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동이
역사는 반복된다.
살동의말에 살동의 말에 동그래진 눈으로 잔뜩 긴장했다.
물밀듯이 스쳐 가는 생각으로 몸서리를 치며 다시 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먼 산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했다.
“음, 그때 분명 도공들을 잡아갔어.”
“도, 도공이라고요?”
그제야 거북마을 사람들이 가마에 질그릇을 굽던 일을 떠 올렸다.
표정이 밝아진 무솔이 살동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그러면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음, 그때 다카키가 누구에게 넘긴다고 했는데······.”
“잘 생각해 보세요. 제발.”
무솔이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리려다가 애처로운 무솔의 눈동자를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흥양에서 신사부로 무리 몰래 빠져나와 강진으로 갔지. 무라카미 해적인가? 아니 지금은 해적이 아니고 다이묘 밑으로 들어갔다고 했지 아마. 그 해적들이 도공들을 잡아 달라고 했다지. 일본에서는 도공이 귀하지. 그것도 조선 도공은 더···. 몸값이 금값이었어.”
“네? 좀 더 자세하게 알려 줄 수 없나요?”
“자세하게 말해봐야 이해하기도, 찾기도 어려워. 그 넓은 왜놈 땅에서 어떻게 찾아. 찾아도 데려오기도 힘들고···. 죽었구나 생각하고 포기하는 게 좋을걸. 크크.”
“그래도 알려주세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살동은 귀찮은 표정이었지만, 한마디 툭 던졌다.
번쩍 번개가 쳤다.
“어쭙잖기는!”
“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무솔을 힐끔 보더니,
“크크, 나도 잘 몰라. 다카키란 놈이 잠깐 스쳐 지나가듯 이야기했으니까.”
“잘 기억해 보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무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천막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대마 도주를 힐끔 쳐다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고토(五島)라는 섬과 그 주위에 있는 해적으로 신사부로란 놈과 긴지로, 마고지로 등의 파가 있어. 서로 경쟁하며 다투는 무리들이지. 그런 와중에 무라카미 해적 출신인 히까루란 자, 뭐 정확한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자가 그놈들에게 도공들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지. 이를 엿들은 모치나루가 남해안을 습격할 때 다카키를 시켜 몰래 빠져나가 도공들을 먼저 잡아가려고 계획을 세운 거야. 간도 큰 놈이지. 크크. 도공을 잡아 넘긴 대가로 독립하려고. 그래서 다카키가 해적들 일부를 몰래 이끌고 신사부로가 흥양을 노략질하고 가리포로 오기 전, 사전 탐색한다고 둘러대고는 강진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그런데 비가 와서 지체된 데다가 안개로 시야가 흐려 제대로 강진으로 찾아가지 못하고 헤매었지. 그러다 안개 속 희미한 불빛을 보고 본능적으로 가마의 불꽃인 걸 알아차렸지. ······강진이 아니었지만 내 목숨도 목숨인지라. 크크크.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을 잡아 왔지. ···다행히 그 불빛은 가마의 불꽃이었어. 크크크.”
묘한 얼굴로 한숨인 듯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이 그곳이 강진이 아닌 것을 알았다면 내 목이 그때 달아났을걸. 크크크. 뭐 날짜만 연장했을 뿐이지만. 쩝.”
“이제 출발!”
한 시진이 지나 비가 잦아들자 인솔 무관이 출발 명령을 내렸다. 날
이 어두워지기 전에 문경 관아에 들어가기 위해 병사들을 독려했다.
살동을 붙잡고 조금만 더 알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니 도공들은 어디로 잡혀 간 것인가요?”
자리에서 일어나 함거로 천천히 걸어가며 한마디 툭 던졌다.
“히까루라는 자를 찾아야 해.”
그가 무심히 말을 던졌다.
“히, 히까루라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습니까?”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개만 뒤로 살짝 돌리고 무솔을 쳐다보았다.
“크크, 위험하겠지만, 무라카미 해적을 찾아봐. 아직 그 잔당들이 남아 있다면. 크크. 하지만 포기하는 게 좋아. 그들을 찾아가기도 어렵지만 찾아가도 구해 오기가 더 힘들어. 그놈들은 무자비한 놈들이야. 크크크.”
찾아가 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는 나무함거에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슬쩍 무솔을 바라보고는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거의 표정이 씁쓸했다.
조선에서도 포작이라는 천민으로 온갖 수모와 차별을 받았다.
폭풍으로 바다에 빠져 해류에 휩쓸려 어렵사리 일본 어느 섬에 표류했을 때, 조선이라는 땅과 인연을 끊어 버렸다.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살기 위해 왜구들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 남 근해를 약탈하는데 길잡이가 되었다.
그렇게 왜구들과 섞여 일본 여인과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아 살면서 이제는 자신 스스로가 왜구라고 생각하며, 앞장을 섰었다.
마음껏 조선 해안가를 유린하고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왜구들마저 자신을 버렸다.
주워 잘 사용하다가 더 이상 쓸모가 없자 버린 것이다.
아니 자신들 대신 칼 앞에 내놓은 것이다.
“더 이상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 생각했는데······, 운명인가? ···그동안 내가 한 짓에 대한 천벌인가? ······덧없네. 내 인생이. 크크크.”
혼잣말처럼 크크 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솔은 살동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늘을 보다 고개를 돌린 살동은 무솔을 외면했다.
‘저토록 어머니와 동생들을 찾으려 하니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려나.’
살동은 일본 섬에 버리고 온 아내와 아이들을 떠 올리며 멀어져 가는 무솔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
경인년(1590년) 3월 조선통신사가 한양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솔은 내일 부산포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꾸리며, 어렵게 구한 일본말 책과 해동제국기를 챙겼다.
처소 밖으로 나온 무솔은 바위산에 올라 고금도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살동을 만나고 온 뒤 고금도 외가에 들러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간다고 말씀드렸다.
외조부께서 잔악무도한 왜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며 가지 말라며 붙잡았지만, 무솔의 단호한 의지에 노잣돈을 챙겨 주시며, 눈물을 훔쳤다.
외조부께 인사드리고 아버지가 누워 계신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아버지의 무덤은 외가에서 잘 관리를 했는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참을 아버지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무솔을 멀찍이서 연서가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머리 위 바람에 흔들리는 느티나무에 까치가 날아와 앉으며 짖어 대었다.
고개를 들어 느티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느티나무를 보며 자랐고 아이들을 낳고도 항상 느티나무 곁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무솔도 아버지를 따라 느티나무에서 놀았다.
그래서 아버지 무덤을 느티나무 아래에 만들었다.
“무솔아! 지금은 태평한 세월이지만 너의 세상은 험난하고 힘든 시절이 될 것이다. 너는 하늘을 지키는 자다. 두려워하거나 비켜 가고자 하면 안 된다. 너의 어깨에 놓인 위기와 고통을 당당하게 짊어지고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너의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당당히 길을 걸어가거라! 하늘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도울 것이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버지가 무솔의 두 손을 꼭 잡고 별이 까마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었다.
어린 무솔은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늘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꼭 어머니와 동생들을 찾아오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절 지켜 주십시오.”
느티나무 가지에 헝겊 조각들을 묶었다.
세 개의 헝겊 조각이 마침 불어 보는 바람에 날렸다.
옆에 연서가 와서 앉았다.
“오라버니, 가지 마세요. 일본은 너무 위험하다잖아요”
“그럴 수는 없어.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것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찾아오기 위함이야. 만약 내가 그것을 포기한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마.”
바람에 나부끼는 헝겊을 한참을 바라보던 무솔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 무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무솔과 연서가 걸어 가는 뒤로 어머니와 동생들 이름이 적힌 헝겊 조각이 바람에 날렸다.
무솔은 종하형님이 연서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연서는 종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연서와 무솔이 함께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종하는 가슴이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종하는 그들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오랜 기다림의 기쁨일까?
이제 곧 무솔은 떠날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아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연서는 무솔을 잊을 것이다.
시간은 종하 자신 편이라고 믿었다.
무솔이 미울 때도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연서가 더 미웠지만 그럴수록 연서를 향한 종하의 마음은 커져만 갔다.
드러내 놓고 좋아야 한다고 말을 못 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스러웠지만,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