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追利無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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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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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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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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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DUMMY

남정욱은 몹시 기분이 편치 않았다. 가뜩이나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참가하게 된 비무대회인데다 정해진 시간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첫 상대로 결정된 사공부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꼴에 명가의 자식이라고 기를 죽이고 싶은 건가?’


사대 세가의 일각을 맡은 명문 사공 세가의 후계자인 사공부에게 남정욱 같은 무명 소졸과 검을 맞댄다는 것은 일견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남정욱은 사공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렇게 수많은 군중 앞에 자신을 한참동안 홀로 세워두어 구경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아둥바둥 올라온 단단한 근성을 지닌 남정욱에게 이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정도였다. 분노를 장작처럼 쌓아올린 남정욱은 속내가 훤히 드러나는 요망한 수를 부린 사공부가 나타나면 그에게 일시에 점화시킬 요량으로 허리에 찬 도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나 남정욱의 격렬한 분노는 사공부가 아닌 한 소녀가 무대에 대신 올라오며 의구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니 올라 오라는 사공부는 오지 않고 나타난 저 여인은 누구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갑작스레 등장한 소녀의 정체가 궁금해진 군중들이 저마다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차 웅성대는 소음으로 변질되었고 이 광경을 상석에서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무림맹주 심헌창의 미간이 찌푸려질수록 대회 주관을 맡은 집화단주 모획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저 계집은 또 뭐고!"


"금...금방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길길이 날뛰는 모획의 분노에 집화단원 하나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려 달려나가기 전 소녀의 뒤에서 숨을 헐떡이는 한 중년의 집화단원이 객석의 군중들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했다.


“본인은 무림맹에서 말직을 맡고 있는 양진이라고 하오. 다름이 아니라 대회가 열리기 직전 사공부 소협에게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참가가 곤란하게 되었소. 이에 공석이 생겨 남 소협을 기권승으로 올리고자 했으나 여기 계신 매산문의 탁미루 소저가 참가 의사를 밝혀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으니 무림 동도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는 바요.”


탁미루의 소개를 마친 양진은 무엇에 쫓기는 양 다시 황급하게 무대에서 물러났다.웅성대던 군중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의아해하다 이내 어찌 되었든 대회가 속행된다는 소식에 반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예정에 없는 참가자의 출현에 심헌창의 심기는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부맹주, 이것도 계획에 있었던 일이요?”


“아...아닙니다. 이보게, 집화단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단원 하나를 보냈으니 곧 보고가... 아,아닙니다. 제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서슬 퍼런 공단의 눈빛을 발견한 모획은 땅에 닿을세라 머리를 조아리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집화단을 향해 달려나갔다.


한편 자신의 상대가 사공부에서 처음보는 여인으로 바뀌게 된 남정욱은 한순간에 맥이 풀리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무명인 자신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명문가의 자제인 사공부를 때려 눕혀 그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려 했건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명인 여인에게는 이겨봤자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망이 역력한 남정욱의 기색은 마주선 상대방에게도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고 탁미루는 그의 눈빛에 담긴 속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소녀가 아닌 듯 했다.


“똥마려운 개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엊저녁부터 화장실을 못간 모양이지?”


“하아... 내가 시장통에서 굴러먹을 때도 여자랑 애는 때려본 일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그 둘 모두 해당이 되는 걸 상대하게 되다니...”


“얘기를 듣자하니 아직 여자와 애한테는 맞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오늘 본녀가 아량을 베풀어 네 종지만한 인생관을 크게 넓혀주도록 하마.”


건방진 탁미루의 도발에도 남정욱은 이에 별다른 반응 없이 손에 쥔 사락만의 날을 가볍게 한 바퀴 돌려 역날로 바꿔 쥐고는 그녀를 향해 도를 까딱거렸다.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되려 역으로 도발에 걸린 탁미루는 앳된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검을 빼어들어 남정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라?"


분명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던 탁미루의 신형은 그대로 귀신같이 남정욱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에 당황하던 남정욱은 오른쪽 목덜미 부근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예리한 감각을 느끼고는 본능적으로 도를 재빠르게 갖다 대었다.


캉-


손에 쥔 도의 끝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남정욱의 귀를 울렸다. 비록 목숨을 상하게 하면 되려 패배로 처리가 되는 비무 대회의 규정상 탁미루의 공격은 살수(殺手)까지는 아니었지만 단번에 그를 패배시킬 만한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비장의 한 수가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탁미루의 얼굴은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마냥 잔뜩 신나보였다.


“어? 이걸 반응한 걸 보니 생긴 거랑 다르게 네가 그 멀대보단 좀 하는구나.”


“너... 정체가 뭐야?”


“머리가 안 좋은 거야? 귀가 안 좋은 거야? 아까 저 아저씨가 알려줬잖아. 매산문의 탁미루라고.”


기습적인 일 검을 가까스로 막아낸 남정욱은 비록 탁미루가 어린 소녀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검은 절정의 수준에 달한 고수의 검이란 것을 알아챘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 판단을 내린 남정욱은 역날로 쥔 도를 제대로 돌려 잡은 뒤 있는 힘을 다해 탁미루에게 도를 휘둘렀다.


쇄애액-


눈을 어지럽히는 허초가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가로 베기. 그것은 이름난 검식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허식이 없는 만큼 간결했고 더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상대하는 이로 하여금 사인(死因)을 깨닫지 못하고 절명할만한 쾌도(快刀)!


그러나 탁미루는 상체를 살짝 뒤로 젖혀 공격을 가슴 위로 지나가게 함으로 남정욱의 도를 가볍게 피해내었다. 허리를 젖힌 채로 고개만 빼꼼 내민 탁미루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빠른 칼은 대머리 아저씨 이후로는 처음인걸. 너 맘에 들었어.”


‘세상이 참 넓구나. 그 인간 말고도 괴물이 또 있었구나...’


남정욱이 자신보다 어린 상대에게 벽을 느낀 것은 벽운경에 이어 이것이 두 번째였다. 비록 벽운경을 상대하던 그날 느꼈던 절대적인 무력함 만큼은 아니었지만 소녀는 확실하게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상대였다. 그렇다고 사나이 체면에 이대로 칼을 던지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남정욱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자신이 가진 최절초를 선보였다.


쇅-쇅-솨사사삭-


남정욱의 손이 눈이 따라가기 힘들 만큼 무질서하게 분주히 움직이자 수많은 궤도의 도의 폭풍이 몰아쳤다. 정해진 초식이 없는 최대 속도의 베기 연타. 그 참격 하나 하나에 남정욱이 자랑하는 엄청난 괴력이 실려 있었고 상대가 운 좋게 최초의 참격을 받아낸다 치더라도 이어지는 후속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기 마련이었다.


자칫하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남정욱의 공격에도 이를 비웃듯 정면으로 맞선 탁미루는 얇은 검과 가는 몸을 놀려 공격을 모두 흘려내었다. 검무를 추는 무희를 연상케하는 유려한 그녀의 동작에 객석의 군중들을 비롯한 무림맹 내 수많은 무인들은 잠시 홀린 듯 숨을 놓고 바라보았다.


탁미루의 화려한 춤사위의 마지막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목욕해 젖어버린 남정욱의 가슴을 검으로 겨누는 것으로 장식하였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패배이기에 남정욱은 바닥에 도를 던져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들어 순순히 결과에 승복했다.


"내가 졌소."


"스...승자는 매산문의 탁미루 소저요!"


승자의 이름이 크게 울려 퍼지자 탁미루는 검을 검집에 넣고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세워 올렸다. 그러나 단 네 합 만에 싱겁게 끝난 대결의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진 군중에게서는 어떠한 환호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뭐야? 뭔가 휙휙 춤추듯이 지나갔는데 그만큼 저 소저가 대단했던 건가?"


"상대가 별 볼 일 없는 놈일 수도 있지. 무선 후인의 의동생이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지 않나."


그러나 벽운경과 심헌창과 같은 절정의 고수들에게 이 비무의 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의동생의 패배에도 벽운경은 아쉬워하기보단 흥미로워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공단을 비롯한 무림맹 수뇌부는 서둘러 소녀와 그녀의 사문인 매산문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 탁미루는 얼굴을 붉힌 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정욱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며 말했다.


"너무 분해하지는 마. 내게 인정받은 상대는 본산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얼마 안 돼."


"어린 애한테 인정받으니까 정말 눈물 나게 감동적이긴 하네."


"키키킥. 그래도 여자랑 애는 안 때린단 맹세는 지켰으니 잘 된 거잖아. 그리고... 난 그렇게 어리지 않아. 올해로 벌써 열일곱 살인걸."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한참을 낄낄대던 탁미루는 입을 벌린 채 바보처럼 서있는 남정욱을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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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0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38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5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1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38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46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4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54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2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2 7 9쪽
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39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49 6 10쪽
»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6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67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5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49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3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67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4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1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3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1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5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3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1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2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2 7 12쪽
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2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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