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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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밀쟁이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7
최근연재일 :
2022.09.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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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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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와 한세현

DUMMY

최지희와 한세현


최지희를 중심으로 차원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형상계 전역에서 정보가 몰려들었다. 정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닿았다.


‘온 세상’에 새겨진 지난 천년의 기록. 거기에 남겨진 요타의 행적이 낱낱이 흘러들었다. 과거의 기록이 그녀의 손에서 마법으로 뒤바뀌었다.


<업보>


요타의 행적이 요타를 잡아챘다. 그가 행한 악행이 그에게 향했다. 그가 사람을 죽인 방법이 모두 되돌아와 본인을 공격했다.


“이게 뭐야?!”


비명을 내지르며 회피하려는 요타. 그러나 과거의 기록은 미래를 따라잡았다. 녀석이 이동하는 패턴을 따라 기록이 움직였다.


점액질처럼 보이는 기록이 놈을 삼키고, 타인을 이용한 공격이 형상화했다. 인세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무기와 고문 도구가 놈에게 향했다.


“네가 인간에게 저지른 죄악이지. 자업자득이란 말은 들어봤어?”


초췌한 얼굴의 최지희가 기쁨의 미소를 보였다. 평범한 킹급 마법사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마법이었기고, 최지희에게도 일생에 단 한 번만 가능한 마법이었다. 지금의 세현이라고 해도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을 수준이었다.


온 가족을 잃은 과거를 무려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청산하는 최지희.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작업량 속에서도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이유였다.


세현은 복수심과 원한, 적의가 한꺼번에 해소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압도됐다. 전대미문의 마법이 최지희의 원한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나타내고 있으니, 인간이 감정에 한계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대로 요타는 자신의 과거가 닥쳐오는 현실에 분노했다. 놈의 감정에는 죄책감 따위가 차지할 공간이 없었다. 재미. 타인을 파괴하는 것에서 오는 재미만이 놈의 존재 이유였고, 행동의 방아쇠였다.


“되먹지 못한 년 같으니! 내 덕에 그런 힘을 얻어놓고 날 없애려고? 당해줄 것 같아?!”


요타가 개소리를 지껄이며 마지막 도박수를 띄웠다. 진탕에서 핀 연꽃처럼 놈의 점액질 곳곳에서 꽃이 활짝 열렸다. 거기서 내뿜어지는 꽃가루. 그게 다시 점액질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모든 사도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힘. 무한에 가깝게 타인을 갈취해 얻어낸 생명력. 놈이 지구를 삼켜 뿌리내리려 했다.


“그것도 이미 너무 많이 봤지. 너도 너무 많이 써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요타.”


요타의 점액질 포자가 지면에 닿았다. 지구로 파고들려던 그것이 모조리 최지희의 마력에 가로막혔다. 힘을 갈취하고 흡수하는 요타의 성질상 놈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최지희는 이를 해냈다.


우주의 천년을 역산한 결과가 그녀의 마력에 녹아있었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로지 요타만을 추적한 역사. 그것이 요타의 성질을 완벽하게 상쇄했다.


놈이 흡수하는 힘은 과거를 이겨내지 못했다.


“으아악! 이럴 순 없어! 한울! 이 개자식! 끼어들기로 해놓고!”


이 말이 요타의 유언이 됐다. 최지희의 검은 안개가 요타를 완전히 삼키고, 과거의 기록과 함께 놈을 갈가리 찢어 소멸시켰다.


긴 시간을 이어진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결과는 최지희의 압승이었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하늘에서 추락하는 최지희.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법은 물론이고, 싸움의 여파까지 막아내며 싸운 그녀였다. 그녀가 다른 마법사를 제치고 지구를 수호할 수 있었던 이유였지만, 그만큼 부담이 컸다. 아마 세현이 제때 찾아오지 못했다면 양쪽이 공멸했거나 이겼어도 지구가 멸망했을 것이다.


추락하는 최지희를 받아든 한세현. 그녀의 의식은 멀쩡했지만 남은 힘이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생명력마저 크게 고갈된 그녀는 제대로 성장한 제자를 보고 씩 웃었다.


“세현이 벌써 이만큼 컸네?”


“키는 원래 이만했죠. 괜찮으세요?”


“조금 피곤하네. 후후. 조금 쉬고 싶은 기분이야.”


그러나 그녀에겐 아직 남은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 상황을 유도해오며 기다린 최후의 목표. 형상계로 이어지는 차원문이 과도하게 많아지게 된 원인. 최초의 사도 한울이었다.


“세현아. 잘 들어. 내가 요타를 상대한 마법 확실히 봤지?”


“네. 정말 대단했죠. 저도 따라 하기 힘들 것 같던데요?”


“그럼 안 돼. 너도 할 수 있어야지. 내 제자잖아? 무조건 할 수 있어.”


“하하! 스승님. 그만한 걸 한 번 봤다고 어떻게 따라 하겠어요?”


“염혼은 가능했을 거야. 그렇지? 네가 안 된다고 하는 건 아직 그 힘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테고. 여기 오기 전에 내 기억은 봤지? 자카 어르신한테 맡겨놨는데.”


“···네. 봤어요.”


“그럼 내가 뭘 했는지도 알겠지?”


“절 만드셨죠.”


실제로 최지희는 한국의 모든 사람에게 자기 유전자를 일부 섞었다. 한국에서 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자가 더 많이 태어날 수 있도록. 그래서 염혼과 닿은 대상에게 쉽게 마법을 전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그녀야말로 현재 모든 한국 마법사의 어머니라고 할만한 존재였다.


“만들었다니 좀 표현이 안 좋네. 그래도 뭐, 틀리진 않지.”


“이해가 안 가요. 그만한 마법을 만드셔놓고도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셨다는게요.”


그건 자신을 비하하려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최지희가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기에 나온 발언이었다. 하지만 최지희는 세현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요타가 한울이라고 했지? 그게 첫 번째 사도의 이름이야. 놈이 우리 세상에 온 뒤로 저 빌어먹을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왔지. 다른 어느 차원을 둘러봐도 우리처럼 많은 침략을 당한 곳은 없었어. 너도 알거야.”


“네.”


“만 년 동안 한 차원을 손아귀에 넣고 괴롭힌 괴물이야. 방금의 마법으로도 처리한다는 보장이 없어.”


최지희의 <업보>는 천년의 기록으로 상대를 징벌하는 마법. 그러나 상대는 형상계에 만 년이나 자리 잡은 최종 보스였다. 그 힘이라는 게 꼭 시간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놈은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세현아. 그 한울이란 사도가 어떤 놈인지 책으로만 봤지?”


“네. 저번에 디애고 아저씨의 공간에서 훈련할 때 봤어요.”


“하지만 우리 최고위 마법사들은 다른 정보를 더 알고 있어. 절대로 다른 마법사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정보지.”


“그 정도의 기밀이라고요?”


오로지 킹급 마법사들만이 공유하는 정보. 그건 한울이라는 사도의 정체였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정체불명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놈은 아주 확실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자는 최초의 마법사야. 은하계를 복사해서 마법사의 영역을 넓힌 것도 그자고, 차원문을 열어 이세계인과 괴물을 모은 것도 마찬가지지. 우리 차원의 만 년 역사는 모두 놈의 손에서 만들어졌어.”


“최초의 마법사?”


마력이란 원래 이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에너지가 형상계의 생명력과 만나 융합한 힘. 따지고 보면 모든 이민자의 원조이자 부족 사람들의 시초가 바로 최초의 마법사다. 킹급 마법사라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은하의 복제를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으니, 절대 최지희 아래가 아닐 것이다.


“그자가 다른 마법사들에게 남긴 말이 있어. ‘경쟁은 발전을 낳는다. 싸움과 분쟁이야말로 성장의 거름이다. 나는 형상계를 키우겠다.’라는 말이야. 그래서 마법사들이 무너지지 않게 멀린이라는 시스템까지 만들었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 한울이란 사도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알라는 거죠?”


“하핫! 맞아. 그런데 그 개새끼가 너무 강해서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무리였지. 그래서 염혼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일을 꾸민 거야. 나 하나로는 안 되겠지만, 내 힘과 염혼의 힘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고 계산했거든.”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의 세현을 만들었다. 한울에게 이 정보가 노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철저히 정보를 통제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자카와 최지희, 그리고 140대 멀린이 전부. 139대 멀린은 아주 일부의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가 광음에 붙은 것도 당연했다. 거기에 멀린이라는 시스템을 만든 한울이 있었으므로.


“세현아. 난 이 사실을 조금씩 나눠서 염혼이랑 의논했어. 다행히 그도 내 말을 받아들였지. 어차피 너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인데 후계자가 강해서 나쁠 게 있냐고 하더라.”


“제가 자는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죠?”


염혼이 넘긴 기억에는 없는 이야기. 그는 세현이 최지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길 원했다. 어쨌든 최지희는 세현의 스승이고, 정말 많은 가르침을 베푼 은인이었기에 역할을 넘긴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세현아.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지는 마. 지금의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마법이 네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줄 거야.”


“알겠습니다. 스승님. 지금 해볼게요.”


세현은 그녀를 벤치에 눕히고 다시 하늘로 향했다. 땅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너무 가까우면 지친 최지희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분석한 마법을 순서대로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재연하기 직전,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최지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스승님, 제가 자카 님한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재밌는 이야기?”


“네. 스승님의 본명이요. 원래 최 숙자 선자를 쓰셨다면서요?”


“···이 영감탱이가?”


“하하!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세현의 은색 마력이 세상을 뒤틀었다. 연산 공간이 확장되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받아들였다. 그는 스승이 이 마법을 만든 두 번째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최지희가 깔아놓은 레일을 마음껏 내달렸다.


변화는 빠르게 찾아왔다. 은색의 마력에 검은 안개가 흘러들어 부피를 키웠다. 은색의 종이를 덕지덕지 바른 세현의 옷이 검은색으로 변화했다. 최지희가 가졌고 사용했던 마력이 되돌아와 세현에게 흡수됐다.


염혼이 세현에게 힘을 물려준 것이나 멀린 시스템이 계승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세현은 지금 자력으로 최지희가 남긴 유산을 쟁취했다. 그녀가 지난 200년 동안 쌓고 소모한 힘을 전부 먹어 치웠다.


일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두 개의 힘이 몸 안에서 맴돌았다. 은색의 가루와 검은 안개가 낯설어하며 쭈뼛거렸다. 세현은 지금 순간을 위해 준비된 자기 자신을 믿었다. 두 명의 스승이 준비한 힘인데 유일한 제자인 자신이 다루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세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마력. 회색의 작은 판이 일어나 두 힘을 감쌌다. 은색과 검은색이 회색의 테두리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차원의 흔들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모든 작업을 끝낸 한세현은 씩 웃으며 우주 어딘가를 노려봤다.


“여, 재밌게 보면서 즐기셨나? 그럼 이제 관람료를 내야지?”


세현은 우주를 반으로 접어 놈이 자리한 위치로 이동했다. 그곳은 시작의 무덤. 마법사들의 유해와 광음의 유해가 공존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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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vs 한울(완결) 22.09.27 112 2 11쪽
» 최지희와 한세현 22.09.27 89 2 11쪽
95 vs 요타 22.09.26 82 1 12쪽
94 100년의 계획 22.09.25 81 2 11쪽
93 멀린(4) 22.09.24 74 1 12쪽
92 멀린(3) 22.09.23 77 1 12쪽
91 멀린(2) 22.09.22 83 1 12쪽
90 멀린(1) 22.09.21 90 1 12쪽
89 계승(4) 22.09.20 90 1 12쪽
88 계승(3) 22.09.19 87 0 11쪽
87 계승(2) 22.09.18 85 1 12쪽
86 계승(1) 22.09.17 84 1 11쪽
85 시작의 무덤(4) 22.09.16 83 1 11쪽
84 시작의 무덤(3) 22.09.15 81 1 11쪽
83 시작의 무덤(2) 22.09.14 86 1 10쪽
82 시작의 무덤(1) 22.09.12 90 1 10쪽
81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4) 22.09.09 87 1 10쪽
80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3) 22.09.07 89 1 10쪽
79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2) 22.09.05 86 1 9쪽
78 룩 클래스로 향하는 길(1) 22.09.02 90 1 9쪽
77 휴식(3) 22.08.31 90 1 10쪽
76 휴식(2) 22.08.29 91 1 10쪽
75 휴식(1) 22.08.26 93 1 10쪽
74 염혼 vs 쉐바 (2) 22.08.24 96 1 9쪽
73 염혼 vs 쉐바 (1) 22.08.22 97 1 9쪽
72 vs 일곱 머리의 용(4) 22.08.19 94 1 11쪽
71 vs 일곱 머리의 용(3) 22.08.17 97 1 10쪽
70 vs 일곱 머리의 용(2) 22.08.15 105 1 10쪽
69 vs 일곱 머리의 용(1) 22.08.12 99 1 10쪽
68 vs 쉐바(3) 22.08.10 9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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