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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카덴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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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그우주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3
최근연재일 :
2022.08.09 1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046
추천수 :
136
글자수 :
126,776

작성
22.07.19 09:57
조회
48
추천
8
글자
18쪽

짐승의 굴 - 퓌오른의 성녀 (2)

DUMMY

레가브가 재빨리 아리마를 밀쳐내고 뒤늦게 창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순간적으로 파고든 적의 검은 레가브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레가브님!”

“대장! 괜찮아?”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레가브의 손끝에 맺혔다. 그리고 손가락을 타고 천천히 조금씩 새벽이슬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팔이 마비된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레가브는 팔에 감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근육 다발이 끊길 만큼 큰 상처인 것은 틀림없지만, 피로 덮인 상처는 어느 정도로 깊은지 좀처럼 확인할 수 없었다.


겨우 나은 레가브의 팔이 또다시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어버렸다.

억지로 창을 잡은 모양새가 손이 창을 잡고 있다기보단 창이 손을 붙들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사제복을 입은 사내는 누가 봐도 성녀의 부하였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사제, 블라디아스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 자식! 살려 보내지 않겠어! ”

“아리마! 후방을 노려!”

바라크는 아리마와 함께 블라디아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오지 마!”

레가브가 형제에게 소리쳤다.


“···!”

쌍둥이는 레가브의 말에 움찔하며 멈춰 섰다.


하지만 그의 말뜻을 이내 알아들었다.

아리마와 바라크는 레가브와 블라디아스로부터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사제와 레가브 주위에는 검은 늪 같은 것이 가득 퍼져있었다.


그것을 밟은 레가브는 늪 아래로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사제의 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형제를 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 상태에서 레가브와 검은 사제는 다시 맞부딪혔다.


사제의 검과 레가브의 창은 금속음을 내며 서로를 밀어냈다.


“상처가 꽤 얕군, 인간. 아예 잘라버리려 했는데 말이지.”

검은 대례복의 후드로 얼굴을 가린 사제는 레가브를 도발했다.


레가브는 한쪽 팔을 잃은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입은 상처쯤이야 칼라이스에게 입은 상처에 비하면 정상이나 다름없었다.


“기습할 만큼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건가, 거인의 본체.”


먼저 도발한 사제이지만 역으로 레가브의 도발에 걸려들었다.

“하찮은 인간 놈이!”

사제 블라디아스는 분노를 실은 검으로 레가브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레가브는 팔 하나의 힘만으로도 밀리지도 않았다.


“목소리에 위화감이 느껴지는군. 거인의 목소리일 때가 더 강해 보였는데 말이지.”

레가브의 도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네놈은 싸움을 혀로 하나?”

“아니, 몸으로 하는 거지!”


레가브는 말함과 동시에, 창으로 검을 쳐내고 사제를 발로 차버렸다.


그러나 상황은 레가브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제를 땅에 나뒹굴게 만들 목적으로 찬 것이었지만, 레가브의 발은 블라디아스의 몸을 통과하다가 그 몸속에 붙잡혀버렸다.


“인간조차 아닐 줄은 몰랐는데.”

마치 사슬에 묶인 것처럼 레가브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레가브는 사제에게서 벗어나고자 고리의 힘을 두른 창으로 사제의 몸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사제는 창을 손으로 잡으며 막아냈다.


"안 되지, 안 돼."

블라디아스의 힘으로, 카데닌일지 모르는 소년에게서 제물을 빼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네놈의 다리라도 가져가겠다!”

대신 블라디아스는 레가브의 다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의 주인은 레가브가 아니었다.

사제의 검이 레가브의 다리를 앗아가는 일 따위도 결코 벌어지지 않았다


“수고했어요, 레가브.”


어디선가 날아온 단창이 검을 휘두르는 사제의 팔과 상반신 일부를 날려버린 것이다.


사제는 워낙 순식간에 날아온 창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창은 순간적으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밝게 빛나 사제의 두 눈을 가리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팔이 사라진 것을, 사제는 눈을 뜨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레가브는 사제의 몸 속에서 다리를 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검은 늪에서 빠져나왔다.


“시험은 종료입니다. 이제 쉬세요.”

글렌은 매와 같이 눈을 치켜뜨며 블라디아스를 노려봤다.



* * * *



“죄송합니다. 국경까지 넘어가 놈들에게 구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칠흑에서 블라디아스는 성녀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엎드렸다.


지난밤 입은 상처가 전신에 육체에서 영혼을 뜯어낸 듯한 고통을 퍼뜨렸다.

망자들의 팔을 잃은 팔 대신 이어붙였지만, 완전히 자리 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블라디아스가 카데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미리 바닥에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데닌이 사제를 살려두고 심문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목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것 만으로도 전신의 떨림을 경험했다.


전신의 고통을 참아내며 블라디아스는 실책에 대한 용서를 바랐다.


“되었다, 네 변명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래, 카데닌을 직접 본 소감은 어떠하느냐?”

흰 대례복에 입은 여사제가 블라디아스에게 물었다.


그녀는 다리를 꼰 채, 고풍스러운 하얀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선으로 통과한 빛이 그녀가 있는 어둠 속을 다채롭게 내비치고 있었다.


“성녀님께 전해 들은 것 이상의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녀님께서도 부디···.”

“네가 말해도 되는 것,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은 주제넘다고 생각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알고 있느니라,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 되지.”


후드를 써 얼굴을 가린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여유가 넘쳤다.


“그 황홀하고 아름다운 빛에, 별빛조차 녹아내리던 것이 아직도 선히 보이는 듯하구나.”

성녀는 그날 초원의 빛을 보고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다. 다만 예정된 만남이 벌써부터 기대되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대상은 인간이 아니었지만, 마치 그 모습이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블라디아스는 공포스러운 빛을 탐닉하는 성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성녀의 취향은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블라디아스에게 신들에게조차 죽음을 선사하는 빛은 공포의 대상이지, 결코 동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끝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죽음과 맞닿은 빛을 좋아할 수 없었다.


“성녀님의 눈에는 그 카데닌의 빛이 그리도 아름다워 보이십니까?”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홀로 유유히 남아 있는 빛이 아름답지 않더냐?”

성녀는 자신의 심미안(審美眼)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대신하지 못할 유일한 힘.


그 힘을 처음 두 눈으로 목격하였을 때, 성녀는 죽음을 목전에 둔 것만큼 숨이 턱 막혔다.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빛에 신들조차 두려워 떨고 말았으니, 그 빛에 공포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녀에게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이 생겼다.

‘저 힘을 갖고 싶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여전히 눈앞에서 빛이 아른거렸다.

가질 수 없는 힘을 향해 손을 뻗으면 영혼의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성녀의 환상을 블라디아스가 깨버렸다.


“태양 가까이 날아간다면 어느샌가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태양 빛과 거리를 두는 것이 낫습니다.”

블라디아스는 성녀에게 그 빛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다고 아뢰었다,


“입바른 말만 하는구나. 나를 위하여 단 한 번의 허언을 하는 것이 그리도 어렵더냐?”

성녀는 사제의 충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건 충언이 아니라 참견이었다.


“송구하옵니다.”

“그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나도 알고 있느니라.”


그렇기에 성녀는 이 무대의 마지막을 구상하는 것을 마쳤다. 이미 카데닌을 맞을 준비를 끝낸 뒤였다.


“이 축제가 벌써 막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쉽구나.”

“예정이 조금 앞당겨지기는 하였습니다만, 아쉬워할 것이 있으셨습니까?”


블라디아스의 말에 성녀는 요염한 손짓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참으로 정이 없구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이 가엽지도 않은 것이냐?”


인간들을 불태워 제물 삼는 성녀가 내뱉을 만한 말은 아니었다. 성녀가 한 말이 그녀와 굉장히 어울리지 않게 들렸다.


“···”

“농이니라, 이만한 터를 일구고 오래 머물렀기에 부서지는 것이 아쉬운 것이지.”


실제로 퓌오른 왕국에 제법 정을 많이 붙였었다.


성녀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못 컸다. 그렇기에 퓌오른에 많은 제물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가이시아와 맞서 싸웠기 때문에, 대군을 잃은 만큼 다시 채우고 ‘조금’ 더 보충할 만한 제물만 바랐다.


“나의 군대가 퓌오른에 머문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제 7년이 다 되어갑니다.”

“벌써 그렇게나, 흠···.”

성녀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아카론 왕을 한 번은 더 만나야 할 것 같구나. 녀석이 벌벌 떠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좋은 연극이니라.”

농락 당한 왕의 얼굴을 상상하자 굳었던 성녀의 표정이 풀리며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주제도 모르고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지.”


성녀는 자기 앞 탁상의 와인잔을 들어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만한 노리개를 다시 구하기 어렵거늘···.”

성녀의 말은 가시 돋친 것처럼 왕을 향한 적의가 담겨있었다.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퓌오른은 힘을 사용하지 못하나 바나타는 다르니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문제는 카데닌 뿐만이 아니다. 네가 상대한 바나타의 후계자 말고도 그와 같은 인간도 바나타에는 꽤 있느니라. 특히 카히야, 그놈은 더 조심해야 하고말고.”


“카히야도 결국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 따위 쉽게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제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인간에게 질 리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하하핫, 아직 어리구나. 호승심이 많은 줄로만 알았더니 교만하기 짝이 없어.”

“···”

“바나타의 후계자를 기습해놓고도 승부를 보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런 네가 그보다 강한 카히야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성녀는 블라디아스의 역린을 건드렸다.


“혹시 카히야가 칼리토를 막은 것 때문에 그러신다면···.”


칼리토는 가이시아의 주신(主神) 라제딘의 아들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막강한 힘의 일부를 이어받은 그는 가이시아-퓌오른 전쟁에서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의 승전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쟁 끝 무렵에, 고작 인간인 카히야를 죽이지 못해 시간을 뺏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 예상대로 해당 전선의 최대 전력이었던 칼리토가 활약하지 못하였기에 다른 곳의 전황이 불리해졌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망자의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성녀에게 패해 달아나기까지 한 패장이 되었다.


“칼리토가 인간 하나도 죽이지 못하였으니 결국, 그의 허명이 드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블라디아는 카히야는 물론이고 칼리토까지 평가절하하였다.


‘겨우 인간 하나를 제압하지 못한 것은, 칼리토가 과대평가 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블라디아스는 자신이 칼리토보다 강하다고 믿었다.


“반대로 카히야가 대단한 걸 수도 있지 않겠느냐?”

“성녀님께서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제는 카히야도 칼리토를 상대로 이긴 것이 아니었으니 강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의 말투에는 카히야를 향한 질투가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 느끼느냐?”

성녀는 사제가 자신에게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확실히 말하여 줄 터이니 듣거라.”

성녀의 말투는 차가우며 단호하여,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결과 같았다.


“너는 카히야를 이길 수 없느니라.”


성녀의 말은 블라디아스에게 절망적으로 들렸다. 마치 처형대에 올라선 것 기분이었다.


“제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제는 성녀를 향해 언성을 높이며 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의 말은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반항심에 가까웠다. 주먹을 움켜쥔 그 모습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무시 받고 있다는 느낌을 블라디아스는 지울 수 없었다.


“네가, 감히 나에게 역정을 내는 것이냐?”

성녀의 목소리에서는 감정의 요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제에게는 평범한 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 차분한 말투만으로도 떨칠 수 없는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블라디아스는 자신에게 내려질 벌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떨었다. 이미 온몸을 옥죄어 오는 주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지레 겁을 먹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관대한 처분을···.”

땅에 머리를 조아린 사제는 그녀의 차디찬 시선을 감당하지 못했다.


“후, 겁먹지 말거라.”

사제의 방자한 태도를 성녀는 쉽게 용서해줄 모양이었다.


“마지막 축제에서만큼은, 너나 나도 여유를 찾고 이 극의 무대에 올라 즐겨도 되지 않겠느냐? 그저 맡은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알아들은 줄 알고 있겠다. 이만 나가 보아라.”

“관대하신 성녀님의 자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제는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 뒷걸음질하며 신전의 방에서 사라졌다.


“무대에서 퇴장할 때를 모르는 배우처럼 추한 것도 없지. 이래서 감정이 없는 인형이 다루기 더 수월한 것이고···.”


사제의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받아준 성녀는 자신의 포도주가 든 유리잔을 들어 응시했다.


그 때, 어둠 한구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릴 비운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구나, 에펠린.”


“성녀님 오셨습니까.”

방금까지 성녀의 자리에 앉아 있던 여사제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성녀라 부르며,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에펠린은 성녀의 말투를 흉내 내는 것도 멈췄다.


그제야 진짜 성녀는 여사제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다.


“나를 대신하여 신전 업무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에펠린에게는 성녀를 흉내 낸 일도 나름 재미있었다.


“사람들도 없느니라. 거리를 두는 말투는 그만두거라, 너와 나 사이에···.”

“그래도 성녀님께 어찌 감히···.”


성녀는 굳어버린 말투를 바꾸지 않겠다는 에펠린을 토라지듯 노려봤다.


“···알겠어요. 대신 성녀님도 상냥하게 말해주세요.”

“어렵지 않은 일이지.”


두 사제는 딱딱한 말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말투마저 부드러워지자 둘의 목소리는 좀처럼 분간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아마 성녀 홀로 일인극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에펠린의 목소리는 성녀와 일치했다.


에펠린은 며칠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보고했다.


“성녀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국경에서 초원의 일족과 군대 사이에 작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수인대와 충돌이 있었던 거야?”

“네, 블라디아스가 수인대와 교전했다고 말했습니다.”

에펠린은 들은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굳이 수인대와 싸울 필요는 없어,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아.”

“하지만 제물을 회수하지 않는다면, 성녀님의 권위가···.”

제물이 도망친 것은 성녀가 자리에 없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에펠린은 자신이 성녀의 권위를 추락시킨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괜찮아, 그깟 제물 따위. 어차피 아카론의 억지 때문에 계속한 일이었으니까.”

에펠린과 달리 성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애초에 권위따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수인대라···. 어쩌면 그가 초원에서 오겠군.”

“카데닌··· 말인가요?”

“그래, 하늘 위에 나타났던 카데닌의 흔적과 그 빛, 그리고 소식이 없는 칼라이스. 이 세 가지라면 카데닌이 초원에 나타났다는 것은 확실하지.”


퓌오른을 잠시 떠나있었던 성녀도 그 빛을 보았다.

성녀는 아직 에펠린이 카데닌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처럼 말하였다.


하지만 카데닌이 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성녀는 두려워하거나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다 못해 여유로워 보일 정도였다.


“성녀님께서는 카데닌을 이길 수 있으십니까?”

그 질문을 하는 자체가 에펠린의 불안함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에펠린은 성녀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성녀님이라면···.’

그녀가 카데닌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글쎄, 내가 200여 년 전 보았던 카데닌들은 이제 곧 마주할 카데닌처럼 거대한 힘을 갖지는 못했어. 내게도 며칠 전 빛의 위력은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어.”


뭔가 부자연스러웠던 카데닌들의 전투방식이 고리가 부서졌기 때문임을 성녀가 알 수는 없었다. 단지 이백 년 만에 나타난 카데닌이 특별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힘이 왠지···.’


“누가 성녀님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에펠린은 성녀에게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없진 않더라고. 아마 적어도···.”

성녀는 에펠린의 표정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에펠린은 어째선지 인상을 찌푸리며 울상짓고 있었다.


“뭐, 그와 싸운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진 마. 그를 만나 동맹을 제안할 생각이야. 무엇보다 그와 난 목표가 같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에펠린은 겨우 표정을 풀었다.


말을 마친 성녀는 어딘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에서 거대한 여우와 적발의 여인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시체 위에 우뚝 선 그들을 보며 성녀는 하염없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


“에펠린.”

“네, 성녀님.”

“이 그림, 내 방에 걸어 두어라.”

성녀는 하나씩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신전에 찾아온 카데닌이 이 그림을 알아보는 일은 없어야 했다.


“네! 왕궁 지하로 가져가겠습니다.”

에펠린은 곧바로 그림을 떼어내 방을 떠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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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35 뾰족이언니
    작성일
    22.07.19 10:07
    No. 1

    옛 적부터 그림은 무언가를 알리려 하기 위해, 또는 기록하기 위헤 그림속에 담아 둔다고 하였었죠. 저 그림이 무얼 뜻하는지 대략 짐작해 봅니다. 오늘도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건필하십시오. ㅊ.ㅊ)>꾸욱.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그우주
    작성일
    22.07.19 10:15
    No. 2

    추리력이 좋으신 것 같아 금방 찾아낼 것 같아요ㅎㅎ
    좀 더 숨겼어야 했나... 찾아주시면 그것대로 기쁘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6 쿤터
    작성일
    22.07.19 14:36
    No. 3

    흥미로운 스토리에 스토리가 잘 어우ㄹ러잔 회차였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그우주
    작성일
    22.07.19 15:52
    No. 4

    감사합니다!ㅎㅎ
    요즘 날씨도 더운데 코로나가 다시 번지고 있다더군요..
    더위 조심 코로나 조심하시면서 여름 잘 보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우주귀선
    작성일
    22.07.19 16:14
    No. 5

    재미있게 읽고 가요. ^^ 건강 잘 챙기세요~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그우주
    작성일
    22.07.19 16:41
    No. 6

    감사합니다! 기겁할 만큼 무더운 여름이지만!
    성공적으로 피서하시면서 즐기시구 건강히 보내세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도저
    작성일
    22.07.19 19:00
    No. 7

    새로운 인물들도 화이팅~ ^^ 꾹!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4 남해검객
    작성일
    22.07.19 21:25
    No. 8

    잘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6 룰루랄라7
    작성일
    22.07.20 10:19
    No. 9

    성녀는 생각보다 냉철하고 현실적인 듯 하네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작가님^^ 공모전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그우주
    작성일
    22.07.20 10:52
    No. 10

    감사합니다! 공모전 기간 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여러 보드게임을 간접 체험할 수 있어서 앞으로도 저는 작가님의 팬으로서 꾸준히 읽을 것 같아요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한시야
    작성일
    22.07.21 20:04
    No. 11

    정주행 마무리 했습니다.
    역시 몰아서 보는 것이 더 재밌네요 ㅎㅎ
    스토리가 갈수록 흥미진진해져서 기대가 됩니다.
    ㅊㅊ~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시우파
    작성일
    22.07.31 22:26
    No. 12

    성녀는 무서운 사람이군요? 재미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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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덴의 고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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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7/19 존재하지 않는 추억을 위해 (3) 오탈자 수정 22.07.19 10 0 -
공지 7/7 이번주는 아마 휴재가 될 것 같습니다ㅠ +2 22.07.07 13 0 -
공지 재연재 및 연재 주기 공지) 알림 6/21 수정 +9 22.06.19 59 0 -
21 짐승의 굴 - 에딘 (2) +4 22.08.09 10 4 13쪽
20 짐승의 굴 - 에딘 (1) +4 22.07.28 14 4 14쪽
19 짐승의 굴 - 입성 +7 22.07.23 21 4 13쪽
18 짐승의 굴 - 계획 +6 22.07.22 12 3 13쪽
» 짐승의 굴 - 퓌오른의 성녀 (2) +12 22.07.19 49 8 18쪽
16 짐승의 굴 - 존재하지 않는 추억을 위해 (5) +9 22.07.16 30 6 11쪽
15 짐승의 굴 - 존재하지 않는 추억을 위해 (4) +20 22.07.04 44 8 16쪽
14 짐승의 굴 - 존재하지 않는 추억을 위해 (3) +8 22.07.03 46 5 10쪽
13 짐승의 굴 - 존재하지 않는 추억을 위해 (2) +5 22.07.03 37 4 9쪽
12 짐승의 굴 - 존재하지 않는 추억을 위해 (1) +10 22.07.03 47 5 14쪽
11 짐승의 굴 - 퓌오른의 성녀 (1) +8 22.07.03 56 5 11쪽
10 일족 +12 22.07.02 45 8 12쪽
9 며칠 전, 그 날 +7 22.07.02 50 5 12쪽
8 기억이 겹치는 밤 - 카덴의 마지막 칼날 (4) +15 22.07.01 64 10 18쪽
7 기억이 겹치는 밤 - 카덴의 마지막 칼날 (3) +12 22.06.30 64 8 16쪽
6 기억이 겹치는 밤 - 카덴의 마지막 칼날 (2) +11 22.06.29 58 8 16쪽
5 기억이 겹치는 밤 - 카덴의 마지막 칼날 (1) +9 22.06.28 56 8 13쪽
4 기억이 겹치는 밤 - 초원의 일족 (3) +11 22.06.21 58 7 11쪽
3 기억이 겹치는 밤 - 초원의 일족 (2) +8 22.06.21 68 8 13쪽
2 기억이 겹치는 밤 - 초원의 일족 (1) +10 22.06.21 92 8 15쪽
1 프롤로그 - 큰 뱀, 니샤르드 +17 22.06.21 112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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