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유망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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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천
그림/삽화
소고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7
최근연재일 :
2022.07.1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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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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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0. 파티 (2)

DUMMY

"고마워."


앞 뒤 맥락 없이 툭 던진 앨리스의 말에 주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맙다니 뭐가?"

"저번에 조언해준 것도 그렇고 나랑 팀 해준 것도 고맙다고."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원도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바텐더가 이를 포착하고 다가왔다.


"신사 숙녀분. 잔이 비었는데 찾으시는 술이라도 있을까요?"

"데킬라 레포사도로 두 잔 주세요."


주원의 주문에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자 앨리스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너... 무슨 스토커야?"

"왜?"

"내가 데킬라 레포사도만 마시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냥 보면."

"쳇, 또 관찰 하셨겠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기색으로 앨리스가 함께 양손으로 따옴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자, 여기."


주원이 그녀의 손등에도 레몬을 바른 뒤 커피 가루를 뿌려주곤 샷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향을 느끼며 커피 가루를 잇몸을 대고 빨자 독한 알코올과 커피 향이 기분 좋게 어울렸다.


"음."


앨리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너 말이야."

"응."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뒤 결심했다는 듯 끄덕거리곤 말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뭐?"

"그렇잖아, 나보고 팀하자고도 그러고 레이첼이랑 경기할 때도 노트에 빽빽하게···."


코끝을 스치는 은근한 데킬라향과 함께 앨리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그리고 지금도 나한테 와서 말 걸었잖아···."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의문에 찬 그녀의 눈망울에 주원이 가득 찼다.


"너 나한테 관심 있어?"

"푸흡!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게."


혀를 깨문 듯 인상을 찌푸린 주원이 되물었다.


"아니, 지금까지 누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준 적은 없었거든. 사실 그전에 내가 꺼지라고들 하기도 했지만."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꺼지라고 했는데?"

"······"


주원의 물음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내 외모나 그레이시라는 배경만 보고 접근하니까. 반반하게 생겼으니까. 아니면 우리 아빠랑 친해지고 싶은 놈들이 날 다리로 쓰니까."


그녀의 말에 주원은 빈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는 듯 침묵하던 주원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런 것도 이제는 받아드릴 나이야."

"··· 뭐?"

"네 외모나 그레이시라는 배경을 무시하지 마. 넌 이제 어른이라고, 외모나 배경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을 다룰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주원의 충고는 차가웠지만, 그 목소리는 좋게 타이르는 듯 따뜻했다. 그의 일리 있는 말에 앨리스는 조금 멍해진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기에.


"······"

"이미 예쁘게, 그리고 그레이시로 태어난 걸 어떻게 해? 네가 인터뷰에서 말했잖아. 증명하겠다고. 그레이시라는 걸 증명하고 MMA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견뎌야지."

"그,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 그게 공인의 삶이니까. 그러니까 너무 밀어만 내지 마. 품을 줄도 알아야지. 내가 아는 너는 그럴 수 있어."


듣고 있던 앨리스는 왜인지 마음속에 짐이 덜어진 기분이 들었다. 주원이 진심으로 이해하고 어떤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제시해 준 느낌이 들었다.


<앨리스 씨는 왜 그렇게 저한테 잘해주십니까>

<음?>

<그렇지 않습니까. 인터뷰 요청하면 다 들어주시고, 가끔 라디오 나와달라고 하면 나와주시고. 제가 드린 부탁은 다 들어주시는 것 같은데>

<그야, 주원 씨는 완전 제 스타일이거든요>

<동양인 취향이셨습니까?>

<푸흡!>


그렇게 말한 주원이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던 중 그의 턱이 앨리스의 손에 붙들렸다. 주원의 놀란 표정은 무시한 채 앨리스는 그의 턱을 손으로 당겨 올리며 얇게 뜬 눈으로 한참을 쳐다봤다.


"그래서 나 좋아한다는 거야?"


자신 있게 물은 앨리스였지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를 보자 주원의 마음속에 장난기가 생겼다. 주원은 턱을 잡고 당기는 앨리스의 손을 떼어냈다.


"좋아하지."

"뭐? 진짜?"

"천재 주짓떼라를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딨어?"


주원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그녀가 살짝 떨리는 손을 뒤로 감췄다. 표정을 숨기려는 듯 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랑 얘기할 땐 웃지 마."

"응? 왜-"

"그냥 웃지 말라면 웃지 마! 그리고 나 좋아하지도 말고."


주원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자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파티장 조명 때문일까, 그녀의 귓불이 조금 붉어진 모습은 풀어헤친 그녀의 머리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왜 좋아하면 안 되는데?"


주원의 물음에 그녀가 어느새 가져온 데킬라를 왈칵 들이켜곤 입을 열었다.


"난 우리 아빠 빼고는 누굴 좋아해 본 적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고."


가슴을 쭉 펴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옆자리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머? 진짜 사이좋네요."

"주원아 걘 진짜 아니라니- 흡."


어느새 다가왔는지 레이첼과 유진이 둘을 바라보며 옆에 앉아서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유진은 또 쓸데없는 농담을 하려다 앨리스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닫았고, 레이첼은 흥미가 동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안녕 앨리스, 여기 있었구나?!”

“그래···. 너구나”

“헤헤, 그보다 눈가에 섀도우는 어디 제품 꺼야? 예쁘다아!”

“으··· 응? 그냥 레 꺄트르 팔레트에서 대충 섞어서, 잠깐 이걸 맥과이어 너한테 왜 말하고 있는 거야!”

“앨리스! 맥과이어라니? 조금 전에 나랑 친구 하기로 했잖아! 그럼 레이첼이라고 불러야지.”

“그건 네가 멋대로 내 방에 들어와서...!”


재잘재잘 떠드는 둘을 보니, 2주 전에 경기를 치른 뒤 친해진 모양이다. 레이첼이 앉아있는 앨리스의 팔을 끌고 일어나자, 엉거주춤 끌려 일어나는 모양새가 퍽 웃겼다.


“아무튼, 앨리스, 주원 씨. 같이 기념사진 찍으러 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진짜 항상 힘이 넘치는 여자네...’


속으로 중얼거린 주원은 유진을 따라 섰고 앨리스는 레이첼에게 붙잡혀 끌려오듯 따라왔다. PD 크레이그 가 사진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남은 참가자들이 앉거나 서서 자리를 잡는다.


“주원! 앨리스! 같이 좀 서봐요. 사진 좀 찍게.

“아···. 저 양반 진짜 집요하네.”


참가자들이 기다리고 있자 앨리스가 투덜거리며 주원의 옆에 섰고, 주원도 어색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



짠!


같은 시간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도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흘렀다.


"에단, 오랜만이네. 난 경기 때문에 물로 마실게. 괜찮지?"

"오랜만이야."


FFC 레슬링 테마의 심사위원 에단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넘겼다.


"그나저나 요즘에 무슨 촬영 한다면서? FFC인가, 그거 인기 많더라."

"그러게. 요즘 워낙 바빠서 말이지."

"여자 생긴건 아니고?"


키득키득 웃으며 농을 건넨 이는 심사위원 에단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에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촬영하는 것도 힘든데, 여력이 없어. 너는 별일 없지?"

"어휴, 말도 마라. 나 2주 있다가 경기 있는 거 알지?"

"듣긴 했어. 왜, 상대가 좀 치는 놈이야?"


에단이 술잔을 내려놓고 묻자 맞은편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좀 치는 건 문제가 안 돼. 너도 알잖아."

"그래, 누굴 만나든 간에 준비한 시간이 있었을 테니."


쾅!


"어이, 마르코. 갑자기 왜 그래?"


책상을 신경질적으로 내려친 남자의 이름은 마르코. 에단의 친구이자, UFC 라이트급 10위권 안에 드는 선수였다.


"하이안 그 새끼, 주짓수 하다가 어깨 나갔다더라. 어제 연락받았어. 땜빵으로 딴 선수가 온다더라고."

"음, 그럼 그동안 훈련한 데이터는 다 폐기해야겠네."


UFC 선수들은 경기가 잡히면 상대 선수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스파링 파트너와 장기간 훈련하며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르코 또한 2달 전에 잡힌 상대만을 연구하던 중 상대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고 다른 선수와 경기를 갖게 된 상황.


"거기다 상대가 누군지 알아?"

"에밀? 콜비?"


에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이트급 선수들 이름을 나열했다


"그런 타격가 애들이면 걱정도 안 해. 너 같은 그래플러야, 그것도 유도 베이스라고!"

"라이트급 유도 베이스라면···. 설마 파르시안?"

"맞아. 좆됐어. 상대가 타격가인 줄로만 알고 준비했는데, 파르시안 그놈이 나온다더라고."


마르코가 낭패라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가 2주 남은 시점에서 스파링 파트너를 새로 구해야 하는데 유도 베이스에 타격도 좀 치는 놈이 흔하냐고!"


술은 에단이 마셨는데 술기운은 마르코에게서 풍겼다. 물 한 컵을 목구멍에 털어낸 마르코는 욕을 한 사발 쏟아냈다.


"마르코. 너 혹시 FFC 촬영분 어디까지 봤어?"

"응? 1편 보고 안 봤는데?"


그러던 중 뜬금없는 에단의 물음에 마르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단의 확신 없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입이 열렸다.


"유도 베이스에 타격도 좀 치는 놈 있긴한데."

"설마 너 그 한국에서 왔다는 참가자 말하는 거야? 그런 아마추어를 어디에 써먹어!"


마르코는 쓸데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에단도 자신은 없는지 입에 위스키를 털어 넣었다.


"크흠, 몰라, 일단은 만나봐. 내가 볼 땐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마침 참가자들 팀 미션도 끝나서 딱 2주일은 시간이 있거든."



***



“와! 드디어 탈출이구나!”


FFC 촬영장 정문은 인파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인파 사이 속 유진이 양 팔을 쭉 펴며 소리치자 주원이 찬물을 붓는다.


“2주뿐인 자유지만 말이야. 자, 차왔다. 나 먼저 갈게?”


라스베이거스 공항으로 가는 8인용 승합차가 도착하자 차 문을 열어젖힌 주원이 잘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온종일 재잘거리는 유진과 네이든, 바보 형제에게서 벗어났다. 주원은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귓가에 다른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래도 공항으로 가는 참가자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주원, 그래서 2주 동안 뭐할 거야?”

“초이, 너도 비행기 타냐?”

“내가 너네한테 많이 데이긴 했나보다. 바보 형제 목소리가 들리네.”


눈을 감은 채 주원이 중얼거렸다.


“앨리스 너는 어디로가? 여기 공항 가는 승합차이야. LA 사는 거 아니었어?”

“응? 뭐야. 그럼 나 내려야 해, 왜 말 안 해줬어?! 너희 들이 끌고왔잖아!”


잘못들은 게 아니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는 앨리스였고 앞에서는 분명히 레이첼이다. 그리고 뒷좌석에는 바보형제까지.


“······ 뭐야 너네. 왜 여깄어.”


눈을 뜬 주원이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레이첼 아빠가 MMA 체육관 하시잖아. 캐나다에서 합숙 훈련하기로 했어.”


유진이 기대된다는 듯 V자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레이첼이 무릎을 치며 거들었다.


“앨리스 너도 가자! 재밌을 거야!”

“그, 그럴까?”

“좋았어! 아빠한테 한 명 더 온다고 말해 놓을게!”

“그런데 초이 넌 어디 간다고?”


네이든의 물음에 주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플로리다."


주원의 대답에 레이첼이 손뼉을 치며 눈을 반짝였다.


“플로리다라면 이번에 UFC 열리는 곳이잖아요! 주원씨 설마···?”


주원은 대답 없이 눈을 감으며 어젯밤 받은 메일을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주원 초이(CHOI)>


UFC 라이트급 컨텐더 마르코 마르티네즈의 매니저 카밀라입니다.


마르코 선수의 상대가 하이안 그레이시에서 카로 파리시안으로 대체됨에 따라···.


-중략


따라서 초이 씨를 스파링 파트너쉽을 제안드립니다.


주원으로서는 당연히 받아드렸다. 애초에 2주동안 스케줄이 붕뜨는 시점이었다. 에단을 상대로 갈고 닦았던 기술을 시험해보자니 참가자들 상대로는 전력 노출 때문에 꺼리던 참이었다.


[유도 성취도 : 70 %]


에단과의 스파링을 끝으로 70%에서 꿈쩍도 않는 유도를 갈고 닦을 기회가 제발로 찾아온 셈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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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6. 도장깨기 +4 22.06.28 613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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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실력 좋은 복서와 한판 (01) +1 22.05.12 1,316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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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MMA 백과사전(03) +4 22.05.11 1,446 49 13쪽
3 2. MMA 백과사전(02) +2 22.05.11 1,543 4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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