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리 (3)

레나리의 뒤에서부터 날라온 원통형의 둔기가 메플러를 가격했다.
갑자기 나타난 3명의 수호단원이 메플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둔기를 맞고 잠시 멈칫한 메플러에게 돌진하였고, 레나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뛰기 시작했다.
“꼬마야!”
뒤에서 수호단원 중 한 명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레나리는 그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목적지 없이 앞으로 달렸다.
자신이 죽음이 아닌 생존을 바라고 있음을 깨달은 레나리는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행동했다.
나누의 마을 중 푸앙고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제6마을 ‘나누카치’에 도착한 레나리는 살기 위한 행동을 하였다.
배고픔은 버려진 음식으로 해결하였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잠에 들지 않았다.
진짜 온정인지 다른 속셈이 있는지 모르는 어른들의 손은 뿌리쳤다.
레나리는 그렇게 방황하며 살아갔다.
레나리의 행복을 부순 파스토나 숲의 반란은 레나리가 11살이 되던 해에 멈추었지만, 그 사건이 멈추었다고 해서 레나리의 행복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부랑자로 살아가던 레나리는 점점 지쳐갔다.
레나리는 점점 성장했고, 성장할수록 점점 다양한 가치관들을 가지게 되었다.
레나리의 머릿속에는 시설에서 지냈던 행복했던 기억들이 되돌아왔고, 그 기억들은 부랑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매우 초라하다는 것을 각인시켜주기 시작했다.
레나리는 수도 푸앙고로 향하였다.
레나리는 수도라는 곳은 특별한 곳인 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곳인줄 알았고, 가기만 하면 자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레나리는 13살이 되었을 때 수도 푸앙고를 감싸고 있는 강 ‘수호의 가지’를 건너 푸앙고까지 들어갔다.
수도로 가면 자신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환경이 반겨줄 것을 기대한 레나리는 수도에 도착한 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부랑자로 살아가던 레나리에게 수도는 반가운 곳이 아니었다.
푸앙고는 버려지는 음식이 적었으며, 부랑자가 잘 수 있는 장소는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지금 있는 지역만 그런 것으로 생각하여 중심부로 계속 이동하였지만, 부랑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을 뿐이었다.
레나리의 삶은 14살이 되었을 때까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푸앙고에는 전에 살던 시설 같은 곳도 없었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레나리를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나름의 기대를 하고 들어왔던 푸앙고에는 레나리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만족하게 해줄 것이 없었다.
기대는 무너지면 그 양만큼 자신에게 타격을 준다.
레나리는 점점 기대를 잃어갔다.
더이상의 행복한 기억은 없을 줄 알았다.
자신과 세상에 큰 실망을 하며 살아가던 레나리의 앞에 한 여성이 찾아왔다.
“안녕? 여기서 뭐하니?”
여성은 대뜸 레나리에게 말을 걸었다.
레나리는 지금까지 다가온 어른들을 피했다.
처음에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어른은 질이 좋지않았다.
레나리는 특유의 생존능력으로 험한 꼴은 피했지만, 그 일은 어른이라는 존재에게 불신을 심어주게 되었다.
레나리는 여성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여성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았다.
“나는 비테리 프를루네야. 넌 이름이 뭐니?”
여성은 자신을 소개하였다.
“힘들지?”
프를루네의 한마디에 레나리의 고개가 들렸다.
프를루네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나리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레나리에게 프를루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다가왔던 다른 어른들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파스토나 숲의 반란이 레나리의 행복을 파괴한 그 날, 레나리는 가지고 있는 모든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했었다.
레나리는 그 날 이후에는 어떤 일이 생겨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프를루네의 한마디에 사라졌다.
레나리는 눈에 고인 눈물을 시작으로 한참을 소리를 내며 울었다.
프를루네는 레나리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레나리가 울음을 그치자
“가자”
프를루네가 말했다.
프를루네는 말을 한 후 레나리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레나리는 당황하였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프를루네의 손이 너무 따뜻했기에,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근처의 숙박업소에 도착한 프를루네는 방 하나를 빌렸다.
프를루네와 레나리는 방 안으로 들어갔고, 방 안에 들어간 프를루네가 레나리에게 말하였다.
“좀 씻어야겠다. 너무 더럽잖니”
지금의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레나리는 그저 멀뚱멀뚱 프를루네를 바라보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프를루네는 그런 레나리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뭔가를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레나리에게 말하였다.
“아직 혼자서 못 씻는구나? 내가 씻겨줄게”
레나리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않았지만, 프를루네가 방금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혼··· 혼자서 씻을 수 있어요.”
레나리는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한 후 욕실에 들어갔다.
“부끄러워하기는···”
닫힌 욕실 문의 건너편에서 프를루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욕실에 들어간 레나리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를루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던 레나리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물로 씻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을 한창 느끼고 있었을 때 욕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간다?”
프를루네의 목소리였다.
레나리는 별 거부감이 없었기에 ‘네’ 라는 짧은 대답을 하였다.
욕실 문이 열리고 프를루네가 말했다.
“그 더러운 거 말고 새 옷 사왔으니까 이걸로 갈아입어”
프를루네는 선반 위에 옷을 올려둔 후 레나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문을 닫았다.
“감사합니다.”
레나리는 욕실 문 너머에 있는 프를루네에게 작은 소리로 감사를 전한 후 다시 씻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씻지 못했던 탓인지 레나리가 욕실에서 나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레나리는 프를루네가 사온 새 옷을 입고 욕실을 나왔다.
“역시 예쁜 얼굴이네.”
새 옷을 입은 레나리를 보며 프를루네는 미소를 지었다.
프를루네는 레나리에게 다가가 레나리의 옷차림을 다시 단장해주었다.
“머리도 정리하자.”
프를루네는 레나리의 손을 잡고 다시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프를루네와 레나리는 숙박업소 근처에 있던 미용실에 들어갔다.
미용실에 들어간 프를루네는 단장을 받는 사람이 앉는 의자에 레나리를 앉힌 후 미용사에게 이것저것 주문하기 시작했다.
미용사는 프를루네의 주문을 받았고, 프를루네의 주문대로 레나리를 단장하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어깨 길이로 잘랐고, 지저분하게 뭉쳐있던 머리를 깔끔하게 풀었다.
단장을 끝낸 레나리를 본 프를루네는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고프지?”
프를루네는 레나리의 손을 잡고 다시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한 음식점에 들어간 둘은 자리에 앉았고, 프를루네는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프를루네와 레나리 각자에게 한 접시씩 올려졌다.
레나리는 식탁 위에 올려진 음식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프를루네는 그런 레나리를 보았고, 레나리를 귀여워했다.
“페스페치오레라는 음식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거든, 먹어봐.”
‘페스페치오레···’
레나리는 음식의 이름을 조용히 중얼거린 후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이 입에 들어간 레나리의 눈에는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한참 식사를 하던 중 레나리가 프를루네에게 질문하였다.
“저에게 왜 잘해주시는 건가요?”
레나리는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와서 선행을 베푸는 프를루네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았다.
레나리는 자신의 의지로 프를루네에게 끌려다니면서도 프를루네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
레나리는 프를루네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프를루네는 레나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먹는 데에 집중했다.
대답을 기다리던 레나리는 프를루네가 먹는 모습만 계속 보이자 포기한 후 자신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한테 애가 둘 있는데···”
열심히 음식을 먹던 프를루네는 접시를 다 비웠고,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프를루네의 갑작스러운 말에 레나리는 페스페치오레의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물며 프를루네를 바라봤다.
“나랑 남편이 둘 다 바빠서 애들 돌보기가 힘들거든. 우리 집에 들어와서 나 좀 도와줄래?”
갑자기 건넨 프를루네의 제안은 레나리에게 큰 의미로 찾아왔다.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쓸모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프를루네와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그동안의 긴 절망 속에서 비관만 하던 레나리에게 다시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차가운 시선으로 레나리를 바라보았지만, 프를루네는 레나리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었다.
빌어먹을 도시라고 생각했던 도시의 곳곳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네”
프를루네의 제안에 레나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바로 긍정의 대답을 말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페스페치오레 식겠다.”
레나리의 대답을 들은 프를루네는 레나리의 먹는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레나리가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을 비우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각자의 접시를 다 비운 프를루네와 레나리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음식점을 나왔다.
둘은 음식점을 나와서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건가요?”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는 레나리는 프를루네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집은 ‘칸도르가토’에 있거든, 여기서 좀 멀어서 ‘이동석’을 이용할 거야.”
“... 네?”
레나리는 프를루네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레나리는 칸도르가토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이동석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칸도르가토는 도시 ‘칸도르’에 있는 여기서 좀 멀리있는 마을이야.”
프를루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칸도르라는 도시가 어디인지도 모르던 레나리에게 그런 대답은 레나리의 궁금증에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레나리는 여전히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프를루네를 바라보았다.
“음··· 그냥 멀어, 여기서 걸어서 간다면 40년 정도 걸릴걸?”
40년이라는 단어를 들은 레나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놀랍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동안 걸어 다녔던 레나리에게 걸어서 40년이라는 것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설명하기에 매우 충분한 대답이었다.
“근데 이동석이라는 것을 이용하면 빨리 갈 수 있거든, 슝~ 하고 말이야. 근처에 이동석은 왕궁에만 있어.”
“왕궁이요?”
레나리는 왕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왕궁이라는 말은 이동석에 대한 궁금증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고아와 부랑자로만 생활했던 레나리에게 왕궁이라는 곳은 상상도 못했던 장소였다.
“응 난 ‘궁정한사’야.”
레나리는 궁정한사가 뭔지는 몰랐지만 궁정한사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이동석은 사용하기 어려운 물건이지만, 궁정한사가 될 정도면, 이동석 정도는 사용한단다.”
레나리는 프를루네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그 이후 별 대화 없이 왕궁 쪽을 향해 걸었다.
“아까 너한테 왜 잘해주느냐고 물어봤잖아?”
둘 사이에 적막함이 잠깐 흘렀지만, 그 적막함은 프를루네의 말에 의해 깨졌다.
프를루네가 그 이야기를 꺼낼지 모르고 있었던 레나리는 깜짝 놀라면서 반응하였다.
프를루네는 레나리의 귀여운 반응에 웃음이 지어졌다.
“너 고아지?”
레나리는 긍정했다.
“나도 고아거든”
레나리는 놀랐다.
“그래서 잘해줬나 봐. 사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네가 끌리더라.”
프를루네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마무리 지었다.
프를루네의 말에 레나리는 적잖이 놀랐다.
레나리가 본 프를루네의 모습은 자신과 같은 고아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레나리에게 고아는 매우 비참한 단어였다.
“저도···”
“응?”
“저도 열심히 살아가면, 프를루네씨처럼 될 수 있을까요?”
레나리에게 목표가 생겼다.
“살아가면, 될 수 있지.”
“저도 열심히 살아서 결혼도 할거에요.”
프를루네는 다짐하며 말하는 레나리를 보고 미소지었다.
“결혼하면, 저도 프를루네씨처럼 가문이 생기겠죠?”
“가문? 비테리라는 가문은 내 가문이야, 내가 능력이 좀 되거든. 내 능력을 왕궁에 인정받았고, 그 보상으로 받은 거야.”
프를루네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레나리에게 동경이 생겼다.
***
“엄마는 아빠랑 어떻게 결혼하게 된 거야?”
15살.
포슈오라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나이다.
15살까지 살아가는 동안 여자들과 적지 않은 교류를 가졌지만, 사랑을 느낀 것은 레나리가 처음이었다.
특이한 감정.
사랑이 궁금해진 포슈오라는 어머니 프를루네에게 간접적으로 물어봤다.
“사랑하니까?”
프를루네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조금 생각하더니 이내 포슈오라의 말에 대답했다.
“‘사랑하니까?’ 라니··· 확신이 없는 거 같잖아.”
“사랑하니까!”
“...”
포슈오라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네 아빠랑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거든.”
처음 들어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에 포슈오라는 귀가 쫑긋해졌다.
“7살 때인가? 8살 때인가? 그때부터 같이 놀면서 지냈어.”
“소꿉친구였네?”
“맞아.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서로를 가장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나랑 너네 아빠더라고.”
‘이해와 공감···’
포슈오라는 프를루네의 말에서 사랑에 대한 힌트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럼 엄마는 아빠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아빠는 엄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거네?”
“그건 아니야.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
프를루네의 대답은 포슈오라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생각을 직접 느껴보는 것이 아니면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
“엄마는 아빠랑 서로를 가장 이해하는 사람이라면서?”
“가장 이해하는 사람이지, 음··· 너도 어느 정도 컸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거라고 믿을게?”
포슈오라는 프를루네의 대답이 길어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프를루네의 생각, 가치관.
포슈오라는 프를루네가 본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말할 때 말이 길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응.”
“나는 이해하고 있다는 게 내가 한 예측이 맞은 거를 착각하는 거라고 생각해”
‘뭔 소리야···’
“공감했다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립한 나의 감정을 느끼는 거고.”
포슈오라의 미간은 점점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슬퍼서 울면, 같이 슬퍼지는 거 알아?”
포슈오라는 레나리가 슬퍼하는 모습을 생각해 봤다.
‘아마 나도 슬프겠지···’
“알아.”
“근데 친구의 슬픔과 너의 슬픔이 같은 슬픔일까?”
포슈오라는 표정으로 물음표를 띄웠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같은 감정이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잖아?”
“대충 알 것 같아.”
포슈오라는 거짓말을 했다.
“이해는 예측이 맞은 거고, 공감은 완전하게 같은 감정을 공유한 게 아니라면, 이해와 공감이 결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런데 이해랑 공감은 필요해.”
포슈오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프를루네는 포슈오라의 표정을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이해랑 공감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나의 감정을 일부만 느껴줘도 위로를 받거든.”
“음···”
“나를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완전히 이해해 주지 못해도, 완전히 공감해 주지 못해도, 일부분만 이해해 주고 일부분만 공감해 줘도 상대방에게 감동해버려.”
포슈오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위로를 받는 데에는 일부만 있어도 되고, 나머지 부분은 필요가 없어져.”
“그럼 살아가는데 나머지 부분은 필요가 없잖아···”
“그런데, 그 나머지 부분이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는 거야.”
‘뭔 소리야···’
“네 아빠랑 나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완전히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닌 거지.”
***
‘이해 못 하실 거란 것을 압니다.’
레나리의 말은 포슈오라를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과거에 프를루네에게 들었던 어머니의 가치관.
그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레나리의 말에 지금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낸 레나리와 포슈오라는 많은 기억과 많은 대화를 쌓았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나는 레나리에게 모든 감정을 말했었나?’
‘내가 말한 것의 의도가 레나리에게 전부 전달이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레나리와의 모든 대화중에 거짓이 없었을까?’
아니었다.
포슈오라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레나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포슈오라는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 알려주세요.”
이어졌던 침묵 속에서 갑자기 나온 포슈오라의 말에 레나리는 당황했다.
“네?”
“알려주세요. 알아가다 보면···”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으로 자신이 레나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점점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포슈오라의 진중한 말에 레나리는 미소를 지었다.
레나리가 행복을 다시 찾은 그날 이후 레나리는 프를루네를 동경하게 되었다.
레나리는 동경하는 프를루네가 걸은 길을 걷고 싶었다.
포슈오라는 레나리가 프를루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프를루네는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렸던 아이들을 돌보아줄 레나리가 생겼고, 일은 더욱 바빠졌다.
그렇기에 포슈오라는 레나리와 프를루네가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프를루네를 바라보는 레나리의 눈을 본 적이 없던 포슈오라는 레나리가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었다.
레나리가 들려주는 레나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포슈오라는 점점 레나리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본인의 꿈을 설명하는 레나리의 눈에는 걷고자 하는 길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했다.
레나리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포슈오라는 그녀를 잡을 수 있을 이유와, 그녀를 잡을 수 있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레나리에 대한 포슈오라의 마음은 꺼뜨릴 수 있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럼 돌아오면···”
포슈오라는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네?”
말을 끝내지 못하는 포슈오라에게 레나리는 물음표를 띄웠다.
포슈오라는 레나리를 잡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한 포슈오라는 방법을 바꾸었다.
“레나리씨가 가문을 받아서 돌아오면, 제가 그 가문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포슈오라의 말을 듣고 레나리는 그저 포슈오라가 귀엽다고 생각하였다.
용기 있게 고백을 한 포슈오라지만, 레나리에게는 아직도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레나리가 14살에 비테리 가문의 수행원으로 들어갔을 때에 포슈오라는 4살이었다.
그런 레나리에게 포슈오라는 언제나 어린 동생이었다.
“생각해 볼게요.”
레나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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