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 화 – 기다리기.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44 화 – 기다리기.
워스만과 류안의 격전[激戰].
벨드라엔이 아는 한.
전쟁의 신 워스만은 격투 실력이 제 기준에 맞아야만 상대해 줄까 말까 했고,
기준은 고사하고 형편없으면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주제 파악 못 하고 덤빈다고 설치면 그때는 그냥 인정사정없이 한 방에 보내 버리는 녀석이었다.
‘···류안한테 그 정도의 실력이 있었나?’
“저···, 워스만··· 님이 류안한테 어느 정도는 맞춰준 것이 보이긴 했지만, 두 신의 격전은 대단했어요.”
쇼트는 정말 굉장한 것을 봤다는 듯,
아니지 봤기에
두 눈을 반짝이며 그 격전을 회상하고 있었다.
“류안한테 기생 마수가 있잖아.”
“───···???”
이건 뭔 소리인가 싶어
다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재상들을 피해 요리조리 농땡이 피우다가 오랜만에 집무실에 얼굴을 비춘 루카테르가 보였다.
루카테르는 뒤이어 말을 했다.
“기생 마수의 능력 중 하나가 숙주의 신체 능력을 증폭하고 향상해 주는 것이거든.”
“아──···.”
벨드라엔과 그 외 사람들은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그러던 중,
기생 마수의 능력에 대해 말해 준 루카테르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음···, 그렇다고 해도 신체 능력이 꽝인 숙주를 전쟁의 신과 맞겨룰 수 있을 정도로 향상해 주지는 못하는데···. 그게 가능했으면 약한 존재한테 기생했다는 이유로 수명이 단축되고 멸족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이래저래 생각하던 루카테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문을 털어냈다.
애초에 유일하게 기생 마수가 기생할 수 없는 존재가 ‘신’이었다.
그런데, ‘인형’과는 다른 육체라 그런지 기생 마수가 기생하고 있는 것부터 해서
류안은 이제껏 알고 있는 신에 관한 상식을 파괴하는 녀석이었기에,
의문이 들어도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뭐야? 류안 얘기하고 있었나?”
“─────!!!!!”
갑자기 끼어든 전쟁의 신 워스만에 의해 다들 놀라 몸을 움츠렸다.
“너─···!!!”
벨드라엔이 인상을 구기며 말하려 하는데,
워스만이 그 말을 끊고 먼저 말을 했다.
“문을 두드렸는데도 대답이 없어서 그냥 들어온 건데 뭘 그리 놀라고 있어? 죄지었냐?”
워스만의 뻔뻔함에
벨드라엔은 소리 없는 한숨을 푹─ 쉬었고
레이쉴은 두통이 스멀스멀 올라온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쌍둥이 제우와 네우는 조용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으며
쇼트는 의외로 무덤덤하게 있었다.
그런 와중에
루카테르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워스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오─, 양아치 드래곤. 오랜만에 보는군.”
초면이 아니라는 듯 워스만이 먼저 아는 척했다
“요즘도 신한테 시비 걸고 다니나?”
“어─···?”
루카테르는 눈앞에 있는 자가 서서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어─, 어─···.”
그리고 완전히 기억이 나자.
“이 자식이 왜 여기 있어?”
루카테르는 언성을 높이며 신이고 뭐고 워스만을 향해 삿대질하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워스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허, 내가 전쟁의 신이라는 것 몰랐나?”
몰랐다.
아니, ‘신’인 줄은 알고 있었다.
루카테르는 신의 이름이나 권능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눈앞에 있는 자가 그저 싸움을 좋아하는 신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전쟁의 신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러했기에 신의 약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오래전부터 이 신한테 걸핏하면 시비를 걸고 다녔었다.
턱도 없는 소리였지만.
리아인과 류안,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을 처음 만난 그날도
워스만한테 시비 걸고 한바탕했다가 무승부로 겨우 마무리하고 수도로 돌아가던 중,
기력이 순간 딸린 바람에 텔레포트를 잘못해서 그들의 여행용 마차 앞에 넝마가 된 모습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
“원한다면 나중에라도 상대해 주지.”
워스만의 거만한 말투에 루카테르가 아무런 말 못 하고 으르릉거리고 있을 때.
“너희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오두막이 있는 곳에서 이상한 묘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던데 알고는 있는 것이겠지?”
“─────!”
쇼트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가봐야 하지 않겠어?”
워스만의 말에
“아, 저기······.”
쇼트가 할 말이 있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지금은 오두막에 안 가시는 것이 좋아요.”
그 말에 의아함을 느낀 모두가 쇼트를 바라봤다.
“···왜지? 류안의 저기압은 수그러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레이쉴은 불안한 맘을 안은 채,
쇼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기압 때문이 아니고, 정확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다들 오두막에 오지 말라고 류안이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쇼트도 말 그대로 정확한 이유는 몰랐기에
그저 류안이 한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전 오두막을 관리해야 해서 허락을 받아 괜찮지만···, 지금은 방해하면 안 된다면서··· 죽기 싫으면 오지 말라고···.”
죽기 싫으면 오지 말라니···
전혀 예상 못한 류안의 말을 전해 들은 모두는 공포와 함께 어안이 벙벙해졌으며
집무실의 공기는 아주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무리되면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쇼트는 모두의 표정을 조심히 살피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하···, 대체 뭘 하길래··· 아니지.”
레이쉴은 도움 안 되는 의문은 저 멀리 버려버렸다.
“쇼트, 자네라도 출입은 할 수 있다니 다행이군. 뭔가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알려주게.”
“네─.”
쇼트는 전할 말을 다 전했기에 고개 인사를 한 후,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레이쉴은 워스만을 지그시 봤다.
“전쟁의 신, 워스만 님.”
워스만은 자신을 부르는 레이쉴을 보고 아주 살짝 움찔했다.
국왕 레이쉴의 표정이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의 표정과 흡사했다.
“마침, 이렇게 오셨으니 다 같이 대화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전쟁에 관한 것과 함께 검은 옷 조직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 않습니까.”
입은 미소짓고 있지만,
눈빛은 서늘한 레이쉴을 보면서
워스만은 슬며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지. 그것들에 대해 자네들하고 할 말이 많이 있으니까.”
좀 전과 달리 진중해진 분위기에
루카테르는 귀찮은 일에 꼬이기 전에 슬금슬금 집무실을 나가 도망가려고 했으나,
워스만한테 목덜미를 잡히며 얌전히 소파에 강제로 앉혀졌고 그 옆에 워스만이 앉았다.
집무실 안에는
두 명의 수호신과 국왕 한 명, 신의 아이 둘, 드래곤 한 마리.
그들의 깊은 대화가 장시간 이어졌다.
* * *
며칠이 지난 후.
왕궁 구석 정원에 있는 오두막.
쇼트는 주방에 와 있는 류안을 위한 차와 기생 마수를 위한 쿠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류안 옆에 늘 있었던 존재.
리아인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리아인은 며칠째 방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며
그런 그를 쇼트는 걱정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 차와 쿠키를 내려놓은 후,
쇼트는 조심히 류안을 표정을 살펴봤다.
평소의 멍하면서도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에 류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기다리면 돼.”
그 말에 쇼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류안은 기생 마수가 쿠키를 다 먹은 것을 보고는 차를 마저 마시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유유히 2층 방으로 향했다.
오두막 2층.
리아인과 류안이 사용하고 있는 방.
그 방 침대에 리아인은 며칠째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잠든 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의 리아인.
류안은 그런 리아인을 살며시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었다가 멈칫했다.
“아, 방해하면 안 되지.”
류안은 리아인이 누워있는 침대 옆면에 기대며 앉아 팔로 굽힌 무릎을 감싸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꼭 이럴 때 틈을 노리고 끼어드는 놈이 있어. 이건 나도 막아주기가 좀 힘든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음···.’
류안은 가만히 눈을 감았고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아이야,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되니라.
너를 비추는 빛은 어둠이 가려줄 테니
빛으로 지치고 힘든 몸을
어둠의 품에 맡기고, 편히 쉬어도 되니라.
그 빛은 더 이상
너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
어둠에 물든 잔잔한 빛만을 느끼며
편히 쉬어도 되니라.”
이렇게 시를 읊듯 말하던 류안은 잠시 말을 멈췄다.
오소소소소───······
올라오는 닭살을 진정시켜야 했기에···.
그리고 말을 다시 이었다.
“아이야,
길을 비추며 재촉하는 빛은
어둠으로 가려줄 테니
잠시 쉬어도 되니라.
어둠은 조용히
너의 곁에 머물고 있을 뿐이니
네가 빛을 원한다면
어둠은 너의 뜻에 따라 사라질 터
네가 쉬고 싶을 때는
언제든 너의 곁에 머물러 줄 터이니
맘 편히 쉬어도 되니라.”
류안은 감았던 눈을 떴다.
“너는 ‘신의 아이’가 아니니까. 빛에 휘둘리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덜컹─.
문밖에서 소리가 났고
소리의 원인을 본 류안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문밖 복도에는 묘한 표정의 쇼트가 서 있었다.
방문 옆 복도 벽 쪽에 갖다 놓은 간이 탁자에 리아인이 일어나면 언제라도 허기를 달랠 수 있도록 간소한 음식을 놓고 조용히 가려던 쇼트는
안에서 류안이 나지막하게 자장가처럼 읊조리는 말을 들었다.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지막한 소리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로워
쇼트의 머릿속,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신 디케에 의해 강제로 뒤틀려지고 저택에 감금되어 있다가 겨우겨우 도망치고 미지의 숲을 빠져나와서 본
그날의 밤하늘.
달빛조차 눈이 시리며 힘들고 지쳤던 그에게
그날의 밤하늘은 달빛이 없는 별빛만이 비치는 까만 어두운 밤하늘이었다.
‘쇼티스’였던 그때의 쇼트는
그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햇빛도 달빛도 아닌 별빛처럼 자신을 잔잔히 비추어 줄 존재가 있어 주기를 바랐고
그에 응답해 주듯
밤하늘의 어둠이 깃들어 있는 듯한 검고 긴 머리카락의 류안이 다가와 자신을 옥죄던 햇빛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신의 뒤틀림을 없애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쌍둥이 네우와 제우의 도움도 컸으나,
류안은 자신한테 있어 ‘신’ 그 이상의 존재였다.
분명 류안의 저 말은 자신을 향한, 위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도
쇼트는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특히,
‘신의 아이가 아니니까.’라는 말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라는 그 말에 울컥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
끼익───.
쇼트의 눈에 방문을 여는 류안이 보였다.
류안은 미간을 찡그린 채 쇼트를 바라봤다.
“너 왜 울어?”
“어?”
쇼트는 들고 있던 음식이 있는 쟁반을 간이 탁자에 내려놓고는 뺨을 만져봤다.
뺨에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옷 소매로 그 눈물을 닦아냈으며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에 민망함이 밀려와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하아-, 리아인 안 죽었어. 걱정 안 해도 돼.”
“·········.”
류안의 말에
민망함 대신 다른 감정이 자리하던 쇼트는
그의 모습이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허리 밑까지 긴 검은 머리카락은 더 길어져 있었고
자신보다 조금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지금은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얼굴에는 소년의 모습이 없었다.
완전히 성숙한 성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매우······.
“왜 그래?”
류안은 저 혼자 눈물을 흘리고
서둘러서 눈물을 닦아내는가 싶더니
이제는 또 어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보는 쇼트의 행동이 이상하기만 했다.
“어? 어, 아냐. 아무것도 아냐.”
쇼트는 순간의 착각이나 환상이었나 싶었다.
지금 눈앞의 류안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간이 탁자에 놓인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투명한 뚜껑으로 덮은 우유와 샌드위치가 있는 쟁반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 리아인이 일어나면 주면 되는 거지?”
“···응.”
류안은 쟁반을 들고 들어가려다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쇼트를 보며 말했다.
“일어나면 바로 알려줄게.”
“···응.”
쇼트는 안심이 된 것인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움직여 1층으로 향했다.
탁──!
방문을 닫은 류안은 음식이 있는 쟁반을 리아인이 누워있는 침대 옆 탁자 위에 두었고는
좀 전과 같은 자세로 침대 옆면에 다시 기대며 바닥에 앉았다.
“조급할 것 없어. 기다려 줄 테니까.”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계기가 되어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지?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류안의 생각을 눈치챈 ‘---’의 사념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자네··· 때문인 것 같더군.
“응? 나? 왜?”
- ···정말 모르겠나?
류안은 정말로 모르겠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사념체는 신으로서 능력을 펼치는 자네를 보며 리아인이 스스로 빠진 자괴감 때문이라고 설명해주려고 하다가,
그래 봐야 ‘왜?’라고 하면서 못 알아들을 것 같은 그런 그에게 허탈감이 생기는 바람에
그냥 한숨을 쉬며 조용히 있었다.
“?????”
류안은 말 없는 ‘---’의 사념체로 인해
의문만을 안은 채
고개를 한쪽 기울인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 작가의말
더 오글거리게 쓰고 싶었습니다...
싶었는데... 으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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