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追利無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7,434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6.27 20:32
조회
129
추천
6
글자
10쪽

사자귀환(死者歸還)-1

DUMMY

백관을 잠시 뒤로 물린 심헌창은 도진기의 상세를 훑어보았다. 갈정이 대신하여 벽운경을 막아주는 동안 어느새 안전한 위치에 대피한 도진기는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다행히 골절되거나 내상이 심해보이지는 않았다.


다행히 무림맹 내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행위는 막아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심헌창은 벽운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혹스러운 표정의 심헌창은 벽운경에게 자초지종을 캐묻기 시작했다.


“자네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거늘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내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저자는 무림 명숙이 한데 모인 이 자리에서 한 문파의 존장을 공공연히 모독한 것은 물론 급기야 무림 공적으로 지칭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이지요.”


“...그게 사실인가?”


“그것은...”


책임을 추궁하는 듯 한 서슬 퍼런 심헌창의 눈빛에 도진기는 기가 눌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업무 중에 술을 마신 것은 물론이고 손을 먼저 쓴 것도 도진기 쪽이었기에 그는 차마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다.


그때 그를 대신하여 갈정이 목소리를 높여주었다.


“갈! 단순히 의혹을 제기한 것만으로 대뜸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려드는 걸 보면 어딘가 구린 구석이 있는 놈이 분명하네. 무림맹은 시시비비를 가리어...”


“갈 선배, 저는 도 교두에게 물었습니다.”


“뭣?!”


까마득한 후배인 심헌창에게 말이 도중에 끊긴 갈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갈정은 노련한 인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도진기의 목숨은 자신이 아닌 심헌창의 손에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분함을 억누르고 이를 앙다물었다.


“말해보게, 도 교두. 황 소협의 말이 사실인가? 자네가 황 소협, 아니 황 장문인을 무림 공적으로 몰았다는 게 사실이냔 말일세.”


“...사실입니다. 저는 저자가 혹 사라진 벽운경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후 도진기는 열변을 토해가며 황옥과 벽운경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애써 증명하려 들었다. 그러나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심헌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황 장문인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지. 황 장문인은 절대 벽운경이 될 수 없어.”


“그렇지만...”


“왜냐면 벽운경은 이미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네. 백관!”


“예!”


심헌창의 부름을 받은 백관이 품 안에서 고이 접은 서찰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백관에게 건네받은 서찰은 심헌창의 손을 통해 도진기에게 전해졌고 이를 펼쳐본 뒤 도진기는 크게 경악하였다.


“백발검귀 벽문천의 생존 소식이 알려지자 자취를 감추었던 벽운경이 새월(塞越)에서 한 달 전 거병... 사파의 잔존 무리와 근방 군소 세가들을 규합하여 새월 일대에 세력을 결성...”


“벽운경이 새월에 모습을 보인 건 한 달 전, 그리고 황 장문인은 여기 칠곡에 기거한지 무려 세 달이 넘었네.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나?”


“죄송합니다.”


“무림의 안위를 위한 도 교두의 마음을 감안해 너그러이 감싸주고는 싶지만 애석하게도 용서는 내 몫이 아닌 것 같군.”


본디 아랫사람의 잘못은 윗사람의 허물과도 같은 법. 그러나 더 이상 사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심헌창의 말에 도진기는 도살장에 끌려가듯 힘없이 벽운경의 앞에 서게 되었다.


“황 장문인의 명예에 누를 끼치게 된 점, 도 모(某)가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비록 고개를 숙여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으나 수그린 도진기의 목덜미의 피부색이 벌게진 것으로 보아 그는 몹시도 분한 모양이었다. 명문가의 자제로 살아온 그에게 이는 참기 힘든 굴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진기에겐 애석하게도 벽운경의 분노는 여기에서 만족하고 수그러들지 않았다.


빠드드득-


팔을 잡아 부축해 일으켜 세워주는 듯 부드러운 벽운경의 손길은 돌연 잘려나간 도진기의 팔뚝을 세차게 움켜쥐더니 그것을 단번에 으스러뜨렸다.


“크아악!”


“사문을 욕보인 당신의 죄는 마땅히 손을 잘라야하겠으나 잘잘못을 묻기에 이미 당신은 벌을 받은 듯 보이는군. 그러니 당신은 부디 이 고통을 잊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는 자중하기를 바라오.”


말을 마친 벽운경은 휙 돌아서더니 내당을 나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심헌창 또한 멀어지는 벽운경의 뒷모습과 도진기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집무실로 돌아갔고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진 연회는 자연스럽게 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벽운경의 숙소에 심헌창의 명을 받은 백관이 찾아왔다.




“그래, 무림맹에 처음 온 소감이 어땠느냐?”


“세간 사람들이 어찌 칠곡을 천하 무림의 중심이라 말하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덕분에 견식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온갖 재화와 인물들이 몰리는 금오전장에서 자란 강원보라 할지라도 오늘처럼 많은 영웅들을 한 자리에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기라성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도 가장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단연 황옥, 즉 벽운경이었고 두 숙질은 곧 그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원보 너는 황옥 그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문이 마냥 허황된 것이 아니더군요. 적희권 갈정이라면 무림 삼선과 비할 바 못 되지만 그래도 강호에 수십 년간 이름을 널리 알린 고수임에도 황옥이 그와 동수를 이룬 것을 보면 장차 그의 이름은 더 높아질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투자하기에 좋은 인물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생각되는구나.”


강오기는 조카의 식견에 아쉬움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처음 그가 거침없이 심헌창의 위선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했을 때엔 나는 황옥이 권위와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을 지닌 인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후 무림맹의 교두와 갈정과 대립하며 일으킨 폭행 사건으로 그는 마선을 상대하여 얻은 명망을 너무나 허무하게 바닥으로 실추시켜 버렸지.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자들은 제 명에 살기 힘든 법. 그는 적을 너무 쉽게 만드는 성향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황옥은 오늘 행동으로 꽤나 많은 것을 얻어갔습니다.”


의외의 답변을 듣고 놀란 강오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강원보는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하였다.


“비록 마선의 초식을 모두 받아내며 단번에 기린아로 떠올랐으나 아직 그의 위치는 두각을 드러낸 일개 후기지수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무명(武名)이 있는 명숙일수록 마선이 약관 남짓 되는 어린 후배에게 전력을 다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를 더욱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네 말이 맞다.”


실제로 벽운경은 연회의 주인공인 것이 무색하게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었다. 이는 그만큼 적지 않은 이들이 내심 벽운경을 단순히 운이 좋았던 애송이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그는 교두와 있었던 개인 간의 갈등을 문파에 대한 도전으로 끌어올려 자신의 지위를 일개 고수에서 장문인으로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에게 공고히 인식시켰습니다. 솔직히 황림문 같은 일인 문파를 어느 누가 문파라 인정하겠습니까?”


강호에는 문파에 속하지 않은 수많은 고수들이 있다. 그중에는 무선과 벽운경과 같이 일자 전승으로 전해진 이들이 적지 않게 있었는데 이들 중 어느 누구하나 문파의 장문인을 자처하는 이는 없었다.


이들에게는 문파는 곧 자신이었고 오직 실력만이 강호에서 그들의 위치를 대변하였다. 그러나 벽운경은 아직 무선과 같은 무명을 얻지 못했음에도 무선의 직계와 그의 이름을 이었다는 점을 이용해 교묘히 내로라하는 명문 대파의 장문인들과 동격의 배분을 얻어낸 셈이 되었다.


거기에 전력을 내보인 갈정과의 대결에서 동수 혹은 보는 이에 따라 반 수 정도 앞선 결과를 얻어내어 실력적으로도 무시 못 할 무위를 지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이로써 황옥은 명실공히 무선의 정당한 후인이자 후기지수 이상의 실력을 가진 자라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의도한 바였다면 그는 실력에 못지않게 심계 또한 몹시 무서운 자일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황옥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닙니다, 숙부님. 그에게는 단 한 푼도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카의 말에 강오기가 의문을 표했다. 나이와 경험에 비해 강원보는 타고난 총명함으로 인해 분석하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나 가끔은 이렇게 엉뚱하게 말하는 구석이 있어 총관인 그 역시 그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할 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금이 아닌 만금을 투자하더라도 황옥에게서는 조금의 이익을 얻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불길 같은 사람인지라 금전을 이용해 통제하려 들다간 도리어 우리에게 화마가 치밀지 모르니 지금으로써는 그저 관망하는 것밖엔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되도록 척지지 않는 것으로 그에게 적이 될 의사가 없음을 서서히 인식시키자는 말이구나. 네 안목이야 덧붙여 말할 필요도 없으니 이번 무림맹에서 수확은 이것으로 족할 것이다.”


만금을 지참하여 그간 인연이 없던 대성파의 인물들을 우군으로 감으려 했던 강오기는 검선과 그 일행이 자리를 비워 허탕을 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의 수확이었던 벽운경과의 만남 덕분에 그는 형이자 금오전장의 장주인 금왕(金王) 강적기(姜積起)를 볼 낯이 생겨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벽운경은 백관을 통해 심헌창의 서신을 전달받은 뒤 그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심헌창은 그에게 대뜸 백발검귀와 벽운경의 이름을 늘어놓으며 그에게 은밀히 밀명을 내렸다.


“백발검귀를 죽여주게. 되도록 그가 새월에 있는 벽운경과 접선하기 전에 말이야.”




재밌게 보셨나요? 그렇다면 추천과 선호작 등록, 그리고 혹여나 시간이 나신다면 작품 추천의 글 부탁드립니다! 응원과 지지는 작품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다보니 솔직히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가 없게 되더군요. 휴재를 하게 생긴 일에 고지를 했어야 했는데 당시엔 그럴 정신조차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단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최선을 다해 글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추리무협(追利無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 연재는 평일 저녁 6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2.06.18 77 0 -
71 사자귀환(死者歸還)-2 +2 22.06.29 185 6 10쪽
»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0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38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5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1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38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46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4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54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2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2 7 9쪽
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39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49 6 10쪽
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5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67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5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49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3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67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4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1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3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1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5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3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1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2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2 7 12쪽
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2 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