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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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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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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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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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개벽(29) - 침묵의 도시

DUMMY

#1


각성의 순간은 늘 그렇듯 갑작스럽고 혼란스럽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벌떡 상체를 일으킨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까지 호흡이 끊겼던 만큼 격렬하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마치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듯이.


“숨 천천히 쉬어요. 천천히.”


그런 내 양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는 건 시카였다. 그녀는 내 코앞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말하고 있었다. 시카의 숨결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타인의 숨. 체온. 목소리. 덕분에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후... 하... 후...”

“좋아요. 그렇게.”

“후.. 나 살아있는 거 맞죠?”

“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가운 곳이었다.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좁은 골목. 흔한 못사는 도시의 뒷골목이라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다만 골목의 저편에선 높은 빌딩의 실루엣과 화려한 불빛이 슬쩍 보였다.


“여긴 어디예요?”

“정확히 어디라고 하긴 어려워요. 일단 도시 안쪽이에요. 방금 당신을 빼돌린 참이에요.”

“아..”

“이거 입고 따라와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시카가 옷가지를 건넸다. 이제 보니 난 시체를 담는 비닐 가방에 누워있었고, 알몸이었다. 날 대체 어디서 빼돌렸길래..


우선 시카가 준 옷을 재빠르게 입었다. 후드 점퍼의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자 눈을 제외한 얼굴이 전부 가려졌다. 옷을 다 입자 비닐 가방을 근처 쓰레기통에 쑤셔 넣은 시카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알산나랑 엠마는요?”

“둘 다 우리 집에 있어요. 두 사람의 시신은 바로 처분 예정이라서 화장터로 보내졌었거든요. 몰래 빼돌려서 먼저 살렸어요.”

“그럼 난?”

“얼굴을 심하게 훼손시켜놓긴 했는데, 아베스타가 당신을 수상하다 여겼는지 시신을 안치실로 옮겼어요. 아마 부검을 하려던 것 같은데, 거기서 빼돌린 거예요.”


부검이라니. 조금만 늦었더라도 배가 열리고 내 장기가 전부 들춰졌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거기서 빼돌린 거면 금방 들키는 거 아닙니까?”

“다른 시체랑 바꿔 쳤어요. 결국엔 들키겠지만,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예요.”

“바꿔칠 시체를 용케도 구했네..”

“자살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자살? 그런 게 아직도 있을 줄은 몰랐다. 억제된 욕망에 걱정할 것도 모자란 것도 없이 베르나데트가 만들어준 이 지상 낙원에서 살아가는데, 자살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묻자 시카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여기는 그런 세상이에요.”

“음.. 알겠어요. 그보다 얼마나 가야 해요? 나 오래 못 뛰겠는데.”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다. 5분도 안 달렸는데 이렇게나 체력이 떨어졌다니. 오른팔도 갈수록 무겁게만 느껴졌다.


“다 왔어요.”


말하는 것과 동시에 시카와 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퀴퀴한 거리의 풍경이 나타났다. 살얼음처럼 내리깔린 눈. 구석구석 쌓인 쓰레기들. 길의 가장자리엔 물이 흐르는 도랑 같은 곳이 있었는데, 물 위에도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건물들도 낡고 녹슨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가로등은 제대로 켜지지 않는 것도 많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먼지 냄새가 났다.


내가 상상하던 미래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적어도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던지, 높게 치솟은 첨단 빌딩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건 그냥 못 사는 동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시카는 길가에 주차된 매끈한 검은 차량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타는 그녀를 따라 난 조수석에 앉았다. 거리는 그렇다 쳐도 이 잘 빠진 차는 여기가 미래라는 걸 실감하게 해줬다.


미끄럽게, 그리고 소리 없이 출발하는 차였다. 창 밖의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역시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더럽게 못 사는 동네였다.


“생각하던 거랑 좀 다르네요. 이클립스가 만든 첨단 도시니까 다 엄청날 줄 알았는데..”

“도시 중앙부는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모습일 거예요. 다만 여긴 외곽 지역이라 그래요. 방호벽에 가까울수록 노후화된 시설이 많죠.”

“베르나데트가 이런 건 관리 안 하나 봐요?”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도시 바깥의 꼴을 생각하면 그럴 법하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는 것. 그게 베르나데트의 방침이다. 결국은 욕심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한 거니, 욕심을 내지 않은 결과다.


그래도 이런 곳에 산다면 행복과는 썩 거리가 멀지 않을까 싶었다. 욕망이 없다면 행복을 추구하지도 않을까? 욕망이 없으니 낡아빠진 단칸방에서 살아도 불만 없이 살까? 나로선 알 수 없었다.


그렇게 15분쯤 달리자 어느새 도시의 풍경은 내가 생각하던 미래 도시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강철의 빌딩들. 그 빌딩들에는 각자 딱딱한 느낌의 글자가 LED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마 빌딩을 구분하기 위한 것 같다.


그런 빌딩들 사이사이를 거미줄처럼 복잡한 계단들이 잇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철계단이다. 내가 보기엔 위태롭기 짝이 없는 모양새인데, 사람들은 그 계단으로 잘도 다녔다.


층층이,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들도 복잡하고 난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층에 있는 칸마다 형형색색 화려한 불빛이 새어나왔지만 정돈되지 않아 난잡하다.


물론, 미래의 첨단 도시라는 느낌은 있다. 다만 모든 게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들어차고,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마치 책과 식기, 세면도구를 한 책장에 줄줄이 세워놓기만 한 듯 빌딩은 조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가 중심부예요?”

“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요? 숨이 턱 막히는데. 건물이 높아서 하늘도 안 보이고.”

“베르나데트는 효율적인 걸 중시해요.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이 인류에게 최적의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융통성 없는 AI네. 미적 감각이라는 게 전혀 없나?”


그때 도시 전체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카는 베르나데트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정해진 시간마다 도시 전체에 흘려보낸다고 했다.


편해지긴커녕 오히려 기분이 나빴다. 음악 덕에 도시 전체에 음산한 분위기가 더해진 것 같았다. 인류가 베르나데트에게 길러지는 애완동물 신세가 됐다는 엠마의 말이 슬슬 이해가 됐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울해 보이지도 않았다. 평범한 무표정. 팔짱을 끼고 걷는 젊은 연인이나, 부부도 똑같았다. 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도, 아이의 표정도 같았다.


마치 감정 없는 인형처럼 그들은 거리를 걸었다. 이따금 표정의 변화가 나타나도 어딘가 어색한 얼굴들이었다. 가식적인 웃음, 배우처럼 연기하는 얼굴들.


“..그러고보니 브레인 코팅으로 욕구가 억제된다면 누구랑 사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그것도 결국 욕구잖아요.”

“그건 베르나데트가 정해요.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사람과 맺어지고 결혼을 하죠. 정해진 시기에 아이를 낳고요. 인구수를 조절하기 위해서죠. 이 도시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수를 초과해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되니까요.”

“그거 참..”


바깥에서만 보던 도시는 지상 낙원이었을지 몰라도 직접 두 눈으로 본 이곳은 절대 낙원이 아니었다. 어쩌면 브레인 코팅을 받은 저들은 지금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쩡한 내 눈엔 아무리 봐도 끔찍한 세상이었다.


어느새 차량은 한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기분 나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다. 어디서나 들리는 모양이다.


30층.. 40층.. 겉에서 보던 것처럼 이 빌딩은 엄청난 높이까지 솟아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층은 50층 블록이었다. 문이 열리자 길게 복도가 늘어서 있었다. 양옆으론 문들이 많았다.


이곳도 겉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왼쪽엔 뭔지 모를 음식점이 있는가 하면, 맞은편에는 세탁소가 있었다. 그 옆에는 약을 파는 약국이, 그 왼쪽에는 식료품점이, 또 그 옆에는 미용실이 있었다. 뒤죽박죽이다.


복도를 조금 더 나아가자 똑같이 생긴 문들이 쭉 있었다. 시카는 그 중 한 곳에 카드키를 끼워 넣었다. 삐릭하는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살림살이가 적었다. 커다란 통 창문이 한쪽 벽에 자리 잡았고 그 너머엔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창가에 서서 삭막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뒤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늦었네요. 혹시라도 잡혔나 해서 걱정했어요.”

“잡힐 뻔했어요.”


안쪽 방에서 나온 건 엠마였다. 아마 여기가 시카가 지내는 곳인 모양이다. 확인해보니 방 안에 있는 침대 위엔 여전히 알산나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


깨어날 기미가 없는 알산나를 한동안 내려다보던 끝에 난 방문을 닫고 나왔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시카가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엠마는 말없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음.. 바로 안 움직여요? 사무엘을 만나러 가기로 했잖아요.”

“아베스타의 감시가 느슨해질 때 움직일 거예요. 약 2시간 뒤에 비가 내려요. 베르나데트가 만들어진 비를 뿌리는 것뿐이지만, 비가 내리면 코핀 서버와 연결된 드론들이 더 높게 날거든요. 드론이 멀어질수록 감시에도 구멍이 생기죠.”


엠마는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그녀도 한때는 이 도시에 살았다고 했으니 도시에 대해선 나보다 훨씬 잘 알았다. 난 끄덕이며 빈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정리하죠. 아직도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당신과 이 여자를 믿어보기로 했으니까요.”

“엠마는 의심이 많네요.”

“많아야죠. 베르나데트도 의심이 많은데.”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한참 노트북을 두드리던 엠마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 나와 시카에게 보여줬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잔뜩 쓰여 있는 화면이었다.


“이게 당신들이 말하던 아버지의 연구 자료에요.”

“거울 연못을 되살리는 그 연구? 음.. 봐도 잘 모르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거울 연못은 복잡한 언어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랑 비슷해요. 이 연구 자료에서 아버지는 그 언어를 ‘식’ 이라 부르고, 식으로 프로그래밍된 결과물을 ‘마법’ 이라 부르고 있어요.”

“마법..”


거울 연못을 되살린다는 건 결국 마법이 사라진 세계에 마법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마법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실제로 마법사와 마법을 두 눈으로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정리할게요. 당신은 거울 연못을 통해 36년 전에서 온 과거의 산 팀장이죠?”

“그렇죠. 뭐.”

“시카는 이 산 팀장을 과거로 보내서 헤이카 미켈런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기 전에 막으려는 거죠?”


시카가 끄덕였다. 엠마는 가늘게 뜬 눈으로 시카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나 더 확인할게요. 시카. 왜 그렇게 하려는 거죠?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면 베르나데트의 사냥개로 일하고 있을 필요도 없어요. 기회도 있었죠. 예전에 베르나데트에게 반기를 들었던 해방군이 갈가리 찢겨나갈 때 당신은 뭘 했어요?”

“그건..”

“당신은 그 해방군을 찢어 갈기는데 한몫했죠. 당신 폭탄에 죽은 사람이 수두룩했어요.”


아마 이 시대도 순탄치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베르나데트에게 반기를 든 해방군이 있었다는 듯하니까. 결국, 사람이란 욕망하는 생물이다. 욕망을 억지로 틀어막아 봤자 좋은 꼴은 못 보겠지.


“난 죽고 싶어요.”


침묵을 머금던 시카의 입이 열렸다. 엠마는 눈을 크게 떴다.


“난 초재생 때문에 죽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헤이카 회장이 약속했어요. 자기를 도와주면 내 초재생을 없애 주겠다고. 그런데 지금까지도 전 죽지 못했어요. 베르나데트가 놓아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산 팀장을 과거로 보내서 상황을 바꿔보겠단 거예요?”

“맞아요. 될 수 있으면.. 날 죽여줬으면 하니까.”


시카의 눈이 날 향했다.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엔 피폐함 뿐이었다. 내가 아는 과거의 시카보다도 훨씬 더 그랬다. 헤이카와 시카가 나 몰래 나눴던 얘기가 저런 얘기였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헤이카는 약속은 지킬 사람처럼 보였는데.. 아니, 지금은 헤이카가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베르나데트였다. 만약 헤이카가 살아있었다면 시카의 초재생을 지워줬을 거다.


“당신 생각은 어때요?”


엠마는 이번엔 내게 물었다.


“뭘요?”

“뭐긴 뭐예요. 당신은 노페이스의 산 팀장이에요. 여기가 아니라 과거의 산 팀장. 그쪽에서 열심히 헤이카 미켈런을 돕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당신은 도시 바깥을 봤죠. 그리고 도시의 내부 상황도 봤어요. 어떤 느낌이 들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낙원도 아니고, 정말 헤이카가 이런 세상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돌아갔을 때, 당신은 헤이카 미켈런의 계획을 막을 거예요?”

“...”


지금까지 어떤 의심도 없이 헤이카를 도왔다.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틀렸다고 말하는 수많은 목소리를 무시하며, 헤이카가 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도왔다.


그게 헤이카의 꿈이니까. 난 헤이카를 돕고 싶었다. 헤이카가 만족할 수 있다면, 그녀와 모든 일을 끝내고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말은.. 해 볼 겁니다. 헤이카한테 여기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전부 설명할 겁니다. 이게 헤이카가 정말 바랐던 세상이 맞는지 물어볼 거고요.”

“헤이카 미켈런이 원해서 만든 세상이잖아요. 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이쪽의 헤이카는 이 세상이 완성되는 걸 보기 전에 죽었잖아요. 그러니 모르는 일이죠. 돌아가게 되면 전부 말할 겁니다.”

“..만약 지금 이 세상이 그녀가 정말 원했던 세상이라면요? 그래도 당신은 헤이카 미켈런을 막을 수 있어요?”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엠마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됐어요. 애초에 과거를 바꾼다고 미래가 바뀐다고는 생각 안 하니까. 그쪽 세상은 그쪽이 알아서 해요.”

“..무슨 말이에요?”

“만약 여기 있는 산 팀장이 과거로 가서 헤이카 미켈런을 막는다고 해도 지금 이곳이 바뀔 일은 없다는 얘기에요.”


시카의 표정에 조금 금이 갔다. 엠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쉽게 말해 아예 다른 세계란 뜻이에요. 36년 뒤의 미래라고는 했지만, 여기 있는 산 팀장의 세상과 지금 이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에요.”

“산 팀장이 헤이카를 막아도 이 세상은 그대로란 거예요?”

“맞아요. 만약 여기 있는 산 팀장이 과거로 가서 뭔가를 바꿔도 그건 그쪽의 미래가 바뀌는 거지, 여기의 미래가 바뀌는 게 아니에요.”

“그럼 내가 돌아가는 게 뭔 의미가 있어요? 나만 좋은 일 아닌가..?”

“꼭 그렇지도 않아요.”


엠마는 연구 자료 중 일부를 가리켰다.


“아버지의 목적은 거울 연못을 되살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요. 그 되살린 거울 연못으로 영웅을 불러오는 게 목표였어요. 영웅이란 게 뭔가를 가리키는 비유인지, 정말 영웅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요.”

“..그래서요?”

“어쨌든 거울 연못을 복원시키면 이쪽의 산 팀장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고, 우리는 아버지의 계획대로 베르나데트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예요. 양쪽 다 좋은 거죠.”

“내가 죽을 수 없잖아요.”


시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슬슬 눈치를 살폈다. 여기까지 와서 시카가 생각을 바꿨다간 나나 엠마나 둘 다 베르나데트에게 넘겨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시카. 당신은 어떻게 능력을 빼앗기지 않은 거죠?”

“..베르나데트는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니까요.”

“그 베르나데트가 무너진다면, 당신의 초재생을 없애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그렇겠네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러니 원래 하려던 대로 협조해줘요.”


잠깐 불안정해 보이던 시카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 끄덕였다. 엠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안도했다.


이후로도 엠마는 우리에게 아버지인 케니 박사의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거울 연못을 어떻게 되살리려고 했는지, 그 너머에서 뭘 불러오려고 했는지, 연구 자료에 있는 복잡한 식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만약 거울 연못을 열지 못했을 때의 상황도 그녀는 염두에 두고 있는지 술술 자기 계획을 털어놓았다. 어쨌거나 난 생각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느덧 창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도시가 만들어낸 인공 호우였다. 시간이 되자 빠르게 준비를 마친 시카는 내게 검은 우의를 던져줬다.


두 사람이 먼저 나서는 동안 난 다시 창 밖을 보았다. 그리고 이 우울한 풍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돌아갔을 때 헤이카에게 이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지금 이 세상이 그녀가 정말 원했던 세상이라면요? 그래도 당신은 헤이카 미켈런을 막을 수 있어요?’


엠마가 했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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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 공지 +3 23.05.08 144 0 -
264 욕망 시대(完) +3 23.05.08 200 9 24쪽
263 마법사의 보답 +2 23.05.05 152 10 13쪽
262 광야(曠野) 헤이카 미켈런 +2 23.05.04 173 12 15쪽
261 재회 +1 23.05.03 165 11 15쪽
260 사막, 괴물, 어린 칼잡이들 +3 23.05.02 158 11 12쪽
259 라푸스 벤데르드 +2 23.05.01 166 9 20쪽
258 욕망 시대(13) - 사무엘(Samuel) +2 23.04.28 168 8 17쪽
257 욕망 시대(12) - 눈 내리는 날 +1 23.04.27 161 8 15쪽
256 욕망 시대(11) -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게 될 때까지 +1 23.04.26 156 7 14쪽
255 욕망 시대(10) - 강철의 기사 23.04.25 152 9 15쪽
254 욕망 시대(9) - 소리 없는 침식 +1 23.04.24 164 9 11쪽
253 욕망 시대(8) - 일방적 계약 +1 23.04.21 167 9 20쪽
252 욕망 시대(7) - 길을 잃고 +1 23.04.20 161 9 15쪽
251 욕망 시대(6) - 정복자 23.04.19 159 9 16쪽
250 욕망 시대(5) - 악룡과 용사 +1 23.04.18 158 9 17쪽
249 욕망 시대(4) - 오염구역 탐사 +2 23.04.17 156 8 14쪽
248 욕망 시대(3) - 죽음의 땅 +2 23.04.14 169 9 13쪽
247 욕망 시대(2) - 위험한 여행 +1 23.04.13 154 9 13쪽
246 욕망 시대(1) - 탐욕의 바르바로사 +1 23.04.12 176 9 13쪽
245 죄인 +2 23.04.11 156 8 15쪽
244 급류(急流) +2 23.04.10 174 9 13쪽
243 삼류 악당 +2 23.04.07 178 10 23쪽
242 우는 아이 +1 23.04.06 160 8 15쪽
241 에콰(5) - 일그러진 미소 아래 +2 23.04.05 182 9 15쪽
240 에콰(4) - 핏덩이 +1 23.04.04 177 9 17쪽
239 에콰(3) - 욕망죄화(欲望罪花) +1 23.04.03 183 10 27쪽
238 에콰(2) - 모르스 에콰 +1 23.03.31 166 9 13쪽
237 에콰(1) - 소녀 +1 23.03.30 165 9 14쪽
236 개벽(35) - 문을 닫다. +1 23.03.29 168 9 15쪽
235 개벽(34) - 찾아온 영웅, 떠나는 영웅 +1 23.03.28 171 9 21쪽
234 개벽(33) - 베르나데트 23.03.27 160 9 20쪽
233 개벽(32) - 자유를 향해 +2 23.03.24 162 9 18쪽
232 개벽(31) - 데이케트람 23.03.23 167 9 18쪽
231 개벽(30) - 행복을 쫓던 사내 +1 23.03.22 166 8 21쪽
» 개벽(29) - 침묵의 도시 23.03.21 164 8 17쪽
229 개벽(28) - 가능성 +1 23.03.20 170 9 17쪽
228 개벽(27) - 시카 23.03.17 162 9 17쪽
227 개벽(26) - 36년 +1 23.03.16 231 9 17쪽
226 개벽(25) - 빛바랜 세상 +1 23.03.15 164 9 13쪽
225 개벽(24) - 문 23.03.14 172 9 18쪽
224 개벽(23) - 본보기 +1 23.03.13 164 9 16쪽
223 개벽(22) - 옛 동료 +1 23.03.10 174 10 16쪽
222 개벽(21) - 마지막 조각 +1 23.03.09 179 10 21쪽
221 개벽(20) - 흐름 23.03.08 171 10 16쪽
220 개벽(19) - 시라비아의 햇빛 23.03.07 176 10 15쪽
219 개벽(18) - 영웅 증후군 23.03.06 199 10 16쪽
218 개벽(17) - 친구인가 적인가 23.03.03 180 10 16쪽
217 개벽(16) - 습격 23.03.02 179 10 14쪽
216 개벽(15) - 헤르그부르 23.02.28 18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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