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견은 조용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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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3
최근연재일 :
2022.06.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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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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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참교육 (5)

DUMMY

“그래, 맞짱 한 번 뜨자. 씹새끼야.”


상황을 모르는 돼지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변화에 내심 겁까지 먹었다.


“이 미친 새끼가 돌았나? 요즘 덜 맞았다고 정신...”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호우가 선빵을 갈겼다.

머릿속에 형님의 가르침이 스쳤다.


‘일단 선빵이 중요하다. 무조건 먼저 때려야 돼.’


갑자기 찐따에게 처맞게 된 돼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 새끼, 아직 약하다!’


맞아 보니 알았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돼지는 정신을 추스르고 반격에 나섰다.


“좆밥 새끼가 까불고 있어!”


호우는 돼지에게 처맞고 뻗었다.

상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장면이었다.

나중에 의식을 되찾은 호우는 퉁퉁 부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광견을 찾아갔다.


“형님, 어떻게 된 거예요!”

“겨우 일주일이야. 뭐 크게 달라졌겠어?”

“형님은 지존이잖아요! 그 정돈 가르쳐주셔야죠!”

“가르치는 사람 문제가 아니야.”


그 말에 호우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배우는 사람 문제지.”

“역시 저는 재능이 없나요?”


바보 같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차라리 편해질 것 같았다.


“그래.”


혹시나 했지만 정말이었다.


“그냥 학교 관두는 게 낫겟죠? 그래도 한 번 싸워보기는 했으니까.”


이대로 지고 끝나는 건 정말 싫지만, 벌써 마음이 꺾여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게 최선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착각하지 마. 재능 없다는 건 내 기준이야. 내가 가르쳐주는데 겨우 학교에 있는 쓰레기들 못 치울까봐? 나를 믿어라.”


광견의 말에 호우는 빠져나갔던 힘이 되돌아왔다.


“잡생각 하지 말고 이길 생각만 해.”

“예!”

“알았으면 다시 달려. 죽도록.”


호우는 다시 달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싸웠다.


“이 새끼는 그렇게 처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냐? 뭐 자기개발서라도 봤냐? 꿈 깨 이 새끼야. 너 같은 새끼는 평생 나한테 처발릴 운명이야.”

“지랄 마.”


호우는 다시 한 번 달려들었고, 다시 한 번 쥐어터졌다.


“하, 이 새끼. 머리를 너무 세게 처맞았냐?”


물론 수확은 있었다.

이제는 일진들도 호우를 그냥 찐따가 아닌 미친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광견의 제자다운 성과였다.

개처럼 처맞은 호우는 다시 울면서 광견에게 달려갔다.


“형님, 그렇게 열심히 수련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잖아요!”

“달라진 게 왜 없어? 지금 네 모습을 봐라.”

“계속 개처럼 쳐맞고, 병신 같잖아요.”

“그래, 병신 같지.”

“!?”


내심 기대했는데, 전혀 엉뚱한 대답을 들은 호우였다.

그렇지만 광견은 억지로 멋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패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흉하고 추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래도 너, 전보다는 훨씬 멋있어.”


그 실패에도 의미는 있다.

광견의 말에 호우는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형님, 저 열심히 할게요!”

“그래. 죽도록 달려라.”


*


“한서희, 괜찮아?”


사부님이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내 안부를 물었다. 따라온 서아랑도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설마 매일 왕호우를 가르치고 있는 걸 들켰나 싶었는데.


“한서희, 매일 선배한테 불리고 있지?”


진지한 얼굴로 완전히 딴소리를 했다.

반대로 엉뚱한 오해를 당하고 있었다.

완전 허당이다 이 자식들.


“아니야.”

“서희야, 힘들면 언제라도 말해. 도와줄 테니까.”


그래도 찐따여도 사랑받는 찐따라서 행복하네(?).

진짜로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양가흔이 말했다.


“한서희, 내가 아빠한테 말해줄까? 그 녀석들이 너 못 건드리게.”


그래도 참 착한 여자다. 사부는 잘 골랐어(?).

아랑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맞아, 서희야! 그럼 좋겠다!”


아니, 나는 극구 사양이다.


“괜찮아.”


양가흔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말했다.


“괜찮기는. 남자가 그렇게 맨날 맞고만 살 거야?”


오히려 내가 때리는 쪽이라고.

때리다 못해 한 명은 식물인간을 만들었다 이 자식아.


“그래도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아, 그래. 그럼 그거 끝나면 앞으로 매일 나한테 무공 배워.”


방과 후, 나는 매일 미친 여고생에게 시달렸다.


“오늘 책을 읽었는데, 한국에 바보 온달이라는 사람이 있더라.”

“그걸 어떻게 찾아서 읽었어?”


이 녀석,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많나보다.


“그냥 심심해서 읽었는데 있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바보 온달이라는 못생기고 멍청한 한국인이 있었는데, 평강 공주라는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잘 가르치고 키웠대. 근데 읽어보니까 바로 네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내가 평강 공주라고?”

“그건 나지 멍청아! 이 온달 자식. 그것도 이해를 못했어?”

“젠장, 공주 하고 싶단 말이야.”


농담이었는데 가흔은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없었던 일처럼 화제를 돌렸다.


“안 되겠네. 정말 뭘 가르치긴 해야겠다.”

“농담이잖아. 왜 나를 진짜 바보로 아는 거야?”


선입견이란 게 진짜 무서운 거다.

나는 시험에서 꼴찌를 하고, 이름도 쓰지 못할 뿐인데 이 녀석은 나를 어디 모자란 놈으로 알고 있다.


“불초한 제자한테 가장 먼저 가르칠 건 참선, 선정공(禪定功)이야.”

“참선? 그건 기초 중의 기초잖아. 나도 기초는 알아.”

“참 나, 아직 입문도 안 해놓고 뭘 안대! 하수면 하수답게 고수가 하는 말을 들어!”


이미 고수란 말이다. 이 자식아.

그런데 사실 소림사의 무공에 관해서 초짜가 맞긴 맞았다.

기왕 배우는 김에 기초부터 배워보는 것도 좋으려나?


“그럼 내가 선정공을 완벽하게 익히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다?”


그러자 가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온달아, 선정공도 어려운 거야. 그렇게 금방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야.”

“금방 할 수도 있지. 내가 천재일 수도 있잖아.”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은데.”


가흔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쯤 되면 서러워질 지경이다.


“그래, 힘들겠지만 참으면서 열심히 노력해봐. 꿈은 크게 가져야지. 다음 단계 심법까지 가르쳐줄 생각은 없었지만, 나처럼 깨달음을 얻으면 더 좋은 심법도 알려줄게.”


너는 깨달음을 얻은 게 그거냐?

폭탄 만드는 집안이 깨달음 타령을 하고 있으니.


“고마워.”


그러나 입에서는 생각과는 정반대인 말이 튀어나왔다.


“우선 가부좌를 틀고 명상해봐. 중요한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쉬워 보이지?”

“쉽잖아.”


나는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명상했다.


“입문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지. 근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어려운 거야.”


뭐, 일반인 기준에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충은 안다.


“마음을 비우란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는 거야.”


그러자 얼마 안 가 온갖 잡념이 들이닥쳤다.

죽인 사람이 수백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 한켠에 묻어두었던 기억이었으나 지금도 살을 베는 느낌이 생생하다.


‘문제는 기분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살육에 도취된다는 거지.’


마공을 익힌 고수들의 특징이었다.

스스로가 예외에 속한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싸움에 미친 광견이었고, 누구보다도 피에 취한 흑도수라였다.

지금까지는 모르고 있었으나 어느새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것도 하나의 깨달음인가.’


우연한 기회로 행한 참선이었으나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부상도 한결 나아지고, 내공의 흐름도 원활한 기분이 들었다.


“오, 바보가 웬일이야? 앉아서 1시간이나 버티고! 의외로 집중력이 대단한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흔이 감탄을 토해냈다.

원래 꼴등인 녀석이니 15분만 버텨도 칭찬을 해줄 생각이었지만, 1시간이나 버티니 진심 어린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돌연 이 정도로 뛰어난 건 의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자는 건 아니지?”


광견은 명상을 깨고 싶지 않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흔이 광견의 가슴에 손을 얹어 확인했다.


“자는 건 아닌데. 뭐야, 마음이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 너, 무슨 사람이라도 죽였어?”


한참 수련하고 있는데 조잘조잘 떠드니까 정말 한 명 더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도 수행의 일환이었다.

무슨 고시생도 아니고 집중 안 된다고 고수가 내공을 쌓다 말고 조용히 하라고 화내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이내 그것을 깨달은 가흔은 조용히 지켜보다 곁에서 함께 명상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가흔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이 녀석은 아직도 하고 있다고······? 아니, 설마. 졸고 있는 거겠지.’


사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제자한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참고 인내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자는 아직도 멀쩡히 좌선을 하고 있으니 마음에 안 들었다(?).


“자는 건 수련이 아니야. 일어나.”


그러나 광견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금 광견의 가슴에 손을 얹은 가흔은 경악했다.


‘벌써 소성을 이루었다고!?’


만류귀종(萬流歸宗).

광견은 사파의 극을 보았기에 정파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 것이었다.

무공의 성취는 간단하게 7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장 초입인 입문과 입문을 넘어 무공이 익숙해진 단계인 유습(有習), 그 다음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당도(當到), 그리고 그 다음이 이치를 깨닫는 소성(小成)이었다.

3시간만에 자그마치 3단계를 뛰어넘었으니 가흔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은 3년이 걸린 경지를 꼴등이란 녀석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도달했던 것이다.


‘나도 천재인데, 이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천재인 거야!’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벌써 소성을 이루다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너. 사실 반로환동 한 늙은 고수 같은 거 아냐?”


안타깝게도 그냥 늙은 고수였다.

반로환동 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천하제일이 될 남자야.”


광견은 평소 버릇대로 웃으며 농을 던졌다.

그러나 그 모습이 지금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만 느껴졌다.


‘에이, 그래도 천하제일은 무리지!’


소성까지 달성한 것이 엄청나게 훌륭한 것은 맞으나, 갑자기 천하제일까지 운운하는 것을 보니 역시 바보였다.


“바보야. 네가 찬란한 성취를 이룬 건 맞지만, 그래봤자 선정공이거든? 기초 중의 기초야! 선정공은 축기에만 효과 있지 싸움하곤 상관없어. 아직 실력은 꼴찌라고. 강해지려면 다음 단계의 심법을 배워야 해.”


하지만 광견은 이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 계열 심법보다는 쌓이는 기가 확실히 순수해. 아무리 내가 사파지존이라도 다쳤을 땐 이걸 쓰면 훨씬 낫겠다.’


선정공은 가흔처럼 기초라 무시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만큼 고수의 초석이 되는 탄탄한 무공이기도 했다.

실제로 광견은 선정공을 익히고 모든 신체 능력이 증가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기껏해야 1%나 될까 말까한 미세한 차이지만 특히 민첩성과 방어력이 늘어난 것 같네.’


물론 다음 단계 심법도 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선정공을 가르쳐준 것도 보통은 없는 일이었다.


“다음 단계도 가르쳐줄 거야?”

“원래는 엄청 귀한 신공인데, 어쩔 수 없지. 약속은 했으니까. 그럼 나한공과 백련신공. 둘 중 뭐가 배우고 싶어? 참고로 아라한은 깨달음을 얻은 승려고, 백련은 연꽃이야.”

“중은 못 될 것 같으니까 백련신공 배울게.”


하얀 연꽃이 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빡빡머리가 되는 건 더욱더 사양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백련신공은 진짜 어려워. 이건 남들을 지키는 무공이니까.”


광견이 익힌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공인 마공과는 정반대의 무공이었다.

재능이 없는 범인이라면 자칫하다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광견은 이것도 의외로 쉽게 익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그만큼 좋은 무공이지? 빨리 가르쳐줘!”


광견이 아직까지도 수업에 열의를 보이자, 가흔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지금 가르쳐달라고? 너, 안 힘들어?”

“아니, 그만큼 배우고 싶다는 거지.”


여자 1위인 가흔도 지금은 쉬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걸출한 인재였다.

불현 듯 나무꾼에서 대장군이 된 온달과 제자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잘만 키우면 정말 온달이 될 수 있을지도.’


엉뚱한 결론에 이른 가흔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공의 경지를 천편일률적인 1성, 2성보다는 독창적으로 특별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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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계 돌파 (1) 22.06.01 22 0 11쪽
21 벽력당의 딸 (4) 22.05.31 28 0 11쪽
20 벽력당의 딸 (3) 22.05.30 28 0 12쪽
19 벽력당의 딸 (2) 22.05.29 24 0 11쪽
18 벽력당의 딸 (1) 22.05.28 28 0 10쪽
17 금의환향 22.05.27 29 0 11쪽
16 백초련 (4) 22.05.26 25 0 12쪽
15 백초련 (3) 22.05.25 21 1 11쪽
14 백초련 (2) 22.05.24 31 0 16쪽
13 백초련 (1) 22.05.23 3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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