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등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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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비
작품등록일 :
2022.01.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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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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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02. 진주는 언제나 검어야 한다

DUMMY

알프가 의식을 찾기 7일 전.


항해 1일차. 오전 6시.



“후우.”



아침 일찍 잠에서 깨 갑판 위에 오른 멜리사가 차가워진 손에 숨을 불어넣었다. 난간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아 시야가 흐렸다.



“으으으으..차차!”



멜리사는 굳은 몸을 힘찬 기합과 기지개로 풀고는 그대로 갑판을 돌아다니며 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문제 없고.. 없고.. 밧줄 잘 묶여있고...”



그녀는 알켈로네가 알려준 대로 배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 괜찮은 것 같아.’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아침바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찬 공기와 더불어 조금은 오싹한 것 같기도 했다.



'안개 낀 바다는 이렇구나.'



멜리사는 어릴 적에 들었던 유령선의 괴담을 떠올렸다. 해안 마을 출신이었던 연꽃 공방의 한 약사가 어두운 밤에 장난스레 한 이야기를 엿들은 어린 멜리사는 그 뒤로 안개가 끼는 날이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투란은 내륙 국가인데도.


멜리사는 반갑게 찾아온 추억에 배시시 웃다가도, 이제는 그 사람들이 전부 없다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쓰라렸다. 멜리사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머리를 세차게 휘저었다.



“참, 유령선이 어디 있다고!”



기분전환도 할 겸 멜리사는 씩씩한 발걸음으로 난간을 따라 배 위를 걸었다. 안개가 걷히지 않아 배는 매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이 안개 속에 표류한 느낌도 들었다.



“유령선이.. 어디 있다고!”



바다와 안개가 주는 묘한 공포심이 다시 멜리사에게 들러붙었다. 멜리사는 고깔모자 속으로 손을 넣고 털로 덮인 자신의 푹신푹신한 귀를 만졌다.



“...들어가봐야겠다. 뭔가 졸리네!”



짐짓 큰소리를 내며 멜리사는 마지막으로 배를 다시 점검하려고 반대편 난간으로 향했다. 사다리가 제대로 접혀있나 확인하려고 난간에서 살짝 고개를 뺀 그 순간.



“어라?”



멜리사 바로 앞의 안개 속에서, 점점 배의 윤곽이 검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어..?”



공포 반, 의심 반으로 얼어붙은 멜리사의 앞에 윤곽은 점점 진해져갔다.


그리고 길쭉히 튀어나온 뱃머리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악!!!”



그제야 멜리사는 터져나오는 비명과 함께 몸이 다시 움직여지는 걸 느꼈다.



“!?”



그 비명소리를 제일 먼저 들은 건 하일이었다. 알켈로네와 교대로 배를 몰기로 한 그는 오늘 아침의 조타수 담당이었다.



“멜리사 님!?”



하일이 잠시 배를 멈추고 신속하게 비명소리를 향해 뛰어나갔다. 거기에는 멜리사가 주저앉아 떨리는 손가락으로 난간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 유, 유령.. 유령선..!! 저기..!!”



그제야 밖을 쳐다본 하일이 수색대의 배에 접근하는 수상한 선박 하나를 발견했다. 수색대가 타고 있는 배보다 조금 더 큰 선박이었다.



“저건..”


“유령선인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멜리사 님. 아마..”



여기서 수색대의 배애 뱃머리를 들이밀 배는 없다. 이라야와 같이 파견된 파견대의 배는 우리와 살짝 떨어져 항해하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뱃머리가 전혀 달랐다. 그 뱃머리는 마치, 꼭 타고 넘어갈 수 있게 만들어진 것 같은..



“해적선입니다. 멜리사 님, 선실로 가서 증원을!”


“해, 해적, 해적선..!! 금방 불러올게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던 멜리사는 울음을 꾹 참고 선실로 들어갔다.



“해적선입니다!!”



하일도 크게 소리쳐 선실 안쪽까지 들리게끔, 그리고 자신들을 습격한 배에도 들리게끔 경보를 외쳤다.



그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뛰쳐나온 건 이라야였다. 아무래도 잠에서 깨자마자 뛰쳐나온 탓인지 살짝 펑퍼짐하고 따듯해 보이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적은?”


“아직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아.”



이라야가 신경질적인 한숨을 내뱉고는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역시 배를 조금 더 좋은 걸로 했어야...”


“그 부분에는 깊이 동감하지만, 소수 인원이라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신 건 이라야 님....”


“하일.”


“죄송합니다.”



뱃머리만이 안개 속을 뚫고 나온 해적선에서, 걸걸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우리는 검은 진주 해적단이다!! 죽고 싶지 않다면 가진 걸 전부 내놔라!!”


“....."



다른 수색대원들도 천천히 선실의 문을 열고 하나 둘 씩 감판으로 뛰쳐나왔다. 드레이프는 날카로운 비수 하나를, 오파니는 자신의 장창을 들고 나름의 무장을 챙기고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일입니까?"


"해적선입니다. 이름 있는 해적은 아닌 모양이군요."


"해적이라니, 50년 살면서 해적은 처음인데.."



드레이프가 예상 외의 문제를 맞이하고는 침음을 흘렸다.



"대부분은 시정잡배들인데.. 이 녀석들, 공 좀 들였나봅니다. 안개 속에서 기습이라니. 나으리들, 어떻게 할깝쇼?"



알켈로네는 해적에 대해 잘 알고있는 듯 했다. 알켈로네가 요란스런 움직임으로 몸을 풀었다.



"신속히 제압하지요."


"옙."



이라야의 명령을 들은 알켈로네가 해적선에서는 보이지 않게 슬금슬금 반대편 갑판으로 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오파니 님은 여기 남아서 혹시모를 적습을!"



알켈로네의 잠수를 신호로 이라야와 하일이 해적선의 뱃머리로 훌쩍, 뛰어올랐다.



"뭐야, 이 자식들.. 커헉!"



둘은 호쾌하게 달려나가 갑판에 선두로 서 있던 남자의 턱을 동시에 가격했다. 남자가 단말마를 내뱉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습격이다! 족쳐!!"



아무래도 선두의 남자는 선장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까 전 안개 속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갑판의 중심에서 또다시 들려왔다. 안 어울리는 금색 목걸이를 치렁치렁 목에 차고 있는 거한이었다.



"우두머리를 먼저 끊지요."


"받들겠습니다."



하일이 앞으로 나가 마력를 흘려 보낸 손바닥으로 파장을 쏘아보냈다. 이라야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강한 파장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몇명의 선원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우와악!!"


"미친, 이게 뭐야!"



하일이 집중을 끈 사이, 이라야는 옆으로 틀어 난간을 디딤대 삼아 외줄타기하듯 갑판의 중앙으로 진입했다. 눈치챈 선원들이 칼을 휘둘러보았지만 이라야는 가뿐히 피할 뿐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뛰어 올라 선원들이 머리를 밟고 쾌속으로 선장에게 직진했다.



"저 여자는 또 무슨... 아니.. 저 여자는 설, 설마..!??"



선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라야를 쳐다보고는 표정이 창백해져서 말을 더듬었다.



"천.. 천파장의 이라야...!?"



어느새 선장에게 다가간 이라야가 가볍게 선장의 머리를 오른발로 냅다 걷어찼다.



"크악!!"


"절 아신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얌전히 투항하시지요."



선장을 걷어차 날리고는 사뿐히 갑판에 발을 디딘 이라야를 선원들이 에워쌌다. 하지만 선장의 말을 듣고는 다들 주춤주춤 하고 누구도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가 나설 것도 없었지 말입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라야가 급히 고개를 틀었다. 드레이프가 갑판의 상부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역시 '암행의 드레이프'시군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하, 늙은이의 잡기술일 뿐입니다. 여기 위는 대충 정리했습니다."



선장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다잡고는 선원의 부축을 받고 씨익씨익대며 일어나았다.



"내 평생 해적은 처음 봤지만.. 해적이 다 이렇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 이 자들이 특출나게.. 아닙니다."



이라야가 드레이프의 물음에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윽, 이런 젠장... 어째서 저런 거물이 이런 곳에!"


"얌전히 다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시지요. 뒤따라오는 파견대가 당신들을 연행할테니."


"윽,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지금 이 배에는 대포가 있다!! 내가 휘파람만 불면, 대포를 너희 배에 쏴버릴 수 있다고!"



선장이 침을 튀겨가며 악을 쓰고 소리질렀다. 드레이프가 조용하게 다시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대로 서로 갈 길 가는게 어떤가! 배가 후져보이던데, 과연 대포를 맞고도 멀쩡할까!?"


"역시 선장님..!"


"깡이 남다르셔..!"



웅성거리는 해적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라야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일이 가볍게 뛰어 나와 이라야의 앞에 섰다.



"어떡하시겠습니까?"



하일이 평소의 여유넘치는 말투로 이라야에게 정중히 물어봤다.



"아무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나...알프가.."



'알프?'



드레이프는 주변에 몸을 숨기고 은신해있는 상태로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알프? 생각해보니 알프가 어디에 있는지 들은 기억이 없다. 물론 이 배를 제대로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선실은 다 둘러본 것 같은데.



'혹시 알프를 정말 짐칸에 실으신..'



드레이프의 집중이 흐트러지자 은신도 덩달아 풀렸다. 드레이프는 비수를 들고 난간을 탄 채로 선장의 뒷목을 노리고 있었다.



"아."



선장을 비롯한 몇몇 선원들이 드레이프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어붙은건 드레이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뭐 하는 놈이야!! 안되겠어, 발사!!"



선장이 휘파람을 불고는 선원들을 방패로 몸을 숨기며 도망쳤다. 드레이프가 펄쩍 뛰어올라 선원들의 칼을 피했다.



"이런."


"알켈로네."



이라야는 여유를 잃지 않고 전음 마법으로 알켈로네를 불렀다.



"이미 작업 완료입니다!"



알켈로네의 말이 들리자마자 해적선이 순간 크게 기울었다.



"으아악!!"



발이 미끄러진 몇몇 선원들이 바닷속으로 내던져졌다. 이라야와 하일은 주변의 적들을 빠르게 정리해나갔다. 드레이프도 비수의 손잡이 부분으로 달려드는 선원들을 기절시켰다.


헥헥대며 갑판 내부로 들어간 선장이 대포를 쏘기로 한 선원을 붙잡고 소리쳤다.



"발사해, 발사하라고!!"


"발사할 수 없습니다! 화약이 다 젖어있습니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대체 누가..!"


"누구냐면 말이야?"



선실의 으슥한 어둠속에서 알켈로네가 씨익, 웃으며 천천히 걸어나왔다.



"바로 파레의 이름난 법사 알켈로네 님이시다. 너희 배랑 작별인사라도 할래?"


"이이익..!!"



선장은 분노에 가득 차 허리춤에 찬 칼을 빼들고 알켈로네에게 달려들었지만, 알켈로네가 쏜 거대한 물방울을 얼굴에 직격으로 맞곤 그대로 나자빠져 기절했다.




---




"제가 알프를 정말 짐칸에 실을 만한 위인은 안 됩니다."



이라야의 차분한 말투를 듣고는 드레이프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그게 왜 생각이 났는지."


"그만큼 알프를 아끼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라야가 미소지어보였다.



"애초에 알켈로네 님이 이미 해적선을 무력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전 하일의 장단을 맞춰준 것 뿐이랍니다."


"나으리들! 해적들은 다 건졌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침 파견대도 도착했다는군요."



희뿌연 안개 속에서 해적선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배를 지키고 있던 오파니와 멜리사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첫 항해에 해적선까지 만나다니,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괜찮나, 멜리사 양?"


"아, 네! 감사합니다..! 저는 유령선인 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유령선? 하하, 오랜만에 듣네요! 제가 기가막힌 괴담을 하나 아는데, 나중에 밤 되면 꼭 들려줘야겠습니다?"



멜리사가 이죽이죽 웃는 알켈로네를 히익, 하며 쳐다봤다.



"형제님, 멜리사 님은 가뜩이나 놀랐는데 더 놀리실 생각이세요?"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멜리사 나으리도, 오파니 자매님도 화 푸시고.."



수색대원들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근처의 안개도 조금 옅어진 것 같았다. 드레이프는 허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나인틴은?"



그렇게 수색대 모두는 조금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지난날 새벽 늦게까지 밤바다를 구경하다 잠들어 지금까지도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나인틴을 제외하고는.


작가의말

엑스트라 에피소드는 메인스토리에 지장이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더위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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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19. 시련의 성녀 아르미아(2) 22.08.10 182 0 14쪽
75 19. 시련의 성녀 아르미아(1) 22.08.08 192 0 13쪽
74 18. 빛과 그늘(3) 22.08.04 206 0 12쪽
73 18. 빛과 그늘(2) 22.08.03 215 0 13쪽
» Extra 02. 진주는 언제나 검어야 한다 22.08.01 221 0 12쪽
71 18. 빛과 그늘(1) 22.07.28 224 0 14쪽
70 17. 당신이 잠든 사이에(2) 22.07.27 22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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