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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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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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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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_아유라_발견

DUMMY

기린각에 보이지 않는 힘이 꿈틀거렸다. 암흑성단의 힘을 흡수하려고 열어놓은 구멍에서 아유라의 기운도 출렁였다.


힘의 흐름은 찾아냈지만, 근원을 찾을 수 없었다. 힘을 빨아들이려하면 흐름이 막히거나 끊어졌다.

그녀는 쉬지 않고 암흑성단의 근원을 찾아 영력을 집중했다.


‘자물쇠가 걸려있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구멍을 닫고 일어났다. 미사랑이 막았다면 열쇠는 암흑성단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인간세에 태어난 그 두 아이가 열쇠인가? 빨리 제거해야 해.’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며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살아있는 뱀처럼 허공을 찌르며 꿈틀거렸다.


“율명이 망설이지만 않았어도!”

그녀의 고함이 기린각에 울려 퍼졌다.


완전히 없애지 않고, 조각내다니. 어리석은 진백성.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다니, 여전히 어린아이구나.

“네가 진짜 신이라면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아유라는 창밖의 대명천과 그 너머의 미리내를 바라보았다. 갓 태어난 별들이 흘러가며 붉은 강을 이루었다.


암흑성이 사라진 이후, 별이 태어나는 숫자도 줄어들었다. 노랗고 붉은 별로 가득 찼던 미리내는 띄엄띄엄 붉은 점이 박힌 강으로 바뀌었다.


‘천선계 역시 인간세처럼 하나의 세계야. 천인과 선인이 산다는 것이 다를 뿐, 사람들은 신도 아닌 삼신성을 믿는 건가···.’


아유라는 염라성역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영천옥을 내려다보았다.

매달린 영혼이 모두 씻김을 끝내면 개심수가 하얗게 바뀐다지만, 지금은 하얀 나뭇가지를 찾기 어려웠다. 그것도 암흑성 때문인가.


‘요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니 신을 만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지. 요귀가 벌써 그들의 신인지도···.’

아유라는 인간세에서 보았던 백사귀파를 떠올렸다.


문득 암귀모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사방팔방 치솟은 머리카락을 차분히 내리고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반파홍귀가 실패했으니 암귀모는 어떤지 확인해 볼까.


‘쓸모없는 것들. 갈피에서 꺼내줬더니 제대로 하는 일이 없잖아. 내 자비를 헛되이 써버리다니.’

암귀모는 인간세 곳곳에 거미줄처럼 반귀를 부려놓았다고 했다. 그가 쳐놓은 그물을 직접 둘러보고 싶었다.


*


귀사전에는 반파홍귀도, 암귀모도 없었다. 갓 태어난 반귀만이 오글거렸다.


이쪽 차원에서 처음 모습을 가진 곳이 천계였기에 그녀도 천인과 비슷했다. 어둡고 탁한 귀사전에 오래 있으면 숨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대체 여기 천인들은 정체가 뭐야? 이따위 몸으로 천인이라니.’

서둘러 우발수를 건너 인간세로 나아갔다.


아유라는 암귀모의 흔적을 따라 보라사막까지 이르렀다. 보랏빛 자갈 위에서 그녀는 암귀모가 지나간 자취를 따라 날개를 팔랑거렸다.


‘여기도 벌써 끝났군. 요귀의 흔적마저 없다니. 암귀모가 귀사전에 없다는 건 어딘가에서 반귀를 조종한다는 말인데···.’


멀리 바위산 돌안이 보였다. 돌안 여관으로 여행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손님을 맞으며 사다녜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너나족 여자도 함께 있었고, 여행자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일부러 돌안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다고 떠들어댔다.


아유라는 돌안 여관의 사다녜들을 바라보다가 낯익은 기운을 찾아냈다. 사다녜들이 그 기운을 품는 것은 은혜를 입었다는 증거였다.


그 기운이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보라사막을 훑었다.

사막 입구에서 무너진 사원으로 이어지는 길에 반갑고 낯익은 기운이 고스란히 남았다.


‘여기를 달려간 존재는 빛을 가졌고, 바람같이 빨랐으며 인간세에 속한 존재가 아니야. 이건···.’


아유라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휘모랑?’


손이 떨리고, 날개가 울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건 진짜···, 진짜 휘모랑이야.’


아유라는 휘모랑의 흔적을 찾아 보라사막에서 한튀사막까지 날아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막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깨끗이 지워졌다.


‘그래. 휘모랑이 숨기로 작정하면 아무도 찾을 수 없지.’

하늘 높이 올라 대륙과 바다를 살펴보았지만, 천인의 눈으로는 인간세를 속속들이 볼 수 없었다.


다시 보라사막으로 내려왔다. 그곳에 남아있는 희미한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 기운만으로도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다.

지금은 찾을 수 없어도 그가 여기, 인간세에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여기 있었던 거야? 언제부터···. 괜찮아, 휘모랑. 살아있기만 하면 내가 당신을 찾아낼게.”

아유라는 날개를 접고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차원의 틈에 갇혔을 때의 모습 그대로 휘모랑의 기운을 감싸고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를 그리워하던 시간만큼 그칠 줄 몰랐다. 모든 눈물이 다 빠져나갔을 때야 비로소 눈물이 말랐다.


‘여기 있다면, 그를 찾는 게 먼저야. 다시는 잃을 수 없어.’

계획을 바꿔야 했다.

지금 이대로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인간세에서 사람만 지우면 된다.


‘그렇게 하면 예언대로 새로운 차원이 가능해. 파괴자만 없다면 이쪽 차원도 영원히 닫히지 않을 거야.’

암흑성의 힘이 절실했다. 염라성으로서의 그녀는 천력이 거의 없었다.


*


인간세에 내려간 진유의 전언이 은잠루에 도착했다.

‘저를 도와줄 반인반천을 찾았습니다.’


천인이 인간세에 관여하면 노각부줄을 지날 수 없으니 직접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 없었다.

‘사로잔을 처리하면 바로 아랑누를 찾겠습니다. 곧 끝날 겁니다. 저에게는 율명님을 지키는 사명이 먼저니까요.’


아유라는 허공에서 흔들리는 그의 소리를 손으로 흩트렸다. 소리의 잔영이 고요 속으로 파묻히는 동안 거무튀튀한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천계의 무기가 인간세에서 주인을 찾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니.’

은잠루의 지붕 위로 올라가 멀리 암흑성단을 바라보았다.


무슨 비밀이 있을 것이다.

삼신성은 알고 있으나 자신은 모르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사라진 성물이 인간세에 퍼지는 데도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미사랑이 떨어지면서 따라간 성물이 뭐였지?’

아유라는 은잠루의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섰다.


문과 창문만 달린 빈방이었다. 한쪽 벽은 매끈하게 다듬어졌고, 무늬도, 장식도 없었다. 그 벽은 얼음 거울 알영처럼 신비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벽 앞에 서서 손짓했다.

‘대분성 전투에서 떨어진 성물이 뭐지?’

벽이 울렁거리며 과거의 기억을 찾아왔다. 느릿느릿 꾸물대는 회오리가 벽을 가득 메웠다.


대분성 전투에서 그녀는 미사랑을 보지 못했다.

율명과 미사랑, 두 천신만 미타지산에 있었다. 성물이 인간세로 내려간 것도 나중에 들었다.


그녀는 한울을 맡았다. 진유가 암흑성단 천인들을 상대하려면 가장 강력한 무사는 자신이 처리해야 했다.

‘그때 분명 죽었는데···. 버젓이 살아났단 말이야. 오랫동안 사경을 헤맸다고는 해도···.’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벽에는 대분성 전투의 모습이 나타났다.

미사랑의 마지막은 보고 또 보았다. 이번에는 따라간 성물이 어떤 것인지 눈여겨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미사랑이 쓰던 무기들, 암흑성단에 널브러져 있던 돌, 죽은 천인들이 쓰던 무기였다.


그것이 인간세든 어디서든 주인을 찾는다는 건 싸움을 준비한다는 뜻이었다.

‘흥! 미사, 인간세에서 나와 대적하겠다는 건가? 사람의 몸을 입고?’


아랑누와 사로잔도 보고 싶었으나 안개에 싸인 인간세 안쪽은 보이지 못했다.

‘암흑성단의 힘을 지키는 근원을 찾아야 해. 미사가 믿고 맡긴 존재가 있을 거야.’


그것은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암흑성의 측근이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는 단 하나였다.

암흑성단이 무너지지 않고 건재한 이유는 바로 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염라성역에 해밀을 위한 방을 마련해야겠어. 아주 특별하고, 아주 재미있는 방이 될 거야.’

아유라는 날개를 활짝 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은잠루의 밝은 회랑을 따라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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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인간세의 전사들 1 22.08.06 54 0 12쪽
207 공간을 열다 22.08.06 59 0 13쪽
206 아유라의 독백 22.08.06 46 0 7쪽
205 아랑누_해갈 22.08.06 43 0 13쪽
204 아랑누_삼신성의 재회 22.08.05 52 0 10쪽
203 아랑누_천계의 방문자 22.08.05 44 0 10쪽
202 아랑누_시조새 22.08.05 45 0 12쪽
201 아랑누_유리산 22.08.05 43 0 12쪽
200 아랑누_유체이탈 22.08.04 71 0 11쪽
199 아랑누_소진된 영력 22.08.04 49 0 13쪽
198 아랑누_마난 비익정 22.08.04 45 0 10쪽
197 아랑누_일행이 되다 22.08.04 53 0 12쪽
196 아랑누_참나로 의식 22.08.03 49 0 13쪽
195 아랑누_갈림길 22.08.03 56 0 12쪽
194 아랑누_비밀의 책 22.08.03 57 0 10쪽
193 아랑누_루월상단 운여 22.08.03 44 0 11쪽
192 사로잔_작은 소망 22.08.02 47 0 12쪽
191 사로잔_용신의 출현 22.08.02 44 0 10쪽
190 사로잔_또 하나의 계획 22.08.02 47 0 13쪽
189 사로잔_핏빛 도리울 22.08.02 41 0 10쪽
188 사로잔_두 번째 봉인 22.08.01 43 0 13쪽
187 사로잔_위혼제 22.08.01 72 0 12쪽
186 사로잔_한밤의 회담 22.08.01 43 0 10쪽
185 사로잔_새로운 다짐 22.08.01 5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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