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가 만드는 천하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진허명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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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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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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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 점창파(3)

DUMMY

33









"아으.. 허리야..."



“드디어 안개가 걷혔습니다. 나으리!”



코를 박고 움직이느라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에 끙끙대던 제갈록은 뻐근한 몸뚱아리를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욱한 안개를 돌파하자 아까 본 한랭고목(寒冷古木)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안그래도 뼈가 시리던 한기가 더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 진짜 제대로 온 것 같구나."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추위에 덜덜 떨기 시작한 제갈록과 칠복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곳이니."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요."



검을 뽑아들고서 제갈록과 나란히 길을 걷는 칠복이는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칠복아."



"뭐.. 뭡니까? 뭐가 나타났습니까??"



자꾸만 뒤를 훔쳐보던 칠복이 제갈록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놀라 당장 내빼려다 말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도처에 널려있는 한랭고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웅장한 사당이 이들의 눈 앞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으니,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건축물이 목재(木材)도, 그렇다고 석재(石材)도 아닌 얼음으로 지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허허허허.. 이쯤 되니 쇤네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젠 놀라기도 지쳐버린 칠복이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것과 달리 제갈록은 이 곳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에 한껏 들떠 보였다.



"얼어붙은 고목에 이어 얼음으로 만들어진 사당이라... 과연 범상치 않구나."



“나으리. 이제라도 돌아가서 곽대협과 함께 오는 것이 어떻겠...”



칠복의 칭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선 제갈록은 건물의 견고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건물의 양식을 봐서는 무언가를 모시는 사당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내 한 평생 얼음으로 사당을 짓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구나.”



“그리고 우린 언제 귀신이 되어버려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울상이 되어버린 칠복이가 불길한 느낌에 넋두리를 늘여놓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미묘한 소음이 작게나마 들려왔다.



후두둑



“나으리! 무슨 소리 안들리십니까?”



“이제 돌아가고 싶다고 아예 억지를 부리는게냐? 잔말 말고 따라오거라!”



“아닌데..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저 칠복이가 겁을 집어 먹고서 헛소리를 들은 것이라 치부해버린 제갈록이 더욱 거침없이 사당의 중심부로 들어섰다.



후두두둑









몇몇 짐승들이 동면(冬眠)이라는 효율적인 방식을 통해 기력을 보존하는 것과 같이 이 얼음 사당에도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활동을 잠시 유예한 생명체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생명체들은 언뜻 보면 아리따운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자세히보면 제각기 다른 방식의 흉물스러운 신체 부위를 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나칠 정도로 길게 뻗어있는 손톱에 말라 비틀어진 혈흔이 덕지덕지 묻어있다거나,



기괴해 보일 정도로 발달된 하체 근육과 더불어 지나치게 넓어진 발바닥과 같은 특이점들이 이 아리따운 여인들을 더 이상 아름다운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번쩍



그때까지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여인들이 동시에 눈을 뜨자 잔뜩 충혈된 눈가가 이들을 더욱 흉물스럽게 만들었다.



"정기..."



차가운 얼음 바닥에서 스르륵 몸을 일으켜세운 여인들이 무언가에 홀린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정기(精氣)."



후두둑



여인들의 몸에 피어난 서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사당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하니,



드넓은 사당 구석구석에서 이와 같은 소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만 보더래도 얼마나 많은 수의 생명체가 동면에서 깨어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텅 비어있는 사당의 복도를 가로질러 어느덧 중심부로 들어선 제갈록과 칠복이는 쓸데없이 넓기만 한 이 얼음 사당의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사람이 있었다면 조그마한 인적이라도 느껴질 법 한데... 아마도 버려진 사당인 것 같구나."



"나으리. 저기 보십시오."



칠복이가 가르킨 방향에는 온통 사방이 얼음으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돌로 만들어진 재단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색을 띄는 구슬이 하나 올려져 있었다.



영롱할 정도로 선명한 붉은 기운에 홀린 듯 다가간 제갈록이 손을 뻗어 구슬을 만지려했다.



“앗 뜨거!!”



손을 데일 뻔한 제갈록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자 칠복이가 품 속에서 조그만 주머니를 꺼내어 들었다.



손에 닿지 않게 살살 주머니에 구슬을 집어넣은 칠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제갈록에게 건네주었다.



“나으리는 쇤네가 없었으면 대체 어찌 하시려고 이러십니까?"



“그래. 우리 칠복이가 아니었다면 내 일찍이 비명횡사(非命橫死)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칠복이가 듣고 싶어하는 칭찬을 영혼없이 건넨 제갈록이 주머니 속의 붉은 구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열기를 담고 있는 구슬이라... 헌데 이 주머니는 왜 멀쩡한 것이지?"



고개를 빼들고 주머니 속을 따라 구경하던 칠복이 중얼거렸다.



“근데 어찌 구슬이 조금.... 비어보입니다.”



구슬이 비어보인다는 표현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지만 제갈록의 눈에도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구슬에서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장 매음굴과 관련된 단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겠지만 범상치 않은 물건인 것은 확실하구나. 일단 들고 나가자꾸나.”



"어휴 좋습니다. 아까부터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주 소름이 끼쳐 죽겠습니다요."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칠복과 제갈록은 서둘러 얼음 사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무단으로 침범한 것으로도 모자라 제단에 고이 보관하던 물품을 도난해버린 제갈록과 칠복이는 그럼에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서늘한 얼음 사당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데굴데굴






거대하고 복잡한 얼음 사당 곳곳에서 반듯하게 토막이 나 있는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제갈록과 칠복이 지나간 중앙 통로를 제외하고도 사당 곳곳에 숨겨진 공간이 즐비했지만, 그 곳에는 채 식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죽음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인성(人性) 교육을 담당해 줄 이번 보모도 제법 손이 많이 가는 편이군."



여인의 탈을 쓴 요괴(妖怪)의 사체를 밟고 서 있던 지악의 인근에는 수 십, 수 백이 넘는 요괴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깔려있었다.



어찌보면 이 요괴들은 무도한 침입자에 대항하여 맞서려던 것 뿐이었으나 자연 재해에 가까운 존재에 의하여 멸종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야 말았으니,



이 신비한 얼음 사당을 요괴들의 묘지로 만들어버린 것은 어찌보면 제갈록과 칠복의 공로라고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손이 많이 간단 말이지...."



넋두리 비슷한 것을 남겨두고 다시 자취를 감춘 지악은 그 하나하나가 능히 일류 무사조차 해칠 수 있는 요괴들을 모조리 토막을 내버렸으니,



추후에 돌이켜 보았을 때 제갈록과 칠복이가 점창파의 멸문(滅門)을 막아낸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누구든 나와보시오. 샌님의 검이 얼마나 묵직한 지 보여드리겠소.”



곽정의 도발 섞인 외침에 50인의 전사 중 한 명이 뛰쳐나와 대묵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장문인! 종남의 기생오라비에게 점창의 묵직함을 새겨주고 오겠습니다! 부디 명을!!"



“그래, 우리 막내가 나서는 것이 그나마 자비로운 처사가 될 것이지...”



50인의 최정예 중 말단에 위치한 사내가 한껏 성난 근육을 들이밀며 곽정의 앞에 당당히 섰다.



그의 뒤편으로 다가와 조용히 귓속말을 건네는 대묵에게서 일순간 지독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죽이지는 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사지(四肢) 중 하나를 잘라내거라. 물론 이는 실수여야 할 것이야..."



"존명."



다소 기이한 명령이었지만 대묵의 명령에 결코 이견을 달지 않는 점창의 최정예들은 아무런 주저함도 엿보이지 않았다.



대묵이 멀어짐과 동시에 나머지 49인의 최정예가 두 사내를 가운데 두고 동그렇게 원을 그리니 이내 근육질로 이루어진 커다란 비무대가 즉석에서 생겨났다.



“곽정이라 하오. 잘 부탁...”



비무란 서로가 통성명을 나눈 뒤에야 시작하는 것이 정파인으로서의 당연한 관례이거늘, 목례를 하는 곽정에게 점창의 무인이 다짜고짜 대도(大刀)를 휘둘렀다.



"흡!"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상대의 기습을 피해낸 곽정에게 재차 두터운 대도(大刀)가 날아들자 일격 하나하나가 감히 받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했다.



'어찌 이리 무거운 무구를 휘두르는데도 빈틈이 드러나지 않는단 말인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흘려낸 곽정은 이토록 실전같은 비무는 결단코 들어본 적도 없으니 그야말로 생과 사를 걸고 하는 사투와도 다름이 없었다.



후웅



아직 혼란스러워 보이는 곽정의 허리를 반으로 가를 기세로 날아드는 대도(大刀)에 거친 바람소리가 뒤따르자 피할 구석이 사라진 곽정이 다급히 검을 치켜들었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저만치 날아가버린 곽정이 두어 바퀴를 뒹굴고 난 다음에야 자세를 다잡을 수 있었다.



"묵직한 샌님의 검을 보여준다더니? 역시 기생오라비의 갸날픈 근육으로는 손맛이 나지 않는구나."



일정 수준의 근력만 충족한다면 이후부터는 내력의 운용과 무공의 이해도가 승패를 판가름 짓는다는 것이 세간의 정설이었지만,



상식을 초월하는 근력은 이 모든 관례를 단박에 짖이겨 버릴 수 있는 관철력(貫徹力)을 지니고 있었다.



현란하게 날아갔던 모양새와는 별개로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은 곽정이 입에 고인 흙먼지를 뱉어내며 검을 고쳐쥐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에게 손속의 자비를 두어서는 안되겠군."



"끝까지 허세는! 네 놈의 주제를 알거라!!"



기세를 탄 상대가 더욱 맹렬히 대도를 휘두르며 달려오니 그 위압감이 사뭇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호랑이를 마주해 본 사냥꾼이 승냥이에게 겁을 집어먹을 수는 없는 법이니.



혈마(血魔)라는 큰 파도를 겪어본 곽정에게 눈 앞의 상대가 내뿜는 위압감은 너무나도 조악한 개울가의 일렁임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아온 육중한 대도를 곽정이 이번에는 가볍게 막아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다소 주춤한 상대는 그럼에도 점창의 최정예답게 빠른 속도로 대도를 회수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하아아압!!"



대도를 높게 치켜든 사내의 팔 근육이 터질 것처럼 팽창했으니, 능히 하늘과 땅을 가른다는 점창파 특유의 패도적인 도법(刀法)이 그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운양벽도(雲壤劈刀)



내력을 한껏 머금은 대도가 수직으로 낙하하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



무식할 정도로 두꺼운 대도를 내리치려는 상대의 겨드랑이까지 파고든 곽정의 손에 팽팽하게 압축된 공력이 담겨 있었다.



중하검법 무검류(無劍流), 파(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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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166화 - 이란격석(2) 23.05.31 70 1 10쪽
272 165화 - 이란격석(1) 23.05.22 64 1 10쪽
271 164화 - 개미지옥의 악령 23.05.09 85 0 12쪽
270 163화 - 암막(暗幕) : 검은 장막 23.05.05 65 0 11쪽
269 162화 - 기회를 쫓아서 23.05.04 60 0 11쪽
268 161화 - 고울 려(麗) 23.05.02 84 0 11쪽
267 160화 - 괴담(怪談) 23.05.01 65 0 12쪽
266 159화 - 완벽한 준비 23.04.28 73 0 10쪽
265 158화 - 대장장이의 노래 23.04.27 57 0 10쪽
264 157화 - 생환. 혹은 탈환(奪還) 23.04.26 62 0 10쪽
263 156화 - 목표는 생환(6) 23.04.25 62 0 11쪽
262 155화 - 목표는 생환(5) 23.04.24 64 0 11쪽
261 154화 - 목표는 생환(4) 23.04.21 72 0 11쪽
260 153화 - 목표는 생환(3) 23.04.20 78 0 11쪽
259 152화 - 목표는 생환(2) 23.04.19 68 0 10쪽
258 151화 - 목표는 생환(1) 23.04.18 80 0 9쪽
257 150화 - 대장장이(4) / 수혈(輸血) 23.04.14 91 0 12쪽
256 149화 - 대장장이(3) 23.04.13 78 0 12쪽
255 148화 - 대장장이(2) 23.04.12 78 0 10쪽
254 147화 - 대장장이(1) 23.04.11 82 0 11쪽
253 146화 - 태풍의 눈 / 생존기(生存記) 23.04.07 87 0 10쪽
252 145화 - 엄지손가락 23.04.06 76 0 10쪽
251 144화 - 100번째 마인(魔人) 23.04.05 87 0 10쪽
250 143화 - 비단길 23.04.04 77 0 12쪽
249 142화 - 쓸모의 정의 23.04.03 7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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