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Dreamer) :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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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reamseller
그림/삽화
dreamseller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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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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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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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Ep45 괴물

DUMMY

"당신은 물론 알고 있겠죠? 우리가 잊은 사람의 이름."


"하, 말해도 그게 진짜 그 사람의 이름인지 모를텐데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지?"


"덜 아프게 해드릴게요."


"하하하, 뭐 좋아. 아픈 건 싫으니까. 보시다시피 나는 몸이 허약해서 말이지. 뼈가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해달라고. 신우현이야. 신우현."


스파이이자 해커였던 남자는 그렇게 아무런 감정 없이, 중요성 없이,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그 세 글자를 말해주었다.


그 이름 세 글자를 듣고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 뿐이었다.


"거봐, 어차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잖아?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군. 아무튼 약속대로 살살 해달라고."


뻔뻔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해커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희재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며 손목을 푸는 동작을 취했다.


"글쎄, 그건 김유정이랑 한 약속이고. 나는 일단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말이야. 아무튼 캠비온에서 보낸 쥐새끼란 말이지?"


"뭐야. 이래서야 기껏 알려준 보람이 없군그래. 그렇게 주먹을 꽉 쥐고 다가오면 겁난다고. 폭력은 싫어. 대화로 하자고 대화. 개인적으로 몸으로 하는 대화는 적성에 안 맞아서 말이지. 누가 내 몸에 손대는 것도 싫어하고. 고문이라니 세상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나불나불 시끄럽네. 우리 컴퓨터 형님은 너처럼 말 많은 타입이 아니라고!"


희재의 주먹 쥔 오른손이 해커를 향해 뻗어가다가 도중에 멈춰버렸다.


갑자기 뭐지? 단순히 위협만 하려던 것이었을까? 그 모습이 어쩐지 뜬금없는 판토마임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서 살짝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희재 본인의 표정은 우습기는커녕 무척이나 당황한 사람처럼 보였다.


갑자기 어디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라도 본 사람처럼 그 자리 그대로 돌처럼 굳어서 몸만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렇게 멈춘 자세로 몇 초 동안이나 꿈쩍도 안 하고 있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정이 여전히 해커를 계속 누르고 있는 상태로 고개만 살짝 갸웃하면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면 끈 좀 가져와서 묶... 어?"


그러는 유정의 상태도 어딘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자세를 점점 세우더니 급기야 해커의 몸에서 손을 완전히 떼어버렸다.


흐름상, 그의 구속을 풀어줄 이유가 전혀 없었을 텐데.


덜 아프게 해주겠다던 약속을 지킬 생각일까? 그렇게 해석하기엔 너무 해방된 것처럼 보이는데.


여전히 수갑을 차고 있기는 하지만, 해커는 그에 맞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희재와 둘이서 짜고 연극이라도 했다 하면 그대로 믿어버릴 정도로 둘 다 아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치 강제로 보이지 않는 뭔가가 억지로 움직이게 한 것처럼 보여서


"폭력은 싫다니까 그러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해커를 사이에 두고 굳은 채로 멈춰있던 희재와 유정이 각각 양쪽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처럼 직선으로 날아갔다.


솔직히 이 이상으로 당시 상황을 더 잘 표현할 자신이 없다. 먼저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몸이 움직여야만 했다.


애초에 그것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왼쪽으로 날아간 희재는 중간 경로에 있던 재상이 거의 반사적으로 잡아냈고, 오른쪽으로 날아간 유정은 나와 현석이 겨우 몸을 날려 어떻게든 벽에 부딪히는 사고만은 막아낼 수 있었다.


데스크탑 자리에 앉아있던 아람은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있는 우리 쪽을 향해 달려와 주었다.


순식간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받은 우리들은 가까스로 정신을 잃지 않고 붙잡아 둘 순 있었지만, 사고회로는 그대로 멈춰버렸다고 해도 좋다.


그 후로도 모든 멤버들이 한참 동안이나 그런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나보다 뛰어난 인재들이 널린 이곳에서조차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쉽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고, 다들 나처럼 이 이상 현상에 대해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해커가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기자, 그는 어느새 수갑조차 벗어 던진 상태로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잠깐 시간 날 때, 혹시 몰라 수갑의 구조를 미리 검색해 봐서 다행이야. 요즘은 정말 별것들이 다 올라온다니까. 괜히 정보의 바다가 아니야. ...그러게 서로 말로만 했으면 좋았잖아?"


"으, 윽... 어떻게... 열쇠는 놓고 왔는데..."


"아하하.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 아가씨. 간만에 탐정 놀이는 즐거웠나?


구조만 알고 있으면 열쇠 같은 건 필요 없어. 심지어 게임이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머리핀도 필요 없지. 특히 나 같은... 하하. 괴물한테는 말이야."


우리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해커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기만 할 뿐, 딱히 도망가려 하거나 덤벼들지도 않았다.


정체가 들킨 스파이치고는 너무 여유가 넘쳐흘렀다.


"솔직히 너희들한테는 아주 실망했어. 드리머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있길래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실상은 바퀴벌레만도 못하더군.


캠비온이 무서워서 숨어다니기 바쁘고, 능력을 활용하기는커녕 썩히기만 하고 있고 말이야."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기타 아가씨. 회복이 빠르네. 건강해 보여서 부러워. 그 몸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시원시원한 성격답게 그냥 쿨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네.


그래서, 전부 캠비온 탓이라 말하고 싶은 건가? 뭐 그래, 그게 맞겠지.


하지만 싸우려 들지도 않고 이런 꿉꿉하고 냄새나는 곳에서 언제까지 숨어만 있으면 뭐가 달라지지? 평생 우리 눈을 피해 숨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이제 더는 유정의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들켰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것인지, 이제 더는 해커의 태도에서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하는 모양새로 봐선 이미 캠비온 쪽 사람이라고 밝힌 거나 다름없어 보이는데.


우선 그 여부를 떠나서라도 이미 저 자리에 홀로 앉아있는 남자가, 더는 우리들이 알고 있던 동료가 아니며, 분명한 적이라는 것쯤은 누가 내게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그 적에게 직접적인 공격까지 받은 상태다. 그 공격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지만.


누구 한 사람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각자가 알아서 몸을 추스름과 동시에 거리는 조금 있는 편이었지만 해커의 주위를 빙 두르는 형태로 서 있게 되었다.


적이 도망칠 수 없도록, 언제라도 제압 할 수 있도록. 누가됐든 신호만 보내면 모두가 동시에 저 남자에게 달려들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절대 이대로 놓쳐선 안 된다.


"음? 더 해볼 생각이야?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네. 부러워. 나도 한때는 체중을 좀 늘려보려고 식사량을 늘려보기도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


다들 그렇게 예민하게 굴 필요 없어. 나는 도망칠 이유도 없고 도망치지도 않아. 너희들은 그러고 싶어도 못하겠지만."


"하, 센척 좀 하지 마! 방금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는 우리가 많아. 아재, 그 돼지 같은 배때기으로 저 자식 깔아 뭉개버리라고! 자신 있지?"


"하여간 어린놈이 어른한테 말하는 싹수하고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주 그냥 묵사발을 만들어 버릴라니깐."


희재와 재상이 주먹을 불끈 쥐고 당장이라도 들이받을 듯이 투지를 불태웠다.


솔직히 그런 불가사의한 힘에 겁먹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마 유정도 현석도 아람도 나와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무서워할 필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절호의 기회다.


모든 상황을 역전시킬 뜻밖의 찬스.


저 남자만 잡으면, 잡아내서 모든 것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캠비온의 정체를 온 세상에 알릴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구해낼 수만 있다면.


겨우 이 정도로 주춤할 수는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의 해결책이, 진정한 자유가, 바로 우리들 눈앞에 있는 셈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얼마 전 유정을 살리기 위해 무턱대고 달렸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생각 없이 달리자. 몸을 날려버리자.


현석이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셋에 움직입시다. 하나."


"뭐, 힘을 빼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해. 말리진 않겠어."


"둘."


"모르는 힘을 마주하고도 달려들 생각부터 하다니. 불나방 같네."


"셋!"


...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달려갈 수도, 달려들 수도 없었다.


그래도 속으로 우려했던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유정과 희재가 날아가 버렸던 것처럼 우리 몸이 전부 날아가 버리거나 하는 미래를 상상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신체적인 움직임 자체는 아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리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고 손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위로 올라갈 수도 없는 도저히 다행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여버리게 됐다.


그렇다. 위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니고 앞도 뒤도 아닌 위다.


현재 모든 모피어스 멤버들의 고개는 살짝 뒤로 젖혀져 있고 시선은 45도 위를 향하고 있다.


셀카를 찍는 것이 아니다.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산의 정상을.


"다들 표정들이 하나같이 재미있네. 마술사가 관객들을 놀리면서 얻는 보람이란 대충 이런 느낌일까?"


산이라고 해서 흙이나 바위로 이루어진 산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곳은 실내이지 실외가 아니며,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기는 하나, 바닥도 제대로 시멘트 같은 단단한 재질로 메워져 있는 평범한 건물 내부 환경이다.


이 지하 공간에 흙이나 바위 같은 요소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거나 하면서 흙더미가 솟아올랐다는 전개도 아니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런 상황도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식의 힘 낭비는 하지 않은 듯 보였다.


애초에 이런 것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조차 모르겠으니 힘을 낭비하고 말고를 아무리 떠들어대 봤자 소용없다는 기분도 들고 말이지.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 말하자면, 그것은 수많은 책상과 수많은 의자와 수많은 캐비닛 등이 서로 겹치고 뒤엉켜서 만들어진 거대한 고철더미 산이었다.


물론 전부 아지트 내부에 있던 물건들이다.


그 곳곳에 흩어져있던 요소들이 마치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혹은 강력한 자석에 이끌려서 한 점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보는 눈앞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 저 수수께끼의 남자가 실실 웃고 있는 꼭대기 지점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주르륵 쌓아 올려져 갔다.


쉽게 상상할 수 없다면 그 상상을 멈춰도 좋다. 이미 내 상상의 범주를 한참 초월한 광경이니까.


우리는 그대로 멈춰 서서 멍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 무리해서 접근했다가는 저 산더미에 그대로 깔려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이 아지트 내부는 지상에서 계단으로 한참 내려와야 할 만큼 깊이가 제법 있는 편이다.


그만큼 천장도 보통 건물의 2~3층 정도로 높은데, 고철더미 산은 그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한 지점까지 높게 쌓아 올려져 있다.


쉽게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곳곳에 비집고 나온 틈으로 어떻게든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어 보이면서도, 어딘가 기분 나쁘게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듯이 둥둥 떠 있어서, 제대로 몸무게를 지탱해 줄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실해 보이지 않았다.


그 높은 정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시선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했으며, 빔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 비춘 그 표정은 한층 더 그를 악마 같아 보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악마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야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마는 산 정상 위에서, 비정상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의자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동안 한시도 벗는 일이 없었던 깊이 눌러쓴 모자를 휙 벗어 던져버렸다.


그러자 그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뒤로 묶은 기다란 주황빛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리며 나타났고, 그의 허여멀건 피부며 이국적인 푸른색의 눈동자가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훤히 드러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캠비온의 오너,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괴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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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덤 셋. 조각모음 22.06.21 26 1 14쪽
54 덤 둘. 락스타 22.06.20 16 1 13쪽
53 덤 하나. 머니맨 22.06.20 19 1 11쪽
52 Ep? ??? 22.06.19 23 1 14쪽
51 Ep50 악몽 22.06.19 33 1 25쪽
50 Ep49 죄 22.06.18 26 1 11쪽
49 Ep48 죽음 22.06.17 32 1 12쪽
48 Ep47 오만 22.06.16 27 1 13쪽
47 Ep46 장난 22.06.15 26 1 13쪽
» Ep45 괴물 22.06.14 27 1 13쪽
45 Ep44 이름 22.06.13 20 1 12쪽
44 Ep43 셜록 (행복해지기 위하여) 22.06.12 28 3 15쪽
43 Ep42 셜록 (내려놓다) 22.06.11 36 4 16쪽
42 Ep41 셜록 (시험지) 22.06.10 26 3 15쪽
41 Ep40 셜록 (해커) 22.06.10 25 2 16쪽
40 Ep39 셜록 (쉬어가기) 22.06.09 25 3 11쪽
39 Ep38 셜록 (손아람) 22.06.08 23 2 14쪽
38 Ep37 셜록 (쉴 수 없는 탐정) 22.06.07 25 2 16쪽
37 Ep36 셜록 (비밀 공간) 22.06.06 27 3 12쪽
36 Ep35 셜록 (수상한 서재) 22.06.06 2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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