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림자의 정체는? 3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에이, 아니지. 중환자실에 있다며?”
“네, 그러니까···”
“살아있는데, 왜 나겠어? 나는 이렇게 네 옆에 있는데···”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이···”
“설마, 죽은 건가? 정말 너 때문에··· 아니,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요, 정말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저 때문에··· 아니, 그래요. 저 때문에 죽어서 귀신이 돼, 저한테 붙은 걸 수도 있잖아요.”
“그럼, 내가 정말 귀신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아니, 그리고 내가 왜 죽어? 아니야, 난 아니···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죽었으면 이렇게 아무런 기억도 없이 네 옆에 붙어 있겠어? 복수를 하려면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야 할 것 아니야, 안 그래?
“그건 또 그런 것 같은데··· 아니, 그냥 중환자실에 계신 그분을 보면 그날 일이 기억날 수도 있을 것 같고. 혹시나 아저씨··· 아니 그러니까··· 아저씨일 수도 있··· 저기요? 혹시, 화나셨어요?”
송이의 물음에 대답이 없는 그림자다. 그렇게 수다스럽던 그림자가 말을 하지 않자, 송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니요. 그게··· 화를 내실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냥 확인만 하려고··· 그분이 아저씨가 아닐 수도 있고, 그냥 한 말인데··· 어머, 정말 화 나셨나 보네요? 끝까지 말씀이 없는 걸 보니.”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얼굴 표정만 보면 알거 아니야.”
“표정이요? 아저씨 얼굴 표정을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는 그림자라고요. 그림자에 얼굴 표정이 드러나나요? 참.”
“아, 그렇지. 내가 자꾸 그림자라는 걸 망각하네, 미안.”
“그러니까, 화가 나면 말로 하세요, 말을. 그리고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거예요? 저는 그냥 확인만 하려는 거였는데, 혹시나 해서 말한 거뿐이라고.”
“알았어. 너도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을 해봐. 기분이 어떨지? 그게 그리 좋겠냐고. 죽어서, 이렇게 너한테 귀신으로 붙어있다는 게 말이야.”
“아··· 죄송해요. 그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그저 제 기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밖에 못했네요. 미안해요, 아저씨.”
“아니야, 됐어.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나 혼자라도 보고 올까? 내가 만약 그 사람이라면, 얼굴을 보면 바로 알아보지 않을까?”
“그러실래요, 그럼? 그런데 혼자 갈 수는 있는 거예요?”
“네 몸에서 떨어지는 걸 봐서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사람들 눈에 띄면요? 사람들 눈에는 보인다면서요?”
“그건 그렇지. 그럼, 사람들이 많이 놀라겠지?”
“당연하죠. 그리고 여기가 장례식장이라 귀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요. 아니, 정말 귀신일지도··· 아휴, 생각만 해도 오싹하네요.”
“오싹? 뭐가? 귀신 아니라니까, 왜 날 자꾸 죽이려는 거야?”
“아, 죄송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럼, 같이 움직이자.”
“지금은 엄마가 계셔서 힘들 것 같아요.”
“그런가? 방법이 있을 거야, 잠시만 생각을 좀 하고. 그 전에, 나 하나만 부탁해도 돼?”
“무슨 부탁이요?”
“지금 깔고 앉은 방석 말이야. 똑바로 좀 해주면 안 될까? 그리고 저기 빈소에 국화꽃도 좀 가지런히 해주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계속 눈에 거슬려서 말이야.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고··· 그걸 보면 또 막 불안해지고 그래서 말이야.”
“아, 알겠어요.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송이는 방석을 똑바로 각을 잡고, 국화들을 일렬로 정리한 뒤 돌아왔다.
“이제 어때요? 괜찮아요?”
“어, 한결 좋네. 고마워.”
“아저씨, 혹시 그거··· 아니에요.”
송이가 말하다 얼버무리자, 그림자가 되물었다.
“혹시 뭐? 뭘 말하고 싶은데?”
“아니라고 했잖아요.”
“뭐가 아니야? 왜 말하다 말아. 뭐, 내가 결벽증이나 강박증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궁금해? 아니야, 그냥 좀 어지럽게 놓여있어서 그런 거지. 이제는 날 또 환자 취급하는 거야?”
“누가 뭐라고 했나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그걸 말로 해야 아나? 얼굴에 딱 쓰여 있던데. 너는 그림자가 아니라서 얼굴에 다 보인다고, 표정이.”
“정말 웃겨. 그래요, 그래. 방석이나 국화가 조금 흩뜨려져 있는 걸 보고 불안하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려다, 실례가 될 것 같아 못 물어본 거뿐이거든요. 그런데 아저씨가 먼저 말씀하시니 됐네요. 아니라는 거죠, 강박증이나 결벽증 말이에요? 그럼.”
송이는 옆에 놓여있던 방석들을 마구 흩뜨려버리고, 국화가 놓여있는 곳으로 갔다.
“송이야, 알았어. 잠깐. 이 아저씨가 잘못했어. 미안, 맞아. 강박증이든 결벽증이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그냥 둬. 어? 저기 방석들도 원래대로 해주고. 어? 송이야.”
송이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기만 할 뿐 방석을 줄 맞춰 정리하지는 않았다.
“왜 그래?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부탁할게, 송이야. 어? 그러니까, 제발. 그 고집도 참··· 그래, 좋아.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이 방법을 쓸 수밖에. 후회하지 마.”
그림자는 송이에게 떨어져 빈소 밖으로 나가려했다. 송이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뻗어 그림자를 잡으려했지만, 잡힐 리 없는 노릇이었다. 송이는 다급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할게요. 정리하면 되잖아요. 어서 와요, 빨리.”
“해줄 거야?”
송이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방석들을 줄맞춰 정리했다.
“좋아, 내가 봐준다. 대신, 또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때는 절대 안 봐줄 거야. 그렇게 알아?”
“알았어요. 참, 못됐어. 아저씨가 돼서.”
“그리고 아직 내가 아저씨인지, 청년인지, 소년인지 모르는 일이거든.”
“말도 안 돼. 그 목소리가 소년··· 아니, 청년이라고요? 만약에 그렇다면 내 손에···”
“손에 뭐? 장이라도 찍게?”
송이는 순간 자신의 말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청년이라면··· 괜한 소리를 해, 트집만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 아니, 아닐 거라고요. 네.”
“이그, 그렇게 소심해서야··· 그래, 확신 없는 일에 괜히 나서는 것도 좋지 않지. 잘 했어. 그게 어려운 거거든. 어른이 되면 더 힘들어져, 쓸데없이 객기나 부리고 말이야.”
“오호,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면, 정말 아저씨가 맞는 것 같은데요. 아니지, 할아버지는 아니시고요?”
“뭐라고? 너 정말···”
“아, 농담이요. 농담. 아저씨가 맞는 것 같네요. 고마워요, 아저씨.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요. 매번 엄마한테 지적이나 당하고, 혼나기만 했는데,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그게 뭐가? 어른이면 당연히 그런 거지. 그래, 네 엄마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지. 아, 미안. 그래도 엄만데, 내가 좀 심했다, 그치?”
“아니에요. 엄마보다 아저씨가 더 나은 게 맞는데요, 뭐.”
“그래도··· 그래.”
송이는 잠시 말없이 아빠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아빠 생각나서 그래?”
송이는 순간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와 고개를 숙였다.
***
금남시청 도시계획과 사무실로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고 있었다. 막 출근한 오동수 팀장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과장 자리로 가 인사했다.
“일찍 출근하셨네요? 과장님.”
“어, 오 팀장. 왔어요? 오늘 내가 좀 일이 많아서요.”
오 팀장은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저기, 과장님. 임 주임 장···”
과장은 임 주임이라는 말에 살쾡이 눈으로 오 팀장을 올려다봤다. 오 팀장은 흠칫 놀라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아, 아, 아니··· 장례식장에 언제 가실 건지 해서요? 내일이 발인이라···”
“내가 거길 왜 가요? 다 알잖아요. 갈 사람들은 알아서 가라고 해요. 가는 것까지는 어떻게 막겠어요. 대신, 괜한 소리들 하지 말라고, 입단속들 잘 시켜요. 거기 기자들이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언론에 쓸데없이 노출되는 일 없도록 하란 말이에요.”
“그럼, 국장님도 안···”
“국장님 말씀이에요. 나도··· 내 직속 부하직원이 그렇게 황망하게 가서 많이 안타까워요. 그래도 남들 시선도 봐야 하잖아요. 좋은 일도 아니고. 뇌물사건에 연루돼 자살이라니··· 나참. 괜히 가서 무슨 좋은 소리를 듣겠어요. 나중에 따로 유가족들을 찾아뵐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오 팀장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팀원들에게 단체문자를 보냈다.
***
빈소에 마련된 방에서 잠시 쪽잠을 자고 일어난 송이는 코를 골며 자는 엄마의 얼굴을 옆으로 돌려, 코고는 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때야 송이의 그림자는 기지개를 펴며 방에서 나와 말을 걸었다.
“잠은 좀 잤어?”
“어머, 깜짝이야!”
송이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가 하품을 하는지 손이 얼굴에 붙어있었다. 송이는 잠깐 잊고 있던 그림자의 존재를 깨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휴, 난 또··· 귀신인 줄···”
“귀신 아니라니까!”
“아, 미안해요. 그게 아니라,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서··· 제가 깜빡 잊고 있어서요, 아저씨의 존재를요.”
“그런 거야? 나도 이게 다 꿈이었으면 했는데··· 도통 꿈을 꿀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잠은 좀 잔거야? 네 엄마 코고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난 그림잔데 왜 잠을 자야 하는 걸까? 졸려 죽겠는데, 코고는 소리에 와··· 아무튼 난 그랬는데, 괜찮았어?”
“저야, 익숙해서요. 그리고 피곤해서 코고는 소리도 못 들었고요.”
“그랬구나. 그래. 아, 지금이 기회인 것 같은데.”
“뭐가··· 아! 중환자실에 가는 거요?”
“그래. 자고 있을 때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나요? 따로 면회시간이 있는 걸로 알 고 있는데···”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난 들어가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아까 보니까, 문도 그냥 통과해서 나왔잖아. 아, 이런 것 보면 정말 귀신같기도 한데···”
“귀신··· 자꾸 귀신 얘기하지 마세요. 무섭단 말이에요. 장례식장이라 그런지 주변 공기도 냉냉하게··· 소름이 돋아 오싹거린다고요.”
“누가 먼저 귀신 얘기를 꺼냈는데··· 알았어. 그건 그렇고, 내가 문도 그냥 통과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지금이 좋을 것 같기도 해. 간호사들도 많지 않을 거고, 어때?”
“그럴까요, 그럼?”
“그러자고.”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와 함께 밖으로 나와, 중환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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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 작가의말
다음 7화는
내일 밤 10시 15분에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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