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6 화 – 돌에 깃들은···.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76 화 – 돌에 깃들은···.
“···처형자는 저 아이 한 명뿐인가?”
신들의 얘기에는 관심 없이 한 손에 턱을 괴고 딴 곳을 보고 있던 류안이 시선을 돌렸다.
“심판과 처형을 하려면 혼자 많이 힘들 것인데···.”
나무의 신 말에 벨드라엔은 인지했다.
이들은 자신을 2대 심판자로 착각한 것이 아닌, 진짜 심판자의 뒤를 이은 자를 가리기 위한 일부러 한 행동이란 것을.
그리고 당연히
워스만도 인지하고 있었다.
워스만은 확인차 류안한테 귓속말을 했다.
“너 혹시 영역 펼쳤어?”
“왜?”
“엿보는 자 막지 않아도 돼나?”
“저 신들도 알면서 그냥 있는데, 내가 굳이 영역을 펼칠 이유 없어.”
‘역시.’
돌의 신은 엿보는 자를 막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고 했지만,
거짓 정보를 흘리기 위해
일부러 틈을 주어 엿보는 것을 막지 않고 있었다.
옆자리에 있었기에
워스만과 류안의 대화를 들은 벨드라엔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진행 상황, 흐름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영락없이 2대 심판자인 척을 해야 할 판이었고
벨드라엔 본인이 가림막을 자처했으니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단지,
보여주기식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입지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기에 벨드라엔은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의 신이 류안을 보며 말했다.
“우리도 사정상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네.”
그 말에 류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말을 엿듣지 못하게 조치한 후 말했다.
“영역 좀 펼쳐도 돼?”
“뭐? 영역?”
‘영역’이라는 말에 5대 원소의 다섯 신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왜 놀래?’
류안은 의아했지만
워스만은 알 것 같았다.
아마,
저들은 류안을 천사로 오해하면서
레쉬아의 국왕 레이쉴의 누나인 세이지처럼 신의 권능을 물려받은 것 정도로 여겼을 터라
신이라고는 생각조차도 못했을 테니까.
오두막 앞마당에서 한판 했을 당시
워스만도 류안이 펼친 영역을 느낀 후에야
신인 것을 알게 되었었다.
류안은 놀라는 신들은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영역 펼쳐도 돼?”
“어? 어 해도 돼···.”
바람의 신이 답해주었다.
류안은 바로 영역을 펼쳤고
그와 동시에 엿보던 자가 튕겨 나가는 것을
그곳에 있는 모든 신이 느꼈다.
“무슨 이런─···.”
돌의 신, 아니 5대 원소의 신 모두가 황당하면서 어이가 없었다.
이곳은 엄연히 다섯 신이 공동으로 영역을 펼치고 있는 상태에서 추가 영역을 펼칠 수 있게 공간 여유를 주기도 전,
아무렇지 않게 영역을 덧씌우며 펼쳤기 때문이었다.
“좀 전에 도와준다고 했지?”
“어? 그래, 그랬지.”
바람의 신이 다시 답해주었고
류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탁! 데굴─···.
아공간에서 세 개의 투명한 돌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다섯 신은 눈이 동그래지며 그 돌들을 봤다.
일반적인 투명한 돌이 아닌
희귀한 수준을 넘어선 매개체가 있는 돌.
그중에서도
식물이 매개체로 있는 투명한 돌은
류안이 쇼트한테 이식해준 넝쿨에 싸인 투명한 돌.
고목 나무에서 습득한 도롱이 벌레를 닮은 투명한 돌.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은 꽃 속의 투명한 돌.
이렇게 여러 개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나마 볼 수 있었지만,
앤소다이트[Anthodite-동굴꽃]에 구근[球根]처럼 있는 투명한 돌.
더 나아가 바람을 머금고 있는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
다섯 신은 이제껏 본 적 없던 진귀한 돌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더 진귀한 것이 있었으니.
탁─!
류안은 물방울 형태의 투명한 병을 탁자 위에 놓았다.
다섯 신은 뭔가 싶어 의아해할 때
류안은 병뚜껑을 열었다.
퐁─···.
수정 마개 특유의 소리가 울린 후,
병 안에서 투명한 액체가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피듯 기웃거리며 찰랑거렸다.
그러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류안을 보더니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병 안으로 들어갔고
류안은 병뚜껑을 닫았다.
액체 형태의 투명한 돌?
다섯 신은 인지했다.
5대 원소 중 4개의 원소가 각각 매개체인 투명한 돌들.
“이 돌들의 매개체에 맞춰 기운을 불어 넣어줘.”
“···신물[神物]로 만들려는 것인가?”
“비슷해.”
류안의 말에
네 명의 신이 눈을 반짝이고 있을 때
한 명의 신은 그러지 못했다.
“불 원소의 돌은··· 없군요.”
불의 신은 엄청 아쉬운 투로 말했다.
“곧 구하러 갈 거야.”
그 말에
불의 신 얼굴에는 급 화색이 돌았다.
분명 불덩어리 몸체인데도 이글거림의 차이로 인해 표정 변화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구하면 언제든 알려주십시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뭔가 주섬주섬 꺼내 들어 류안한테 주었다.
휴대용으로 가공된 부싯돌이었다.
“혹시 연락하기 힘들면 이것을 사용하십시오. 임시로나마 제 권능의 기운이 깃들 겁니다.”
류안은 눈을 깜박거리다가 부싯돌을 받았다.
‘잘됐네, 귀찮게 여기 신을 다시 만나야 할 일은 없겠다.’
그러는 사이,
불의 신을 제외한 네 명의 신은
투명한 돌의 매개체에 맞춰 각각 권능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에 따라,
돌[石]은 회색을 품은 빛.
나무[木]는 연두색을 품은 빛.
바람[風]은 옅은 흰색을 품은 빛.
물[水]은 푸른색을 품은 빛.
투명한 돌은 이렇게 각각 권능의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러고 잠시 후,
각각 권능의 기운이 완전히 안착한 투명한 돌은 원래의 투명한 색으로 돌아갔다.
그러한데
류안은 투명한 돌을 챙길 생각은 않고
가만히 돌을 보고 있다가 신들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안 돌의 신이 입을 움직였다.
“돌에 깃든 기운을 통해 간섭하는 일은 없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게. 신으로서 약속하네.”
그 말에 류안은 시선을 다시 돌로 향했고
목 옷깃에 달린 붉은색 브로치의 아공간에 부싯돌과 같이 투명한 돌들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방’에 더부살이 중인 심판의 사념체한테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잘 감시하고 있겠네.
사념체는 류안이 처음으로 자신한테 부탁? 지시하는 것에 도울 수 있는 것에 기뻐하며
맡은 임무 최선을 다해 수행하리라 마음먹었다.
류안은 그런 사념체의 결의는 무시하고
제 할 말을 했다.
“더 볼일 남았어?”
“아, 아니···.”
솔직히 5대 원소의 신들은
전쟁의 신답게 검은 옷의 조직과 전쟁할 준비하는 워스만.
2대 심판자로 내세워진 벨드라엔.
신을 처형할 수 있는 하얀 창을 다루는 류안.
이 셋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문 열어주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아, 이왕 문 열어주는 거. 이 녀석과 같이 가게 해줘.”
워스만은 듀아 왕국이 아닌
류안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벨드라엔을 가리키며 자신보다 위 등급의 신한테 뻔뻔하게 요구했다.
“···그러지.”
나무 신의 손짓에 문이 열렸고
류안과 리아인,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워스만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 * *
레쉬아 왕궁 구석진 정원에 있는 오두막.
그곳 앞마당에 두 개의 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각각 열린 문에서
리아인과 류안,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그리고 덤으로 워스만이 나왔다.
“······피곤하다.”
벨드라엔의 입에서 진심이 흘러나왔고
다들 동의하면서 정신적 피로를 빨리 풀고 쉬고 싶은 마음으로 오두막으로 발을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평소 물 흘러가듯이 엮이던 것과는 달리
뭔가 준비하고 있는 류안의 모습에
흥미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따라온 워스만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투명한 돌을 신물로 만들어서 뭐에 쓰려고 하는 거지?”
오두막에 들어가려던 류안은 멈추며 답해주었다.
“내가 쓸 것 아냐. 각 원소 속성에 맞는 자한테 줄 거야.”
“뭐? 그게 누군데?”
“글쎄,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류안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듯했으나
워스만은 두 명이 떠올랐다.
불 속성의 능력자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
나무 속성의 능력자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
불 매개체의 투명한 돌은 아직 없으나
곧 구할 것이라 했으니
레이쉴과 다미엔이 후보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다미엔 녀석 알면 매우 좋아하겠는데.’
하지만,
말해 줄 생각은 없는 워스만이었다.
괜히 설레발 치다가 그르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워스만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앞에 나서게 되던 류안이 적합자를 찾아 대신 앞에 내세울 계획을 진행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훗, 본인은 빠지기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와주기 위해 나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워스만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고 생각하며
류안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움직였다가
리아인도 아니고
벨드라엔에 의해 제지당했다.
“적당히 해라.”
“무슨 의미지?”
“몰라서 묻는 거냐?”
“어, 모르겠어.”
벨드라엔은 워스만의 말에 기가 찬 표정을 했다.
“류안을 왜 자꾸 ‘아이’라고 칭하는 거지? 류안은 ‘아이’가 아냐!”
벨드라엔의 강한 어조의 저음에
워스만은 잠시 말없이 있었다.
‘이 녀석 역시 눈치챘나 보군.’
워스만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신이라고 해도 어리기에 아이라고 한 것뿐이다.”
“하? 내가 말한 ‘아이’가 그런 의미의···.”
삐이익───!!!
벨드라엔이 말하던 중 갑자기 알림음 울렸고
워스만은 손을 들어 보이며 품에서 작은 통신 장치를 꺼내 작동시켰다.
“어, 다미엔 무슨 일···.”
-또 거기 가신 겁니까?
늘 예의 있는 모습을 보이던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이 인사도 생략하고 역정 내며 말했다.
-워스만 님은 듀아 왕국의 수호신인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래, 알아 알았어. 간다고 가.”
-네, 한시라도 ㅃ···.
뚝-!
워스만은 통신을 끊었다.
“얘기는 나중에 해야겠다. 난 간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전용통로를 얼어서 듀아 왕국으로 돌아갔다.
벨드라엔은 대화를 피해
저 자식. 워스만이 도망간 것을 눈치챘고
워스만이 류안한테 보인 행동이 자신이 생각한 그것이 맞았음을 인지했다.
“단념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이해할 수 없는 워스만의 행동이었으나,
그의 씁쓸한 과거를 알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벨드라엔 이었다.
하지만,
“왜··· 하필 류안을···.”
‘불가능해.’
류안과 워스만은 같은 신이기에 불가능했다.
벨드라엔은 워스만의 전용통로가 생겼다가 사라진 허공을 지그시 보다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자신과 워스만의 대화에
류안이 뭔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한 행동이었지만.
벨드라엔과 워스만이 무슨 대화를 하든
관심 없는 리아인이 류안을 데리고 진즉에 오두막 2층으로 간 상태라
쌍둥이 제우와 네우의 모습만이 보였다.
* * *
오두막 2층 방.
“줘.”
“응?”
류안이 리아인한테 손을 내밀며 말했고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리아인은 순간 당황해 어벙한 반응을 보였다.
“돌.”
“···아!”
라아인이 가지고 있는 투명한 돌.
리아인을 폭주하게 만든 방아쇠.
예전 피스링 마을 점술 가게에서 그랬고
며칠 전 일도 그렇고
리아인이 신에 대한 악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투명한 돌이 공명하듯 반응해 힘을 증폭시키며 자제력을 잃도록 만들었다.
피스링 마을에 있었을 때는 몰랐기에 리아인 본인이 돌을 가지고 있었지만,
류안이 투명한 돌을 다룬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그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함으로
리아인은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투명한 돌을 꺼내 류안한테 주었다.
투명한 돌 안은 거친 백금빛으로 ⅔가 차 있었다.
“에휴─···.”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류안의 한숨에
리아인은 움찔하며 머쓱했다.
류안은 투명한 돌을 쓰다듬었고
돌안의 거칠게 날뛰던 빛들은 잔잔해졌다.
그런 뒤,
옷깃의 붉은색 브로치의 아공간에 넣었다.
-으헉!!!
아공간과 연결된 ‘방’에 더부살이 중인 심판자의 사념체가 순간적으로 공포 어린 소리를 냈다.
투명한 돌 안의 빛을 가라앉혔어도
돌 자체에 스며있던 신에 대한 살기가
신이었던 심판자의 사념체에 반응을 보인 듯했으나.
류안은 신경 쓰지 않고 무시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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