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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퍼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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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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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7. 1-1 기말고사 챕터 1. 숨겨진 길을 찾는 자(3)

DUMMY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건 카메라 드론과 비슷한 크기의 작은 새였다. 살아있는 새는 아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였다. 새의 두 눈에는 별 모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뭔데?”


“별새. 일종의 마법 낙하산 같은 거. 이걸 쓰면 지금의 6분의 1 속도로 천천히 떨어질 수 있어.”


‘6분의 1?’


“그러니까 이제부터 넌 아래로 내려가면서 네가 가진 그 라이터로 중간에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거야.”


그 말은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칠흑같이 어두운 구덩이를 혼자 조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이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하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적어도 개죽음만은 면해야 해.’


그때 주변을 돌아다니던 카메라 드론이 한이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 카메라···드론···새는 나만 탑에 들어가니까 뒤따라오지 않던데. 자발적으로는 AI 학생을 따로 찍지는 않아.’


“알겠어.”


“그래. 그런데, 부탁이 하나 더 있어.”


세현이 드론을 가리켰다.


“저거 하나랑 같이 가라.”


‘아.’


후욱, 하는 소리와 함께 세현의 손에서 검은빛이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카메라 드론 하나가 한이의 눈앞에 나타났다.


“가져가. 놓치는 일 없도록 해.”


‘왜, 라고 물어봐야 소용없겠지. 망했군···’


한이는 드론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세현이 건넨 별새를 받았다.


“이건 잘 보면 두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연결된 부분을 잡고 뛰어내리면 돼.”


‘잡고···뛰라고.’


그녀는 겉으로 당황한 티를 내지 않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세현이 그런 그녀를 보며 빙글거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해보자.’


잠시 후 탑 꼭대기에 다시 도착한 한이는 별새의 다리 부분에 왼쪽 손목을 건 다음 손으로는 카메라 드론을 쥐었다. 반대편 손엔 시계 라이터를 든 채였다.


그녀가 텅 빈 허공으로 몸을 던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별새가 제대로 작동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작동하지 않는다면 자살 시도나 마찬가지였다.


‘시험해 볼까.’


한이는 제단 위로 올라간 다음 높이가 2미터 정도 되는, 제단 뒤쪽의 천사상까지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뛰었다.


‘!······어라. 발이···’


1초 뒤, 발은 공중에 잠시 떠 있다가 사뿐히 바닥에 닿았다. 그녀가 별새를 보자, 별새의 눈에 불이 들어온 게 보였다. 불빛은 발이 땅에 닿고 3초 뒤에 꺼졌다.


별새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후, 한이는 뛰기 전, 입구에 매달린 채 통로를 막고 있던 판넬을 원래 있었을 위치로 되돌렸다. 달칵. 제 위치를 찾아간 판넬은 통로 안쪽에서 더는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뛰어내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1초 만에 떨어지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한이는 시계 라이터를 켜고 사방을 천천히 비추었다. 그곳엔 찬장에 놓인 오렌지 마멀레이드 병 따위는 없었다. 아주 오래된(적어도 겉으로는 오래되어 보이는) 석조 건물의 안쪽만이 보일 뿐이었다.


‘조금 더 벽 쪽으로 붙어서, 평범한 벽과 다른 점이 없는지 봐야겠어.’


그녀는 느릿느릿 옆으로 움직였다. 벽면 대부분은 먼지만 잔뜩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한 부분에 이끼가 끼어 있는 걸 본 한이는 멈칫했다.


‘왜 여기에만 이끼가 낀 거지?’


이끼는 그늘진 곳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햇빛이 아예 없는 공간에서는 살지 못한다. 즉 이끼가 낀 부분에는 이끼가 자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습기와 햇빛이 닿는다는 의미였다.


한이는 이끼 낀 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 과정에서 다리가 너무 벽에 붙지 않도록 조심했다. 혹여나 발이 벽에 닿은 채 3초가 지나면 큰일이었다. 별새가 꺼지면서 아래로 추락할 터였다.

그녀는 이끼 낀 부분을 라이터로 자세히 비추며 이끼가 끼어 있는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살폈다. 범위를 확인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끼가 낀 부분은 아치형의 문 모양이었다.


‘숨겨진 문이 있었어.’


그녀는 그 부분을 두 발로 차서 밀었다. 바로 열리지는 않았으나, 조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발로 다섯 번 더 차자 벽이 안쪽으로 조금 밀리며 그 틈새로 눈 부신 빛이 쏟아져나왔다. 한이는 그 바람에 잠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안 돼, 저기로 들어가야 해!’


앞을 못 보는 동안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던 그녀는 가까스로 비밀 문의 문턱을 잡고 올라왔다. 다 올라오고 나서야 한이는 난리통에 그녀가 왼손에 쥐고 있던 드론 카메라를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눈이 점차 빛에 적응하면서 그녀는 드론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도달한 곳은 어느 실험실이었다. 다양한 약초가 즐비한 찬장과 플라스크 및 램프가 놓인 탁자가 그녀를 반겼다.

하지만 한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그게 아니었다.


‘저건 태양인가?’


실험실의 한가운데에는 밝은 빛을 내는 구체가 떠 있었다. 비밀 문에 이끼가 자라날 수 있었던 건 그 구체 때문임이 분명했다.


‘뭐든 간에 저것 덕분에 이곳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구조로군. 정확한 쓰임새는 알 수 없지만···아. 쓰임새를 아는 방법은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이는 눈을 지긋이 뜨고 사방을 둘러보며 설명창이 뜨는지 확인했다.


다른 곳에는 마땅히 설명창이 뜨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가 이끼가 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설명창이 떴다.


<아티나의 실험실>


다른 부연 설명은 없었다.


‘아마 내가 AI 학생이라 그런 거겠지. 이렇게 꾸며놓고 아무 목적 없는 방일리는 없으니까.’


쿵.

문이 저절로 닫힌 건 그때였다. 그녀는 문을 두들기거나 발로 차 보았지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망할.’


한이는 실험실 내부를 한참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실험실에 나가는 길이 더는 없었다. 오로지 한이가 들어온 길뿐이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그래, 여기에도 비밀이 있겠지. 여기도 다 시험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일 텐데 아무 방법도 없을 리 없어.’


중간중간 시간을 초조하게 확인하던 한이는 30분도 넘게 지나도록 소득이 없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아닌가? 그럼 실험실의 내용물을 봐야 하나?’


그러나 실험실에 있는 책은 전부 한이가 모르는 언어로 쓰여 있었고, 그림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한이는 나무 스툴에 앉아서 신발을 벗었다. 그다음 밑창에 팔찌에 든 오팔을 가져가 댔다.

그러자 바닥이 녹으면서 안에 있던 깃털과 머리핀이 빠져나왔다.


‘알아. 아까부터 카메라 드론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하고 별개로, 이 안에도 별도로 카메라가 숨겨져 있겠지. 세현 선배가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내가 머리핀을 꺼낼 방법을 안다는 걸 들키는 거고.’


한이는 깃털을 손 위에 올리고 후 불었다.


‘하지만 역으로 그 때문에 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괜찮은 거야.

그 선배는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날 죽일 수 있다고 계속 말해왔지만, 진짜 죽이려 했던 건 정원에 있을 때뿐이었어. 즉···

카메라가 있는 한, 저 사람도 날 쉽게 죽일 수는 없는 거야!’


허공으로 날아오른 깃털은 책장에 가서 붙었다.


‘음? 이 책장 뒤에 숨겨진 문이···?’


그때 책장에 꽂힌 책들이 덜덜거리며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바닥에도 점차 진동이 전해지더니 실험실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이 위아래로 요동쳤다.


‘어······’


쾅.

책장이 있던 공간이 깔끔하게 뚫리면서 그 사이로 세현이 나타났다.


그는 이제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눈가에는 붕대를 감고 있고, 몸은 검은 도복 위에 역시나 검은색인 짧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또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그가 몹시 화가 났다는 점이었다.


‘잘 찾아왔군. 예상대로긴 하지만······!’


“야.”


그는 순식간에 검은 폭풍을 일으켰다. 폭풍은 한이의 주위를 감싸더니 그녀를 벽에 패대기쳤다.

쿵! 벽에 부딪힌 그녀의 머리가 웅웅 울렸다.

폭풍은 그녀를 벽에 밀착시킨 채 움직임을 완전히 차단했다.


“내놔.”


세현은 말하더니 한이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머리핀을 낚아챘다. 그러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한이의 이마에 대고 뭔가 중얼거렸다.


한이는 머리 주위로 먹구름처럼 생긴 검은 연기가 맴도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세현은 말했다.


“너. 머리핀 꺼내는 방법을 언제 들었는지, 누구한테 들었는지, 그리고! 애초부터 그 머리핀이 네 손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뭔지까지 다 말해.”


그녀는 갑작스러운 명령조에 당황했다. 하지만 세현을 이 이상 화나게 했다간 진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그녀는 차근차근 생각해 내서, 마침내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오래 걸린 모양이었다. 세현이 별안간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자신의 두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어라.’


세현은 다시 한번 같은 손동작을 하며 다른 걸 요구했다.


“그럼 E-98이랑 정했던 암호문 처음부터 끝까지 읊어 봐.”


‘그, 그런 건 기억도 안 나는데···?’


“······”


이번에도 한이가 오랫동안 대답을 하지 않자 세현의 표정이 한층 더 어리둥절하게 바뀌었다.


‘잠깐만.’


한이는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어렴풋이 알아챘다.


‘혹시 지금 스킬···같은 걸 쓴 건가?’


“하아.”


한숨 소리와 함께 한이의 몸이 붕 날아오르더니, 이끼 낀 문이 열리며 그 너머 어둠의 공간으로 떨어졌다.


‘?!’


그와 함께 세현도 같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카메라 드론이 문 반대편에서 퍽,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커헉···”


한이의 목이 점점 졸리며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그녀 자신의 가쁜 숨소리만 들려왔다.

틱. 한이는 그 안에서 기계 버튼을 누르는 작은 소음을 들었다. 세현이 마이크를 끄는 소리였다.


“방금 다시는 마이크 안 끄겠다고 했었는데.”


화르륵, 작은 불꽃이 세현의 손에서 타올랐다. 주위가 삽시간에 밝아졌다.


세현과 한이는 공중에 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세현은 여유롭게 풍경을 관망하고 있었지만, 한이는 숨이 멎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안 되겠어. 이건 꼭 물어봐야겠다. 넌 방금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


그가 물었다.


“컥···켁······”


한이의 목에서는 숨넘어가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세현은 마법의 힘을 조절했다. 그녀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된 후에도 연거푸 기침하며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방금 일?

방금 일이라는 건, 세현 선배가 이마에 두 손가락을 갖다 댄 거 말하는 거지? 그게 나한테 제대로 안 통했다는 건가? 그리고 질문을 했는데 내가 대답이 바로 안 나오니까 당황했었지.

그 말은 뭔가···자백을 유도하는 스킬 같은 걸 쓴 걸까?’


한이는 도영이 보여주었던 판타지 소설에서 ‘세뇌’나 ‘자백’ 등을 마법으로 유도해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게 나한테 안 통했다는 건 보나 마나, 내가 깨어났기 때문일 거야. 다른 AI 학생들은 정신까지도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내가 깨어난 사실을 저 사람한테 말할 수는 없어.’


전날, 1층 정원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순식간에 차단하고 한이에게 접근했던 세현은 이번에도 역시나 같은 행동을 했다.

이는 그에게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의미였다. 또한, 그의 뒤에는 이를 가능케 해주는 배후가 있었다.


‘해나령 때와는 달라.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저 사람은 위험해.’


“대답해. 방금 일, 어떻게 된 건지 아냐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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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준비 23.11.02 1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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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구출 23.10.27 8 0 10쪽
150 마찰 23.10.25 13 0 10쪽
149 확인 23.10.22 17 0 12쪽
148 추적 23.10.21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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