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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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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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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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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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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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신(6)

DUMMY

다행히 류미의 키가 만티코어에겐 열매 수준이라 빛이 완전히 류미를 가려주었고 그의 시선에서는 그냥 빛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코를 벌름거리던 만티코어는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대 냄새를 맡았다. 사람 냄새는 분명히 났지만, 빛만 보이자 신기한 장난감이라 생각한 만티코어는 앞발을 들어 가볍게 툭 쳤다.


가볍게 휘두른 앞발에 류미는 동굴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고 온몸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끄으으윽!...”


충격에 끙끙대며 몸을 말았고 시전했던 주문이 취소되며 만티코어에게 모습이 완전히 노출됐다.


“류미!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 놈이 널 발견했으니 이제부터 가볍게 건드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우이씨! 네가 한번 맞아봐! 자기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네. 그런데 내가 왜 저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거지?”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아? 저 가방도 네겐 소중할 텐데? 그리고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 테니.”


“주둥이만 나불거리고 있으면서 큰소리는.”


“엎드려!”


만티코어의 거대한 앞발이 류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마터면 머리 통째로 날아갈 뻔했다.


머릿속에 든 남자는 단순히 말만 떠드는 게 아닌 생각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쪽으로 굴러!”


조금의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머릿속에 든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머리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그가 하자는 대로 했다.


“이제 어떻게 해?”


“잠시 기다려 놈이 우릴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다음 공격 때 놈의 공격을 피하고 다친 날개 쪽으로 충격 마법을 날려 그럼 가방을 집을 기회가 생길 거야. 하지만 만약 이번 기회에 가방을 잡지 못하면 놈이 널 장난감이 아닌 한입 간식거리로 생각하게 될 테니 집중해.”


“그런 건 나도 알아.”


“온다! 준비해. 오른쪽으로 달려!”


고양이 한 마리가 잡아놓은 쥐를 가지고 놀 듯 만티코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류미를 잡기 위해 빠르게 앞발을 움직였다.


앞은 보이지 않았고 정체 모를 남자의 음성만으로 피하고 도망만 다니려니 죽을 맛이었다. 마치 지팡이를 잃은 장님처럼 허우적대다가 공격 신호가 떨어졌다.


“지금이야! 정면을 바라보고 약간 좌측 45도를 향해 쏴!”


손끝의 공기 뭉치가 일렁이더니 튕겨져 날아가 놈의 날개를 타격했다.


“팡!”


“쿠워어어어!”


만티코어의 걸걸한 비명이 동굴 안에 울려 퍼진 후 메아리치듯 숲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귀가 먹먹해졌다.


그 사이 류미는 바닥을 더듬거리다가 드디어 놈의 발밑에 있던 가방을 집는 데 성공했지만 기쁨도 잠시 방심하다 만티코어의 꼬리를 정통으로 맞고 날아가 동굴 벽에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잠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눈에 저 멀리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고 류미는 쓰러졌다.


바짝 긴장되어 있던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며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해 눈을 감았다.


“버드네이즈...”


아무 맛도 향기도 나지 않는 차를 마시며 다리를 꼰 채 앉아 류미를 내려다보았다. 잔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흡족해하며 미소 띤 그의 얼굴이 보였다.


잃어버렸었던 모든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또렷해졌고 류미는 그룹원들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 또한 살기 위해 그와 거래를 했다. 버드네이즈는 쩝쩝거리며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실패할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기 좋게 성공할 줄이야. 넌 내 생각보다 더 강인한 아이구나. 후후.”


류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버드네이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거울에 비친 류미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 친숙했고 그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와 하나가 되어 그런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되지?”


버드네이즈는 붉은 눈동자를 굴려 류미를 바라보고는 하얀 목련이 그려진 찻잔을 내려놓았다.


“목적어를 잊은 것 같군.”


“당신과 내가 다시 분리되려면 말이야.”


버드네이즈는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벌써 나와의 이별을 생각하는 건가? 이거 서운한걸? 필요할 땐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으며 날 찾더니 이젠 나와 떨어지고 싶어 한다? 이기적이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 것 아냐. 그날 날 도와준 건 고맙게 생각해. 그렇지만 평생 머릿속에서 느끼한 너의 음성을 들으며 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너도 목적이 있으니 내게 거래를 제안했을 테고.”


“후후. 그래. 많은 희생이 따를 거다. 그러니 앞으로는 예전처럼 나약했던 껍데기는 벗어 던져버리고 결연해지는 게 좋을 거야.”


류미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해야 할 일이나 말해.”


“오호! 이렇게 거친 면도 있었나? 하긴 모든 인간은 거친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억제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인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죽는 그 날까지 말이야.”


버드네이즈는 류미의 어깨를 잡고 주위를 빙글 돌았다.


“하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 바로 너처럼 인생이 걸리게 되거나 궁지에 몰리게 되면 말이야. 그 나약한 몸뚱이로 남에게 온갖 강한 척은 다 한단 말이지. 한심하단 말이야.”


버드네이즈는 테이블과 의자를 사라지게 했고 류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껍데기를 벗어서 그런지 한결 편안해 보이는군. 좋아. 그럼 할 일을 알려주지. 우선 너와 내가 영혼이 결속된 이후 아르나크와 싸움부터 시작해 너무나 많은 힘을 소모했기 때문에 재충전이 필요하다. 임시방편으로 대량의 마나 물약을 섭취하면 갈증은 해소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어.”


류미는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그래서?”


“미넬리아 도시 중앙에 있는 순수한 마나 결정체 페네스타라면 메마른 샘의 대부분을 채울 수 있다. 그러면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의 시간도 단축될 거야.”


“목적지로 가는 길?”


“그래. 너와 내가 완벽하게 분리되려면 모든 마나의 근원지인 불의 군대의 수도 불의 심장부로 가야 한다.”


버드네이즈가 말한 목적지를 알게 되자 류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얼어붙었고 공포가 스멀스멀 엄습했다. 차라리 저자의 목소리를 평생 듣고 사는 것도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데일러스와 드롱의 잔소리 같던 경고를 무시하고 선택한 대가는 한낱 나약한 인간 여자가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무거웠다. 하나 인제와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서관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류미가 잔머리 굴리는 소리마저 이 암흑뿐인 공간에 퍼져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건 늘 보이던 동생 폴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잠을 자는 건가? 아니 애초에 잠이라는 걸 자는 건가? 아니면 버드네이즈와 영혼 결속되는 과정에서 소멸하여 버린 건 아닐까?


잠깐이라도 좋으니 폴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왠지 폴리의 얼굴을 보면 없던 힘과 용기가 솟아날 것 같았다.


“그 방법 말고는 없는 거야?”


버드네이즈는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들으면 별로 반기지 않을 텐데.”


“뭔데?”


“죽음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지. 왜? 겁이 나는가 보지? 좀 전에 테이블을 내려치던 패기는 어디 간 거냐?”


“겁을 먹는 게 당연한 것 아냐? 한 녀석도 겨우 이겼었는데 그것들이 우글대는 곳으로 가라는데 겁이 안 날 수가 있겠어?”


“걱정하지 마라. 혈혈단신으로 싸우라는 말은 안 했으니까.”


류미의 표정이 조금 살아났지만, 여전히 침울하고 어두운 건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됐군. 이제 이곳을 떠나거라.”


류미는 미련이 남는지 고개를 돌려 도서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버드네이즈는 한숨을 쉬고는 사라졌다가 몇 초 만에 다시 나타나 책을 가지고 돌아와 류미에게 내밀었다.


“괴수가 보관된 책이잖아. 이건 왜 갑자기 내미는 거야?”


“두리번거리던 건 네 동생 때문 아니었나?”


처음엔 버드네이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책을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렸지만, 곧 류미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책이 네 수중에 들어가는 순간 주인은 너였다.”


류미의 눈물이 책 위로 떨어졌고 한 방울 더 떨어져 뭉쳐진 눈물이 책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얀 수선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의 책 중 수선화가 그려진 책은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류미의 가문의 문장이었다.


“그날 네 동생의 영혼은 너의 첫 수집품이 되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으니 얘기해 주는 거야. 그리고 네가 두 번째로 방문한, 그날 난 네 동생을 불러냈지. 죄책감을 느끼면 조금 더 빨리 네가 나와 거래를 할 거로 생각했지만 딱히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더군. 그래서 이번엔 불러내지 않아보았지. 역시나 넌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거야. 하긴 작은 생명체 따위가 감당하기엔 어려웠겠지.”


“폴리... 흑흑.”


“새로운 출발을 앞둔 지금 과거의 일을 털어내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라. 그 당시 넌 소환수를 제어할 힘도 책의 정체도 몰랐으니까. 그냥 사고일 뿐이야.”


“사고일 뿐이라고? 말 한번 쉽게 하네.”


류미는 책을 버드네이즈의 손에 거칠게 돌려주고는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갔다. 류미의 육신에 정신이 돌아왔고 눈을 떴다.


정신이 돌아오자 육체도 반응하며 움직였고 신경세포가 벽에 부딪혔었던 당시의 순간을 떠오르게 해줬다.


“크윽... 아파...”


놈이 근처에 있지만 어째서인지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둔 걸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류미는 잔뜩 찡그린 눈을 천천히 떴다.


이상하게도 동굴 안을 밝혀줄 어떠한 빛도 없음에도 앞이 잘 보였다. 토실토실한 엉덩이와 살랑살랑 흔드는 꼬리. 낮에 마주했던 무시무시한 야수가 아닌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처럼 보였다.


“내 정신이 투영되어 보이는 만티코어의 모습이 꽤 괜찮지? 녀석도 날... 아니 우리를 알아볼 거다. 옛 주인을 말이야.”


류미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을 붙잡고 그를 불렀다.


“점순아~”


만티코어는 귀를 뒤쪽으로 돌렸지만, 자세를 낮추고 입구 쪽을 응시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왜 이따위로 지은 거야?”


“저기 엉덩이에 큰 매력점이 보이지 않는 거냐? 새끼 때부터 가지고 있던 거지.”


“촌스러워. 그런데 어딜 보고 있는 거지? 덩치에 가려서 안 보여.”


류미는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고 만티코어는 흠칫 놀라더니 머리를 돌려 커진 눈으로 류미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확인한 점순이는 킁킁거리며 류미 쪽에서 날아오는 냄새까지 신중하게 맡았고 꼬리를 바짝 세우더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류미를 향해 달려왔다.


류미 앞에 도착한 점순이는 류미의 얼굴에 머리를 들이밀고 뺨을 비비기 시작했고 류미도 양팔을 벌려 감싸지지 않는 큼지막한 머리를 부둥켜안고 예뻐해 주었다.


관리해준 사람이 없었는데도 삐뚤어진 마음이 안정될 정도로 점순이 털의 감촉은 부드러웠고 보면 볼수록 너무 귀여웠다.


단 놈의 몸과 입 주변에서 나는 피비린내는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거북했다. 아무래도 또 한 번 비가 내리면 씻겨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구에 누가 있어? 왜 그렇게 성나서 보고 있었던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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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7화 지도자(1) 23.02.21 22 0 12쪽
176 176화 반격(2) 23.02.20 22 0 10쪽
175 175화 반격(1) 23.02.19 21 0 11쪽
174 174화 기습(6) 23.02.17 24 0 12쪽
173 173화 기습(5) 23.02.14 22 0 11쪽
172 172화 기습(4) 23.02.13 21 0 11쪽
171 171화 전쟁의 서막(2) 23.02.12 21 0 11쪽
170 170화 전쟁의 서막(1) 23.02.10 23 0 11쪽
169 169화 기습(3) 23.02.07 25 0 12쪽
168 168화 기습(2) 23.02.06 22 0 11쪽
167 167화 기습(1) 23.02.06 22 0 11쪽
166 166화 연합(10) 23.02.04 22 0 12쪽
165 165화 연합(9) 23.01.31 22 0 11쪽
164 164화 연합(8) 23.01.30 38 0 12쪽
163 163화 연합(7) 23.01.29 23 0 11쪽
162 162화 연합(6) 23.01.27 23 0 11쪽
161 161화 연합(5) 23.01.24 28 0 10쪽
160 160화 연합(4) 23.01.23 28 0 12쪽
159 159화 연합(3) 23.01.22 30 0 12쪽
158 158화 대모 모구라 23.01.21 28 0 12쪽
157 157화 연합(2) 23.01.17 31 0 10쪽
156 156화 연합(1) 23.01.16 31 0 12쪽
155 155화 류미(1) 23.01.16 30 0 12쪽
154 154화 스피제리(3) 23.01.13 31 0 11쪽
153 153화 스피제리(2) 23.01.11 33 0 11쪽
152 152화 스피제리(1) 23.01.09 33 0 11쪽
151 151화 크리스탐 23.01.09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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