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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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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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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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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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대군주(3)

DUMMY

게들랭은 귀를 기울여 단 하나의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복도를 타고 낡은 나무 바닥이 무게에 짓눌려 기이한 소리를 냈다. 나무 바닥으로 만든 오래된 여관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방문 앞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소리는 하나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다른 방에서 때를 기다렸다는 얘기였다.


침을 넘기는 작은 소리마저 새어 나갈까 봐 게들랭은 삼키지 않고 그대로 입 안에 머금었다. 정확히 소리는 방문 앞에 멈춰 섰고 게들랭은 등에 멘 양손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노크 소리와 함께 홀딘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대군주님. 일어나셨습니까?”


홀딘의 목소리는 게들랭의 얼어붙은 몸을 완화 시켜주었다. 몸을 지배하고 흐르던 긴장감이 풀리고 등줄기에 폭포수처럼 흐르던 땀도 멈췄다.


얼마나 검을 세게 쥐고 있었는지 주먹을 쥐기조차 힘들었다. 게들랭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크흠. 일어났네.”


“식사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암살자 따위에 긴장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가 내려가고 게들랭은 짐을 챙겨 방문을 나갔다.

본인도 모르게 크리스탐을 광적으로 경계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너무 신경을 쏟은 탓인지 계단을 내려올 땐 순간 잠들뻔했다.


페릴던 레이딩항구.


세네리엘의 빛이 머리카락을 빛나게 해줄 때쯤 게들랭은 홀딘과 함께 레이딩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멀리서 화려하게 치장한 백마가 끄는 마차가 다가와 두 사람 앞에 떡하니 멈추어 섰고 마차의 창문으로 크리스탐의 기분 나쁜 얼굴이 튀어나왔고 건방진 자세로 창틀에 손을 걸치고는 늘 그랬듯 시건방진 말투로 말했다.


“일찍 오셨군요. 대군주님. 부지런 하신겁니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 밤잠이 없어지신 겁니까?”


지겹도록 들어온 그의 조롱은 정말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딱 창문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만 검으로 내려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지만 참기로 했다.


“뭐가 그리 급하셔서 허허 거참. 자고로 여행이란 숨 가쁘게 달려온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이 그려놓은 풍경화를 감상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들랭은 그의 말투에 인상을 쓰고 침을 바닥에 침을 뱉었다.


“여유 같은 소리하고 있네.”


크리스탐은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출발을 서두르도록 선장에게 말하겠습니다.”


크리스탐이 머리를 뒤쪽으로 모두 넘기고 고정한 후 마차에서 내렸다.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함선 앞에 도착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대군주님.”


금방이라도 밤사이 식어버린 대지를 따뜻하게 데워 주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던 세네리엘은 하늘을 가득 채운 잿빛 구름에 가려 사라졌다.


세네리엘이 모습을 감추자 제시카의 변덕스러운 마음처럼 공기가 급하게 식어버렸고 칼바람으로 변해버린 바닷바람이 게들랭의 얼굴을 때렸다. 크리스탐은 공들여 정리한 머리가 흐트러졌다며 투덜거렸다.


소문대로 페릴던의 날씨는 순식간에 급변했다. 여벌의 두툼한 옷가지를 챙겨가라며 잔소리하던 제시카의 말을 무시해 벌을 받는 것 같았다. 으슬으슬 몸이 떨려 어서 따뜻한 선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갑판으로 올라가자 의족을 차고 있는 선장이 갑판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선원들을 다그치며 지휘하고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맞서며 위태롭게 서 있는 선장을 향해 크리스탐이 다가갔다.


“여어~ 드메넬 선장 오랜만이군.”


“섭정님! 오셨습니까.”


“응? 자네 표정이 오늘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하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 그게 아들 녀석이 갯바위에 친구들이랑 낚시를 간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일찍 오겠다고는 했는데 과연 그 철부지 없는 녀석이 이 아비와의 약속을 지킬지...”


크리스탐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가 아닌가 너무 걱정말게. 내 경비병들을 보내 확인하라고 할 테니 말이야. 자네는 오늘 항해에만 신경 쓰라고.”


“감사합니다. 섭정님.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쪽은 오늘 나와 함께 섬으로 가실 게들랭 대군주님일세.”


“대군주님 이시라고요!?”


선장의 얼굴이 놀란 듯하면서도 꽤 기뻐 보였다. 게들랭은 손을 내밀어 드메넬 선장과 악수를 하였다. 그의 손은 오랫동안 검을 잡아 온 듯 자신의 손만큼이나 거칠기 그지없었다.


“혹시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대군주님.”


게들랭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젠 나이가 들어 결혼식을 올렸었던 날의 앳된 제시카의 얼굴과 화려한 드레스의 형태와 색상도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카라딤 기사단 중대장으로 있었던?”


“오! 맞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사소한 감정표현 하나 거의 하지 않고 호두깎기 인형처럼 우중충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그들 중에서도 드메넬은 성실하고 친절하며 예의가 발랐던지라 게들랭의 빛바랜 기억 속에 아직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게 벌써 13년 전 타릴 지방에 있는 사망의 계곡에서였다. 트롤과의 전투가 있기 며칠 전 기사단의 원군으로 카라딤 기사단이 지원을 오면서 그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


게들랭이 군인으로 있는 동안 치렀었던 전투 중에 가장 치열하고 처절했던 전투였고 그날 딸 루비앙을 잃었었다.


“그런데 자네 다리가... 어떻게 된 건가?”


드메넬은 별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바지를 걷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계곡 전투 중에 놈들의 낙석공격에 한쪽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보이지 않았었군. 그럼 이제 검을 내려놓고 키를 잡은 건가?”


“아닙니다. 한쪽 다리가 없어서 말을 타는데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 애 좀 먹기는 했지만, 이곳 민병대 부 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비록 다리 한쪽은 잃었지만, 아직 검을 잡을 제 두 손은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는데 검을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


“맞습니다. 다시 이렇게 대군주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함세.”


드메넬은 모자를 고쳐 쓰고 먼바다를 내다보았다.


“파도가 높아 배가 좀 많이 흔들려 여행이 불편하실까 봐 걱정입니다. 언제든 속이 좋지 않으시다면 말씀하십시오. 의무병을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바이넬 글리아섬은 페릴던 높은 파도 항구에서도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만큼 가까운 섬이라 이동시간은 길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배가 출발하자마자 거센 파도가 함선을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쳤다.


평생을 말과 땅을 벗 삼아 살아온 게들랭에게는 파도와 바람에 휘청거리는 배 안은 자갈길을 내달리는 마차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그 때문에 짧은 이동시간 동안 의무병이 곁에서 그를 살펴야 했고 하선을 하고 나서도 게들랭은 텅 빈 뱃속 안의 물까지 털어내고 나서야 멀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입가에 남은 고약한 맛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대군주님이 묵으실 방을 잡아두었습니다. 오전에는 좀 쉬시지요.”


한시라도 빨리 그의 반역행위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우선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맑아진 정신으로 놈을 심판하리라 다짐했다.


20년전


“데일러스 편안하게 성벽이나 순찰하며 있을 것이지 왜 굳이 사절단에 따라온 거냐.”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전 단장님이 좋아서 따라온 것이 아닙니다.”


데일러스는 손안에 작은 불꽃을 만들어 장난감 가지고 놀 듯 이리저리 주무르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켜 불타는 장미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말을 타고 뒤따라오는 기사단장 아스가의 옆에 있는 벨루비양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름다운 그댈 향한 제 불타는 마음입니다.”


데일러스가 주먹을 쥐자 불꽃이 사라졌고 손안에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반지가 있었다. 벨루비는 고개를 휙 돌려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레퍼토리라도 바꾸시던지 이틀 전에는 제 동기 코네시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고백했다가 차였다면서요?”


“큭...! 벌써 소문이...”


데일러스는 반지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성벽 위나 여기나 지루하긴 마찬가지네요. 원래 왕국의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고블린의 습격이라던가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리며 마을 공격하거나 이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응. 아니야. 행여나 그런 소리를 마을 사람들 앞에서 했다가는 매질을 당할 거다.”


“쳇. 멋지게 수석 졸업을 하면 뭐합니까. 이놈의 마법 쓸데도 없는데 말이에요. 이러다가 배운 스킬들 써먹지도 못하고 다 잊어버리겠어요.”


아스가는 데일러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사람아. 그럴 거면 게들랭 사령관님이 이끄는 그리폰 기사단이나 북부 가시성채로 자원해서 갈 것이지 왜 따라와서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고 그래. 그러다가 정말로 남작님 호위 중에 일어나기라도 하면 내 목뿐만 아니라 네 목도 날아갈 거다.”


데일러스는 뒤통수를 만지며 아스가가 듣지 못하게 혼자 구시렁거렸다.


“아니 자기가 안 보내 주고서는 나한테 그래.”


“야. 다 들린다. 욕을 하려면 더 작게 해라.”


“노인네 귀는 밝아서.”


“이 자식이!”


다리를 건너며 투덕거리다가 두 사람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져 비가 와 불어난 다리 아래 강으로 떨어질 뻔했다. 저항하던 데일러스는 아스가에게 꿀밤을 한 대 더 얻어맞고 나서야 투덜거리는 걸 멈췄다.


시원한 가을의 시작과 무더웠던 여름의 끝을 알리는 가을비가 대지를 적시며 지나갔다. 애처롭게 나뭇가지를 붙들고 안간힘을 쓰던 나뭇잎도 산들바람에 맥없이 추락해 사절단의 얼굴을 스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굴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는 나뭇잎은 행복한 꿈을 꾸며 잠들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과도 같았고 떨어진 잎과 잎 사이에 숨어 울부짖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앞서간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같았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에 사절 단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이동하는 말 위에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이동 중에 쏟아지는 졸음에 굴복한 아스가는 사절단을 멈춰 세웠다.


“오늘은 이곳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출발하자. 서둘러 야영을 준비해라.”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말에서 뛰어내려 야영 준비를 서둘렀고 혹시나 모를 적의 기습을 대비해 데일러스는 마법봉을 휘두르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마법 보호막을 활성화했다.


놓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며 작업을 하던 중 아스가가 다가왔다.


“적당히 해. 마나가 남아도냐? 아쉰베일에 그만한 보호막을 뚫고 들어올 만한 것들은 없으니까 말이야.”


“거참. 그게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할 소리이십니까!? 아까는 모가지가 어쩌고저쩌고하시더니.”


“쉿!”


아스가는 검을 잡고 자세를 낮췄다. 데일러스는 영문도 모르고 아스가를 따라 몸을 숙였다.


“또 절 놀라게 하시려는 거라면 충분합니다. 사실 조금 놀랐거든요.”


아스가는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입 좀 다물어봐.”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보여 더 입을 놀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물론 어설픈 연기를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아스가는 한동안 낮은 자세를 유지한 채로 주위를 돌았고 데일러스도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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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7화 지도자(1) 23.02.21 22 0 12쪽
176 176화 반격(2) 23.02.20 22 0 10쪽
175 175화 반격(1) 23.02.19 21 0 11쪽
174 174화 기습(6) 23.02.17 24 0 12쪽
173 173화 기습(5) 23.02.14 22 0 11쪽
172 172화 기습(4) 23.02.13 21 0 11쪽
171 171화 전쟁의 서막(2) 23.02.12 21 0 11쪽
170 170화 전쟁의 서막(1) 23.02.10 23 0 11쪽
169 169화 기습(3) 23.02.07 25 0 12쪽
168 168화 기습(2) 23.02.06 22 0 11쪽
167 167화 기습(1) 23.02.06 22 0 11쪽
166 166화 연합(10) 23.02.04 22 0 12쪽
165 165화 연합(9) 23.01.31 22 0 11쪽
164 164화 연합(8) 23.01.30 38 0 12쪽
163 163화 연합(7) 23.01.29 23 0 11쪽
162 162화 연합(6) 23.01.27 23 0 11쪽
161 161화 연합(5) 23.01.24 28 0 10쪽
160 160화 연합(4) 23.01.23 28 0 12쪽
159 159화 연합(3) 23.01.22 30 0 12쪽
158 158화 대모 모구라 23.01.21 28 0 12쪽
157 157화 연합(2) 23.01.17 31 0 10쪽
156 156화 연합(1) 23.01.16 31 0 12쪽
155 155화 류미(1) 23.01.16 30 0 12쪽
154 154화 스피제리(3) 23.01.13 31 0 11쪽
153 153화 스피제리(2) 23.01.11 33 0 11쪽
152 152화 스피제리(1) 23.01.09 33 0 11쪽
151 151화 크리스탐 23.01.09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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