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아직은 어린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정규수업이 모두 끝나고 종례시간을 앞두고 있는데도 송이는 그림자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물론 그림자의 말에도 한번을 대꾸하지 않은 송이였다. 그림자도 화가 나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서기정을 만나야 하는 송이가 걱정 되고 답답하기도 해 먼저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임송이, 적당히 하자. 언제까지 나랑 말 안 할 건데? 어제 일로 아직도 꿍해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임송이? 정말 말 안할 거야? 왜 나한테 이러는데? 나한테 화가 났으면 화가 났다고 그냥 말해. 그래, 미안해. 너의 엄마에 대해 그렇게 얘기한 거. 그건 어제도 미안하다고 했잖아. 아유, 답답해.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어떡해? 말 좀 해라, 말 좀. 기정이 만날 거 아니야? 만나서 어떻게 할지 나한테는 말해줘야 하잖아. 그래야 나도 널 도울 수······.’
‘그래요. 나도 알아요. 내가 이상하다는 거. 아니,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
‘어? 어, 그래. 그러······.’
송이는 그림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단 말이에요. 엄마는 날 사랑한다고 믿고 싶다고요. 그저 표현이 서툰 거뿐이라고. 아니, 제가 엄마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모자라서······ 엄마가 그런 거라고, 제가 모두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요. 내가 잘하면 언젠가는 엄마도 날 인정해 주실 거예요. 나를 사랑해주실 거라고요.’
송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민정은 그런 송이를 보고 걱정스러워 다가왔다.
“송이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저기······ 잠깐만.”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송이는 고개를 돌렸다. 민정은 나지막이 물었다.
“그림자 아저씨랑 얘기하고 있었던 거야?”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민정은 알겠다는 듯 눈을 깜박이고는 그림자를 한번 내려다봤다. 민정이 자리로 돌아가자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송이야, 엄마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지금은 기정이한테 어떻게 할지부터 말해봐. 어? 무슨 생각이 있는 거니? 아니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줬으면 하는데.’
‘아니요. 제가 그냥 할게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할 건지 말해줄래.’
‘뭘 어떻게 해요? 사실대로 말하는 거죠. 다 알고 있다고, 널 도와주고 싶다고요.’
‘그게 다야? 그래서? 기정이가 싫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
‘싫다고요? 왜요? 기정이는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우리가 도와준다고 하면······.’
‘잠깐만.’
‘왜요? 제가 뭐 틀렸나요?’
‘아니, 틀렸다는 게 아니라, 기정이가 네 말대로 고맙다고 도와달라고 할까? 아니, 난 생각이 좀 다른데. 아니라고 발뺌을 할 것 같은데. 증거를 대라고 할 거라고. 송이 네가 도둑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기정이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세운다고 적반하장 식으로 나올 게 뻔하다고. 네 말을 듣기나 할까 걱정이다, 나는.’
‘그래도 차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며 되지 않을까요? 반장하고 있었던 일도 말하면······.’
‘그걸 말한다고? 아니, 기정이가 먼저 인정하기 전에 그걸 먼저 말해서는 절대 안 돼. 만약에 기정이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설득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실을 반장에게 말하게 되면 그때는 네가 위험해. 아니, 너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다칠 수 있어.’
‘무슨 소리에요? 애리가 반장을 만나 설득하겠다고 했는데. 그럼 애리가 더 위험하잖아요.’
‘그렇지. 네가 먼저 기정을 만난 뒤에 반장을 설득해야지, 순서가.’
‘왜 그걸 지금 말하는데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그래야지. 어제 그렇게 얘기 된 거 아니었어? 설마 애리가 먼저 반장에게 말하기로 한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잠깐만요.’
송이는 고개를 돌려 애리를 찾았지만 자리에 보이지 않자 민정에게 가서 물었다.
“애리는 어디 간 거야?”
“애리? 그러게······.”
민정은 애리의 자리를 한번 힐끔 보더니 속삭이듯 말을 이어갔다.
“그림자 아저씨랑은 얘기 다 끝난 거야? 기정이한테는 언제 말할 거니? 너 혼자 정말 괜찮겠어?”
“응. 걱정 마.”
송이는 민정에게 대답하면서도 교실을 둘러보며 반장을 찾았지만 반장도 보이지 않았다. 민정도 교실을 둘러보다가 일어나 동진에게 가서 조용히 물었다.
“동진아, 애리 못 봤니?”
“애리? 아, 아까 반장 따라 나가는 것 같던데.”
“뭐라고? 송이야, 잠깐만.”
민정은 깜짝 놀라 송이에게 달려갔다.
“왜?”
“애리······ 반장 따라 나갔다는데.”
“반장을 따라······ 왜? 아니겠지? 먼저 말하면 안 될 텐데. 같이 하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아니겠지, 설마.”
그림자가 송이 옆으로 드리우며 말을 걸었다.
‘뭐야? 애리가 반장한테 말하러 나간 거야?’
‘아니에요. 아닐 거예요. 애리도 알고 있을 거예요. 먼저 말하면 안 된다는 걸요. 애리가 밖으로 나가는 거 아저씨는 못 보셨어요?’
‘나야 못 봤지······.’
‘왜요? 왜 못 봐요? 다 지켜보고 있다면서요, 언제는?’
‘그랬는데, 네가 신경 쓰여서 너만 보고 있다······ 아니, 지금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내 잘못이라고? 허,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싸가지가 없다고 해야 하는 거야······. 요즘 애들은 다 이래?’
‘다 들리거든요.’
‘들으라고 한 소리야. 야, 임송이. 화내는 건 좋은데, 아무 때나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건 좀 문제 있는 거 아닐까? 특히 화를 내야하는 주체가 잘못 됐을 때는. 어디서 뺨 맞고 와서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데? 어리다고 봐주는 것도 어느 선이 있다? 너 지금 그 선을 넘었다고, 알고 있어?’
‘아니, 누가 화를 냈다고 그래요? 그냥 중요할 때 못 봤다니까 그게······. 서운해······ 아니, 아쉬워서 그렇죠.’
‘그게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소리야? 차라리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 너희 나이엔 말이야.’
‘그래요, 죄송해요. 괜히 아저씨한테 짜증을 냈네요. 죄송해요, 됐죠?’
‘사과한 거 맞지?’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했는데 또 왜요?’
사춘기인가 싶어 넘어가려는데 다 들린다며 송이가 사춘기 지난 지 이미 오래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그림자는 속으로 한 소리도 다 들린다며 투덜거렸다.
‘애리는 어쩌죠? 설마 벌써······.’
‘아닐 거야. 애리가 그렇게 사리분별이 안 되는 아이는 아니니, 누구처럼.’
‘그러겠······ 뭐요? 아무튼, 정말. 흥.’
‘일단 기다려보고. 기정이한테 어떻게 할지 나랑 다시 얘기하자.’
‘뭘 다시오? 그냥······’
‘안 된다고. 그렇게 했다가는 너희들 모두 위험해. 기정이는 널 피하기만 할 거야. 그것도 아니면 학교를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고요?’
‘기정이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겠지. 그런 사실들을 반 아이들이 알게 된다고 생각해봐. 너는 어떻겠어?’
‘그러겠네요. 난 도울 생각만 하고 정작 기정이의 마음을 생각 못했어요.’
‘그래. 처음에 송이 네가 혼자서 기정이를 만나겠다고 했을 때 그거까지도 생각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네. 그렇지, 열일곱 살 친구한테 내가 뭘 기대하겠어.’
송이는 눈을 흘기며 그림자를 째려봤다.
‘치, 또 무시. 그래요, 생각이 짧았어요. 그렇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생각이란 걸 한 거라고요. 나도 아저씨 나이라면 그 정도는 생각했겠죠. 그래서 어른이라는 말도 듣는 거잖아요. 뭐라도 대단한 걸 다 알고 있는 척하지 마세요. 꼰대 같으니까.’
‘아이, 참. 이제는 꼰대야? 정말 한마디를 안 지네. 그래, 너 잘났다. 그래도 어른 말을 좀 경청할 줄 알았으면 하는데, 너희한테 나쁠 건 없잖아?’
‘그건 들어봐야 알죠. 나쁜지 좋은 지는요.’
‘아휴, 그래. 그건 맞다. 어른 말이라고 다 맞는 말일 수는 없지. 그래도 들어보시기나 하시죠, 고딩님.’
‘치, 유치해.’
‘유치? 말을 말자. 잘 듣기나 해!’
‘앗, 깜짝이야. 잘 듣고 있거든요. 갑자기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해요? 정말, 못 됐어.’
헛웃음을 지으며 기정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설명이 끝날 쯤 애리가 교실로 들어왔다. 민정이 애리에게 왔다.
“어디 갔다 와? 반장······.”
애리는 민정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자리에 앉혔다. 반장이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애리는 민정에게 귓속말을 했다.
“조용히 말해. 애들이 다 듣겠다.”
민정은 작게 소리 냈다.
“미안. 반장 만나고 온 거야?”
“아니야.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 줄게. 자리로 가.”
“어, 알았어. 나중에.”
자리로 와 앉은 민정에게 송이가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뭐야? 애리, 어디 갔다 오는 거래?”
말하려던 민정이 반장을 힐끔 보고는 송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반장 만나고 온 거 아니래. 나중에 말해준다고 했어.”
“뭘?”
“어? 아, 나도 몰라······ 아니, 어디 갔다 왔는지 나중에 알려준다고.”
“그래? 알았어. 저기, 종례 끝나면 나는 기정이랑 따로 만날 거야.”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말했다.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
“응. 고마워.”
송이는 민정의 어깨를 짚고 일어나 애리에게 갔다.
“애리야.”
“잘 왔다. 나랑 잠깐만 나가서 얘기해.”
애리는 송이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와 애들이 없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기정이한테 빨리 말해야 할 것 같아.”
“무슨 일 있는 거야?”
“아까 소희를 뒤따라가서 몰래 하는 얘기를 들었거든.”
“뭐? 왜 그랬어? 위험하게······.”
“괜찮아. 아무도 모르게 듣고 왔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걔네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 기정이를 몰래 어디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말이야. 기정이가 알면 절대 안 따라 나설 거라고, 어떻게든 속여서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이번 일만 잘 되면 앞으로 편해질 거라고 하던데. 기정이한테 뭔가 안 좋은 일을 시킬 것 같아서 말이야.”
“뭘 시켜······ 설마······.”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송이에게 애리는 너도 그게 걱정되는 거지라며 물었다.
“공터에서 걔들이 했던 말 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반장이 기정이를 데리고 가기 전에 네가 먼저 얘기를 해서 반장을 따라가지 않게 해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기정이······.”
송이는 애리의 손을 잡았다.
“말 안 해도 돼. 무슨 말인지 아니까. 지금이라도 말을 꺼내봐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뭐해? 교실에서 대기하지 않고.”
담임선생을 본 송이와 애리는 깜짝 놀라 경직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왜들 그래? 뭐하고 있는 거야? 교실로 가지 않고.”
그제야 송이와 애리는 동시에 대답하며 교실로 뛰어올라갔다. 교실 앞에서 애리가 송이를 붙잡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반장은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기정이 잘 부탁해.”
굳은 결심을 다짐하듯 송이는 야무지게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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