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재능
(16) 재능
넘버스 엔터테인먼트의 한 회의실. 창문에는 모두 블라인드가 내려와 있고 조명은 거의 꺼져 있어서 그런가 방안이 꽤 어두컴컴하다. 방 안 커다란 스크린에서 연습생들의 월말평가 영상이 몇 시간째 재생되고 있는 중이다.
“아. 드디어 이게 마지막 영상이군요.”
“안약 있으신 분 있나요? 눈이 엄청 뻑뻑하네.”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좀이 쑤시는지, 영상 재생이 끝나자마자 기지개를 피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딱 봐도 직책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대충 다 본 거 같군요. 혹시 한번 더 보고 싶은 연습생 영상 있어요?”
“신팀장님. C반 이유진 연습생 영상 한번 더 볼 수 있을까요?”
“아. 저도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우리 회사 들어온 지 2주? 3주 지났다고 했나요?”
“미친. 아 죄송합니다. 한달 만에 저 정도 완성도가 나온다고요?”
유진의 월말평가 영상이 아주 인상이 깊었는지 다들 한마디씩 얹으려고 난리가 났다. 신팀장은 한동안 듣고만 있더니 바로 노련하게 상황정리를 했다.
“아. 네. 그럼 모두의 의견을 존중해서 이유진 연습생 월말평가 영상 다시 보죠.”
신팀장이 직접 월말평가_오전_C반_이유진 이라고 파일링 된 영상을 재생시켰다. 스크린에서는 유진이 무대 위에서 기본 안무를 추고 있는 모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무팀 의견은 어때요?”
“요식행위로 그냥 끼어놓은 걸 진짜 하는 연습생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유진에게 처음 기본안무를 알려주었던 안무가 김영준이 손을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따로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유진 연습생에게 기본 안무를 처음 가르친 사람이 접니다.”
“지금 그래서 자랑하는 건가요?”
“예. 제가 좀 잘났··· 아니 말이 잘못 나왔군요.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유진이는 배운 첫날부터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거죠.”
“사정 있어서 이번 회의에 참여 못한 C반 담당 트레이너 쌤 의견이랑 비슷하네요.”
“춤만 보면 바로 B반으로 올려도 될 정도라고 하더군요.”
“트리니티 때는 데뷔조에 지은이가 타이밍 좋게 합류하더니 이번에는 저런 애가 알아서 들어오네요.”
신팀장이 중간에 말을 끊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한달 만에 B반승급시키는 건 좀 그렇겠죠?
“춤 말고 다른 쪽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더군요.”
“다음 월말평가까지는 두고 봐야 된다고 봅니다.”
“네. 그럼 위에 A&R팀 의견은 이렇다고 보고하기로 하고 이만 회의 끝내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분분히 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신팀장은 의자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안을 정리하러 들어온 직원을 보고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말을 시켰다.
“아. 미연씨. 정리 끝나고 나가면서 신인개발팀 아무나 좀 불러줄래요?”
“네. 팀장님.”
잠시 후 직원 하나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신인개발팀 직원과 신팀장은 서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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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월요일이 다시 돌아왔다. 아침 운동을 끝내고 학교에 가니 1학기 중간고사 일정이 나와 있었다. 세상에 중간고사라니. 이게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단어지? 이제 슬슬 교과서도 좀 들여다 보긴 해야겠다.
처음 학교에 전학을 왔을 때만 해도 적어도 수업시간에 자리에 앉아서 수업내용을 듣기는 했다. 근데 슬슬 적응을 하기도 했고 학교 외 일정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보통 수업시간에는 졸기 일수였다. 그래도 내가 또 시간 대비 성적은 잘 뽑는 편이라 회사에서 정해준 성적 커트라인은 쉽게 넘길 수 있을 거 같다.
“자. 그럼 다들 중간고사 준비 열심히 하고 내일 보자.”
가방을 챙겨서 학교 정문 밖을 나가는데 매번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도청기라도 단 것처럼 틈만 나면 귀신같이 나타나서 학교에서 나를 귀찮게 했는데, 오늘은 조퇴하고 회사에 트레이닝이라도 받으러 갔나? 홀가분해서 좋네.
회사로 가는 길, 지하철 문 쪽 기둥에 기대 서서 창문 밖을 보는데 오늘도 참 날씨가 좋다. 내 기억으로 최근 몇 년 동안 그 놈의 미세먼지 때문에 봄에 이런 화창한 하늘 보는 게 참 힘들었다. 근데 요새는 사람들이 고등어를 좀 덜 구어 먹기라도 하는지, 여기 온 이후로는 미세먼지 수치 높은 날이 거의 없었던 거 같다.
“아. 놀러 가고 싶다.”
원래 난 쉬는 날 어지간하면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근데 나이를 거꾸로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간만에 좀 돌아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유달리 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자. 라스트 한번! 화이브. 식스. 세븐. 에잇!”
하지만 현실은 안무연습실 안에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연습 중이다. 그래도 이제는 이골이 나서 그런가 이건 좀 할만하다. 근데 대체 춤추면서 동시에 노래는 어떻게 부르는 거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하네.
아무튼 노래 크게 틀어놓고 춤추는 행위가 스트레스 해소에는 직빵이다. 솔직히 수업 들어오기 전까지는 잡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데 몸을 움직일수록 정신이 몸을 지배해서 그런가 음악과 춤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보자.”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뒷정리까지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올라가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저번 주에 봤던 월말평가 결과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설마 여기도 모 재수학원에서 한다는 것처럼 정문에 등수 같은 거 싹 프린트해서 붙여놓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샐러드를 하나 꺼내 들고 테이블로 가는데 마침 준혁이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오. 마침 잘 됐다.”
“뭐야? 할말 있냐?”
“어. 물어볼 거 있는데 월말 평가 결과는 보통 언제 나와?”
“보통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나와. 이제 나 밥 먹을 거니깐 말 시키지마.”
이러고 준혁이는 샐러드가 쌓여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어제 배덕을 저질러서 식탐이 좀 해결되었는데도 저 모양이건 보면, 아무리 봐도 뾰족한 건 원래 성격인 거 같다. 저런 식으로 살면 사회생활 만만치 않을 텐데 이 바닥은 좀 다른가? 내가 견문이 짧아서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밥 먹고 잠깐 숨 좀 돌렸다가 다시 레슨을 가야 한다. 근데 막 일어나려는 순간에 갑자기 넘버스 앱에서 알람 하나가 떴다.
[이유진 연습생 전달사항 확인 바랍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월말평가 결과가 벌써 떴나 싶어서 바로 확인을 해봤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다.
“하루에 셀카 2장씩 찍어서 검사 맡으라고?”
내 폰 갤러리에 예전에 찍은 셀카가 좀 있긴 한데 이건 내가 찍은 게 아니라 예전 몸 주인이 찍어 놓은 거다. 풍경이나 건축물 사진 같은 거는 좀 찍어봤지만 인물사진 특히 셀카는 거의 찍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음. 근데 어디서 찍지?”
막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은 빛이랑 화각 같은 거 잘 활용한다는데 난 아는 게 쥐뿔도 없다. 그래도 뭐 많이 찍다 보면 몇 장은 건지지 않을까 싶어서, 건물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이게 제일 잘 나온 건가?”
솔직히 그게 그거 같아서 뭐가 잘 나온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내 기준에 제일 괜찮아 보이는 사진 2장을 골라 넘버스 앱에 업로드를 했다. 이거 찍느라 금쪽같은 여유 시간이 다 사라졌네. 미리 알려줬으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찍었을 텐데.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은 건데 잘나온 사진 한 장을 건지려면 적어도 수백 장씩은 찍어야 된다고 한다. 근데 여권 프로필 사진 찍을 때 사진사 아저씨가 지시 하는 거 따라서 고작 몇 장 찍는 것도 힘들어했던 나다. 예전에 연애했을 때도 사진 못 찍는다고 구박 많이 받았었다. 그때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속이 쓰리네.
근데 이 생활을 계속 하다 보면 남이 찍어주건 내가 찍던 간에 카메라 앞에 서는 상황 자체에 적응을 해야 한다. 근데 솔직히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아직까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살면서 느낀 건데 노력으로 절대 커버가 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내가 그쪽에 재능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셀카 올리라고 해서 올렸으니 판단은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 뭐.”
정답이 없는 고민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레슨이나 받으러 가야겠다. 보컬 레슨 받으면서 좀 털리면 이런 사소한 건 금방 까먹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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