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적 도사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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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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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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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 산사태

DUMMY

호장의 사병들이 나서자 조사는 일사천리였다.


봄에 지붕 공사를 한 집들이 속속 밝혀지기 시작했다.


백정들의 신고가 들어오면, 사타적이 그 집을 찾아가서 심안으로 확인하는 식으로 조사했다.


단 몇 일 만에 부여의 모든 집에 대한 조사가 끝이 났다.


지도가 완성되었을 때, 사타적은 지도를 보고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무슨 문양인 것 같은데... 꼭 혁[革]자 같습니다."


연우가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그건 혁자로 부적을 만든 겁니다."


"왜 우리 땅에 이런 짓을 한 겁니까?"


해준이 끼어들었다.


사타적은 해준이 부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애써 둘러 말했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집에 했던 술수를 미루어 본다면 꼭 나쁜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나쁜 뜻이라면 어떻단 말이고, 또 무슨 악의가 있단 말입니까?"


해준이 사타적의 대답을 재촉했다.


"무엇인가 큰 변화를 노리는데 그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벌써 이 부해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문익의 집의 지붕을 바꾸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목수들이 다시 나타나서 다른 집을 대상으로 삼으면 어쩌겠다는 소리입니까?"


달귀가 따지듯이 물었다.


"지금은 장마철이니 다시 나타날 리 없습니다. 장마철에 무리해서 지붕 공사를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 기회에 목수를 잡아들입시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큰 부적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목수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가는 곳이 생겼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셨다는 말입니까? 어디란 말입니까?"


"봄 동안, 이렇게 많은 집을 수리했다면 분명 부여 인근에서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대체 어디란 말입니다. 어디!"


달귀가 더 참지 못하고 쏘아 대며 물었다.


"잘 보십시오. 목수들은 자신들이 간 방향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도의 적힌 한자, 혁자를 보십시오. 획순을 따지면 분명 정남 방향으로 갔습니다."


사타적이 설명하자 사병 4명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 탄식했다.


"그렇군요! 이제 그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으니 이 지도는 더 필요가 없으시겠지요?"


달귀가 사타적의 대답도 듣기 전에 지도를 돌돌 말아 소매에 넣었다.


사타적은 그가 그러는 것이 이해는 갔다.


지도는 군사 기밀이니 부여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조사대 대장으로서 달귀의 행동이 영 못마땅했다.


달귀의 행동이 어떻든, 목수에게 시간을 주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사타적은 조사대를 데리고 북서쪽으로 향했다.


"놈들이 간 곳은 정남 쪽인데, 왜 북서쪽으로 가는 겁니까?"


지리에 밝은 동현이 사타적이 이끄는 방향이 정남 쪽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장맛비로 인해 강물이 불어나고 물살이 강해서 배를 타고 강을 똑바로 가로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상류에서 타고 내려와야지요."


"우리 넷은 모두 한 힘쓰는 무인들입니다. 강물이 세다고 한들, 평소에도 몇 번이고 강을 건넌 우리가 고작 물살이 세졌다고 강을 못 건널리 없습니다."


달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안 될 말입니다. 만일 된다 하더라도 배를 어디에서 얻는다는 말입니까? 이런 때에 배를 띄우는 뱃사공이 누가 있겠습니까?"


"호장을 모시는 우리인데 배를 구하는 것 즈음은 일도 아니지요. 아무래도 도사님은 무공이 약해 겁이 많으신 모양인데, 도사님이 목수가 간 방향을 알아냈으니 할 일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편하게 앉아 기다리시면 우리가 그놈들을 잡아 대령해 드리지요. 자 가자."


달귀가 사병 3을 데리고 남쪽으로 향해 방향을 돌렸다.


'자신들이 목수를 잡아서 공을 세울 작정인가? 사선도 출신이지만 속이 좁구나.'


사타적은 그들의 행동이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목수들이 잡히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사타적이 아니었다.


사타적은 서둘러 이문익의 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도사님!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다시 만나 뵈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문익과 그의 아내가 사타적이 나타나지 버선발로 뛰어나와 절을 했다.


이문익은 허리가 아파서 꾸부정한 자세였지만, 예의를 갖추어 사타적을 대했다.


그의 아들은 일품을 벌러 나가고 없었다.


"안색이 더 좋아져서 저도 기쁩니다. 다시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배를 사고 싶어서입니다."


"제 배를 말입니까? 그 배는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낡은 배인데다가, 도사님 같은 영웅이 타기에는 너무 보잘 데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위가 높고 물살이 세서 서투르게 배를 띄웠다가는 물고기 밥 신세입니다. 정 배를 타셔야 한다면 제가 도와드리지요."


이문익은 아픈 허리를 억지로 곳곳이 펴며 괜찮은 듯 연기를 했다.


"그 허리로는 배를 타는 것도 힘드실 겁니다. 물살을 따라가면 그만인 곳에 가니까, 배만 제게 팔아주면 됩니다."


"지난번에 큰 은혜를 입었는데 돈을 받으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겁니다. 그 배는 이제 제게 필요 없으니 그냥 가지십시오."


이문인은 몇 번이고 배값을 거절했다.


사타적은 배를 직접 몰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리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타적이 너무 얕잡아 본 것이었다.


긴 막대기에 의지해 배의 방향을 바꾸는데, 강한 물살 때문에 배의 방향이 바뀌기 전에 떠밀려가기 일쑤였다.


막대기를 강바닥으로 질러 넣어도 배의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배만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강을 가로 지는 것보다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막는 게 더 급했을 지경이었다.


물살을 타고 내려가면서 조금씩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어찌어찌 강을 건넜다.


뚝- 뚝-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사타적은 서둘러 배를 묶어 두고 길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곧장 빗방울이 굵어져 무섭게 쏟아 내리기 시작했다.


뚜뚝- 뚜뚝- 뚜뚜룩-


장맛비는 곧 폭우로 변해 선실 지붕을 두들겨 됐다.


미처 우의를 준비하지 못한 사타적은 비가 소강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폭우는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 맞기를 각오하고 길을 나섰다.




***


가림성이 있는 성흥산을 병풍 삼아 자리한 작은 마을이 보였다.


워낙 폭우가 내리고 있는지라, 사타적이 마을 앞에 다 달았을 때조차, 마을에 돌아다니는 사람 한 명 볼 수 없었다.


오두막에서 비를 피할 생각으로, 장승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빗소리 속에서 폭뢰같은 요란한 소리가 퍼졌다.


마을을 향해 바라보니, 황소 크기만 한 돌덩어리가 산비탈을 타고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황소의 돌진, 그것은 전조였다.


연이어 땅에서부터 나온 큰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흙더미와 크고 작은 돌 그리고 뿌리 뽑힌 나무가 산비탈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산사태는 곧장 마을을 덮쳤다.


밀어 내러온 흙더미에 집들은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는 마을의 절반을 덮치고 나서야 멈추었다.


운 좋게 산사태 피해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다.


마을의 떠돌이 개들이 두려움과 당혹감에 맹렬히 짖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빨리 집에서 삽이든 호미든 뭐든 가져와! 사람을 구해야지!"


마을 사람 중 아무런 권력도 힘도 없는 백정 한 사람이 영웅심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통솔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남자의 말에 따라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시끄러운 폭우 소리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흙과 돌 그리고 부러진 나무가 뒤엉켜 난장판이 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응답하듯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너진 집에 갇힌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 퍼내야 할 흙은 어찌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사람들은 무너져서 부서진 지붕을 조금이라도 없애려 했지만, 물에 젖은 초가지붕의 무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해 순간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을 통솔하는 백정이 몇 번 합을 맞추어 힘을 써보려 했지만, 이미 포기한 사람들이 힘을 제대로 쓰지않아 부서진 지붕을 치울만큼의 힘을 낼 수는 없었다.


"비켜보세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사타적이 달려와 무너진 지붕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일면식도 없는 도사가 달려와 몇 명이 달라붙어도 꿈적하지 않는 지붕을 혼자 힘으로 들겠다고 하니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사타적이 큰 기합을 넣었다.


사타적이 도술로 온몸을 근육의 힘을 더했다.


그랬더니 지붕이 순간 들썩하더니 살짝 방향이 틀어졌다.


그때, 무너진 건물 사이로 손이 보였다.


"여기에요! 살려 주세요."


"모두 빨리 여기로! 도사님이 있는 여기로 오세요."


사람들을 통솔하는 백정이 사람들을 불러와 다시금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도사님! 여기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백정은 산사태가 난 곳을 돌아다니며, 파묻힌 사람들을 찾고는 사타적을 불렀다.


사타적의 무시무시한 힘에 마을 사람들도 힘을 되찾고 구조 작업은 활기를 띠었다.


구출 작업을 하는 도중, 계속된 공행의 소모로 사타적은 서 있기도 힘들어 졌다.


도술로 근육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신체를 사용하는 일이었다.


보통 사람처럼 근육 파열같은 부상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육 피로는 피할 길이 없었다.


그때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자! 우리가 왔습니다. 안심하시오. 모두 우리의 지휘에 따르시오!"


가림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삽을 들고 우르르 나타났다.


병사들은 군인이었지만 군복을 입지 않았고 보기에도 군인 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겉 보기에는 마치 사병들 같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구조 작업을 멈추고 성에서 내려온 병사들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못 보던 사람인데 마을에 온 지 얼마나 됐소?"


병사 한 명이 사타적에게 물었다.


"방금 왔습니다. 산사태 복구 작업을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고맙소만 여기는 이제 우리들이 맡을 테니 외부인은 빠지시오."


사타적은 병사의 말이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필요할 때에 외부인이라고 쫓아내는 것이 웬 말인가?


병사가 워낙 완강하게 대응하는 터라, 사타적은 잠시 구조 작업에서 빠져 지켜보기로 했다.


구조 작업의 모습을 지켜보자 병사가 자신을 물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를 흠뻑 맞으며 쉴 틈도 없이 삽질과 호미질을 하는 사람들 또한 죽을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병사들의 지시에 군말 없이 따랐다.


얼마나 병사들을 두려워하는지, 속도가 느리다고 화를 내기라도 하면, 마을 사람은 모두 눈을 찔끔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사타적이 나섰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타적이 병사를 찾아가 말했다.


"없소이다. 다른 일이 있으면 일을 보러 가시면 되오."


"여기 즈음이 목적지라서 달리 갈 데도 없습니다."


"여기가 목적지라고요? 당신이 누구길래 여기에 온 것이고 뭘 하겠다는 것이오?"


"전, 부여 호장께서 임명한 조사 대장 타적 도사입니다. 이곳에서 목수들의 행방을 찾으러 왔습니다."


병사는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소. 다른 지방의 호장이기는하나 부여 호장의 명성은 여기에도 널리 알려졌으니 도움을 드리는 게 도리지요. 이곳은 성주님이 다스리는 땅이오. 그러니 외부인이 무슨 일을 하려면 먼저 성주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오. 구조 작업은 앞으로 며칠이 더 계속될 테니 언제라도 도와주시면 되오. 우선 성주님을 뵈러 가시지오."


병사는 사타적을 이끌고 가림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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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1. 종미[終尾] (3) 22.11.29 228 3 11쪽
140 140. 종미[終尾] (2) 22.11.27 241 4 11쪽
139 최종장 - 139. 종미[終尾] (1) 22.11.26 256 4 12쪽
138 7장 끝 - 138. 대집결 22.11.24 247 4 12쪽
137 137. 습격받은 팔부신중 22.11.22 238 4 11쪽
136 136. 어영부영 해결된 사건 22.11.19 242 4 11쪽
135 135. 본격적인 작전 시작 22.11.19 253 3 11쪽
134 134. 아배지의 저주 22.11.17 233 4 11쪽
133 133. 엉망이된 시작 22.11.15 249 4 11쪽
132 132. 팔부신중 22.11.12 237 4 11쪽
131 131. 다시 만난 소기와 소령 22.11.11 247 3 11쪽
130 130. 국선신공 22.11.10 243 4 11쪽
129 129. 위기에 빠진 사선도 22.11.08 253 4 12쪽
128 128. 서석교와 무교파 22.11.05 232 3 12쪽
127 127. 천사 사타적 22.11.03 258 4 11쪽
126 126. 재건의 시작 22.11.01 246 4 11쪽
125 125. 달라진 무림 세계 22.10.29 259 4 12쪽
124 124. 완성된 길 22.10.27 247 4 11쪽
123 123. 옛 해동 도교 도사의 함정 22.10.25 261 3 12쪽
122 122. 사선도로 향하다 22.10.22 248 4 12쪽
121 121. 무룡 도인의 싸움 22.10.20 264 5 11쪽
120 120. 사타적 대 장관영 22.10.18 251 5 11쪽
119 7장 시작 - 119. 번화에서 탈출 22.10.15 264 5 11쪽
118 6장 끝 - 118. 금강산을 차지한 서석교 22.10.13 251 5 11쪽
117 117. 마교 대 표훈사 22.10.11 270 5 11쪽
116 116. 집결 22.10.08 26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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