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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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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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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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개벽(27) - 시카

DUMMY

#1


미친 듯이 달리던 끝에 얼굴에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얼어붙은 눈을 녹이고 시커먼 자국이 남아있었다.


망가져가는 후각으로도 지독한 탄내가 또렷했다. 검은 연기 너머로 무장한 군인들이 천천히 총구를 내민 채 다가오고 있었다.


엠마가 닐이라고 부르던 로봇은 이미 허리 아래가 날아간 채 상체만 지면에 굴러다녔다. 그마저도 반은 그을린 채였다. 폭탄이었다.


그래. 폭탄. 폭탄마다.


“손바닥이 보이게 머리 위로. 무릎을 꿇고 천천히 엎드려라.”


검은 연기가 가라앉자 총구는 겨눈 군인들이 말했다. 그들은 얼굴을 반쯤 가린 헬멧을 쓰고 있었다.


“손바닥이 보이게 머리 위로. 무릎을 꿇고 천천히 엎드려라.”


그들은 기계처럼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내 눈은 그들이 아니라 너머에 있는 여자에게 꽂혔다. 착각이 아니었다.


“시카..? 진짜 시카잖아..?”


멍청한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무언가가 내 등을 강하게 쳤다. 그 충격에 난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느새 뒤로 돌아온 군인이 내 등을 무릎으로 누르며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제압 완료. 코핀 서버에 검색되지 않는 비등록자입니다. 팀장님.”

“...”

“팀장님?”

“좌표 지점까지 계속 이동해요. 그 남자는 내가 맡죠.”

“알겠습니다.”


링처럼 생긴 무언가가 내 몸을 꽉 조이며 구속했다. 그리곤 눈바닥에 날 내던진 군인들은 그대로 전진했다.


그들과의 거리가 벌어지자 시카는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곤 엎어진 내 몸을 바로 눕히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정말 내가 아는 시카와 무엇하나 바뀌지 않은 얼굴이었다.


“시카는 여전히 수면 부족인가 보네요.”

“....산.. 팀장..?”

“예. 저예요. 여기선 팀장 아니지만.. 편의점은 관뒀어요? 시카 팀장이라니.”

“....”


그녀가 무언가를 누르자 내 몸을 구속했던 구속구가 풀렸다. 군인들이 확실히 멀어졌음을 확인한 나는 옷에 묻은 눈을 털며 일어섰다.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개머리판으로 친 건지 등도 욱신거린다.


일어나서 다시 눈을 마주치자 시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날 와락 껴안았다.



#2


‘넌 웃질 않는구나?’


어머니의 친구로부터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남들을 따라 웃어야 하나요?’ 그렇게 되묻자 그녀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던 게 기억난다.


고작 여섯 살의 나이.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가 주는 사랑을 받아먹기만 해도 벅찰 그 나이에 ‘나’ 라는 인간은 내 이상(異常)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가족들은 내 감정 표현이 조금 서툴 뿐이라고 했다. 아직 어린 나이기 때문이라고.


다른 아이와 달리 울지도, 웃지도 않던 어린 딸에게 그런 말을 한 건 아마 딸을 향한 위로보단 그들 스스로를 위한 희망적인 자기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딸은 아직 어려서 그럴 거야.’ 라면서.


하지만 내가 초재생까지 가진 감응자라는 걸 알았을 때, 날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것을 보는 눈.

왜 자신들에게 이런 괴물이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눈이었다.


이후 아홉 살이 되던 해, 단란함을 연기하던 우리 가족은 큰 사건에 휘말렸다. 폭탄 테러였고, 모두 죽었다.


과격한 정신 이상자의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그건 이젠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테러 속에서 초재생을 가진 난 처음으로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훼손된 부모와 언니의 시신을 봐도 울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왕래가 없던 친척들이 조금 찾아왔다.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꺼림칙한 시선을 보내다 결국 날 연방의 한 보육원으로 보냈다.


그들은 끝까지 몰랐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보육원은 연방 루아 호텔의 돈줄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보육원엔 감응자 판정을 받고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감응자란 기피 받음과 동시에 누군가에겐 몹시나 탐나는 인재였다.


그해 겨울을 지나고 열 살이 되던 해, 난 어디론가 팔려갔다. 초재생은 귀한 능력이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팔린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서게 된 곳은 전쟁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열 살짜리 꼬마를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둔 이유는 많았다. 적을 방심시키는 미끼로도 쓸만했고, 방패로도 쓸만했으며, 무엇보다 초재생 능력자는 걸어 다니는 생체 폭탄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으니까.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날 사간 곳은 불법으로 설립된 용병 회사였다. 그들은 돈만 되면 무슨 일이든 했으니 항상 돈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엔 미끼와 방패, 폭탄 취급을 받던 나는 어느새 그들로부터 많은 걸 배우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도 많았고 그들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며 ‘가르치는 재미’ 라는 걸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용병이란 늘 사지를 오가는 직업이다. 내가 열다섯이 되던 때쯤, 그들 대부분은 죽거나 떠나거나 연합의 에이전트에게 구속됐다. 그렇게 날 사들인 용병 회사는 문을 닫았다.


뜻하지 않게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자연스럽게 홀로 서기를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용병들로부터 배운 것뿐이었으니 연방의 루아 호텔을 찾아갔다. 그들이라면 날 쥐잡이로 써줄 것 같았다.


그 이후는 정신없이 살았다. 많은 사람을 죽였고 셀 수도 없는 폭탄을 터뜨렸다. 폭탄 테러에서 시작된 내 인생의 변화였기 때문일까, 어느샌가 난 화려하고 큰 소리를 내며 모든 걸 지워버리는 폭탄만을 고집했다. 없던 감정이 폭탄처럼 터지며 살아나길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신은 그런 내 바람을 들어줬다. 언제부턴가 내겐 조금씩 감정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타인의 감정을 보고 학습한 결과, 그 감정을 모방하면서 내 감정처럼 받아들이게 된 거겠지만 어찌 됐든 좋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내 목을 조인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날 두고 죽은 가족들이 떠올랐다. 혐오와 동시에 어떻게든 이해를 시도하려던 부모님. 어렸기 때문일까, 내 이상을 깨닫고도 평범하게 대해준 언니. 그들의 죽음에 뒤늦게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


죽은 용병들도 떠올랐다. 열 살짜리 아이에게 폭탄을 두르고 총알받이를 시킨 그들을 동료라고 하기엔 뭐했지만, 어쨌거나 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던 건 그들로부터 배운 덕이었다.


이따금 같이 일하던 쥐잡이도 어느 날 어이 없게 죽어버렸다. 쥐잡이들의 세계에선 흔한 일이었지만 그때부터 난 혼자 일하는 걸 고집했다.


매번 홀로 살아남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학습을 통해 배운 감정은 내게 그런 죄책감을 들이밀었다. 꿈에선 자주 그들이 나왔다. ‘왜 넌 살아남았어?’ 꿈속의 그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죽으려고 시도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하지만 대부분 험한 꼴을 당하며 실패했다. 죽는 것보다 미치는 게 먼저일 거란 생각에 결국 죽는 건 반쯤 포기했다.


이후 연방을 떠나 코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위장 신분을 위해 편의점을 차렸다. 여러 의뢰를 거쳐 코렌에서도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은근슬쩍 접근한 월교의 의뢰도 받았다.


그렇게 월교의 의뢰를 수행하던 중, 이클립스 공업에 들어가게 됐다. 처음부터 들어갈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쪽에서 먼저 날 ‘노페이스’ 라는 팀의 멤버로 삼길 원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게 싫었다. 또 나만 살아남을 테니까.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문득 떠올랐다. 이클립스 회장은 희대의 천재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날 죽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여줄 수 있어요.”

“대신 지금은 날 도와줘요. 모든 일이 끝나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요.”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공업 회장 헤이카 미켈런은 그렇게 약속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도 털어놓았다.


전쟁이 없는 세계. 아가레스가 없는 세계. 사막화도, 백사병도 없으며, 감응자가 없는 세계.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게 그녀의 목표였다.


다른 건 관심 없었지만 감응자가 사라진다는 건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가 만든 세계에서 난 초재생을 잃는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난 헤이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노페이스 팀에 들어가 그녀의 계획을 도왔다.


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초재생 능력과 늘어지기만 하는 그녀의 계획에 내 정신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난 남몰래 조사를 시작했다.


노페이스 팀은 평범한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세계의 이면과 자주 접했으니, 초재생에 대해 더 깊숙이 조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초재생이 시간을 되감는 저주라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됐다.


다만 그만큼 절망은 커졌다. 헤이카의 계획 외에는 초재생을 지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그녀의 계획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정신을 어떻게든 가다듬으며 마지막까지 그녀를 도왔다. 그러면서도 내심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헤이카마저 실패하면 어떡하지?’


애써 그런 불안을 무시했다. 헤이카 미켈런이 만든 세상이라면 정말로 내 초재생을 지워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실패를 상상하는 게 두려웠다.


“조금만 더 도와줘요. 이제 곧 끝나요.”


그녀의 계획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병상에 누운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헤이카 미켈런은 결국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후에도 날 놓아주지 않았다.


공업의 AI 서포트였던 베르나데트가 헤이카 미켈런을 대신했다. 노페이스 팀은 베르나데트의 지시대로 움직였고 그렇게 헤이카 미켈런이 준비했던 계획은 베르나데트가 완수했다.


온 세상의 감응자가 사라졌다. 다만, 베르나데트는 극히 일부의 예외를 두었다. 공업에게 ‘아직 필요한 인재’ 라는 이유로 베르나데트는 내 초재생 능력을 남겨두었다.


베르나데트에게 몇 번이나 초재생을 지워주길 요청했다. 모두 거절당했다. 그 융통성 없는 인공지능에겐 내 고통을 이해하는 기능이 없었다.


보안을 뚫고 스스로 능력을 지워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베르나데트와 아베스타를 거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베르나데트에 의해 내 초재생은 더 각성했고, 이젠 노화를 막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늙어 죽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잔인한 현실에 내 정신은 결국 무너졌다.


헤이카 미켈런의 죽음 이후, 그녀의 계획을 마무리한 산 팀장은 공업을 떠났다. 팀장 자리를 핸들러가 대신했지만, 나이를 먹은 그는 캔들의 후유증으로 병 져 눕고 그 자리를 내가 이어받았다.


야차는 어째선지 베르나데트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죽었다. 그나마 내게 말을 걸어주던 남자였다. 호감이 있어서인지, 어쩌며 단순한 동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늘 내 곁에 있으려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처참하게 찢겨나갔다.


그를 살리는 것을 두고 고민했다. 나처럼 영원히 고통받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베르나데트는 그의 시신을 숨겼고, 시간은 흘러버렸다. 이젠 그를 되살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졌다.


그리고 난 여전히 이곳에 있다. 늙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는 베르나데트의 사냥개로 살아있다. 곁에 남은 건 욕구가 억제되어 기계처럼 움직이는 부하들뿐이었다.


절망조차 세월을 거듭하며 무뎌졌다. 머리는 진작에 망가졌다. 무감정을 연기하며 모든 걸 꾹꾹 눌러담았다. 언젠간 이 모든 게 무뎌지고 잊히리라.


그런 내 앞에 그가 나타났다.

이젠 기억도 흐릿해진 먼 옛날. 홀연히 떠나버렸던 그 시절의 남자가 태연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온 것이다.


눌러 담던 것들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3


‘이거 어쩌지.’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시카는 그야말로 절규하듯이 목놓아 울었다. 나로선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시카의 울음이 멎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꽤 오래 울었다. 꾹 참아왔던 감정들을 한 번에 터뜨리는 것처럼. 엠마가 말한 브레인 코팅이란 걸 당해 내게 폭탄을 들이밀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는데, 다 터무니없는 걱정이었다.


“시카? 오랜만에 만난 건 반가운데요.. 이제...”


그녀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게다가 날 더 꽉 껴안았다. 아까 얻어맞은 등이 욱신거렸다. 이렇게 힘이 셌었나. 아니, 내가 약해진 거겠지.


그렇게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던 시카는 천천히 평정심을 되찾는 듯했다. 그녀는 퉁퉁 부은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짜로 산 팀장...?”


쉰 목소리로 묻는 시카에게 난 끄덕였다.


“예. 산입니다. 좀 젊은 시절이지만.”

“...”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엠마도 비슷한 반응이었던 게 생각났다. 시카에게 거울 연못에 대해 설명하려던 찰나, 그녀는 귀에 꽂은 단말기에 손을 얹었다.


그 동작이 익숙했다. 통신이 들어온 거다. 그러고 보니 군인들이 날 지나쳐가지 않았던가? 뒤에 있는 건 엠마의 집이었다.


‘거긴 알산나도 있는데..!’


이제서야 엠마와 알산나를 두고 나온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하실로 피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무사히 피했으면 좋겠건만.


생각해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시카는 그때의 시카와 입장이 전혀 달랐다. 그 군인들을 지휘하는 건 시카였다. 난 시카에게 말했다.


“시카. 부하들 좀 멈춰줘요. 알산나를 두고 왔어요. 그리고 나 도와준 사람도 있는데..”

“..알산나? 용..?”

“맞아요. 그 알산나.”

“..수색 구역을 변경합니다. 이쪽의 수색은 제가 맡겠습니다.”


코를 한 차례 훌쩍이곤 목소리를 가다듬은 시카가 통신기에 말했다. 다행히 이쪽의 시카는 여전히 내 편인 모양이다.


“다른 곳으로 돌렸어요..”

“다행이다. 혹시 몸에 베르나데트가 뭐 붙여놓은 건 아니죠? 지금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다거나, 위치를 탐지하고 있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잘은 모르지만 지금 내 상황에선 베르나데트를 경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 브레인 코팅이란 꺼림칙한 짓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됐어요. 휴.. 되게 막막했는데, 이렇게 아는 얼굴을 만나니 좀 풀리네.”

“한 번 더 안아도 돼요?”

“미안한데 임자 있는 몸이라서요.”

“...그래도 안을래요..”


시카가 이렇게 타인에게 의지하던 사람이던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은 이해한다. 게다가 36년이나 지난 이 시대에서 그때 얼굴 그대로라니,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건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껴안고 있던 시카는 눈보라가 몰아칠 기색을 느끼고서야 날 놓아주었다. 엉망이 된 얼굴을 눈으로 문질러 대충 닦은 그녀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도와줬다는 사람.. 혹시 엠마 노리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시카는 손가락으로 그을린 로봇을 가리켰다. 하긴 공업에서 만든 로봇을 훔쳐 달아났다고 했으니, 저 로봇이 여기 있다는 건 근처에 엠마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맞아요. 그 사람 아니었으면 얼어 죽었을 겁니다. 그쪽은 베르나데트가 보낸 거죠? 아까 그 군인들이 지금의 노페이스 팀원들? 살벌하던데.”

“...”

“혹시.. 나 도와줄 수 있어요? 아니면 날 잡아가야 하는 상황?”


그녀는 대답을 고르고 있는지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울고불고 달려들던 것과 달리 지금은 또 놀랍도록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때의 시카와는 확실히 달라진 것도 느껴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본 동료인데 잡아가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여기선 시카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말로 베르나데트가 숨겨놓은 것 하나 없이 모든 거울 연못이 사라졌는지, 아직 공업에 있는 그녀에게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카는 입을 열었다.


“구속하겠습니다..”

“예?”


어느새 내 손목엔 수갑이 채워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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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시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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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완결 공지 +3 23.05.08 144 0 -
264 욕망 시대(完) +3 23.05.08 200 9 24쪽
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2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3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58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6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8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1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6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2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4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7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1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59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8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6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69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4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6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6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4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78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0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2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7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3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6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5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8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1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0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2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7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6 8 21쪽
230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4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0 9 17쪽
» 개벽(27) - 시카 23.03.17 163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2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4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2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4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4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79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1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6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199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0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79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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