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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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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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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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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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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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복귀

DUMMY

#1


길지도, 짧지도 않은 휴가가 끝났고 난 다시 파란만장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휴가라기보단 다친 몸을 추스르는 재활 기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쉬면서 돈 받아먹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커피나 사서 들어갈까.”


아직 촌티 나는 입맛을 벗어나진 못했는지 난 비싼 커피보단 싸구려 편의점 커피가 입맛에 맞는다.

일과 시작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늘 가던 편의점을 찾았다.


“....”

“...”


그렇게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난 잠시 까먹고 있던 걸 떠올렸다.

이 편의점 주인은 무려 5년간 폭탄마로 이름을 날리던 (전)프로 쥐잡이였고 지금은 공업 소속의 내 부하 직원이라는 거다.


시카는 오늘도 어김없이 편의점 유니폼을 입고 카운터에 있었다.

그냥 손님과 점주 사이였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난 신입 팀장이고 저쪽은 신입 사원인 셈이다.

시카는 한동안 나랑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서로 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이대로 있다간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서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출근 안 해요?”

“....”

“....”

“..여기로 출근해요..”


오늘도 어김없이 박자감 느린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우리 직원 아닌가? 왜 아직도 편의점하고 있어요?”

“...여기가.. 집이에요.”

“편의점이 집이라고요..?”

“네.”


시카는 눈짓으로 편의점 안쪽 창고를 가리켰다.

설마 편의점 창고에서 지내는 우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이 폭탄마는 그런 농담을 할 만한 인간으론 보이질 않았다.


슬그머니 창고 쪽으로 가봤지만 시카는 딱히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조심스럽게 창고 문을 열자 썩 상상하고 싶지 않던 광경이 펼쳐졌다.


어디서 줏어왔는지 낡은 침대가 창고에 겨우 들어가 있었다. 그 앞엔 작은 책상... 아니, 작업대다.

자물쇠 걸린 서랍도 많았고 너저분하게 작업대 위에 늘어진 물건들은 모두 폭발물 제조의 흔적이었다.


“....진짜 여기서 지낸다고요? 집 따로 없고?”

“...네. 여기가 제일 편해서요..”

“저건 저렇게 냅둬도 되는 겁니까? 의심받으면 어떡하려고요?”

“폭죽 만든다고 했어요.”


시카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편의점 제일 앞 라인에 진열된 ‘수제 폭죽’ 이었다.

편의점 점장이 직접 만들어 파는 수제 폭죽이라니. 저런 걸로 속이는 건 너무 허접하지 않나. 저런 방식으로 5년간 어떻게 안 잡히고 잘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그보다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편의점에 뼈를 묻고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하다못해 이 근처에 널리고 널린 게 호텔인데, 호텔방이라도 장기로 빌리는 게 훨씬 좋을 텐데.


“돈이 없는 건 아닐 테고.. 뭐, 회사에 말해서 방이라도 얻어줘요?”


시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프로 쥐잡이에다 그렇게 유명하다면 분명 돈도 많이 벌 거다. 그럼에도 이 편의점 창고에 틀어박혀 지낸다니..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몇 번의 설득 끝에도 시카는 완고하게 편의점 생활을 고집했다.

기왕 내가 팀장이고 이 사람은 신입이니 챙겨줄까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본인이 편하다고 하니 가족도 아닌 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럼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말씀하시고.. 근데 회사로는 출근 안 해요? 대표님이 편의점은 계속해도 된다 하신 건가?”

“네. 쥐잡이 의뢰만 끊었어요.”

“으음..”


그러고보니 시카가 입사했다고 이 편의점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픈 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편의점을 계속 운영해주는 게 나로선 좋다.


부우웅.

마침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대표님이었다.


[ 회사 앞으로 와! ♥ ]


“....왜 이래..”


얼마 전 필라드 해안가에서 그렇게 낯부끄러운 짓을 해놓고 대표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과 똑같이 허물이 없다. 아니, 오히려 좀 부담스러워졌다.


“대표님 연락..? 일이에요?”


문자를 두고 한참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시카가 먼저 물어왔다. 휴대전화를 닫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개인 호출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잡생각은 치우자. 단순히 상사가 부르는 것뿐이다.


난 절조 있는 남자고 단순히 그런 일로 내 미래 계획이 흔들릴 순 없다. 심호흡한 뒤, 가볍게 머리를 털고 편의점을 돌아나왔다.


커피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2


“안녕!”

“...”


회사 앞에 도착하자 대표님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인사를 해왔다. 순간 몸이 굳어버려 멍하니 바라보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숙였다.


“뭐야? 왜 갑자기 예의 바르게 굴어?”

“..아뇨. 그냥.. 그보다 무슨 일 이예요? 다음 업무?”

“아니. 그건 좀 이따 말해줄 거야. 지금은 개인적인 일로 불렀어.”


또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퍼뜩 들어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대표님은 인상을 팍 구겼다.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아니.... 음..”

“풋풋하네, 아직 어린애야. 남들은 나랑 말 한마디 섞어보려고 안달인데, 하루종일 붙어 지내면서 그렇게 서먹하게 굴기야? 나 실망한다?”

“죄송..”

“에이, 농담이야. 이거 주려고 불렀어.”


대표님은 바로 뒤에 있는 무언가를 퉁퉁 두드렸다. 무슨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저건 아까부터 회사 앞에 있었다. 뭔가 커다란 물건 위로 천을 씌워 가려놨는데, 도통 뭔지 모르겠다.


“이게 뭔데요?”

“흐흐.”


어째 신이 난 얼굴로 대표님이 천을 확 잡아당겼다. 펄럭거리며 벗겨지는 커다란 천 너머로 마침내 숨겨진 자태가 드러났다.


“...어??”


그걸 본 순간, 단번에 이 상황을 이해한 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케스팔그 MR-ST.”

“이거.. 어.. 설마...”

“네 꺼야.”


자동차였다.

그것도 꽤 비싸게 생긴 녀석이다.


“진짜로 사주셨네요..?”

“나도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목숨 걸고 피 보는 일 시키면서 너무 짜게 굴린 것 같아. 라얀에서 했던 네 요구는 정당한 거야. 오히려 내 쪽에서 먼저 챙겨줬어야 할 요구들이었어.”


라얀에서 내가 대표님께 했던 요구사항들.

솔직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 질러본 거였는데, 이렇게 직접 실물을 받고 보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거 슈퍼카예요??”

“그 정돈 아니야. 그 반열에 살짝 걸쳐있긴 하지. 너 이거 타고 도시만 뱅글뱅글 돌아다닐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슈퍼카는 멋을 내긴 좋지만, 사막 먼지를 먹기 시작하면 금방 더러워지고 성능도 눈에 띄게 떨어지거든. 관리가 엄청 까다로워. 반면에 얘는 사막 주행도 염두에 두고 개발된 차라서 어디서 굴러다녀도 문제없어.”


케스팔그 M... 뭐였지. 복잡해서 까먹었다. 하여튼 실용성까지 챙긴 차라는 건 딱 내 스타일이다.


“좋겠다. 이런 좋은 차도 타고~”


어째 대표님은 나보다 더 만족스러운 얼굴로 새 차를 쓰다듬었다.

케스팔그 M.. 어려우니 그냥 케스팔그라고 불러야겠다. 어쨌든 내 첫 애마로는 나쁘지 않다. 아니, 아주 좋다.


“월급도 두 배로 올려줄게. 대신 보너스는 기존처럼 줄 거야.”

“오.. 와...”

“이제 운전만 배우면 되겠는데, 그건 머스칼한테 배워봐. 나보단 머스칼이 훨씬 잘해.”

“음...”


갑자기 머스칼이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라얀에서의 일 이후 머스칼과는 약간 서먹한 관계다.

그야 머스칼은 날 다짜고짜 죽이려고 했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지만 나도 머스칼한테 칼을 휘둘렀단다.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건 당연했다. 지금은 머스칼도 대표님 지시대로 날 내버려두는 것 같지만, 혹시 변덕이라도 부렸다간 머스칼한테 짓눌려 죽을지도 모른단 묘한 위기감이 항상 있었다.


“기왕 머스칼한테 배우면서 서먹한 것도 풀어. 무슨 말인지 알지? 머스칼도 나쁜 의도는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머스칼이 날 죽이려 했다는 건 일단 제쳐놓고.. 같은 팀인 이상 언제까지 서먹한 관계로 있는 건 좀 그렇다. 업무 효율에서도 좋지 않다.

대표님 말대로 운전이라도 배우면서 얘기하다 보면 다시 예전처럼 편해지겠지. 그러리라 믿는다.


그렇게 차 앞범퍼를 끌어안듯 쓰다듬던 대표님은 내게 동전 같은 동그란 물건을 던져줬다. 차 내부를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이게 차 키인 모양이다.


“전에 말한 크루저 요트는 바다 갈 일 있으면 꺼내줄게. 그 전에 필요하면 말하고.”

“와.. 진짜 주시게요?”

“당연하지. 난 쪼잔하게 아끼는 사람 아니야.”


이제야 말이 통한다. 역시 이럴 때만큼은 대표님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참 마음에 든다.


“근데 고스트 팀은 좀 곤란해. 주기 싫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니면 다루기가 힘들어.”

“그냥 특수 부대 같은 거 아닙니까? 손짓 발짓해서 지휘만 하는?”

“그야 현장에선 그렇지. 하지만 고스트 팀은 직접 챙겨줘야 할 게 많아. 고스트 전용 장비인 스텔스 테크라던지, 특수탄도 그렇고 무장도 그렇고 전부 공업에서 담당하는 거거든.”

“음..”

“만약 고스트 팀 지휘권이 노페이스로 넘어가면 앞으로 내가 아니라 네가 그런 걸 챙겨줘야 해. 신청서랑 보고서랑.. 이것저것 써야겠지.”


듣자마자 귀찮을 것 같다.

그냥 지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팀의 관리, 운용까지 전부 맡는다는 소리가 될 줄은 몰랐다.


“귀찮겠지?”

“그러네요..”

“대신 노페이스엔 다른 팀을 붙여줄게. 노페이스에 전력이 더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니까.”

“혹시 공업에 있다는 그 숨겨진..”


감응자로만 이루어진 팀. 그렇게 말하려 했더니 불쑥 날아온 대표님의 손이 내 입을 막고 자기 입에다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냈다.

괜히 저번 일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자 대표님은 웃으며 손을 떼줬다.


“조만간 콥스 바탈리온이랑 계약할 거야.”

“...전 반대요.”


콥스 바탈리온이라니.

그 정신 나간 죽음 성애자가 날 10층 건물에서 등 떠민 게 떠올랐다.


게다가 그놈은 고용주를 배신까지 했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말이다. 언제 통수 칠지 모르는 위험한 놈을 밑에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별로야? 콥스 바탈리온은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용병 중 하난데.”

“연방의 화련이 그놈들 고용했다가 통수 맞았잖아요. 게다가 그 자리만 콥스라는 놈은 대가리 나사가 빠졌어요.”

“그건 좀 특수한 경우였지. 지킬 것만 지키면 자리만 콥스는 절대 배신하지 않아.”


보나마나 그 엿 같은 죽음 찬양이겠지.

다른 건 몰라도 죽고 싶어 안달 난 놈들이랑 같이 일하는 건 사양이다. 갑자기 옆에서 수류탄이라도 까면 골치 아프다.


“콥스 바탈리온은 현존하는 용병 회사 중 가장 강하고 단가도 세. 마음만 먹으면 작은 나라 하나 정도는 깨부수고도 남는 엄청난 부대지. 부대 관리도 지휘관인 자리만 콥스가 알아서 다 하니까 우린 돈만 대주면 돼.”

“....으음..”

“아직은 계약서를 작성 중이라 조금 시간이 걸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얘기 좀 해봐. 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야. 할 수만 있으면 부대 전체를 사들이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데, 돈으로 안 넘어와서 문제지.”


내키진 않지만 콥스 바탈리온이 그렇게 강한 놈들이고, 그게 임시더라도 노페이스의 지휘 아래 들어온다면 앞으로 내가 험하게 구를 일도 줄어들 것이다.

지킬 것만 지켜주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니, 안 지키면 배신한다는 뜻이라 그게 좀 걸리긴 하지만 대표님이 탐낼 정도의 부대라면 실력은 검증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지.’


나야 일만 편하게 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우선 차는 안에 넣어둘게. 오후에 레베스타로 가야 되니까, 대충 준비해놔.”

“레베스타요?”


대표님은 어쩐지 씁쓸한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음 업무야. 노페이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음, 내전이라도 났나.”

“세계 대전이 터질지도 몰라.”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3


레베스타.


그건 연방 북쪽에 자리를 잡은 나라로 어지간히 큰 땅덩이를 보유한 연방에 뒤지지 않게 큰 대국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연방 땅은 대부분 사람이 살 수 있는 주거 도시가 있는반면, 레베스타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극히 일부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백사병이나 사막화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보다 자연 친화적인 이유로 레베스타의 넓은 땅덩어리는 대부분이 주거지로선 버려진 상태다.


동쪽은 1년 365일 낮은 기온으로 땅이 얼어붙어 있는 한랭지, 서쪽은 거칠고 험난한 산맥.

심지어 서쪽 산맥은 ‘피스칼’ 이라는 성깔 더러운 나라가 맞붙어 있는 탓에 심심하면 충돌이 벌어진다.


때문에 동쪽 한랭지에 자리를 잡은 도시들은 도시의 이름을 가졌을 뿐인 연구 시설과 공장이 대부분이고, 서쪽 산맥에 자리를 잡은 건 피스칼과의 충돌에 대비한 군 시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레베스타에서 사람이 사는 거주 도시는 한 곳에 밀집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레베스타는 여기서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한 지역에 도시가 밀집된다면 굳이 여러 개의 도시를 세우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세우자는 거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황성 최대 규모의 강철 도시이자 레베스타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수도 라이카였다.


레베스타는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좋은 걸로도 유명하다.

사막화와 백사병에서 그나마 안전한 강철 도시의 이론을 세운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인 ‘시드(SEED)’ 도 바로 레베스타에 뿌리를 둔 집단이다.


그런 천재 과학자들이 한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최고의 기술과 자본을 쏟아 부어 만든 곳.

강철 도시 라이카는 엄청난 수준이란 걸 넘어 말이 안 나올 지경으로 레베스타의 모든 것이 응축된 도시라고 한다.


그런 엄청난 도시지만 난 한 번도 레베스타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었다.

딱히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그 파스트라스 용병들도 레베스타에 본거지가 있는 거죠?”


레베스타로 가는 기차 안. 풍경 구경도 슬슬 질려서 맞은편에 앉은 대표님께 물었다.

바깥의 황량한 사막을 바라보던 대표님은 읽던 잡지를 접으며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파스트라스의 대장이 부하들을 끔찍하게 아낀다던데.”

“..복수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어지간해선 안 마주치게 조심해. 본거지인 레베스타에서 만나는 파스트라스 용병들은 미켈로 때와는 많이 다를 거야.”

“뭐 본진이면 달라지는 게 있나?”

“상상을 초월하는 장비들이 나오겠지.”


기술 강대국 레베스타에 본거지를 둔 파스트라스답게 미켈로에서도 그놈들 슈트나 장비는 꽤 엄청난 물건이었다.

이번엔 그것보다 더 엄청난 장비들이 나올 수도 있다니, 호기심이 솟았다.


“역시 레베스타 놈들이네요. 이클립스보다 기술력이 좋은 건 아니겠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꽤 애매한 대답이었다. 고개를 기울이자 대표님은 다시 사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사막화를 해결하는 기술력에 있어선 레베스타가 우리보다 앞서있어. 물론, 수질 정화 기술 같은 건 우리 쪽이 앞서있고. 기술력에 우위를 가리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

“듣고보니 그렇네요..”

“...폭탄도 잘 만들어요..”


조용히 대표님 옆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던 시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기차는 이클립스의 것이고, 손님은 대표님과 나. 그리고 시카와 내 옆에 앉은 머스칼.. 네 명이 끝이다.

머스칼은 아까부터 졸고 있는 건지, 가만히 앉아서 미동조차 없었다. 얼굴이 없으니 자는 건지 깨있는 건지 모른다는 단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혹시 시카의 오딘 시리즈도 레베스타의 기술력이야?”

“정확히는 레베스타제 기술을 좀 베낀 거예요.”

“굉장하네. 레베스타의 기술은 어지간해선 노출되는 일이 없는데.”

“폭탄은 다르니까요. 레베스타제 폭탄은 내부를 들춰보려고 하면 폭발하게 되어있는데, 우연히 그걸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내서요. 그래서 분해해서 조사했죠.”


둘이서 뭔 얘기를 하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폭탄과 기술력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알아듣질 못한 내가 멍하니 듣고만 있었더니 시카가 주머니 속에서 작은 칩을 꺼내 보였다.


“...이게 오딘이에요.”

“아, 그 칩 폭탄.. ....그거 가지고 탄 겁니까?”

“이거 말고도 더 있어요..”


돌겠네.

하긴, 폭탄마랑 함께 하는 기차 여행에 폭탄이 빠지면 섭하지.. 머스칼같은 괴물도 같이 있는 마당에 폭탄에 호들갑 떨 이유는 없어 보였다.


“대표님이 챙기라고 하셔서요.”

“...대표님이?”


대표님은 못 들은 척, 창 밖을 내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듣기로 우리가 지금 레베스타에 가는 건 레베스타가 연방에 선전포고를 한 것 때문인데, 두 강대국이 충돌했다간 자칫하면 세계 대전으로까지 번질 위험도 있다.

그래서 노페이스가 레베스타에 들어가 그쪽에서 어떻게든 분쟁의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는 목적이다.


‘그래 봤자 협상이지만.’


사실 분쟁 원인은 명백하다.

연방은 오랜 시간에 걸쳐 레베스타의 기술력을 찔끔찔끔 훔쳐왔다. 스파이를 보내거나, 레베스타의 기술자를 돈으로 매수하는 등 여러 꼼수를 써서 말이다.


그런 소리 없는 전쟁이야 이 시대엔 흔하지만 얼마 전에 연방이 입수한 레베스타제 기술 물품이 하필이면 레베스타에게 굉장히 중요한 ‘어떤 물건’ 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레베스타는 이걸 되찾기 위해 연방과 작은 다툼을 벌였고, 연방에선 당연히 발뺌하며 레베스타를 역으로 쏘아붙였다.


그 결과, 레베스타의 미친 과학자 놈들이 무시무시한 전쟁 병기를 연방 수도 한복판에 던져버렸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우리 노페이스가 개입한 건데, 사실상 노페이스가 무력으로 해결한다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레베스타같은 기술 강대국과 연방 같은 초대형 싸움꾼이 맞붙은 시점에서 뭔가 해보기엔 한참이나 늦었다.


게다가 마운틴 클리너랑 머스칼 데리고 위협하면 연방이야 꼬리를 내리겠지만, 레베스타는 다르다.

거긴 이클립스조차 우습게 보며 코웃음 치는 오만한 기술자들이 있는 곳이다. 자존심도 세고 실제로 그만큼 실력도 분명 있다.


즉, 머스칼과 마운틴 클리너로 ‘싸우지 마세요.’ 하고 협박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뜻.

그러니 결국, 이클립스의 회장인 우리 대표님이 직접 가서 레베스타의 윗대가리들과 협상을 할 예정이다.


그렇게 보면 결국 이번에도 노페이스의 일은 대표님 경호다.

다만 레베스타는 저렇긴 해도 보기보다 신사적이고.. 엄청나게 안전한 나라다.


'레베스타엔 쥐가 없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진짜 쥐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쥐잡이의 쥐를 뜻하기도 한다.


레베스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쥐잡이들이 활개치지 못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 엄청난 치안 경비 때문이라고 하는데, 거리마다 CCTV가 빈틈없이 깔렸고 도시엔 순찰 로봇이 쉬지도 않고 돌아다닌다고 한다.


“대표님.. 혹시 레베스타에서 폭탄이라도 터뜨리려는 건 아니죠?”

“필요하다면? 그래도 신사다운 해결법을 찾아보도록 노력할 셈이야.”


시라비아의 전 처형인과 괴물 머스칼, 폭탄마.

셋을 데리고 입국하는 시점에서 신사다움의 의미가 무엇인진 잘 모르겠다만, 우리 대표님이니 알아서 잘하시리라 믿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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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삼류 악당 +2 23.04.07 178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0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2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7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3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6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5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8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1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0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2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7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6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4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0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2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1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4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2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4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4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79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1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6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199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0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79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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