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8 화 – 재정비라고 할까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88 화 – 재정비라고 할까나···.
천천히 눈을 뜬 류안은 낯선 천장과
두런두런 모여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 일어났어?”
리아인의 말에
류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광경은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이
이 방에 모인 이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류안의 입장에서는 딱히 묘하다고 할 수 없긴 하지만,
이것이 어찌 보면 이상하고
또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일단 다미엔이 왕족이고 왕자이긴 하나,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류안, 워스만, 벨드라엔은 ‘신’이고
쌍둥이 제우와 네우는 ‘신의 아이’이면서
레쉬아 왕국의 국왕인 레이쉴,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
그리고 스체스 왕국의 수호자 뮤리나.
예외적인 리아인을 빼면
다미엔과 동등하거나 그 위의 신분이었다.
물론,
레쉬아 왕국과 듀아 왕국에서 온 시종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류안의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상태라
이런 식으로 모일 때는 시종들을 따로 있게 했다.
류안한테 차를 건네고 있는 다미엔의 모습에
레이쉴은 이런 쪽으로 적임자인 쇼트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미안함이 밀려오고 있었고
뮤리나는 스체스 왕국의 수호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천민 출신인 자신이 왕자가 대접한 차를 마시는 것에 얼떨떨하고 있었으며
워스만은 재미있어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허허-, 저 녀석 첨 봤을 때와 참 많이 변했군.’
워스만이 처음 다미엔과 마주했을 때 인상은
거칠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야생 엉겅퀴를 닮은 화려한 장미였다.
잎사귀 속에 억센 가시를 교묘히 숨긴 채,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고 있다가 적절한 때 가시를 한껏 드러내며 야성을 보이면서도 품위를 지닌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거느린 이들 외에는
경계하면서 날[刃]을 세우기 일쑤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가시는 품고 있지만,
날[刃]은 치우고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변화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의 이 상황은 다미엔이 자초한 것이기도 했다.
벨드라엔의 아이인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신을 곁에서 돌봐왔던 평소 일상으로
이곳에서의 계획을 다시 검토하는 동안 시중을 들려고 했고,
시중을 받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더 편한
뮤리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어느새인가
다미엔이 먼저 개인 아공간에서
찻잔 세트를 꺼내 들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차를 우려낸 후,
모두에게 대접하는 모습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 고마워.”
류안은 다미엔이 건네준 차를 받아서는
느릿하게 한 모금 마셨고
다미엔은 그런 류안을 보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싱글벙글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아──.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은
다미엔의 여우 짓을 눈치챘다.
하지만,
자신들한테 대접해준 차도 대충이 아닌 정성스럽게 우려내는 것을 봤기에
그냥 묵인하고 넘어갔다.
리아인만이 그런 다미엔을 빤히 보고 있었을 뿐.
그러던 중,
시선이 모인 채 말없이 있는 이들을 보며
류안이 말했다.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아, 할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워스만은 고갯짓으로,
벨드라엔은 손으로
쌍둥이 네우가 꺼내 놓은 영상장치를 가리켰다.
류안은 그것을 보고는 다 마신 빈 찻잔을
무심하게 있는 리아인 옆에서
시종일관 미동 없이 서 있는 다미엔한테 주면서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는
기지개를 쭉- 핀 후,
앉은 자세에서 일어나 영상장치가 놓인 탁자 쪽으로 갔다.
그런 류안의 움직임에 따라
지켜봄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조용히 방 안 전체에 펼쳐졌다.
다른 이들은 알 수 없겠지만,
같은 ‘신’인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류안의 펼쳐지는 영역이 언제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보통 신이 권능의 영역을 펼치면
이질적인 느낌이 생기기 마련이건만
류안이 펼치는 영역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포근함 같은 기운이 아주 잠깐 스치고
류안의 옅은 청회색으로 변한 눈동자를 보며
영역을 펼쳤음을 겨우 짐작할 뿐이었다.
두 신이 신기하게 생각을 하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는
류안은 영상장치에 한 손을 얹었다.
우우우─웅.
영상장치에서 빛이 발해지며
세 개의 영상이 허공에 띄어졌다.
타지헤 왕국 전체를 보여주는 영상과
이곳 왕궁 전체를 보여주는 영상
그리고
왕궁 내에 있는 넓은 복도 끝에 자리한 웅장하고 거대한 문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왕국과 왕궁 전체에 둘러쳐진 마법진을 살펴보던
쌍둥이 네우와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는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류안의 능력에 놀랐다.
보통 영상장치로 통한 것은 시각과 청각인데
류안이 보여주는 이 영상들은
마치 그곳에 직접 있는 것처럼 기운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에
번거로움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편하게
마법진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호오─.”
카르티아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뭐 더 알아낸 것 있나?”
워스만의 물음에 카르티아가 답했다.
“음-, 이 왕궁에 둘려진 마법진은 왕국 전체에 둘러쳐진 마법진을 활성화하기 위한 발동 장치이군요.”
“하긴 왕국 전체를 제물로 하려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냥 작동되기는 않겠지.”
워스만은 왕궁에 둘려진 마법진 영상을 가까이 보면서 말했다.
“그럼, 왕궁에 있는 마법진만 파괴하면 되는 건가?”
벨드라엔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물음을 했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글쎄요, 그리 쉬우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 저라면 주된 발동 마법진 외에도 보조 발동 마법진을 상당수 숨겨 놓았을 겁니다.”
카르티아의 말에
벨드라엔 외에도 다들 역시나 했다.
추측성이긴 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변수는 늘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방해가 생기기 마련이니,
그에 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류안, 혹시 보조 마법진 찾을 수 있나?”
“응?”
류안은 눈을 잠시 감은 후, 말했다.
“으음-, 있는 것 같긴 한데···.”
“주 마법진에 가려져서인지 아직 발동시킬 예정이 없어서인지 잘 안 보이네.”
“주 마법진이 파괴되어야 보일 것 같아.”
“그런가?”
“하긴, 그렇겠군.”
“주 마법진이 별문제 없이 발동되면 보조 마법진은 필요 없으니 쉽게 드러나지 않겠지.”
영상장치 위에 띄워져 있는 영상들을 보며
방 안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래저래 고생하겠어.”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대로 실행하기는 그리 만만하지도 쉽지도 않으니까.
왕국 전체의 마법진은 원체 규모가 크기에
파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왕궁의 마법진도 상당한 방해가 있을 테니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검은 옷 조직과 더불어
조력하고 있는 신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하니···.
“···류안, 이곳에 모인 신들이 몇 명인지 알 수 있나?”
“흐아··· 어?”
하품하려던 류안은 하품을 멈추고는
집중하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음, 정확하게 알기 힘들 것 같은데···.”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거나, ‘방’에 있으면 잘 안 보이거든.”
류안은 뒤틀린 것과 상관없어서인지
지켜봄의 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열심히 사용해 주고 있었다.
미안해질 정도로···.
“대략··· 이곳에 모인 신은 백 명 정도?”
“허──···.”
방에 모인 이들의 입에서 어이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류안도 놀라웠다.
다른 세계의 신이 몇 명 섞여 있긴 하지만,
백 명이 넘는 신을 한 번에 소멸시켜버려도 될 정도로 신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에.
“···얼마나 많이 신을 소멸시켜야 적정한 수에 다다르는 거지?”
“쿨럭-!”
류안이 별생각 없이
귀찮고 귀찮음이 밀려온 것도 있고
신이 많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걸리적거리는 느낌?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 것에 짜증도 한몫해서 한 말에
레이쉴은 사레가 걸린 듯 기침을 했다.
“하. 하. 하.”
“신의 학살자라고 하더니··· 맞기는 한 건가 보군요.”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는
놀라움에 기계적으로 웃으면서 두 신을 보며 말했다.
“두 분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뭐, 그렇지.”
워스만은 담담하게 받아넘겼고
벨드라엔은 앞서 류안한테 말한 것이 있기도 해서 살짝? 겁이 났다.
잊지는 않고 있었으나,
벨드라엔은 다시 다짐하고 다짐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레이쉴은 사레 걸린 기침을 참느라 애쓰고
다미엔은 눈이 동그래져 있고
워스만은 담담하게 있고
벨드라엔은 얼어붙고 있고
쌍둥이 제우와 네우는 하얗게 질려있고
카르티아는 허허- 거리고 있고
뮤리나는 이게 뭔 상황인가 얼이 나가 있고
신중해야 할, 긴장해야 할 방 안 분위기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주- 묘해졌다.
그런 분위기에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리아인한테 손짓했다.
리아인은 류안의 바로 옆까지 왔고
류안은 영상장치에 얹은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움직여 리아인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리아인한테만 따로 시각공유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때? 모두 있어?”
리아인은 눈을 감고
류안이 보여주는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응, 모두 있어.”
“괜찮지?”
“응, 괜찮아.”
류안과 리아인.
둘만이 아는, 할 수 있는 대화가 오갔다.
류안은 리아인의 이마에 댄 손을 천천히 뗐고
그에 따라
리아인도 감았던 눈을 떴다.
살며시 미소를 짓는 류안을 보며
리아인은 자신을 뒤틀고 괴롭힌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끊어버리고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한 각오를 다시 다짐했다.
* * *
타지헤 왕국의 왕실 측,
이곳에서 벌이고 있는 일을 저지하기 위해 온 이들.
서로의 계획을 숨긴 채,
평범한 왕국 간의 면담으로 하루가 지나가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피해보상과 무역에 관한 얘기를 질질 끌리기만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서로 예상한 것이면서도
계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타지헤 왕실은 ‘그때’가 될 때까지
자신들의 계획을 숨기고
제물이 될 이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이 계획을 저지하러 온 이들은
‘그때’가 되기 전
타지헤 왕실, 검은 옷 조직과 조력하는 신들의 만행을 막기 위한 적절한 틈과 시기를 찾기 위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틈과 시기가 왔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 작가의말
동면하려는 뇌를 깨워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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