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덤으로 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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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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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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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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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철과 돌은 같이 떨어지지 않는다(1)

DUMMY

“레이튼, 캐시를 어떻게 생각해?”


내 질문이 의외였는지 레이튼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대답을 기다리자, 레이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와 캐시는 주인님의 소유물입니다.”

“그런 의도로 물은게 아니야. 네 감정을 물은 거지.”

“주인님. 물건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레이튼다운 대답이었지만,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말이 아닌걸 알잖아 레이튼. 아니면 캐시를 불러와서 물어볼까?”


내 말에 레이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레이튼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죄를 물었다.


“저··· 주인님. 혹시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레이튼. 넌 항상 잘 하고 있잖아.”

“그럼 캐시가···.”


레이튼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주인님. 캐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주인님께서 마음에 안 드신다면 제가 강하게 교육 하겠습니다. 캐시는 가끔 자신의 처지를 망각합니다.”


레이튼의 목소리에는 짙은 체념이 묻어났다. 몇 달간 자유롭게 놔둔 캐시를 이제 와서 손대려고 한다고 생각 하는 걸까?

내 생각을 지레 짐작한 듯한 말에는 어떻게든 캐시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굳이 본인이 교육하겠다는 것부터 캐시를 생각하는 최소한의 마음이었다.


나는 좀 더 레이튼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단순히 묻는 정도로는 저 강철 같은 이성을 뚫고 내면을 볼 수 없었다.


레이튼의 가지고 있는 마음이 의무감인지 진짜 캐시에 대한 마음인지 알아야 했다. 안 그러면 레이튼은 내가 말했다는 이유로 캐시를 만날 사람이었다.


내 느낌에는 서로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한데, 혹여나 진짜 의무감만으로 캐시를 챙기는 거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둘 중 한명이 불행해야 한다면, 내겐 레이튼이 좀 더 중요했다.


“레이튼, 너도 알고 있잖아. 캐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

“제가 어떻게든 가르쳐 보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네게 시간을 줘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땐 주인님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내가 황제와 같은 처벌을 원한다면, 할 수 있어 레이튼?”


레이튼의 눈동자에 절망이 어렸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동요를 참기 위해 손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꽉 쥔 레이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 정말로··· 그것을 원하십니까?”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자, 그것이 긍정이라 여긴 레이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주인님의 노예가 주제넘게 자비를 구걸합니다. 캐시는 바보라서 아무리 매질을 해도 깨닫지 못할 겁니다. 차라리 절 벌해주십시오. 캐시에겐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레이튼의 이 모습은 숨길 수 없는 진심이었다.


나는 괜히 못된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을 담아 레이튼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레이튼. 내가 너희한테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내가 바닥에 엎드리느라 묻은 먼지를 털어주자, 레이튼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레이튼을 다시 앉히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해서, 나는 두 사람이 만나면 좋을 것 같아.”


내 말에 레이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진심··· 이십니까?”

“그래. 너도 그 편이 좋지 않아?”

“저, 저는··· 그런 건 상상으로만···”

“괜찮으니까 사귀도록 해. 캐시에게는 네가 말하고.”


내 확답에 레이튼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정말, 정말. 감사 합니다···.”

“그만 울고 나가봐. 캐시랑 둘이 얘기도 좀 하고. 나는 이제 마탑에 갈 테니까.”

“예, 예. 주인님. 죄송합니다.”


레이튼이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가자,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졌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내 질투와 욕심이 막고 있었다.


몇 개월간 응어리진 앙금이 풀리자, 내 정신도 한층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명확하게 인지되는 느낌. 본능적으로 마력을 돌리니 놀랍게도 제어력이 늘었다.


‘이게 깨달음인가 하는 그런 건가?’


착한 일을 했더니 상을 받은 것 같았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좋은 일이 이어졌다.


나는 들뜬 기분으로 마탑으로 향했다.


***


에단의 연구실엔 로렌과 그리스몬 두 사람이 청소를 하고있었다.


그들의 청소는 마법사답게 비범했는데, 청소도구와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며 정리를 했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케이씨!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눈밑에 기미가 가득한 사람이 짓는 행복한 미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괴함이 있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청소를 직접 하시나요?”


나는 반년가까이 캐시가 해주는 시중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기도 그런 일들을 하는 하인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인가?


“실험실은 하인들이 치우기에는 너무 위험해서요. 마력을 제대로 못 느끼니 잘못 건드렸다가 큰일 나거든요. 그리고 황궁에서 파견 나온 전속 하인들은 보통 10년이 넘은 이후 떠나니까 예산을 아끼려고 덜 쓰기도 하고요.”

“아, 그렇군요.”


그런 이유라면야.


두 사람은 금세 청소를 끝내고 책을 한권씩 꺼냈다.


나는 적당한곳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국나이로 치자면 이제 고등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은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대여섯 살에 훈련소에서 5년. 그 이후 마탑에서 예비 마법사로 5년을 더 보내고 나면 열다섯 전후. 이곳 기준으로는 성인에 가까운 나이다.


제국법상 열다섯은 스스로 성인이라 주장 할 수 있고, 열일곱이 되면 온전히 성인이 된다.


그러니 여기 있는 로렌과 그리스몬은 겉모습과 달리 어른인 것이다. 하지만 피로한 모습으로 책을 읽은 모습은 학창시절 한국의 고등학생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단도 연구실에 나타났다.


“케이 일찍 왔구나. 잠깐 사무실로 오지.”


에단을 따라 사무실로 가니 차를 끓이며 책 몇 권을 내 주었다.


<마법 회로>, <마법 기초>, <마력이란 무엇인가>······


입문서처럼 보이는 책들은 그 이름과 달리 무지막지하게 두꺼웠다.


“케이. 마법사는 합동훈련을 하는 기사와 달리 기본적으로 도제식으로 교육을 받는다. 앞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고. 교육 방법을 고민해 봤는데 너를 애들 가르치듯 할 순 없지 않겠나.”

“아닙니다. 저는···”

“아아, 약한 소리는 그만하고. 너는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 용사님의 재능이야 논외니까 그렇다 쳐도, 너는 시키면 그럭저럭 해 내잖나.”


마차에서 있었던 일들이 에단에게 나쁜 인상을 준 것이 분명했다. 그 때 못하는 척 했어야 했는데.


에단은 탁자에 쌓인 책들을 향해 턱짓을 하며 말했다.


“그 책들은 기초적인 것들이니, 이삼일 정도 훑어보면 되겠지?”


책들이 쌓인 두께가··· 두 뺨이 넘는데?


“미친···”

“음? 방금 뭐라고 했나?”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다 읽으라고 하는 건 아니시죠?”


내 물음에 에단은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가볍게 웃었다.


“하하하! 케이. 지금 못하겠다고 하는 건가?”

“하지만, 에단 마법사···”

“스승님.”

“예, 에단 스승님. 너무 많지 않나요?”

“맞아. 많긴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못할 걸 시키진 않아. 지금 네가 가진 마력량이면 충분히 소화 할 수 있는 양이다. 뇌를 자극 하는 수련은 꾸준히 해 왔지? 그걸 하면서 책을 읽으면 돼.”


에단은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이 인간의 기준은 너무 높아서 이걸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서준이 정도는 되야 에단의 눈에 찰 텐데.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


내가 반문하려고 하자, 에단의 눈에 감정이 사라져갔다. 입가는 아직 웃고 있지만, 서늘한 눈빛에 뒷말을 삼켰다.


“···예, 할 수 있죠.”

“그럼, 책은 따로 챙기고 연구실로 가지. 오늘부터 할 일이 있어.”


역시 다른 마법사들도 알아봐야 하지 않았을까? 꼼꼼히 따져봤어야 했는데 친분과 혓바닥에 넘어가 덥석 사인해 버린 게 실수인 것 같다.


책을 챙겨 연구실로 가니 로렌과 그리스몬도 어느새 기구들을 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불러야 하지? 선배라고 해야 되나?


졸지에 어린 선배가 둘이나 생겨 고민을 하는 동안 에단도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는 내 고민을 알고 있었는지, 가벼운 교통정리를 먼저 했다.


“자 세 사람 모두 잠깐 모여 봐라.”


우리가 에단 근처에 모이자, 그가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어제 말했다시피, 케이는 좀 특별한 상황이다. 원래라면 너희들이 선배지만 이번에는 같은 기수로 했으면 하는데 로렌, 그리스몬 혹시 불만이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실제로 두 사람의 대답엔 불만이 없어 보였다. 에단은 알았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편하게 지내도록 해. 여기 케이는 25살이고, 로렌은 18살 그리스몬이 17살이다.”


진짜 고등학생 나이가 맞았다. 로렌과 그리스몬은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케이. 네가 할 일은 두 사람을 도와서 기구에 마력을 불어넣고 네가 가진 이계의 지식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할 수 있겠나?”

“네, 스승님.”


생각보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에단은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머지는 두 사람에게 듣고 시작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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