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 헌터 앙티테아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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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말이
작품등록일 :
2022.02.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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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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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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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프롤로그

DUMMY

차수현은 살아있는 괴담이었다. 40년 전 지구에 게이트가 생성된 이래, 헌터라 불리는 능력자들이 대거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그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의 뒤에는 ‘공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공원에서 꽃을 구경하는 차수현.


비둘기에게 밥을 주는 차수현.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차수현.


산꼭대기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차수현.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걷는 차수현.


각종 매체나 커뮤니티에 목격담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내 주위에 그를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만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은연중에 그를 언급하는 걸 꺼리는 대중의 분위기가 한몫했는지도 몰랐다.


14살에 각성해 헌터로 교육받고 자란 나는 꽤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마도구 공장에서 라인을 타고 있었지만, 역시 대충 살진 않는다.


그럭저럭 워라벨이 알맞은 직장에 다니며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지내는 게 내 분수에 맞는 일이라 요즘 생각하는 참이었다.


어느 날 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던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차수현은 역시 무엇을 하든 무서운 존재였다.


횡단보도 근처 벤치에 앉아 핫도그를 먹는 차수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딴 걸 알고 싶지 않았다.


“한 모금만.”


입이 바짝 말랐다. 머리가 핑 돌았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손발이 부들거렸다.


오랜만에 잔업 없는 날이었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그걸 들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신호등이 빨간불이라 잠깐 앉아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 평범한 귀갓길인데, 나는 지금 정말 평범한 사람인데. 문득 왼편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차수현이 나란히 앉아 핫도그를 먹고 있는 건 정말 너무한 일이었다.


“아, 한 모금만.”


차수현을 보는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진 특징적인 외모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눈동자는 그저 검기만 해서 홍채와 동공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다소 어린 외모에 콧수염과 턱수염, 그리고 구레나룻이 이어져 부자연스러웠다. 목소리가 탁한 중성이었다.


“네, 네에, 그, 여기······.”


옆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만 달라는 차수현 또한 기괴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지만, 감히 일어나 도망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들고 있던 커피를 그에게 내밀었다. 차수현은 비쩍 마르고 흰, 그리고 손톱이 길게 자란 손으로 커피를 받아갔다.


차수현이 입을 벌렸다.


크게 벌렸다.


고무처럼 턱관절이 늘어나더니,


웬만한 수박 하나는 들어갈 정도로 벌렸다.


한 모금만 달라던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컵과 함께 통째로 입에 넣어 삼켰다.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혓바닥도 없이 그저 검기만 한 입속을 보며 시발 좆됐다고 느꼈다.


차수현은 반 정도 남은 핫도그도 한입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잠시 내 얼굴을 보다가, 자신의 빈손을 보다가, 다시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미안.”


남의 커피를 다 처먹어버리고 사과하는 차수현도 지리게 무서웠다.


“아, 아뇨······. 괜찮아요······.”


미안하면 그냥 가라. 제발 꺼져라.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 괴물 새끼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잠깐 앞을 보며 고민하더니 자신의 손바닥에다 무언갈 ‘퉤’하고 뱉었다.


놀랍게도 조금 전에 자기가 먹던 핫도그였다.


소스까지 포함해, 입에 들어가기 전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거리가 아니었다.


“먹어.”


이 미친놈이 대체 뭘 주는 거야!


“아, 그, 저, 아, 괜찮, 괜찮아요.”

“먹어.”

“아니, 진짜, 진짜로 안 줘도 돼요.”

“싫어?”


용왕이 게살버거를 재연성하는 꼴을 직관한 포세이돈 체육관 관중들도 아마 이런 기분까진 아니었을 테다. 적어도 걔들은 뱉은 걸 다시 안 먹어도 되잖아.


싫냐고? 당연히 싫지! 플라스틱까지 삼키는 기이한 식성을 가진 댁한테 뭘 받아먹고 싶겠냔 말이야!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 아, 음, 바빠서 그럼······.”


차수현의 손을 피해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건너편 신호등을 살폈다. 파란불이 5초도 남지 않았다. 괴물 새끼는 손을 뻗은 채로 멍하니 내 얼굴을 보기만 했다.


따라 일어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횡단보도 위를 전력 질주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입을 꾹 닫고 그리 멀지도 않은 집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아니, 왜 나한테 이딴 일이 생기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어?


어렸을 때 게이트 폭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사람치고는 틀림없이 건실하게 살아왔다. 법을 준수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았고,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행운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괴담의 주인공이 되는 꼴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싫으면 딴 거 줄까?”

“뭐야, 시발!”


귓가에 차수현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욕을 하며 주위를 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필요 없다고요! 그냥 가라고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도로를 건넌 이후로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거는?”

“우와악!”


갑자기 허공에서 손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손만 나타났다.


“받아.”


도대체 어디서 말하는 거야?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똑똑히 들리는 발음에 소름이 끼쳤다.


허공에 둥둥 뜬 그의 손을 보았다. 손바닥 위에 검게 일렁거리는 작은 발광체가 놓여있었다. 명백히 정상이 아닌 물건이었다.


“이, 이게 뭔데요?”

“나한테는 필요 없는 거.”

“아니, 필요 없는 그게 뭐냐고요.”

“받으면 알게 돼.”

“그런 걸 왜 주는데요?”

“그냥.”

“꼭 받아야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럼 됐어요! 안 줘도 돼요!”

“왜?”


말문이 막혔다. 왜긴 왜야? 댁이 수상해서지! 그딴 걸 받았다가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게 그러니까, 제가 뭘 바라고 커피를 드린 게 아니거든요? 정말 괜찮아요.”


생각했던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최대한 공손한 표현으로 거절했다.


“내 성의가 있는데.”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마음은 안 줘.”


이런 썅! 뭐래는 거야!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아니, 그럼, 그, 뭐야, 아까 그 핫도그로 주세요. 예, 핫도그!”


허공에서 반대쪽 손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손만. 그리고 핫도그가 들려있었다.


“둘 다 줄게.”

“그냥 핫도그만······.”

“둘 다 줄게.”


무슨 산신령이야, 뭐야! 이젠 공포를 넘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이런 말 죄송하긴 한데, 저는 평범하게 살고 싶거든요? 당신처럼 그런, 특···별한 사람하고 엮이는 게 부담스러워요. 나 좀 그냥 보내주세요. 부탁이에요.”


차수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너는 진짜 평범한 게 뭔지 몰라.”


갑자기 울컥했다.


“그럼 그걸 받으면 알게 되나요? 예? 그렇게 평범을 잘 아는 사람이 손만 잘라서 둥둥 띄워놓냐고요! 진짜 평범한 게 뭔데요? 들어나 봅시다!”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악을 쓰고 말았다. 차수현의 양손이 아무 말 없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진짜 어쩌자는 거야? 정말 이거 받으면 알게 될 거라는 뜻이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하, 씨······. 뭐, 이상한 건 아니죠?”


이젠 대답도 안 하는 괴물 새끼였다.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핫도그를 먼저 집었다. 다행히 침 같은 건 묻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검은색 발광체를 든 다른 손이 재촉하듯 까딱거렸다.


뜬금없이 이게 뭔 지랄이야. 어깨를 푹 수그리며 나머지를 집어 들었다.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데? 자세히 살피려니까 곧장 발광체가 손으로 스며들어 기겁하고 말았다.


[계승을 위한 숙주로 선택되셨습니다.]


“어?”


[필수 데이터 다운로드 중.]

[다운로드 완료.]

[설치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설치 완료.]

[클라우드 계정을 생성합니다.]

[이미 계정이 존재합······.]

.

.

.

[백업 설정 완료.]

[‘신인자’가 생성됩니다.]


헌터로 일할 때나 들리던 목소리가 나오더니 생전 처음 보는 내용의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났다.


[‘롤 언노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게 뭐예요?”

“얘기하지 마.”

“예?”

“얘기 안 하는 게 좋아.”

“뭘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더는 차수현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손도 사라졌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길 위에는 당연하다는 듯 다시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손에 든 핫도그가 미지근해서 찜찜했다. 넋이 나가 한동안 길바닥에서 굳어버린 날 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더 미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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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22. 불씨들의 카운트 업(3) 24.03.17 2 0 13쪽
134 22. 불씨들의 카운트 업(2) 24.03.12 4 0 12쪽
133 22. 불씨들의 카운트 업(1) 24.03.03 6 0 13쪽
132 XX. 무모함의 잔재(3) 24.02.25 9 0 12쪽
131 21. 비점(4) 24.02.18 6 0 13쪽
130 21. 비점(3) 24.02.04 7 0 12쪽
129 21. 비점(2) 24.01.25 7 0 13쪽
128 21. 비점(1) 23.12.31 7 0 14쪽
127 XX. 무모함의 잔재(2) 23.11.19 12 0 1쪽
126 20. 2년 후(4) 23.10.30 11 0 12쪽
125 20. 2년 후(3) 23.10.30 8 0 13쪽
124 20. 2년 후(2) 23.08.25 14 0 14쪽
123 20. 2년 후(1) 23.08.10 16 0 13쪽
122 XX. 무모함의 잔재(1) 23.07.20 14 0 12쪽
121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8) 23.07.20 13 0 20쪽
120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7) 23.07.11 17 0 14쪽
119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6) 23.07.02 16 0 17쪽
118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5) 23.06.25 21 0 17쪽
117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4) 23.06.23 19 0 16쪽
116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3) 23.06.04 21 0 15쪽
115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2) 23.05.20 23 0 16쪽
114 19. 게으름보다 안락한 것(1) 23.04.30 28 0 15쪽
113 18. Remind Me, Like A Dog.(3) 23.04.25 30 0 12쪽
112 18. Remind Me, Like A Dog.(2) 23.04.24 25 0 12쪽
111 18. Remind Me, Like A Dog.(1) 23.04.22 30 0 15쪽
110 17. 포장되는 거짓말(4) 23.04.18 28 0 13쪽
109 17. 포장되는 거짓말(3) 23.04.17 27 0 14쪽
108 17. 포장되는 거짓말(2) 23.04.15 32 0 12쪽
107 17. 포장되는 거짓말(1) 23.04.13 31 0 12쪽
106 16. 가을이었다(5) 23.04.10 32 0 16쪽
105 16. 가을이었다(4) 23.04.09 31 0 16쪽
104 16. 가을이었다(3) 23.04.07 29 0 15쪽
103 16. 가을이었다(2) 23.04.03 30 0 15쪽
102 16. 가을이었다(1) 23.03.31 31 0 13쪽
101 15. 오히려 안 좋아(12) 23.03.29 31 0 15쪽
100 15. 오히려 안 좋아(11) 23.03.27 35 0 15쪽
99 15. 오히려 안 좋아(10) 23.03.25 36 0 14쪽
98 15. 오히려 안 좋아(9) 23.03.22 34 0 14쪽
97 15. 오히려 안 좋아(8) 23.03.20 30 0 13쪽
96 15. 오히려 안 좋아(7) 23.03.07 32 0 12쪽
95 15. 오히려 안 좋아(6) 23.03.01 34 0 15쪽
94 15. 오히려 안 좋아(5) 23.02.23 31 0 15쪽
93 15. 오히려 안 좋아(4) 23.02.17 36 0 15쪽
92 15. 오히려 안 좋아(3) 23.02.09 37 0 14쪽
91 15. 오히려 안 좋아(2) 23.01.27 38 0 13쪽
90 15. 오히려 안 좋아(1) 22.12.29 40 0 12쪽
89 14. 몇 종류의 엇갈림(13) 22.12.26 39 0 15쪽
88 14. 몇 종류의 엇갈림(12) 22.12.11 43 0 14쪽
87 14. 몇 종류의 엇갈림(11) 22.12.05 39 0 14쪽
86 14. 몇 종류의 엇갈림(10) 22.12.05 41 0 13쪽
85 14. 몇 종류의 엇갈림(9) 22.11.22 39 0 12쪽
84 14. 몇 종류의 엇갈림(8) 22.11.22 35 0 13쪽
83 14. 몇 종류의 엇갈림(7) 22.11.22 40 0 15쪽
82 14. 몇 종류의 엇갈림(6) 22.09.06 50 0 13쪽
81 14. 몇 종류의 엇갈림(5) 22.08.31 62 0 13쪽
80 14. 몇 종류의 엇갈림(4) 22.08.31 51 0 13쪽
79 14. 몇 종류의 엇갈림(3) 22.08.18 59 0 12쪽
78 14. 몇 종류의 엇갈림(2) 22.08.07 56 0 12쪽
77 14. 몇 종류의 엇갈림(1) 22.08.05 6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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