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 단편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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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휘(晨輝)
작품등록일 :
2022.05.02 21:28
최근연재일 :
2023.11.1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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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655

작성
22.06.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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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고양이입니까? (9)

DUMMY

“으으음······.”


벨로나는 제 몸으로 흘러드는 마력에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게 천근만근이었다.


‘사로얀도 마력은 없을 텐데··· 어디서······.’


시야가 흐렸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소리만은 들려 왔다. 무언가 부딪치고 미끄러지고 맞닿는 소리들.


사로얀이다. 그가 자신을 대신해서 싸우고 있다.


벨로나는 눈앞에서 싸우는 광경을 어떻게든 보려 했다.


간신히 눈을 뜬 벨로나가 숨을 골랐다. 흘러들어오는 마력은 약했지만 조금씩 그녀의 원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녀는 눈앞의 광경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앞에서는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빛나는 날개를 펼친 악마가 천사와 같다면, 그와 마주보고 있는 어둠을 두른 자는 악마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라도 상관없었다.


벨로나에겐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사로···얀?”


벨로나는 평소 자신이 알던 모습이 아닌 낯선 모습에도 그가 사로얀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느낌, 이 마력, 그와 공유되는 생각과 감정과 영혼의 빛깔. 모든 것이 저기 있는 저 사람이 사로얀임을 알려왔다.


‘강해.’


검은 마력을 두른 사로얀이 여전히 짐승처럼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찌르는 창은 야수의 이빨 같고 주위를 휩쓰는 마력은 날카로운 발톱 같았다.


“검은 사자······.”


벨로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짙은 색의 마력이 휘날리는 갈기처럼도 보였다. 어쩌면 그게 정말로 그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사로얀은 계속해서 악마를 공격했다. 그 순간에도 그의 감정이 벨로나에게 공유되었다.


벨로나 자신이 분노에 휩싸여 무작정 달려들었던 것과 달리 사로얀에게서 느껴지는 건······.


‘나를··· 지켜주겠다고······.’


그게 단지 인서전트이기 때문에, 계약을 통한 강제적인 충성 때문에 그런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로얀이 너무나 고마웠다.


추워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모양이다.


사로얀에게서 마력이 주어지고는 있었지만 그건 기력을 약간 보충해줄 뿐, 직접적으로 상처를 회복시켜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벨로나는 재생능력자도 아니고.


사로얀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의식은 다시금 흐려지려고 했다.


벨로나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악마가 간신히 사로얀의 창을 피했다. 피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로얀은 악마가 자신의 창을 피한 순간 팔이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팔각도를 꺾어 찔러 들어갔다.


악마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결국 사로얀의 창이 옆구리에 적중하고 말았다.


“크으으··· 대체······.”


먼저 마력이 떨어져 지친 건 악마였다. 더 과한 힘을 써서 공격했고, 상대는 그것을 피했으며, 자신은 공격을 몇 번이나 적중 당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눈앞의 인서전트가 지닌 저 말도 안 되는 힘이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


악마는 지친 숨을 내뱉었다.


다시금 검은 심판이 그를 향했다. 저리는 팔을 억지로 들어 공격을 막아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창과 검이 마주친 그 순간 악마는 자신의 무기를 놓쳤다. 땅에 떨어진 그의 검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도 나지 않고 빛으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결국 악마는 패배했다.




***




뺨에 닿는 약간은 꺼끌꺼끌하면서도 축축한 느낌에 벨로나가 눈을 떴다. 고양이의 모습을 한 사로얀이 자신의 뺨을 혀로 할짝거리고 있었다.


벨로나가 깨어나자 사로얀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일어났냥? 여까지 옮기느라 힘들었다냥.”


“여긴.”


“우리가 처음 왔던 데가 C3구역이었냥? 거기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데당. 웬만하면 아지트로 가고 싶었는데··· 그건 무리다 싶었다냥.”


“그렇구나······.”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더 말할 기운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벨로나가 사로얀을 꼭 안고 둥근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엔 버둥거리던 사로얀도 이내 얌전해지더니 혀끝으로 할짝할짝 벨로나의 팔을 핥았다.


“돌아가야지?”


“미야오옹.”


벨로나가 사로얀을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




헌터들의 아지트로 돌아가기 전, 벨로나는 먼저 일리야를 만났다.


“저기 있잖아, 그러니까 어··· 네 누나 말이지.”


“알아요. 다시 못 만난다는 거.”


“어? 어어, 그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침착한 일리야의 반응에 벨로나는 당황했다.


혹시라도 애가 울거나 하면 어떻게 달래야 하나 걱정했던 것들이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요. 사실 누나한테 부탁할 때도 알았어요.”


일리야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숙했다. 이미 눈빛부터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는 듯했다.


‘사로얀, 전에 네가 말한 꿰뚫어보는 눈이란 거 과거나 미래 일도 알 수 있는 거야?’


‘거기까진 나도 모른다냥. 다만 기본적으로 그 눈의 소유자는 전부 통찰력이 뛰어났으니 어린애라고 해도 마냥 애 취급해서는 안 된당.’


그럼에도 일리야는 아직 어린애였다. 나이보다 성숙하고 의연하게 버틴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은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을 테다.


벨로나는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부모의 죽음을 듣고 복수를 다짐하던 어린 날의 자신이. 돕고 싶었다.


“저기 혹시 갈 데 없으면 우리 따라올래?”


일리야가 고개를 들어 벨로나와 눈을 마주했다. 서로의 진심이 통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일리야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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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피노키오 (1) 22.09.29 26 0 9쪽
56 황조가 (2) 22.06.22 52 0 12쪽
55 황조가 (1) 22.06.21 44 0 14쪽
54 첫 번째 휴식 (4) 22.06.20 89 0 12쪽
53 첫 번째 휴식 (3) 22.06.19 43 0 12쪽
52 첫 번째 휴식 (2) 22.06.18 53 0 13쪽
51 첫 번째 휴식 (1) 22.06.17 37 0 13쪽
50 서로의 부족함을 알기에 22.06.16 73 0 15쪽
49 잿빛 눈방울 (2) 22.06.15 49 0 11쪽
48 잿빛 눈방울 (1) 22.06.14 84 0 12쪽
47 추억 22.06.13 37 0 17쪽
46 최고의 하룻밤(wonderful night) 22.06.12 66 0 18쪽
45 한 (3) 22.06.11 46 0 15쪽
44 한 (2) 22.06.10 63 0 13쪽
43 한 (1) 22.06.09 77 0 14쪽
42 Lost Heaven 22.06.08 6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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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동백(冬柏) (1) 22.06.06 3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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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베르테르 효과 22.06.04 69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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