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유망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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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천
그림/삽화
소고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7
최근연재일 :
2022.07.1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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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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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7.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01)

DUMMY

"레이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하하, 지금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당연하다. 네 머리통은 소중하니까."


비 오듯 흐르는 땀이 레이첼의 이마에서 뚝뚝 떨어졌다. 투박한 러시아 특유의 화법에 피식 웃은 그녀는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앨리스 그레이시는 주짓떼라. 네 머리라면 대처할 방법은 많을 텐데."

"그녀 옆에 누가 있는지 잊었나요?"

"주원 초이? 하지만 그 녀석보다 네 머리가 낫다."


첨벙


수영복 차림으로 탕 밖으로 나온 레이첼이 새까만 땀복을 걸쳤다. 곧이어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최대한 변수를 지우는 거예요. 주원 씨가 그녀에게 쥐여줄 카드 자체는 예상이 가거든요."

"무슨 말인가."

"주원씨는 앨리스에게 지시할거에요. 무조건 바닥으로 끌고 내려오라고. 하지만 그 끌고 오는 방법이 변수죠. 그걸 대비해야 해요."


삐빅


타이머가 울리자 땀복을 벗고 온도계를 들어 물 온도를 확인한 그녀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죽는 거 아닌가? 네가 죽으면 우리 전술이 허술해진다. 조심해야 하지 않겠나."

"호호호, 제 몸보다는 제 머리를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 말과 함께 물속에서 끙끙대는 그녀를 질린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미하일이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운 건가."

"제가 어디서 왔는지 잊으셨나요?"

"캐나다."

"땡! 정답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신체 운동학과에요."

"......."



***



"크리스."

"네 말씀하세요."

"음, 아니야."


심사위원들 중 비슷한 나이대인 크리스와 에단은 부쩍 친해졌다. 오전 공동 훈련을 지도한 뒤 드라이브를 즐기는 생활 루틴은 어느덧 둘의 일상이 되었다.


운전대를 잡은 크리스가 표정을 구기며 재촉했다.


"에단,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그게......"


보조석에 앉은 에단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슬링의 태클을 카운터 칠 수 있는 종목이 뭔지 알아?"

"뭐야, 일 얘기였어요?"


크리스가 속도를 줄이며 운전대를 꺾었다. 뜬금없는 에단의 말에 잠시 고민한 그녀가 다시 액셀을 밟으며 말했다.


"카운터라면 유도 혹은 주짓수겠죠."

"그런데 그 유도라는 게 웬만한 유연성 없이는 실전에서는 불가능일 텐데. 왜......"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원인가요?"

"응, 자꾸 실전에서는 불가능한 기술을 연습하더라고. 그런 게 되면 격투기 선수들 전부 유도부터 배워야지."


창문에 턱을 올린 채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는 에단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크리스가 속도를 올렸다.


"그것보다 레이첼 대 앨리스.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이번에 남자 쪽 참가자 매치업은 별 재미없는 것 같고."

"레이첼이 이기지 않을까? 그 여자 다니엘 선생님 픽이잖아. 뭐 숨기고 있는 무기가 있는 거 같던데."

"그리고 똑똑하죠. 주원의 펜싱스텝도 제일 먼저 알아챘잖아요?"

"맞아. 기본기도 좋아 보이고. 주원 그놈도 골치 아프겠어. 앨리스 걔도 말 더럽게 안 들을 게 뻔한데."

"무난하게 가면 주짓수밖에 없는 앨리스가 질 확률이 크긴 해요."


MMA를 전문적으로 훈련한 듯 기본기가 탄탄한 레이첼. 반면 노골적으로 관절기를 노릴 게 뻔한 앨리스, 에단이 보기에는 전자의 낙승으로 보였다.


"으하하, 주원 그 녀석 얼굴 구겨질 거 생각하니까 벌써 기분 좋은데?"

"혹시 모르죠, 주원의 코치 능력이 좋을 수도 있잖아요."


주원의 요구에 매트 위에 몇 번이고 어깨를 찧었던 에단은 어서 빨리 주원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크리스가 옆자리에서 낄낄거리는 에단에게 대꾸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걔가 똑똑하긴 해도 어리잖아. 경기 전술 분석이 쉬운 것도 아니고."

"흠..."

"그나저나 크리스 차에서 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안 탄 지 오래된 차라 그런가? 포르쉐로 끌고 올 걸 그랬네요"



***



FFC 에서의 순간은 순식간이었다. 일주일 전처럼 다시 참가자 대기실에서 펜대를 이리저리 돌리던 주원은 소파에 눕듯이 기대고 눈을 감았다.


"바보 두 명은 어디 갔어?"


경기 전 인터뷰를 끝내고 대기실에 들어온 앨리스가 주원이 혼자라는 것을 보곤 물었다. 아무 대답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주원의 모습.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뭐야 자는 거야?"

"......."


그 사이 잠이 든 걸까. 미동도 하지 않고 숨소리만 들리는 주원의 눈앞에 손을 이리저리 흔든 앨리스. 뭔가를 쓰다가 잠에 들었는 지 그의 손에 들린 노트가 이리저리 섞인 활자들로 시꺼멓다.


[앨리스 그레이시 대 레이첼 맥과이어. 주짓수 적인 움직임을 최대한 가져가야 승산이 큼. 하지만 어떻게? 레이첼의 전체적인 성취도로 보아 그게 쉽지만은 않아 보임. 방법은? 일단 1라운드는 최대한 탐색전으로...]


자신과 레이첼의 경기를 예측하는 듯한, 분석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노트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는 미동도 않는 주원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손을 뻗어 페이지를 넘겼다.


[플랜 1. 레벨체인지 태클. 클린치를 최대한 유도 후 순간적으로 태클... 플랜 2 주짓수 개비기...]


앞으로 페이지를 넘겨도, 뒤로도 훈련 방향성이나 경기 운영으로 빽빽하게 채운 주원의 손글씨. 앨리스는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듯한 느낌에 화들짝 노트를 주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음... 뭐야 왔어?


때마침 눈을 뜬 주원이 천천히 눈을 뜨자 놀란 앨리스가 화들짝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 어! 하하. 너무 잘 자길래. 그냥 안, 안 깨우고 있었어."

"미안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네. 어제 늦게까지 에단 씨랑 훈련해서 너무 피곤했어. 공동 훈련 때문에 낮에는 시간이 안 나더라고."


양손을 앞으로 뻗어 파닥거리는 앨리스를 보고 주원이 대답했다. 늦게까지 훈련했다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생선을 훔치려던 고양이처럼 뜨끔했다.


‘그렇게 바빴으면서 그런 건 도대체 언제...’

"그, 그건 그렇고 다른 애들은?"


미안하다는 듯 웃는 주원의 뺨을 밀어 다른 방향을 보게 한 앨리스가 말했다.


"유진이랑 네이든은 다른 참가자들 경기 보고 분석해오라고 보냈어. 아마 네 경기 전에는 복귀할 거야."

"하긴. 그 바보 천지들은 없어도 돼."


앨리스의 말에 주원도 웃음을 터트렸다. 어딘가 어색하던 분위기가 풀리자 그녀가 주원의 노트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1라운드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오?"

"... 뭐. 무조건 이겨야 하니까."


먼저 질문을 던지는 앨리스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는 주원. 앨리스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중얼거렸다. 주원은 그런 그녀가 대견하다는 듯 엉덩이를 들어 바싹 붙어 앉았다.


"이거 봐. 내가 정리를 해봤어."

"가, 가까... 워."

"응?"

"너무 가깝다고. 좀 떨어져 봐! 그래 거기서 말해."


숨을 참았다 크게 내쉰 앨리스가 주원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주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을 이어갔다.


"그러지 뭐. 아무튼 1라운드는......."



***



-자! 마지막 경기가 하이라이트가 되겠네요!


포크레인에 카메라를 단 모양새. 약간의 기계음을 내며 심사위원 석 앞으로 내려오는 카메라를 보며 크리스가 외쳤다.


-팀 주원의 앨리스 그레이시! 그리고 팀 미하일의 레이첼 맥과이어! 기대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FFC에서 이목을 끄는 두 팀 간의 대결이니까요.


복싱 테마 심사위원 다니엘이 여느 때처럼 평온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그 옆에는 표정을 잔뜩 구긴 라클란에게 카메라가 돌아가자 화들짝 놀라는 크리스.


-여길 봐주세요! 음, 네! 에단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까스로 방송 흐름을 살려낸 크리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일단은 비슷하긴 합니다. 다만 앨리스 쪽은 너무 유명하다는 게 문제가 될 겁니다.


에단의 해설에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앨리스는 무조건 주짓수로 승부 봐야 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반면 레이첼은, 아! 준비됐다는 거 같아요. 입장합니다!


크리스의 말과 함께 체육관을 가로질러 등장하는 앨리스. 참가자들이 수근대며 길을 터주었고 카메라 스태프들이 발을 놀려 붙었다.


황갈색의 긴 머리칼은 두 갈래로 땋아 묶어 올린 모습은 매서운 눈매와 찰떡궁합이었다.


-자 두 선수 모두 준비된 것 같군요. 그럼... 파이트!


-땡!


-음, 일단 무난하게 케이지 중앙을 중심으로 간을 보는 플레이가 나오네요.


경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중앙에서 원을 그리며 주먹을 한두 번 뻗는 둘. 그 모습을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다니엘이 중얼거렸다.


-레이첼이 평소보다 둔해 보이는군요. 설마.... 음, 아니겠죠.


-아! 레이첼이 먼저 칼을 뽑았어요. 크게 도약해서 원-

-투! 들어갑니다. 잽은 백스텝으로 피했지만, 뒷손은 걸렸습니다!


크리스와 에단이 주고받았다. 꽤 제대로 들어간 정타였지만 앨리스는 발을 놀렸다.


붕!


레이첼의 스트레이트를 백스텝으로 피해냈다. 공격을 이어가려는 레이첼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틈을 타 역으로 붙는 앨리스.


-클린치! 앨리스가 일단 잡긴 했어요.

-바닥으로 데려갈 수만 있다면 앨리스 쪽이 웃을 수 있습니다.


<일단 잡아. 무조건 클린치 유도해. 순수 타격으로는 절대 안 돼, 알겠지? 그냥 끌어안고라도 있어>


앨리스가 미소를 머금었다. 주원의 말대로 잡는 데에는 성공했다. 서로 끌어안는 모양새, 여기서 어떻게 넘어뜨리기만 하면.


척!


레이첼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환영한다는 듯 묵 빛 안광을 흘렸다.


손목을 구부려 갈고리 형태로 만들어 앨리스의 목덜미에 걸어 고정했다.


-넥 클린치! 앨리스! 위기입니다. 빠져나와야-


이제야 눈치 챘다는 듯 버둥대는 앨리스와 눈을 마주친 레이첼. 걸어놨던 갈고리는 당기며, 뒷다리에 무게를 실었다.


동시에 허리를 활처럼 휘어 무릎을 꽂아 넣는다.


뻑!!!


단단한 호두를 망치로 내려치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끔찍한 피격음에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버텨!!!!!"


장내의 침묵을 깨는 최주원의 목소리. 심사위원들이 허둥지둥 해설을 이어갔다.


-넥 클린치에 이어서 니킥 들어갔어요! 앨리스, 데미지 이 이상으로 받으면 경기 힘들어요! 무조건 빠져나와야-!


-그것도 쉽지 않겠군요. 레이첼이 체중 리바운드까지 하고 왔어요. 확실합니다. 힘에서 차이가 날 거예요. 떨쳐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


-주원만큼 미친 참가자가 또 있다고요? 체중 조절이 어디 개 이름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 쉽게 쉽게 되는 게 아닌데.


속사포처럼 쏟아낸 다니엘의 해설에 크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편 세컨드석에 앉아있던 주원이 일어섰다.


"앨리스! 정신 차리고 집중해!"


그 말을 들었을까 다리가 풀려 휘청거리는 그녀도 마우스피스가 찢어질 듯 씹어 정신을 부여잡았다.


쐐액!


휘청거리는 앨리스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며 마치 벌침을 쏘듯 무릎을 들이미는 레이첼.


쿵!


한쪽 어깨를 바닥에 던져 가까스로 굴러 피해낸 앨리스가 멍한 눈으로 빠르게 일어났다. 재빠르게 스텝을 밟아 원을 그리며 사이드를 도는 그녀.


-다행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단 1라운드는 데미지를 회복하는 데 시간을 쓰네요. 난전을 피하는 앨리스에요.



-땡!!!



종이 울리자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리는 레이첼.


‘주원 씨.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제가 몸무게 리바운드를 했다는 건 당신도 알아봤을 텐데. 무에타이는 예상치 못했다는 건가요.’


"마셔라. 내가 말했지 않았나. 주원보다 네가 더 똑똑하다고."


의자와 생수를 들고 케이지로 들어온 미하일이 말했다.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다 이기긴 했어요. 제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요."


레이첼의 눈망울에 맺힌 의자를 챙겨 들어오는 주원의 뒷모습이 멀어져갔다.


주원은 휘청거리는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낮춘 주원이 앨리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길 수 있어!“


턱에 새빨간 무릎 자국이 난 앨리스가 괜히 찔려서 소리쳤다.


"맞아, 넌 이기게 될 거야. 1라운드는 살아서 왔으니 이제 거의 다 이겼어."

"... 뭐?"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은 주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리어 당황하는 앨리스. 주원이 그녀의 턱에 얼음을 갖다 대며 입을 열었다.


"저 여자 저렇게 나올 줄 알았거든."

"... 뭐? 그럼 왜 말 안 해줬어! 나 엄청나게 맞았는-"

"너는 연기를 못할 게 뻔하니까."

"......."


이제는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오려 하는 앨리스를 보며 방긋 웃는 주원이 말을 이어갔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는 거야.“

"시발."

"어허, 나쁜 말.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잘 들어."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초승달처럼 눈매를 휜 주원이 앨리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고 그녀의 눈망울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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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 베니스 해변에서 생긴 일 (02) +5 22.06.27 621 2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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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 주짓수와 서핑 (03) +3 22.06.23 640 24 13쪽
41 40. 주짓수와 서핑 (02) +2 22.06.22 66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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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적응하세요! +1 22.05.20 970 23 10쪽
13 12. 앨리스 그레이시 22.05.19 995 23 12쪽
12 11. 금메달리스트 +2 22.05.18 1,019 28 13쪽
11 10. 다이어트와 심리전 +2 22.05.17 1,024 29 14쪽
10 9. 준비! 미국으로! (02) +4 22.05.16 1,122 2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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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실력 좋은 복서와 한판 (01) +1 22.05.12 1,316 30 13쪽
5 4. MMA 백과사전(04) +2 22.05.12 1,383 3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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