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림자가 말을 걸어오다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날이 저물고 있는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 인부들이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고 있다. 콘크리트와 철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고층 안전 펜스 앞에서 한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남자는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아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남자는 뒤돌아보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회색빛 공사장 내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게, 임 주임.”
“여기서 보자고 하신 게 고작 그 얘기를 하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고작? 이 사람이··· 정신 똑바로 차려. 그 입 함부로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어. 어? 그거 경고하러 온 거야. 내가 다 임 주임 생각해서 이러는 거라고, 알겠어?”
“사무관님,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지금이라도···”
“정말 이 사람이··· 임 주임만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일을 크게 만들려고 그래? 임 주임, 이번 한번만 눈 딱 감아, 응? 그러면 세상이 다 편해. 물론, 임 주임도 라인 제대로 타는 거고. 왜 그걸 몰라?”
“세상에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언젠가는 다 밝혀···”
“임 주임! 정말 세상물정 몰라도 정말 모르네. 밝혀지면 당신이나 나나 죽은 목숨인 거야. 저기 윗분들을 털끝 하나 건들 수나 있을 것 같아? 괜히 나섰다가는 우리 아랫사람들만 옴팡 뒤집어쓴다고. 그걸 왜 몰라? 자네가 그걸 밝히는 순간, 우리만 다친다··· 아니, 죽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거나 받아.”
사무관이 임 주임에게 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다 알면서 그래. 이것 받고, 그 입 닫아. 눈도 꾹 감고. 알았어?”
“싫습니다. 돈을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 사람아, 그냥 받아둬. 자네가 안 받아도··· 아니, 그냥 받아.”
“괜찮습니다.”
사무관은 억지로 임 주임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 넣으며 발걸음을 뗐다.
“그냥 받으라면 받아! 그럼, 임 주임만 믿고 이만 가네.”
임 주임은 봉투를 다시 꺼내 사무관에게 내밀어봤지만, 그는 벌써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 뒤였다. 임 주임은 쫓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학원 교실 창가로 어둠이 완전히 내리자, 영어수업이 끝났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은 가방을 챙기고 홀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 살이 통통한 이 소녀는 키도 자기 또래들보다 커서 항상 눈에 잘 띄는 아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자 왁자지껄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말 한마디 없이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 여학생은 시계를 확인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고, 여학생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발신자명에 청산동이라고 떴다.
“송이야, 학원가는 길이야?”
“아니, 배고파서 저녁 먹으려고 편···”
“얘는 정말, 늦게 먹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너 살 안 뺄 거야? 네 배를 봐? 아무튼 너는. 저녁 먹지 마, 알겠지?”
송이는 낙담한 얼굴로 편의점을 나오며 말했다.
“알았어.”
“아, 엄마 오늘 많이 늦어. 엄마 회사 VIP 고객이 조부 상을 당해서 장례식장에 가야해서 그래, 알지? 내가 네 학원비 내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거 알아둬라. 나중에 꼭 보상 다 받을 거야.”
“엄마···“
송이는 엄마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송이의 엄마는 들을 생각이 없는지 자신의 말만 뱉어냈다.
“그러니까, 학원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 아침에 엄마가 설거지를 못하고 나왔어. 그러니까, 설거지 좀 하고, 거실도 좀 치워놔. 알았지? 아, 시간 되면 빨래 좀 돌리고. 엄마가 이렇게 바쁜데 너라도 엄마 도와야지, 안 그래? 엄마도 너무 힘들어. 딸이 엄마 도와야지, 응?”
“알았어. 근데···”
“엄마 늦는다고 피시방 같은데 가지 말고. 특히 살찌니까, 아무거나 막 먹지 말고. 내가 안 봐도 다 알아서 그래, 어?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그럴게. 근데, 많이 늦어?”
“새벽에나 들어갈 거야. 고객 눈치 보여서 부조금만 내고 올 수 없잖아.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돈 번다, 송이야. 너도 알지? 그 보험 좀 더 팔아보겠다고 엄마가 이러는 거. 엄마가 이렇게라도 해야 네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지. 너 잘되라고 내가 이러는 거야, 그거나 알아둬.”
“알아, 고마워. 엄마. 그럼, 아빠는? 아빠도 늦어?”
“너도 알잖아? 아빠 보직이동하고 바쁜 거. 요즘 매일 야근하시잖아. 오늘도 아마 늦으실 거야. 공무원 아빠 만나서 팔자 좋게 살줄 알았더니, 이게 뭐니? 아무튼, 내 팔자가··· 아무튼 늦으실 거니까, 그렇게 알고. 엄마가 하라는 거 해놓고 자야 해? 안 그러면 엄마가 해야 한다고. 엄마 정말 힘들어, 알지? 딸.”
“알아, 너무 늦지 말···”
“그래, 그만 끊어.”
뚝하고 엄마의 전화가 끊기고, 송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에 힘이 하나도 없어 축 처진 채 학원으로 향하던 송이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피식 웃음 지으며 학원으로 가는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
금남경찰서 정문에서 한 남자가 전화를 받으며 뛰어나와서는 택시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 손을 흔들어댔다.
“네, 어딘지 압니다. 그곳에서 뵙죠, 그럼.”
그는 전화를 끊으며 앞에서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연신 흔들었다. 그때 정문으로 들어서던 한 남자가 택시를 타려는 남자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불렀다.
“이한! 남궁 형사, 어디 가는 거야?”
“아, 제보가 들어와서. 만나고 와서 얘기할게, 그럼.”
“어? 제보? 어, 그래. 알아···”
남궁 형사는 그 형사의 대답도 들을 세 없이 택시에 올라타 곧바로 출발했다. 택시가 도착한 곳은 이동인구가 많은 도심의 한 카페 앞이었다. 남궁 형사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시간을 확인하며 초조한 듯 탁자를 손가락을 빠르게 두드리며 남궁 형사의 눈은 카페 출입구를 향해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져도 만나기로 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남궁 형사는 기다리지 못하고 카페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며 서성거렸다.
남궁 형사는 휴대폰을 꺼내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궁 형사는 초조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지켜보다, 다시 걸려는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바로 받은 그는 말없이 듣고 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탄 택시가 도착한 곳은 주택가의 한 골목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남궁 형사는 휴대폰의 메모를 확인하며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 대문 앞에 붙어있는 주소를 확인하더니, 찾는 곳이 맞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살폈다. 초인종을 누르려할 때 대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남궁 형사는 손을 소매에 넣어, 대문을 잡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때 집 안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가 문 앞에 섰을 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송이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 소녀 뒤로 푸른빛의 불꽃이 터지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남궁 형사는 달려 나온 여학생을 구해야겠다는 생각하나로 송이를 온몸으로 안은 채 곧바로 뒤돌아섰다. 동시에 커다란 폭음소리와 함께 송이를 안은 그는 폭파 충격으로 날아가 담벼락에 부딪쳐 떨어졌다.
남궁 형사는 등에 불이 붙은 채 정신을 잃었고, 송이 또한 정신을 잃은 채 나란히 형사 옆에 쓰러져있다. 폭탄이 터진 듯한 폭파소리에 주변 주택가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고, 쓰러져있는 남궁 형사의 등에 붙은 불을 본 사람들이 달려와 불을 끄며 두 사람을 집 밖으로 구조했다.
폭발한 주택은 불길에 휩싸여 훨훨 타올랐고, 얼마 있지 않아 소방차가 도착해 불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구조해 집 밖으로 나와 있던 남궁 형사와 송이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
병실로 상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며칠 먹지도 씻지도 못한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임송이 환자라고 적혀있는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를 한참을 내려다보다, 말없이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그날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채 며칠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 형사는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등과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고, 담벼락에 부딪힐 때 소녀를 보호하다 머리를 벽에 심하게 부딪쳐 머리 골절상까지 입었다. 이대로 의식도 돌아오지 않으면 뇌사판정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 자살방화사건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려했다. 집 안에서 사망자가 나왔고, 그 사람은 그 집의 세대주인 소녀의 아빠였다. 소녀의 아빠는 죽기 전에 아내에게 문자로 유서를 남겼고, 그걸 증거로 자살이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는 공무원이었던 소녀의 아빠가 뇌물 받은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 자살을 결심하고 아내에게 문자로 유서를 남긴 채 집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날 유일한 목격자일 수 있는 소녀에게 형사가 찾아갔지만, 잠들어 있는 모습에 그냥 돌아갔다. 형사가 돌아가고 얼마 있지 않아 소녀가 눈을 떴다. 2인실 병실이었지만, 다른 환자는 병실에 없었다.
소녀는 몸을 일으켜 앉아 두리번거린 뒤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은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누웠다. 그때 갑자기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아파, 일어나!”
소녀는 다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병실에는 아무도 안 보였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좀 옆으로 비켜보라고.”
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겁에 질려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누구예요! 어디에 숨어 그런 거죠? 나와서 얘기해요!”
“얘가 무슨 소리야? 네 뒤에 있잖아. 나 안 보여?”
“뒤라고···”
소녀는 바로 고개를 뒤로 돌려 살폈다.
“정말, 장난칠 거예요? 빨리 나오라고요! 무섭게 왜 그래요?”
“아이, 무슨 소리야? 누가 장난을 쳐? 장난은 그쪽이 치고 있지.”
소녀는 낯선 이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이럴 거예요? 더는 못 참아요?”
소녀는 맞은편 침대 커튼 뒤에 숨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맞은편 침대로 가 커튼을 들추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거 다 알아··· 어?”
소녀는 커튼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때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다고. 네 뒤에···”
송이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곳엔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단지, 형광등 불빛에 비친 내 그림자가 크게 드리웠을 뿐이었다.
“그래, 나라고. 나. 안 보여?”
“어디에 있는··· 아니, 설마···”
소녀는 자신과 다른 그림자의 모습을 보고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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