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육체 쟁탈전 (1)
육체를 바꿔버리는 영혼과 의식의 전이는 발악하는 식민지 생명체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유희였고 침공을 축하하는 일종의 이벤트며 우월감에서 나오는 퍼포먼스이자 조롱 섞인 오픈 기념 선물이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상당한 생명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생명의 핵을 점유하고 관리하는 그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남구는 그들의 하는 짓거리에 치를 떨며 주변을 계속 살폈다.
이곳은 조명 기구도 없어 어둑했다.
형광등이 들어갈 자리에 전선만 달랑 빠져나와 있었다.
‘짓다 만 건물이네!’
하지만 진에서 발하는 광채로 인해 시야에 문제는 없었다.
‘역시 공동에서 봤던 것과 똑같군.’
바닥에서 발광하고 있는 진의 생김새는 공동의 벽면에 거미줄처럼 수 놓여 있던 기하학적 문양의 양식과 같았다.
생명의 핵으로부터 에너지를 운반하는 회로나 핏줄 같아 보였다.
환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공중에 나풀나풀 떠다니는 먼지의 입자까지는 제대로 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바닥에서부터 먼지가 풀풀 올라왔다.
‘꽤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곳이구나! 놈들이 마련한 아지트겠지? 이런 아지트가 얼마나 될까?’
쏟아져 나온 많은 사람을 다 채우고도 넉넉하게 공간이 남았다.
창문은 하나도 없었지만, 평수가 넓어 한쪽 벽면에 일정하게 배치된 출입구만 4개였다.
모두 철문이었고 굳게 닫혀 있었다.
‘창이 없는 걸 보니 지하로군.’
소환된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곳이었다.
몸을 추스른 은성은 제일 먼저 4개의 철문이 열리는지 확인하고 다녔다.
남구는 집중하면 나타나는 습관처럼 눈을 가느다랗게 좁혀 뜨고 이곳저곳으로 부지런히 굴려 대며 소환된 사람들의 인원수를 순식간에 세어 나갔다.
‘53명이라.’
지하 공간 삼분의 일 정도를 소환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공간 이동의 영향으로 넘어진 사람도 꽤 되었다.
공간 이동을 처음 겪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 아줌마는 장바구니를 내팽개치고 구석으로 달려가 벽을 부여잡고 구토를 해댔다.
“웩! 우웩!”
실크 소재의 파란 넥타이에 명품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장바구니에서 떨어진 식료품들을 주워 담고 아줌마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습니까?”
“윽! 고마워요. 이제 괜찮아요.”
사람들 대부분은 먹통인 휴대 전화를 흔들며 두드려 댔다.
“아, 왜 이래?”
“휴대폰이 안 돼요.”
“아저씨 것도 그래요?”
“어, 어서 경찰에 신고를······.”
‘저들은 무엇 때문에 휴대 전화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지 모르겠지?’
이 공간에서는 휴대 전화의 전파가 터지지 않는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다.
진의 일정 범위 내에서는 전자기기 자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생명의 핵이 내포한 기운 때문이겠지.’
핵의 기운에 쥐포가 될뻔했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쳤다.
그런 와중에도 눈동자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겉보기에는 모두 맨몸이나 다름없이 이곳에 소환되었다.
하지만 53명 중 단 한 명.
허리에 목공용 벨트를 차고 작업 도구를 두른 사람이 보였다.
망치와 드라이버, 끌, 톱 등 여러 종류의 공구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60대 정도?’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얼굴이 조금 젊어 보였다.
숙련된 목수일 것이다.
이곳에는 나이 든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콜록거리며 주기적으로 기침 소리가 들리는 곳에 같은 디자인의 병원 환자복을 입은 무리가 뭉쳐 있었다.
‘몸을 바꿔버리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만하구나! 우리가 가장 어린 나이군. 음, 저놈들은······.’
또 한쪽에는 검은색 정장을 걸친 3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상이 과히 착하지 않았다.
‘조폭!’
남구는 그동안 무수한 사람과 인연을 맺어 왔었다.
적자생존의 무간지옥에서 좋은 인연보다는 나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많았다.
‘참 짧은 악연들이었지!’
저쪽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남구의 손을 여럿 거쳤었다.
하지만 현재의 몸 상태 탓에 신경이 쓰여 계속 힐끔힐끔 동태를 살폈다.
“니미럴, 뭐여 이거?”
오만불손한 목소리가 닫힌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댔다.
“혀, 형님! 진짜로 뭔 일이 일어났는데요?”
“씨발! 잣 된 거 아니야?”
‘저놈들한테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게 좋겠군.’
분위기를 압도하는 위협적이면서도 떠들썩한 소음이 계속됐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직 폭력배 세 명에게 쏠린 틈에 벽 쪽에 붙어 스리슬쩍 이동했다.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고 조용히 목수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 아저씨!”
“응?”
떠들썩한 조폭들을 힐끔거리며 두려움에 흔들리던 목수의 눈동자가 남구를 향했다.
‘중학생인가?’
목수의 눈에 비친 남구는 키가 작고 깡마른 병색이 완연한 아이였다.
“잠시만 이쪽으로.”
“어, 어디?”
남구는 살포시 목수의 소맷귀를 붙잡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유도했다.
목수는 당황하면서도 이끄는 데로 순순히 끌려가 주었다.
이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그저 말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두렵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듯했다.
잔뜩 경직되어 있던 목수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남구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구석으로 목수를 데려와 교복을 펄럭거리며 허리춤에서 자기만 한 조경 가위를 꺼내 들었다.
목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손으로 잡고 나뭇가지를 자르는 용도라서 크고 길었다.
그런 것이 교복을 입은 키 작은 아이의 품속에서 불쑥 꺼내지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남구를 쳐다봤다.
“아저씨! 이거 분리해 줄 수 있어요?”
두 개의 가윗날을 이어주는 고정 못을 분리한다면 짧은 단창과 모양이 비슷했다.
게다가 짧은 창이 두 개나 생기는 셈이니 각각의 손에 하나씩 잡고 쌍수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단창은 남구가 초창기에 꽤 오랜 기간 사용했던 무기였다.
처음에는 다른 무기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지만 제법 익숙해진 후로는 한동안 꾸준하게 애용했었다.
남구는 뒤늦게 한꺼번에 성장한 체질이었다.
지지부진했던 성장기가 늦게까지 이어진 경우라 스무 살 초반까지 신장이 10cm 넘게 더 자랐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저 작고 말라비틀어진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어리일 뿐이다.
발육이 또래보다 한참 뒤떨어져 마치 중학생 같아 보였다.
힘과 체력이 심각하게 달렸던 남구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았다.
완력이 필요한 무기보다는 가벼운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순발력과 반사신경은 좋은 편이어서 사람들 뒤나 지형지물에 숨어 기회를 엿보다가 순간적으로 가볍게 찌르고 빠지는 단창이 꽤 손에 맞았었다.
최약체가 생존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자연 발생한 이런 전투 방식 때문에 친구들에게 이기적이며 비겁하다고 언제나 배불리 욕을 먹었었다.
친구들이 자신들을 방패막이 삼는 남구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남구는 성격과 체격과 전투 스타일 모두 멸시받고 외면당하기 딱 적당했다.
목수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왜 멀쩡한 가위를······.”
“그냥 분리해 주세요, 네? 허리에 연장도 차고 계시잖아요.”
목수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졌다.
‘거의 새것 같은데? 이대로 못쓰게 하긴 너무 아까운데?’
평생 공구를 소중히 하고 살아온 목수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가 너무 성화였다.
간절한 표정으로 무작정 조르는 키 작은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이해할 수가 없구만. 뭐, 그렇다고 못 해줄 것도 없지!’
옳든 그르든 언제나 의뢰인의 입맛에 맞춰 작업을 해주던 목수였다.
“허 참! 그래 알았다.”
조경 가위를 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분리해 버렸다.
목수는 분해되어 못쓰게 된 가위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아이에게 건넸다.
“자! 옜다. 참나 거, 이상한 놈일세?”
남구는 목수가 주는 무안에도 그저 눈빛을 반득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두 쪽으로 깔끔하게 나뉜 조경 가위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자세히 살폈다.
‘가위라 아무래도 창같이 마냥 곧게 뻗지는 않았군.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쓸만하겠어!’
“흐흐, 감사합니다.”
남구는 만족스러운 듯 한쪽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렸다.
비틀린 웃음을 접한 목수의 미간이 순간 씰룩거렸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어린놈의 웃음이 뭐 저따위야?’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꺼림직하게 쳐다보는 목수 앞에서 남구는 두 개의 단창화된 가윗날을 다시 재빠르게 바지춤에 찔러 넣고 교복 마이를 여몄다.
툭 불거졌으나 커다랗던 부피에서 나뉘니 훨씬 운신이 자유로웠다.
남구는 목수 옆에 바짝 붙어 소곤거렸다.
“저기, 아저씨.”
“왜? 이놈아!”
목수는 ‘또 뭐 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으로 작은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저씨, 우리 같은 편 할래요?”
“뭐?”
목수의 표정은 한결같이 얼떨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구가 마치 친한 사이라도 되는 양 스스럼 없이 팔꿈치로 목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에이, 그냥 같은 편해요, 네?”
“허허허, 깐부하자고?”
아양을 떠는 남구 덕분에 표정이 한결 풀어진 목수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목수가 웃자 그에 따라 남구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목수의 사람 좋은 웃음을 저도 모르게 따라 웃은 것뿐이었지만 사선으로 비틀려 올라가는 입술 사이로 한 맺힌 귀신의 귀곡성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수라와 같이 살아온 남구로서는 무의식 속에서 몸에 배어 습관처럼 나오는 이런 미소를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했다.
마냥 귀엽게만 내려다보고 있던 목수는 갑자기 머리털이 곤두서며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서늘한 살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자하게 웃던 목수의 얼굴이 급격하게 경직됐다.
‘서, 설마?’
순간 분리된 조경 가위가 흉악한 흉기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섬뜩함에 눈꺼풀이 씰룩씰룩 경련을 일으켰다.
눈치가 빤한 남구는 목수의 표정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있었다.
‘목수 아저씨, 사람 볼 줄 아시네요!’
남구의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더해지자 섬뜩함이 더욱 배가 됐다.
남구를 내려다보는 목수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한껏 자리했다.
남구는 경련을 일으키며 점점 커지는 목수의 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이런, 표정 관리 좀 해야겠구만. 내 표정에서 야차처럼 살아온 나날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모양이군. 노인네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네!’
목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 아이와 가깝게 하고 싶지 않았다.
깡마르고 작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느꼈던 위안은 날 선 경계심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목수를 빤히 보고 있던 남구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우리는 악마들의 노리개가 됐다는 생각 혹시 안 드세요? 장기 말이나 체스 말 같이!”
“뭐, 뭐라? 그게 무슨 소리냐?”
남구가 바지춤에 찔러 넣은 분리된 조경 가위를 슬며시 쓸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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