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적 도사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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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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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1.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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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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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한밭의 주막

DUMMY

한밭에는 수많은 무당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당들은 계룡산에 들어가 기도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당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밭에서는 굳이 장터가 아니더라도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붐볐고, 사람 많기로 나라에서 으뜸이라 할만했다.


가난한 백정이라도 무당을 찾는 경우는 많았다.


점을 보는 이들은 누구나 마음속 고민이 있는 이들이고, 그것은 재산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가난한 이들은 무교는 물론 귀족을 상대로 신점을 보는 무당들도 만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무당 중에는 가난한 백정을 상대로 신점을 보고 굿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야 모두 같은 능력이지만, 족집게라고 입소문이 나지 않으면 무당이라도 백정들 상대로 돈벌이해야 했다.


그런 무당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무당을 반드시 찾을 수 씨는 곳이 한밭이었다.


이런 한밭의 풍경이라지만, 그날 따라 더욱 붐볐다.


"모두 길을 비켜라!"


우렁찬 목소리로 길을 여는 무사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 쳐다보고는, 크고 화려한 가마를 보고는 곧 길옆으로 늘어서 섰다.


사타적도 사람들을 따라 길가로 비켜났다.


무사들 한 무리가 으쓱대며 지나가자, 붉은 옻칠이 된 화려한 가마가 네 명의 가마꾼에게 들린 채로 지나갔다.


'붐비는 길거리를 한 번에 비우게 하다니, 보통 신분이 아닌가 보구나.'


사타적은 호족이나 신분 높은 귀족이 신점을 보러 오는 행렬쯤으로 여겼다.


가마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귀족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나이가 많이 든 귀족 집안의 아녀자로 보이는 여인은 고개를 뻣뻣이 들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저포(白紵袍)를 위로 화려한 옷을 입어 치장한 여인은 머리에 지나치다 할 정도로 큰 가발을 쓰고 있었다.


여인이 앉은 의자에는 네 방향으로 삼줄이 가마와 묶여 있었다.


화려한 가마에 삼줄을 묶어 놓은 게 신기했던 사타적은 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가마가 지나간 자리가 무엇인가 다르다 여겼던 사타적은 심안을 개안해 가마를 살폈다.


사타적은 가마에서 공행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술로 만들어진 가마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은 아니었다.


공행이 깃든 물건이 직접 공행을 뿌리고 다닌다면 금방 도술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결국 가마를 이용해 공행을 흘리고 다닌다는 말이었다.


도술은 가마에 탄 여인이 부리는 것이었다.


그 도술은 사타적이 배운 적이 있는 도술이었다.


태일옥장보법[太一玉帳步法]이었다.


걸음을 걸으며 지나온 길마다 도술을 부려서 넓은 범위의 계를 만드는 술법이었다.


여인은 무슨 목적으로 가마를 타며 계를 만드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더구나 태일옥장보법은 높은 수준의 도술이었다.


그런 도술을 도인이나 도사가 아닌 이가 쉽게 사용한다는 것은 사타적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사타적은 혹시나 여인이 해동 도교 도인의 제자가 아닐까라며 생각이 들었다.


"방금 지나가는 분은 누구입니까?"


사타적은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도사님은 한밭 사람이 아닌가 보군요. 저분은 한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씨 부인입니다."


사타적이 최씨 부인에 대해 물으니 그 사람은 제 일이나 된 듯 자랑하며 말했다.


"한밭에 왔으면 세 가지는 알아야 합니다. 유성온천과 금강 쏘가리 그리고 최씨 부인이지요."


최씨 부인은 한밭에서 귀족을 상대로 주막을 차려서 크게 돈을 번 여인이었다.


지금은 한밭 귀족 중 제일 부유한 귀족이 되었다.


한밭에 사는 이들은 모두 최씨 부인과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위세를 자랑하며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영광스런 모습과 달리 과거는 암울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최씨 부인은 어려서부터 다른 집의 품앗이를 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병에 걸려서 그녀가 어릴 때 모두 죽었기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최씨 부인은 악착같이 밥벌이를 했지만, 여인의 몸으로 굶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씨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젊은 나이에 호족의 첩이 되어야 했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지만,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귀족의 마음에 든 것이었다.


한밭 호족의 둘째 부인이 되어 불행은 없어지나 했지만, 최씨 부인의 진정한 불행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


최씨 부인은 결혼 생활이 평탄치 않았다.


본처의 질투와 멸시로 마음고생이 심한 최씨는 화병이 나서 건강이 나날로 악화됐다.


정신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탈모가 생기는 바람에, 윗머리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 가발을 항상 쓰고 다녔다.


가발을 쓰면 탈모를 눈치 못챌 정도로 감쪽 같았지만, 탈모로 쪼그라든 자신감은 가릴 수 없었다.


이런 일로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자,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본처는 본격적으로 최씨 부인을 내쫓을 궁리를 했다.


결혼 후 건강 문제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이 것을 꼬투리 삼아 본처는 남편과 취씨 부인 사이를 이간질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다 못한 그녀의 남편이 최씨에게 별도의 집을 얻어다 주었다.


유성 온천 부근에 있던 크고 화려한 집이었다.


그 이후 홀로 큰 집에 남겨져 지내던 최씨 부인은 우울증이 올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의원을 만나 약을 타려던 어느날, 그 의원은 약 대신 집에 사람을 두어라는 처방을 내렸다.


처방을 받고 어찌할지 고민하던 최씨 부인은 문득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큰 집에 여러 방을 비워 놓은 채로 있었는데, 그런 빈 방을 손님방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었다.


큰 행운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이전까지, 한밭을 찾아온 많은 귀족은 천막을 치거나 절에서 지냈다.


또는 많은 이들이 찾는 유성 온천에 있는 빈집을 빌려서 지내다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편치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귀족들은 무당을 찾아 계룡산으로 가는 날에는 숙소를 구할 길이 없어 더 많은 노비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노비들이 가져온 많은 짐 덕분에 귀족들은 비로소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최씨 부인이 귀족을 상대로 주막을 차려 숙박은 물론 먹을거리도 챙겼다.


마치 황제라도 된 듯한 대접을 받으며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우선은 유성 온천에 요양을 온 나이가 든 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서서히 무당을 찾아 계룡산을 찾아온 귀족들에게도 유명해 졌다.


최씨 부인은 주막이 인기를 끌자, 몇 채의 집을 더 짓고 일할 사람을 모아 유성 온천 일대에서 가장 큰 주막을 꾸리게 되었다.


최씨 부인의 주막은 귀족들만 갈 수 있는 곳으로 하룻밤을 지내는 데, 보통 백정들의 한 달 벌이가 들 정도로 매우 비쌌다.


그래서 한밭의 많은 이들은 최씨 부인의 주막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어찌나 유명한지 소문이 소문을 보충하고 사실을 보태어 주막 속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최씨 부인은 자주 나들이하시나요?"


"자주는 아닙니다."


"그럼 나들이를 갈 때 어디로 가시나요?"


"혹시, 최씨 부인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그럽니까? 최씨 부인에게는 자신을 보필하는 무당이 따로 있으니, 도사라도 만나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것뿐이니 말씀만 해주십시오."


"딱히 어디를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항상 똑같은 길로 나들이 나간다는 느낌이랄까? 뭐 그렇습니다."


사타적은 최씨 부인이 분명 태일옥장보법을 쓰기 위해 정기적으로 나들이 삼아 나온다고 생각했다.


도인이나 도사의 신분이 아닌 자가 도술로 만든 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매번 도술을 쓸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 이유로 최씨 부인을 보필한다는 무당이 실은 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이 어찌되었든 최씨 부인을 만나 보아야 했다.


사타적은 최씨 부인의 가마 행렬을 뒤따라 갔다.


사타적 말고도 최씨 부인을 뒤따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그녀의 뒤를 떠났는데, 모두 그녀의 기를 받아서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하는 행동이었다.


덕분에 사타적은 의심을 받지 않고 최씨 부인을 따라다닐 수 있었다.


최씨 부인은 한밭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보고는 큰길을 따라 몇 번 사선을 그으며 나들이했다.


해가 중천일 때 시작된 나들이는 저녁노을이 들기 시작하자 끝이 났다.


가마꾼들은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최씨 부인이 가마에서 내려 유성 온천에 있는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야 긴 나들이는 끝이 났다.


가마꾼들은 당장에 웃통을 벗어 던지고 온천욕을 즐길려고 나섰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익숙해 졌는지, 최씨 부인의 집을 지키는 사병들이 군말하지 않고 가마를 대신해 정리했다.


집을 지키는 사병들의 숫자는 엄청났는데, 개성상인의 사병들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도그럴것이 최씨 부인의 집은 그녀의 주막 중 제일가는 건물로 본점이라고 불렸다.


그만큼 찾아 오는 손님이 모두 지체 높은 귀족인데, 보통 귀족의 사병 숫자를 두어서 안심되겠는가.


사타적은 무슨 수를 써도 최씨 부인을 만나긴 어려울 듯 보였다.


허나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은 법.


사타적은 귀족의 눈에 들어서 최씨 부인의 주막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사타적은 지게꾼들을 따라갔다.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에 멀리서도 온천이 있는 곳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반 백정들은 돌에 옷을 벗어 던지고 고여있는 온천물 어디든 들어가서 온천욕을 즐겼다.


움직일 때마다 흙탕물이 올라왔지만, 신경을 쓰는 이는 없었다.


귀족들이 이용하는 온천은 조금 달랐다.


백정들이 사용하는 온천 위로 조그마한 정자가 있었고,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발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통나무 발판의 끝에는 온천욕을 즐기도록 만든 탕이 있었다.


탕은 그냥 돌을 둘러서 만든 큰 욕조 같은 것일 뿐이지만, 탕 안에서 몸을 움직여도 흙탕물은 생기지 않을 정도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사타적이 귀족들이 이용하는 온천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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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최종장 - 139. 종미[終尾] (1) 22.11.26 256 4 12쪽
138 7장 끝 - 138. 대집결 22.11.24 247 4 12쪽
137 137. 습격받은 팔부신중 22.11.22 238 4 11쪽
136 136. 어영부영 해결된 사건 22.11.19 242 4 11쪽
135 135. 본격적인 작전 시작 22.11.19 25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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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2. 팔부신중 22.11.12 237 4 11쪽
131 131. 다시 만난 소기와 소령 22.11.11 247 3 11쪽
130 130. 국선신공 22.11.10 243 4 11쪽
129 129. 위기에 빠진 사선도 22.11.08 253 4 12쪽
128 128. 서석교와 무교파 22.11.05 232 3 12쪽
127 127. 천사 사타적 22.11.03 258 4 11쪽
126 126. 재건의 시작 22.11.01 246 4 11쪽
125 125. 달라진 무림 세계 22.10.29 259 4 12쪽
124 124. 완성된 길 22.10.27 247 4 11쪽
123 123. 옛 해동 도교 도사의 함정 22.10.25 261 3 12쪽
122 122. 사선도로 향하다 22.10.22 248 4 12쪽
121 121. 무룡 도인의 싸움 22.10.20 264 5 11쪽
120 120. 사타적 대 장관영 22.10.18 251 5 11쪽
119 7장 시작 - 119. 번화에서 탈출 22.10.15 264 5 11쪽
118 6장 끝 - 118. 금강산을 차지한 서석교 22.10.13 251 5 11쪽
117 117. 마교 대 표훈사 22.10.11 270 5 11쪽
116 116. 집결 22.10.08 26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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