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래 이런 놈이었지? (2)

“···.”
아체르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직도 잠이 안 깬 것 같은데?’
아체르가 움직이지 않자 당황한 것은 카네레였다.
“···어라?”
“···.”
“오빠 괜찮아?”
“···.”
카네레가 다가와서 조막만한 손으로 아체르의 이마에 머리를 댄다.
열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냉수를 두 번이나 맞았으면 열기가 식었겠지만, 어쨌거나 열은 없다.
아체르를 바라보던 카네레의 동그란 눈이 당황하여 커진다.
“···오빠, 울어?”
아체르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까만 그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응?”
아체르가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처럼 멍청하게 눈가를 매만진다.
이상한 일이다. 평소 망나니짓을 일삼던 오빠가 눈물이라니! 족장님이 이런 오빠를 본다면 깜짝 놀라 심장을 부여잡을지도 모른다.
카네레가 아체르의 이마에 손을 댔지만 열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오빠도 울 줄 아는 사람이었어?”
“···뭐?”
“아니, 하품할 때만 울길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러자 아체르도 허, 하고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카네레는 그런 아체르를 보면서 무슨 꿈을 꿨으면 저러는 건지, 무슨 꿈인지는 몰라도 한 번씩 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답지 않게 울지 말고! 오늘 성인식인 거 잊은 거 아니지? 빨리 준비해야 해.”
카네레가 부산스럽게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체르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따사로운 볕에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이름을 받겠네?”
따사로운 볕에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 아체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아체르를 부르던 말이었다.
“아아, 아직 이름이 없구나.”
“뭐래, 꼭 자기 이름을 아는 것처럼?”
홍유족은 특이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성인식에서 이름을 받는 것이다.
점을 침으로써 적합한 이름을 받는다. 그전까지는 단지 태어난 그 순간을 기념한 이명을 가질 뿐이다.
카네레도 아직 이름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부를 때 ‘새가 지저귀던 아침에 태어난 아이’라고 부른다.
카네레가 태어난 그 날, 유독 새들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나 뭐라나?
“모두가 오빠 이름은 망나니라는 뜻으로 가질 거라고 하더라.”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오빠를 놀릴 양, 그렇게 말했다.
평소 오빠였으면 이 말을 듣고 발끈해서 어떤 놈이 그렇게 말했냐고 문을 탁 걷어차고 뛰쳐나갈 것이다.
하지만 오빠가 꺼낸 말은 카네레가 생각한 반응이 아니었다.
“···아체르.”
“···뭐?”
카네레가 새삼스레 아체르를 바라봤다.
“아체르라고. 내 이름.”
“그걸 어떻게 아는데?”
분명 오빠의 얼굴인데, 무언가 달라 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오빠의 모습이 답지 않게 처연해 보였던 것이다.
“아마 그럴 거야.”
“피, 그게 뭐야.”
카네레가 혀를 내밀자 아체르가 작게 웃었다. 마치 동생의 그 모습이 기껍다는 듯이. 그건 오빠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물론 오빠가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예컨대 ‘추운 겨울 중 눈이 잠시 멈춘 순간의 아이’가 그녀를 놀리자 아체르가 후다닥 뛰어가서 그 아이를 묵사발로 만든 적도 있다.
그 이후로 누구도 카네레를 괴롭힌 적이 없다. 친해지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오빠!”
“왜?”
“···그런데 왜 계속 목을 만지는 거야?”
오빠가 이상해 보이는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밥을 먹는 와중에도 아체르가 몇 번이나 자신의 목 주위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마치 잃어버린 것이 제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몇 번이나 조심스럽게.
“그냥. 기분이 이상해서.”
“흐음···.”
카네레가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 밥을 먹자, 아체르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의 자신이 멍청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목이 잘렸다가 다시 붙은 곳에는 가느다란 실선이라도 생겼을 만도 하건만 깨끗하기만 했다.
그래, 마치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이.
하지만 그 모든 일을 어떻게 꿈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사지 멀쩡한 채인 자신과 카네레를 보고 그 모든 일이 진실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체르는 머리가 새하얘져 있을 뿐이었다.
“밥 다 먹었으면 이제 출발해야지.”
카네레가 밥을 치우면서 말했다.
“그래.”
아체르가 고개를 끄덕이고 문고리를 잡더니 한 번 주먹을 굳게 쥐었다 폈다.
“저기, 카네레···.”
“글쎄, 도대체 카네레가 누구냐니까?”
“···.”
‘새가 지저귀던 아침에 태어난 아이’가 카네레라는 이름을 받으려면 아직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아체르는 카네레의 이름을 미리 알려줄 생각은 없다. 홍유족에게 성인식에 이름을 받는다는 것이 일생의 소중한 기억이 되므로.
“됐다, 가자.”
아체르가 문을 열었다. 빛이 밀려들어 왔다. 나풀거리는 먼지가 보일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
다음으로 검은 바위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아체르의 동공이 커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쌀이 익어가는 내음.
그리고 봄의 찬바람과 아직 색이 변하지 않은 단풍나무들까지···.
그 모든 것이 아체르의 목이 떨어질 때 그리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뭐야, 오빠 또 울어?”
“뭐?”
“오늘 왜 그래?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너무 햇살이 눈 부셔서 그래.”
아체르는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꿈이든 뭐든 상관없다. 적어도 지금을 즐기리라. 그러니까 원래의 나처럼 있으리라.
물론 그러기가 힘들겠지만.
하지만 아체르의 걱정은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오, 망나니 이름 받으러 출발하냐?”
콧날 주위에 주근깨가 있는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에 있는 이가 걸어왔다.
“아스피스···.”
아체르는 지금은 ‘추운 겨울 중 눈이 잠시 멈춘 순간의 아이’라고 불리며, 이제 곧 방패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점지받은 이름 그대로 단단한 방패처럼 검은 바위족을 지켰던 이를.
얼마나 많은 것을 지켜냈는지 검은 바위족의 방패는 성한 곳 하나 없이 상처투성이였던 이를.
아체르는 심장에서 쏟은 피가 검게 말랐을 때도 붉게 발현된 아스피스의 눈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스피스? 그게 뭔데?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가는 게 좋을걸?”
“뭐, 그래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체르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자 아스피스가 고개를 돌려 카네레를 바라보았다.
카네레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우리 망나니가 성인식이 돼서야 정신 차리려고 하나? 그래봤자 이름이 망나니인 건 변하지 않을 텐데?”
“···.”
“근데 이놈 왜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냐? 결국 미쳐버렸나?”
뻥!
“꾸엑!”
아체르가 아스피스를 뻥 걷어찼다. 머리로 착지한 아스피스가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아체르가 자신의 몸을 찬찬히 돌아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맞다. 나 원래 이런 놈이었지?”
“뭐래, 미친놈이!”
“맞아! 이게 맞네. 내가 때리고 너가 맞는 역할이었네.”
방패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그거였나?
퍽! 퍽!
“아, 아퍼! 아프다고오!”
“아냐, 넌 훌륭한 방패였다. 괜찮을 거야.”
“이거 진짜 미친 새낀가! 야, 네 오빠 좀 말려봐! 꽥!”
카네레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내 자신이 알던 오빠가 돌아왔다고 생각하면서.
***
찬 봄바람에 단풍나무가 흔들린다. 부족 사람들 모두가 일 년에 한 번 있는 성인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어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단풍나무 아래에는 성인식을 받는 이들과 족장이 서 있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검은 바위족의 족장 라크리마가 선한 웃음을 지으며 성인식을 맞이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넵!”
“그런데 ‘추운 겨울 중 눈이 잠시 멈춘 순간의 아이’는 얼굴이 왜 그러느뇨?”
아스피스가 울분에 겨워 입을 열려고 했다.
“아니, 족···”
텁!
“아해가 수련에 매진하다 보니 조금 다친 것 같습니다. 족장님께서는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체르의 말에 아스피스가 울컥하여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해의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요즘은 수련을 얼굴로도 하는 모양이구나.”
족장의 말에 아체르가 마치 칭찬이라도 들은 것처럼 겸연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헤헤, 전쟁이 나면 얼굴이라고 안 건들겠습니까? 다 패는 거지요.”
“···아해야.”
“넵!”
“네가 팼느냐?”
“···.”
족장 라크리마가 깊은 눈으로 ‘따사로운 볕에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바라보았다.
‘따사로운 볕에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어떤 놈이던가?
어릴 때부터 혈기왕성하여 저보다 나이가 많은 아해들까지 평정하고, 성인식이 가까워지자 마침내는 검은 바위족에서 무위가 가장 뛰어난 놈이지 않은가.
재능으로 따지자면 홍유족의 이름을 빛내고 홍유족을 배척하는 인간들의 인식을 바꿀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하필이면 저놈이냐, 하필이면!’
무위의 재능은 기재다. 모두가 인정하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싸가지 없는 것으로 따지자면 천하제일기재다. 모두가 인정하며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부족의 개구쟁이, 말썽꾸러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대가리가 너무 큰 놈이다. 차라리 망나니, 미친놈이라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다.
오죽하면 부족에서 현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를 내지 않는 라크리마가 뒷목을 잡고 쓰러질 정도였지 않은가.
“헤헤, 팬 건 아니고 그냥 같이 뛰놀았을 뿐입니다.”
“어흑!”
‘추운 겨울 중 눈이 잠시 멈춘 순간의 아이’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그러하느뇨?”
라크리마가 뒷목을 주물렀다. 이럴 때는 못 본 척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식이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혈압을 생각해서라도.
라크리마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식을 시작하겠다!”
“족장니임!”
퍽!
안 닥쳐, 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라크리마는 못 들은 척 그대로 뒤를 돌아 식을 진행한다.
수정구슬이 큰 좌탁에 올려져 있다. 그 주위에는 접시에 여러 음식이 올라가 있다.
“아해는 앞으로!”
저벅저벅.
아체르가 앞으로 나서자 라크리마가 은장도를 건넨다. 어느새 모두의 표정이 진중하다.
스윽.
아체르가 은장도로 자신의 손바닥을 살짝 긋는다. 핏방울이 꽃처럼 피어오른다. 라크리마가 술이 담긴 작은 잔을 들자, 그 위에 자신의 핏방울을 떨어뜨린다.
툭.
투명한 술에 아체르의 피가 얽혀들어 간다.
“우리 홍유족은 흥분하면 눈동자가 붉게 발현한다. 하지만 아해야, 그것은 우리의 근원인 동시에 원죄(原罪)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체르가 잔을 수정구슬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물러난다. 그러자 라크리마가 주문을 외기 시작한다.
“···!”
좌탁에 놓인 수정구슬이 환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빛이 일순 뿜어져 나오더니 마을 사람 모두에게 투사된다.
그 빛이 하나의 형상을 그려낸다.
“···이건!”
“단풍나무 아니야?”
형상은 검은 바위 옆에 서 있는 고고한 단풍나무였다. 단풍나무에서는 피처럼 붉은 단풍잎이 낙홍하고 있었다.
홍유족의 이름은 이런 식으로 지어진다. 수정구슬에서 하나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해의 이름을 결정짓는다.
그것은 아해가 걸어갈 길이요, 운명이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형상은 추상적인 것보다는 직접적이다.
방패의 운명을 타고난 아스피스나, 눈물의 운명을 타고난 라크리마처럼.
하지만 아체르는 그렇지 않았다. 외로이 서 있는 고고한 단풍나무라니. 어떤 길을 걷는다는 것이고, 어떤 운명을 기다린다는 것인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현명한 라크리마마저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라? 망나니가 아니네?”
퍼억!
마찬가지로 성인식을 받을 아스피스가 풀썩 넘어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함께 의아했을 뿐이다.
‘망나니, 미친개가 나오는 게 아니라고?’
‘저 망나니가 단풍나무라니!’
‘홍유족의 전통도 여기서 끝인가···.’
모두의 머리에 스치던 의문은 마침내 경건한 성인식에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만!”
라크리마가 근엄 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입을 황급히 다물었다.
“앞으로 네 이름은 ‘아체르’이니라.”
아체르에게 술잔을 건네자 아체르가 술을 쭈욱 들이킨다. 이제 성인식을 치루는 놈이 애주가라도 되는 양.
“캬아!”
“···.”
땀이 삐질 새어 나오고 혈압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 같다.
“아해··· 아니, 아체르야. 너도 알다시피 성인식을 맞이하면 앞으로 1년 동안은 외지에서 생활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검은 바위족을 이끄는 라크리마답게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힌다.
“이것은 견문을 넓히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가진 원죄를 미약하게나마 갚기 위함이다.”
라크리마가 그 깊은 눈으로 찬찬히 아체르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너는 그 1년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느뇨?”
아체르가 답지 않게 고개를 푹 숙였다. 모두가 숨죽인 채로 아체르가 할 말을 기다렸다.
라크리마의 질문은 성인식을 거친 자들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단순히 질문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종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지금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약하지만 언령의 마력이 스며있기도 한다.
지금 하는 말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저주를 받을지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홍유족은 추상적으로 대답한다.
기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와주겠다, 따위의 말로···.
하지만 아체르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놀랄 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마인들에게 갈 생각입니다.”
인자한 얼굴을 짓고 대답을 기다리던 라크리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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