 분명했다.




'아이들은 어디 있지?'




그 순간, 탑에서 무언가가 벽을 부수고 알프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는 곳으로 떨어졌다.



"설마...!"




알프가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떨어진 무언가에게 차근차근 다가갔다.




"알프! 가지 마!!"


"레비...!"




탑 위에서 레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프가 걸음을 멈췄다. 앨런과 레비가 탑에서 내려와 알프의 앞에 섰다.




"저 괴물 자식... 죽을 생각을 안 해..!"




둘의 상태는 상당히 나빠보였다.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감 때문일까.




"앨런.. 레비.... 미안하다.."




고개를 푹 숙인 알프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에드가는... 결국..."


"알아, 알프."




그래. 그 둘이 모를리가 없었다. 세쌍둥이의 의식은 계속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미안하다.. 지키지 못했어. 내가...."


"미안해하지 마."




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앨런이 알프를 향해 홱 돌아봤다. 앨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있지, 알프. 에드가.. 죽을 때 까지도 무슨 생각했는 지 알아?"




앨런이 알프의 멱살을 쥐었다. 멱살을 잡은 앨런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알프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부디 행복했으면...."




뒤돌아 있는 레비에게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알프. 우리가 처음 만나고, 알프가 우리를 거둬들인 그 날 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행복했어."


"하지만 내가 결국 에드가를 죽게 만들었어."


"우리는 알프가 우릴 지켜주기를 원한 적 없어!"




앨런의 일갈에, 알프는 머리를 맞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강해지려고 한 이유는, 알프의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야. 누구의 강요도 아니야, 온전한 우리의 바램이고 선택이야."




잔해더미를 헤치고 나온 마물이 눈 앞의 모든 걸 부술 듯이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을 맺는 거야."


"우리가 지켜줄게. 알프."




앨런과 레비가 다시 번개창을 맞잡고 섰다. 전류가 흐르며 둘은 다시 전투 태세에 임했다.




"우리가 계속 노리던 곳이 있어. 왼쪽 쇄골이야. 아직 외피가 덜 여물었는지 단단하진 않더라고. 덕분에 목에서 쇄골까지의 외피는 싹 다 부술 수 있었어."


"이게 우리의 마지막 공격이야. 만약 우리가 저놈을 잡지 못하면... 도망가. 도망갈 수 없다면, 최대한 외피가 없는 곳을 노려."




다시 한 번 마물과 격돌하려는 둘을 알프는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걸 걸고 지키자고 맹세했는데, 그것은 그저 알프의 욕심이고 착각일 뿐이었다.




지켜지고 있던건 언제나 알프 본인이었다. 일상에서도, 전장에서도.


이 아이들이, 알프의 행복을 바라고 또 바라는 이 아이들이 알프를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던 것이었다.




"너희들.. 설마..!"



"혹시 모르니까 마지막 말."



앨런과 레비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고 알프를 향해 싱긋 미소지었다.



"사랑해, 아버지."



동시에 그렇게 말한 둘은 번개가 되어 마물을 향해 돌격했다.



"앨런, 레비!!!"



이미 아이들과의 전투에 익숙해진 마물은 아이들의 공격을 다 꿰뚫어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이들이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도.


앨런과 레비의 빛과 같은 속도에 기어코 반응해 낸 마물이 팔 한짝을 희생해 번개창을 받아냈다.



번개창은 마물의 팔을 그대로 꿰뚫었지만, 차마 날려버리지는 못했다. 팔에 깊숙히 꽂힌 번개창에 전류가 지지직, 하고 흘렀다.


마물의 앞에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후속을 생각하지 않은 특공 때문에 둘은 후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마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앨런과 레비가 마물의 남은 한 쪽 팔에 무참히 베여 나갔다. 거의 찢겨져 나간 둘의 몸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 상황에 알프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질렀다.




"안 돼!!!!"




망가진 오른손과 함께 꽉 묶어 놓은 검을 들고, 알프가 있는 힘껏 달음박질 쳤다.




"레비, 힘 꽉 줘!!!"


"으아아아아!!!"




아이들의 악에 받친 기합과 함께, 번개창에서부터 전류가 마구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마물이 다량의 번개에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이거나 쳐먹고 죽어!!!"



주변을 깡그리 태워버릴것 같은 전류다발이 번개창에서 뿜어져나왔다. 알프가 번개에서 뿜어져나오는 강렬한 빛에 잠시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단 2초 남짓한 시간. 알프가 잠시 멈췄던 순간이었다.



알프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이들은 이미 힘을 다 한 채로 번개창에서 손을 놓고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알프가 뜀박질했다. 마물은 온 몸이 타들어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죽거나 쓰러질 기미는 없어 보였다





그 잠깐의 뜀박질 속에서 알프는 수없이 많은 고뇌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을 먼저 구출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마물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할 것인가.




"가, 알프!!!!!!"




그 고뇌를 끝내준 건, 알프 자신이 아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알프가 지금까지 아끼고 또 아낀 힘을 쥐어 짜 내 마물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검을 양 손으로 꽉 쥔 채로.




"으아아아아아!!!"




알프가 있는 힘껏 마물의 목에 검을 쑤셔박았다. 검이 그대로 마물의 목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타가 되지는 못했다. 마물은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알프의 팔을 부여잡고 검을 빼내려 했다. 얼마나 힘이 센지 알프의 팔이 그대로 터질것만 같았다.


알프는 검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마물에게 최대한 고통을 주기 위해.


그것도 소용 없자, 알프는 이빨로 마물의 목을 콱 물었다.


알프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짐승과도 같은 괴성을 냈다. 알프의 입에서도, 마물의 목에서도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처절한 살육전에서 먼저 힘이 빠진 건 마물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프가 검을 비틀어 마물의 목을 그대로 뜯어냈다.




"하아, 하아."




목이 몸통과 분리되어서야, 마물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하아, 하아, 쓰러트렸어."




알프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두 눈 앞이 흐리멍텅했다.




"얘들아, 놈을 쓰러트렸어."




알프는 아이들을 불러 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앨런, 레비..."




알프는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꿇었다.


거기에는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두 아이들의 육신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채였다. 둘의 팔에는 번개에 지져진듯 한 화상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알프는 오른손에 검과 함께 꽉 묶어놓은 천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아이들의 싸늘한 시신을 품에 안았다.



"너희들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목이 메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난....이제 어쩌면 좋지..? 응..? 에드가.. 앨런.. 레비...."



원래라면 먼 미래에 아이들에게 옮겨갔어야 할 알프의 등불.


그 등불은 이제 아이들의 등불조차 잡아먹고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난... 이제... 어..?"





불현듯 찾아온 한 감각에, 알프가 공허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알프의 모든 감각이 어느 한 쪽으로 쭈뼛쭈뼛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알프는 몇분을 멍하니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고 나서야, 그 감각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아낼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가증스럽게도 지금 알프의 눈 앞에서 저만치 멀리 서 있었다.


눈조차 멀어버린 알프는 그것이 그렇게나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알프의 심장이 다시금 맥동했다.


지금까지 쌓인 분노와 울분, 그리고 허무함이 울컥울컥 쏟아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품에서 내려놓고 알프가 다시 검을 집었다.




그리고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마치 기어가듯이 그 존재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죽여야..."



알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과연 저것은 진짜가 맞는 것인가조차 헷갈렸다. 지금 알프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헛것을 보고있는지도 몰랐다.



"죽여야 해..."



흐린 시야에 비친 그것이 점점 가까워져 갔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인가?



"이제 내겐.... 그것 밖에 안 남았으니까...."



알프의 몸에 다시금 분노가 차올랐다. 알프가 이빨을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물었다. 알프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새어나왔다.



"니새끼들을.. 죽이는 것 밖에....!!"



하지만 몸은 이제 움직일 수 있는 한계치를 진즉에 넘어버렸다.


팔을 휘적거리기만 할 뿐, 알프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했다.



"죽어... 죽어....!!"



그저 독기밖에 남지 않은채로 악을 쓰며 소리질렀다.



"죽으라고!! 죽어!!!"



알프는 이미 망가진 오른손에 꽉 쥔 검을 허공에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존재에게는 닿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게 안 되면...."




알프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채로 검을 손에서 놓았다.




"나를 죽여...."




여기서 이 마물에게 최후를 맞는다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조금 혼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어.'



알프는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제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저 존재가 자신의 생명을 거둬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이런 알프의 마지막 소원도 이루어주지 않았다.



그 존재는 잠시 엉거주춤 하더니 알프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잠깐.... 안 돼.... 안 돼..!!"




그리고는 이내 날개를 펴고 저 멀리 날아갔다.



"안 돼!! 어디 가는거야!! 날 죽여!!! 가지마!!! 가지 말라고!!"



알프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며 소리질렀다.



"가지 마....... 날 혼자 남겨두고... 가지....."



하지만 그것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알프는 망연자실한 채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몸을 뒤집어서 하늘을 보자, 하늘에는 이미 완성된 마법진에서 번쩍, 하고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래... 그걸로....."



인류는 승리했다. 적어도 이번 전투에서만큼은 말이다.


그렇다면 그 승리의 빛과 함께 스러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알프!!!!"




멀어져가는 의식 너머로, 알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세찬 바람이 알프의 뺨을 때렸다. 더 이상 알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알프, 세상에. 이럴 수가...."




목소리는 알프를 보고는 잠시 주춤하더니, 알프의 몸을 발톱으로 낚아채고는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알프가 급하게 몸부림쳤다.




"..당장 놔, 이거 놔!"


"안 돼! 저기 있으면 죽는다고! 진정해, 알프! 이러다 떨어지겠어!"


"제발, 이거 놔! 저기에 내 아이들이... 제발... 이거 놔!!"


"..안 돼. 그 애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너라도 살아야 해."



그 말이, 얼마나 알프에게 절망을 가져다주는지를 목소리의 주인은 알지 못하리라.



"안 돼... 안 돼....!!"


"미안해, 알프. 잠시 꿈을 꾸게 해 줄게.. 정말 미안해...."



자신에게 걸려오는 마법을 눈치조차 못 챈 채로, 알프가 점점 멀어지는 의식을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악을 쓰며 소리질렀다.




"안 돼...! 이..럴 수는.. 없...."




알프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아이들..'




멀어져가는 알프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보인 건, 반짝이는 별과 같은 유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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