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8 화 – 인형 혹은 껍데기.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78 화 – 인형 혹은 껍데기.
『영업 종료♧』
문 앞에 영업 종료 안내판이 걸린
허름한 외관의 인형 공방 가게.
그 가게 안에서는
남들이 듣기에는 조심스러운 비밀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인형’ 수리하러 오는 신들 많냐고 물으셨죠? 하아, 예 많이 수리하러 와요. 제가 신들 일에 관여할 것은 없지만. 이유는 알고 싶네요.”
메디아는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고
“신을 처형하겠다고 설치는 조직이 있다. 그 때문에 피해당한 신들이 ‘인형’을 수리하러 오는 걸 터.”
워스만이 답해주었다.
“미친─!!! 신을 뭘 하겠다고요? 그것들 망상에 빠진 것 아녜요?”
“그러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 조직 때문에 소멸한 신이 몇 있지.”
“네─?!!”
메디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 망할 조직 때문에 제가 과로사 직전까지 몰리고 있는 거였군요. 어쩐지 요즘 ‘인형’을 갑옷처럼 강화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는 신이 많다 했어.”
모든 신이 가지고 있는 ‘인형’과는 달리
갑옷은 전쟁의 신 워스만 같은 전투형 신의 부속적인 힘에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참고로
벨드라엔도 갑옷을 가지고 있다.
쓸 일이 없어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만.
짜증을 내던 메디아의 표정이 심각해져 갔다.
“그래서 그런가?”
“뭔 특이한 일이라도 있나?”
메디아는 멍하니 앉아있는 류안을 힐끗 보고
워스만의 물음에 답했다.
“최근 이상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와서는 ‘인형’ 제작을 의뢰하는 신이 몇 있었어요.”
메디아는 피곤함에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전 수리 전문이지 제작은 못 해요. 뭐, 팔이나 다리 일부분이라면 그나마 만들 수 있지만, 전체는 불가능하죠.”
“흐음─, ‘인형’ 자체를 갑옷처럼 방어용으로 이용했다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인가 보군. 그런데, 껍데기를 뒤집어썼다고?”
“예, 조직으로부터 더 이상 껍데기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며, 소멸하기 싫다고 절규하더라고요.”
메디아는 그때 당시의 생각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이기심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한 신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영 보기 좋지가 않았어요.”
그 말에
워스만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앞으로 껍데기를 쓴 신과는 웬만해선 대면하지 말도록.”
“네? 왜요?”
“신을 처형하겠다는 조직을 조력했다가 그 꼴이 난 것이니까. 너라면 그 껍데기가 뭔지 바로 알았을 것이고, 어떻게 구했을지는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겠지.”
“역시 미친 것들이네! 아우-!!!”
메디아가 인상을 쓰면서 짜증을 내고 있을 때.
똑. 똑. 똑.
가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영업 끝났습니다.”
직원이 영업이 끝났음을 알렸다.
“인형 수리를 의뢰하러 왔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수리하지 않습니다. 내일 다시···.”
“신의 명령이다! 문 열어─!!”
직원이 재차 영업 끝남을 알렸지만,
신이란 자는 언성을 높이며 거칠게 문을 쳐댔다.
쾅쾅쾅─!!!
“당장 열어!!!”
“하아─···.”
메디아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앞까지 가서는.
“이봐요, 신님. 계속해서 난동부리면 신들한테 받은 저의 권한으로 당신한테 합당한 조치를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얌전히 돌아가시고 예약 후 다시 오세요.”
“·········.”
알아들은 것인지
더 이상 문 두들기는 소리는 나지 않으며
조용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 옆 대기석에 앉아있던 류안은 황급히 일어나 리아인을 자신의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 모습에 메디아도 뭔가 눈치채고 문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었다.
콰직───!!!
문을 뚫고 들어온 상처투성이의 썩어가는 손이 보였다.
“이런─···!!”
썩은 손에서 뒤틀린 기운이 스며 나오면서
문을 뒤틀기 시작했다.
콰직─! 콰드득───!!!
검붉은 색의 로브에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신이 뒤틀린 문을 부스며 들어왔다.
상당히 초췌한 모습이었다.
“···당장 인형을 만들어라. 팔이든 다리든 일부분이라도 좋다. 완성해 주기만 하면 내 너에게 그에 맞는 보상을 내려줄 것이고. 거절한다면···!!!”
거친 언행으로 강압적이면서도 간절하게 협박하듯 말하던 검붉은 로브의 신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만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이곳에
두 명의 신이 있었으며
그중 한 명은 전쟁의 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네가 여기에···.”
“왜긴 왜야, ‘인형’ 수리하러 왔지. 오늘은 영업 끝났으니, 지금이라도 얌전히 돌아가고 나중에 다시 오는 것이 어때?”
“·········.”
검붉은 색의 로브 신은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그러다가
류안과 시선이 마주쳤고
도망가듯 뒤로 움직이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얼이 빠진 듯 멍하니 류안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류안은 갸웃거리면서도
리아인을 더 뒤로 물려 가렸다.
그런 검붉은 로브의 신 모습에
워스만은 이마에 한 손을 짚으며 미간을 구겼다.
“하아─, 이런 젠장.”
썩은 껍데기의 신이
류안한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예전 듀아 왕국, 파에타 마을의 화원에서 마주쳤던 그 신으로 인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예상대로
검붉은 로브의 신은 류안한테로 한 걸음 다가갔다.
노렸다기보다는 간절함에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
“혹시, ‘일렁임’ 만드는 신 알아?”
대뜸 질문을 던지는 류안의 말에
뒤에 있는 리아인이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고
검붉은 로브의 신은 크게 흠칫하더니, 얼굴에 흉상을 드러냈다.
“일렁임··· 신이라고?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그 찢어 죽일 놈 때문에 내가···, 내가 이 꼴이 났다.”
류안은 검붉은 로브의 신을 똑바로 응시했다.
신한테도 통하는 것일까?
류안의 시선에 포로로 잡힌 검은 옷 조직의 녀석들이 알아서 기밀 사항을 불었던 것처럼
검은 로브의 신은 자신이 당한 일을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일렁임을 만든 신은 이곳 세계의 신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신이었으며
뒤틀림을 받아들인 신이라고도 했다.
‘뒤틀림을 받아들여?’
검은 옷을 조력하고 있는 신에 대한 새로운 정보였다.
워스만과 벨드라엔 그리고 리아인은
검붉은 로브 신의 말에 집중했다.
받아들인 뒤틀림을 이용해 권능을 바꿀 수도
상위급의 잘난 척하는 다른 신의 권능을 뺏어와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신들을 현혹하고 있으며
‘신의 손길’에 의해 ‘뒤틀린 아이’의 뒤틀림이 가장 좋은 먹잇감이라고 했다.
“─!!!!!”
“···그 신 놈의 현혹에 빠져 일 저지르고 뒤틀림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해 ‘인형’은 부서지고 반동으로 권능 또한 뒤틀려 망가졌다, 개중에는 껍데기로 연명하며 다시 뒤틀림을 이용해 권능을 찾아오겠다고 허황된 꿈에 빠진 신들도 있었지.”
그리 말하던 검붉은 로브의 신 얼굴에 체념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나도 그런 신 중 한 명이었지.”
마음속 가득했던 푸념을 말해서였는지
흉상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검붉은 로브의 신은 해탈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다 부질없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어. 하하하─···.”
잠시 허탈 웃음을 뱉은 검붉은 로브의 신은
류안을 묘한 눈을 하고 보더니
고개를 돌려 워스만을 봤다.
“전쟁의 신. 그대의 아이인가?”
“어, 뭐······.”
“···그렇군.”
말을 얼버무렸지만,
검붉은 로브의 신은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이 상황에
리아인은 당연히 도끼눈으로 워스만을 봤고
벨드라엔은 워스만을 더 심하게 노려봤지만,
워스만은 그 노려봄 따위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넘겨버리며 무시했다.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
“내가 이 처지가 되니 바로 알겠더군. 저 검은 머리 아이의 육체를 껍데기로 노리는 신들이 많을 거다.”
검붉은 로브의 신은 다시 류안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에 이번에는 리아인이 앞으로 나와
류안을 뒤로 가게 했다.
그 모습에,
“허, 이거···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군.”
검붉은 로브의 신은 정말 재미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시기,
이 혼란을 일으킨 존재들이 찾는 것이 여기에 다 있었으니까.
“자네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어.”
검붉은 로브의 신은 불안정하게나마 받아들인 뒤틀림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소년.
리아인이 ‘뒤틀린 아이’라는 것을.
이제껏 보아온 뒤틀린 아이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그 신들은 오래전부터 찾고 있는 ‘뒤틀린 아이’가 있다.”
그 말에 리아인은 흠칫했다.
그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던 그때.
“뒤틀린 아이 찾는다는 신들은 어딨어?”
리아인 뒤에서 류안이 물었다.
“···알려주고 싶지만, 나도 모른다. 미안하다 아이여.”
가게에 들이닥칠 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어찌 보면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
검붉은 로브의 신은 가게 밖으로 나가기 위해 씁쓸함이 드리운 발을 움직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워스만은 저 신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으나
행여 걸림돌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검붉은 로브 신의 행정[行程]을 물었다.
“글쎄···, 어디 아무도 없는 동굴에라도 들어가 완전히 뒤틀리기 전에 소멸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지. 그나마 신으로서의 마지막 위신과 자존심을 지키려면 말이야.”
검붉은 로브의 신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표정을 감추려는 듯
로브의 두건을 더 깊숙이 뒤집어 섰다.
“‘방’은 어쩌고?”
워스만의 말에
검붉은 로브의 신은 머뭇거리다가 한숨과 함께 답을 해 주었다.
“하아─··· ‘방’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껍데기 때문에··· 불가능해졌거든···.”
“껍데기가 사라지면 ‘방’에 갈 수 있어?”
류안의 말에
다들 놀란듯한 반응을 보였고
검붉은 로브의 신 표정은 놀라면서도 묘해졌다.
‘왜··· 이 아이의 말이 희망처럼 들리지?’
“아마도······.”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확답할 수는 없었다.
껍데기가 완전히 썩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잔재가 타르[Tar]처럼 끈적하게 남아 신의 몸체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기에
새로이 껍데기를 얻게 되면 잔재 위에 덧씌우는 식이었다.
리아인 뒤에서 잠시 생각하던 류안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껍데기 없애줄게. 음─··· 그 과정에서 신의 몸체도 조금 훼손될 수 있긴 한데, 어때?”
이제는 일상이라는 듯
또다시 놀람을 선사하는 류안을 보며
리아인,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은 묻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묻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그저 말없이 가만히 있었고
인형 수리사 메디아와 직원은 낯선 놀람의 충격에 눈이 토끼처럼 커져 있었으며
검붉은 로브의 신 눈동자에는 의심 따윈 없이 기쁨의 빛이 감돌았다.
“껍데기만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방’에 돌아가게 되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복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주절주절하고 있던 말을 갑자기 멈춘
검붉은 로브의 신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허···, 허허허─···.”
그러더니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 모습에
류안을 포함해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의아해했다.
“하-, 방에 들어가 얌전히 자숙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제기할 수 있거늘···. 잊고 있었어···. 이런 어리석고 바보 같은···.”
자책하던 검붉은 로브의 신은 이내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부탁하네.”
검붉은 로브 신의 부탁한다는 말에
류안은 고개를 움직여 벨드라엔을 보면서 손짓했다.
“어? 나?”
벨드라엔은 강아지 아니 대형견 리트리버와 닮은 표정을 보이며 류안한테로 갔다.
류안은 브로치 아공간에서 매개체가 없는 평범한? 투명한 돌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올린 상태로 벨드라엔한테 내밀어 보였다.
“여기에 기운 불어 넣어줘.”
“어? 어.”
만지지 않고 기운만 불어넣는 것이면
매개체 없이도 제약을 풀지 않아도 가능해 보였다.
벨드라엔은 투명한 돌에 닿지 않을 만큼 손을 가까이 대고는
멸[滅]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슈우우우───······.
투명한 돌 안이 조금씩 빛으로 차기 시작했다.
메디아와 직원.
검붉은 로브의 신이 신기해하며 바라봤고
돌 안이 빛으로 다 차갔을 즈음.
파직─!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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