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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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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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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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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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DUMMY

“신비를 보여줬으면 통과하지 않았겠어요?”


세르쥬는 달리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골목에 들어선 후 병사들이 자신들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을 확인하자 슐츠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랬다면 마녀로 의심당해서 구금되거나 불타 죽었을 수도 있었겠지. 뭐 어찌 됐든 그들에게 마녀로 낙인찍힌 건 변함없지만...”그보다도 슐츠는 지금 이 우주의 운명이 인류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해악으로써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지금 와서는 물어볼 수밖에 없겠구나. 스벤, 세르쥬 너희는 저 하늘에서 뭐 못 봤니?”


“선생님, 저도 그걸 물어보고 싶었어요. 하늘에 뭐 있었나요? 그 초신성인가 뭔가 하는 그 별 말고요. 눈동자? 그런데 왜··· 하늘 위에 있어요?”


슐츠는 스벤의 말을 듣더니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세르쥬는 말없이 기이한 표정으로 슐츠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필요 없었다.


“레이븐. 자네는 어떤가?”


그는 슐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구 위에 보란 듯이 금 간 균열 속에 있던 크기를 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눈동자.


그리고 그 죄악의 속삭임...그는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고무 감과 함께 저 천구에 떠 있던 것과 속삭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


헤센부르크 에 위치한 대도서관은 일반 이용자가 들어갈 수 없는 수많은 비밀 방들이 미로와 같이 이어져 있다.


때때로 막다른 길도 나오고 낭떠러지도 즐비해 있는 이곳은 여느 미궁과 마찬가지로 심히 위험하고 험난하다.


그 도서관의 가장 깊은 곳에 안젤리누스 신부는 천구를 떠다니며 우주를 관측하는 몽상가를 재회하게 된다.


분명 서로 조우 하게 될 것을 미리 예견한 것은 신부였지만 먼저 입을 열고 대화의 장을 연 것은 짧은 머리에 유향을 바른 것이 윤기가 흐르는 몽상가의 음성이었다.


“마지막의 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 하루는 천구를 표류하다 그곳에 난 상처가 더욱 커져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이전에 살아왔던 성인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그 끝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요.”


안젤리누스 신부는 천구를 표류하느라 지상의 것에 신경 쓰지 못 한 체 입만 뻥긋거리는 지 하루를 향해 대답했다.


"레이브누스는 어찌 되었나?"


몽상가는 방금 까지만 하더라도 존칭하던 신부에게 명령 조로 물었다.


신부는 일관되지 않는 몽상가의 문장이 이제는 익숙 하다는 듯이 들었다.



그것은 지 하루 만의 버릇도 아닌 것이 대부분 몽상가들은 타인과의 소통보다 별들과의 속삭임을 통해 직접적으로 저의를 드러내기 때문에 뉘앙스 나 일관적인 분위기의 말투를 신경 쓰는 것에 대해 서툰 것이다.


"그의 역할은 모두 문제없이 끝난 거 같아요. 충분히 잿가루 (죄악) 가 모인 것으로 보아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어요. 이후에는 자연이 죄악으로써 그 순리대로 운행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거예요.”


신부는 에테르의 흐름에 취해있는 몽상가를 앞에 두고 여유롭게 말했다.


“그것참 다행이군. 그런데 신부여 내 비슷하게 다시 묻겠네. 레이브누스 는 지금 어디 있는가?”


“아 그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안네아폴리스로 간다고 했어요.”


“그건 처음 만났을 때의 행방 아닌가! 왜 솔직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가? 모른다고.”


몽상가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신부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신부는 그의 정신을 다시 지상으로 보내 신부와 제대로 마주했다.


푸르게 빛나던 지 하루의 눈동자가 다시 온전히 그의 눈동자 색인 호박빛으로 변했다.


“전 몽상가가 아니에요. 솔직히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겠지요? 직접 확인해 보시는 편이 더 쉽고, 확실할 텐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의 영혼이 흐릿하거나 안보이거나 하나요?”


“그건아니네 안젤리누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네가 레이브누스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거였어.”


지 하루는 안젤리누스를 시험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자신도 레이브누스의 행방을 안네아폴리스의 라모스 신전에 들어간 후부터 알 수가 없어 신부에게 물은 것이다.


신부는 몽상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으로 추궁할 수 있었다.


“제가 레이브누스를 어떻게 통제하겠어요? 그는 악의 종자에요. 우리가 악마를 대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이 계획을 시행하게 됐던 근본적인 이유인 그 시발점(惡)을 부정하시는 건 아닌가요?”


"내가 이 모든 멸망의 근원이자 계획자이네 안젤리. 데미우르고스가 그 계획을 굳건히 하고, 루시퍼가 그곳에 추진력을 불어넣을 거라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내가 그 시발점을 모를 리가 있겠나?"


"개괄적인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그냥 솔직히 말해주세요. 레이브누스가 왜 걱정이 되나요?"


몽상가는 신부의 말에 태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갸우뚱하더니 좌우로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가 가끔은 몽상가가 아닌가 의심이 드네."



"저도 저 자신이 자주 놀랍긴 해요."


신부는 자화자찬 후에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안젤리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떨리는 배꼽을 손이 간신히 붙잡고 있는듯한 꼴 이었지만, 눈꼬리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 차가운 눈동자는 몽상가의 심장을 노리는 맹수 같아서,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지 하루는 신부의 시선 속에서 살기마저 느꼈다.


"그럴 리는 없지. 난 항상 주변을 표류하는 에테르의 흐름을 읽어내곤 하는데 자네에게 특별히 상호작용 하거나 소통하려는 에테르를 본 적이 없어."


몽상가의 말에 신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 하루는 태연하게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의 모습을 보고도 진실을 미룰 수 없었기 때문에 헛기침하고는 발언을 시작했다.


“자네가 레이브누스를 안네아폴리스로 향하게 한 것은 그가 실제로 그곳으로 가는 것으로 인해 성공했네, 내 두 눈으로도 확인했지. 그리고 예상했다면 예상 한 대로 그는 그곳 신전에서 죄악을 저질렀네.”


몽상가는 여태껏 앉아 있었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허리에서 뚜두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구부정하게 휘어있었던 몽상가의 허리가 쭉 펴지자 장신의 키가 도드라져 보였다.


지 하루는 마법사답게 크지만 핼쑥하게 살집 하나 없는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 안을 휘젓고 다니고 있을 혈액에서부터 비롯된 체온이 방안을 덥히고 있는 것만 같았고, 밀랍 초 몇 개로 밝히고 있는 어두운 방 안을 호박색 눈동자로 밝게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이후에 그가 어디로 향했는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어. 신전에 들어간 후로 잿가루(죄악)가 매우 많이 이 지구상에 퍼지고 있음을 난 감지 할 수 있었네. 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디에 뭘 하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었지."


"그 하늘을 떠다니던 거대한 잿빛 까마귀와는 상관없는 일 일까요? 그것도 균열에서 흘러나온 에테르의 영향은 아니겠죠? 아니라면 분명 그 잿빛 까마귀는 레이브누스와 관련이 깊은 현상일 거예요. 그가 다스리는 종자일 수도, 혹은 그 자신일 수도 있겠네요."


몽상가는 신부가 드러낸 추론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네! 신부여. 이전에 그와 같이 잿가루로 가득한 짐승을 본 적이 없네. 그 역겹고 치명적인 뱀을 본 이후로 처음으로 그 뱀과 필적할 만한 죄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지. 오오... 지금 내 눈앞에도 그 형상이 아른거리네. 마치 세상의 모든 죄악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영혼은 없는데도 육체는 건재해 존재하는 짐승과도 같은 것이었어."



몽상가의 노란 빛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는 아주 빠르고 미세하게 떨리며 두려움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네네, 섬뜩한 까마귀였죠. 당신이 굳이 에테르와의 연관을 언급하지 않는 거로 보아하니 정말로 레이브누스 와 관련된 것으로 당신도 생각하나 보군요?"


"그럼 그럼 그 까마귀는 레이브누스 일 것이야. 다른 무언가였다면 이미 몽상가들이 눈치를 챘겠지. 그것은.. 레이브누스와도 같은... 아니! 저 밖의 신들의 영역에 있는 것들과도 같은 것이야!"


몽상가는 열연을 토해가며 말하느라 입 밖으로 침이 튀기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밀랍 촛불에 타오르던 불꽃을 향해 침방울이 날아왔고, 타오르던 불꽃이 치지 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꺼지고는 잿빛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오오 내가 말 했지만 너무나 타당하고 정당한 가설이구먼. 그렇지 않나? 그리 설명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그치? 레이브누스의 행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당장에도 그리고 앞으로 있을 특정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좋을듯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몽상가 앞에 처음부터 그리고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안젤리누스 신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당신의 말이 맞아서 그 잿빛 까마귀가 레이브누스라면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신부여?"


오랜만에 에테르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기력을 소모한 몽상가는 열변의 후유증으로 몸이 고단했다.


지 하루는 일어났던 화강암 의자에 다시 와 앉아 신부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 잿빛 까마귀는 북부 왕국의 상공, 자세히 말하자면 메데스비홀스작센의 위를 날아 중앙제국에 위치한 미케니움으로 향했어요."


"미케니움 이라면 자네가 온 흑색 성당이 있는 곳이겠군."


"맞아요. 그곳으로 돌아왔다면 그가 미케니움에서 곧장 할 다음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신부는 몽상가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그 질문의 답변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글쎄... 내가 그를 만나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도통 모르겠구먼. 별의 마음이야 알겠지만, 사람의 의지는..."


"그럼 조금 도와드리죠.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다시 한번 열거 해 본다면 거기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에요. 미케니움 의 영토로 향하기 전 레이브누스는 어떤 상태였죠?"


"라모스 신전에서 학살을 자행한 후였겠지."


"뭐... 아주 틀린 답은 아닙니다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잿빛 까마귀의 형태였겠죠? 그러니까 미케니움으로 와서는 사람으로 변해서 거동하지 않았을 거냐는 거예요."



"그렇겠지. 만약 계속해서 그 거대한 잿빛 까마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럼, 사람으로 변해서 어떤 행동을 하기 전 그는 잿빛 까마귀였다는 거죠? 그리고 그 잿빛 까마귀는 어땠을까요? 이미 당신은 제게 말해줬어요. 그 거대하고 끔찍한 짐승이 어땠는지 말이에요."


"분명 세상의 모든 죄악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고 말했지?"


몽상가는 신부의 물음에 이전의 어느 대답보다 더욱 빨리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지 하루의 대답에 안젤리누스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몽상가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그는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생각해 죄악의 늪 저 아래에서 죄책감의 무게감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 심한 종교적 노이로제에 짓눌려 숨조차 가뿐히 쉬고 있는 거죠. 그러면 물속에서 숨을 있는 대로 참아 괴로운 사람은 어떻게 앞으로 행동할까요?"


"그야 수면위로 재빠르게 올라와 호흡하겠지."


"안카누스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군요! 맞아요! 숨을 쉬러 올라오겠죠? 그러면 레이브누스는 자신에게 붙어 있어 육신과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죄악을 떼 버리려고 하겠죠? 하지만 그는 스스로가 구원하지 못한다 생각할 거예요. 그렇기에 이 고행을 제안했을 때 승낙한 것이고, 괴로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면 어떻게 하겠나요? 죄악으로부터 필사적으로 해방되고 싶은 자가 미케니움으로 와서 당장에 무슨 일을 할 거 같아요?”


몽상가는 신부의 질문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그 대답을 시작했다.


“아마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는 것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빠르게 행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겠지? 그리고 그 죄악을 씻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자네일 테고, 안젤리누스 신부.”


지 하루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신부는 씩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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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 잿빛 연옥 22.10.31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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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 잿빛 연옥 22.10.26 22 0 12쪽
51 51. 흑색 지옥 22.10.24 25 0 12쪽
50 50. 정화 22.10.22 34 0 13쪽
49 49. 번제 22.10.21 38 0 12쪽
48 48. 죄악과 향연 22.10.19 31 0 12쪽
47 47. 종말의 서막 22.10.17 23 0 12쪽
46 46. 몽상가들 22.10.14 24 0 12쪽
45 45. 몽상가들 22.10.12 22 0 12쪽
» 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22.10.10 25 0 13쪽
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42 42. 창조자 데미우르고스 22.10.05 29 0 11쪽
41 41. 안개속 표류 22.10.03 19 0 11쪽
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6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2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6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35 35. 카산드리아 22.09.19 21 0 11쪽
34 34. 안개속의 마녀 +1 22.09.16 26 0 11쪽
33 33. 불멸 +1 22.09.14 22 0 11쪽
32 32. 잿빛 까마귀 22.09.12 26 0 11쪽
31 31. 잿빛 까마귀 +1 22.09.09 29 0 11쪽
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3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5 0 11쪽
28 28. 만월과 메데스비홀스작센 +1 22.09.02 35 0 10쪽
27 27. 푸른밤의 수난 +1 22.08.31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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