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멀어지면 위험해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림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비틀거렸다. 역시나 엘리베이터의 밀폐된 공간에서도 불안감은 극도로 심각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다리가······.”
“어······ 아니······.”
그림자는 말도 제대로 못할 만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림자여서 어떤 상태인지 바로 알 수는 없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와 팔을 보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힘들면 잠깐 여기서 쉬었다가요. 저기 의자에 잠시 앉으세요.”
엘리베이터 앞에 긴 의자가 있었다. 다행히도 5층 바닥은 로비 바닥처럼 되어 있지 않고 일정한 패턴을 따라 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었다. 송이는 의자에 앉으며 그림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많이 힘들면 다음부터는 계단을 이용하죠. 그게 좋겠어요.”
그림자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궁이한의 어머니가 내렸다. 송이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림자의 팔과 다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눈여겨봤더라면 소스라치게 놀랄 광경이었겠지만 이한의 어머니는 무심코 힐끔 보더니 그냥 중환자 대기실로 향했다.
송이는 그녀가 중환자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요? 계속 그래요?”
“아니야,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이동해볼까?”
“네. 그런데 아까 한 할머니가 대기실로 들어갔잖아요. 아, 못 보셨어요?”
“할머니? 그랬어? 못 봤어.”
“그래서 들어가면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할머니가 보시고 놀라실까 걱정이에요.”
“어, 알았어. 네 옆에 딱 붙어서 걸을 게. 근데 부탁이 하나 있는데······. 걸을 때 말이야. 바닥보이지? 선 좀 안 밟고 걸어줘. 나도 그에 맞춰서 걸을 테니.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그럴게요. 그럼 갑니다.”
송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중환자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자는 송이 옆에 딱 붙어 송이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송이는 그림자를 배려해 바닥의 금을 밟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중환자 대기실에 들어선 그들은 중환자실 입구 바로 옆 긴 의자에 앉았다.
이한의 어머니는 대기실 끝자락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송이는 그녀를 보며 자신 때문에 중환자실에 있을 그의 보호자가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기 할머니도 기도하고 계신 듯하니 괜찮을 것 같고요.”
“알았어. 여기서 기다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속으로 말해, 알았지?”
“네.”
그림자는 송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중환자실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바닥 문틈 사이로 들어가듯 다리부터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머리가 들어가며 눈에서 사라졌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증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봐서는 그리 거리가 멀지는 않은 듯 보였다.
중환자실로 들어선 그림자는 이한이라는 이름의 환자를 찾아 침대에 붙어 있는 명찰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또한 간호사들이 환자들 상태를 확인하며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함께 살펴야했다. 간호사가 가까이 왔다 싶으면 그림자는 침대 밑으로 숨기 바빴다.
그림자는 그렇게 환자들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이한이라는 이름의 환자를 찾았다. 별도 폐쇄된 공간에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남궁이한이라는 이름을 본 그림자는 뭔가가 떠오를 것 같은 짧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갔지만 그 이상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림자의 시선은 그 남자의 몸으로 이어졌다. 온몸이 붕대로 감싸져 있는 그를 본 그림자는 제대로 그를 보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얼굴은 붕대로 감겨있지 않아 볼 수 있었지만 퉁퉁 부은 모습에서 얼굴의 이목구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림자에게는 낯선 얼굴이었다. 이 환자가 자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고 전혀 기억에 없는 이름과 얼굴이었다.
그 시각 중환자실 밖에서 기도하고 있던 이한의 어머니는 기도가 끝났는지 일어나 송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상중인 것 같은데 중환자실에 어쩐 일로 온 거예요.”
중환자실 문만 바라보고 있던 송이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뭐라고 하셨어요?”
“미안해요. 놀랐어요? 상복을 입고 있어서······.”
“아, 그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요.”
“아이고, 이런. 그런데 여기는 왜······ 아, 미안해요. 내가 괜한 걸 물었네요. 우리 함께 기도할까요?”
“기도요?”
“그래요. 빠른 쾌유를 위해 함께 기도해요.”
“저는 불자라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기도하는데 종교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쪽은 부처님께······.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죠.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이한의 어머니는 송이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송이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다 어정쩡하게 고개 숙인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한의 쾌유를 빌었다. 기도를 끝내고 송이는 실눈을 떠서 옆에 있는 할머니를 힐끔 살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 숙인 채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송이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우며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는 그림자 아저씨로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림자 아저씨가 아닌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여기에 있었네요.”
“저요?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그 남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누구신데 저를······.”
“아, 나는 금남경찰서의 방기철 형사라고 해요.”
“형사가 저를 왜? 아, 아빠 때문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학생을 만나러 온 건 아니었는데······. 여기에 있었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화 소리에 고개를 든 이한의 어머니에게 방 형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이렇게 일찍 나오신 거예요?”
“아이고, 안녕하세요. 형사님은 어쩐 일로 또 오셨어요? 제가 깨어나면 연락드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처에 왔다가 잠시 들렸습니다. 그런데 면회시간도 아닌데 왜 여기에 계신 거예요. 힘드시지 않으세요?”
“아니에요. 제가 뭐가 힘들겠어요. 아들이 힘들지······.”
“예, 그렇죠. 그래도 이러시다 어머니도 쓰러지시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럴게요, 형사님. 걱정 마세요.”
“어머니, 그럼 잠시 만요.”
방 형사는 그렇게 말하고 송이를 바라봤다.
“잠깐 저쪽으로 가서 얘기 좀 할까요?”
“저랑······ 아, 네.”
방 형사가 앞서 걸었고 송이가 그 뒤를 따랐다. 이한의 어머니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잠시 지켜보다 다시 기도하듯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그때 걸어가던 방 형사가 멈춰 서서 송이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왜 왔어요? 남궁 형사를 보러 온 거예요?”
“남궁 형사요?”
“몰라요? 그럼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니, 그게······ 저 때문에 다치신 형사······ 아, 혹시 남궁 형사라는 분의 이름이 이한인가요?”
“역시 그랬군요. 맞아요. 남궁이한이라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어요?”
“그날······ 죄송해요. 그날 집에서 있었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요. 정말이에요.”
“기억이 안 난다고요?”
“네. 제가 왜 집에 있었는지······ 그 시간이면 학원에 있을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엄마한테 들었어요. 저 때문에 크게 다치셨다고요.”
“그럼 저기 저분이 남궁 형사의 어머니라는 것도 알고 있는 거예요?”
“네? 저 할머니가요.”
송이는 깜짝 놀라며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그녀를 바라봤다.
“몰랐어요? 그런데 같이 기도하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냥 같이 기도하자고 하셔서요.”
“그건 그렇고 정말 사건현장에서 있었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전혀요. 그런데 우리 아빠가 정말 자살을 하신 건가요? 뇌물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우리 아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요, 정말이에요.”
“학생, 그건 어른들 일이라 학생이 몰라서 그래. 그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 그것보다 학생은 그날 일을 좀 기억이나 해봐요. 에?”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잖아요. 제가 무슨 거짓말이라도 하는 줄 아시는 건가요? 그리고 정말 우리 아빠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요.”
송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방 형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한의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송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학생, 내가 언제 거짓말이라고 했어? 그리고 여기 중환자실이야, 그렇게 크게 소리 내 얘기하면 안 돼. 그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해요.”
“나가서요?”
“그래요.”
방 형사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송이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송이는 그림자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방 형사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로비를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심장에 통증이 느껴져 주저앉은 송이는 로비바닥을 보고서야 그림자가 생각났다.
“뭐해요, 거기서?”
“잠깐만요.”
방 형사는 송이에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가까운 의자에 앉혔다.
“괜찮아요?”
송이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림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저기, 학생. 괜찮으냐고?”
“아, 네.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가슴이? 심장이 안 좋은 거야?”
“잠깐 쉬면 괜찮을 거예요.”
“아이고, 그 일로 후유증이 있는 건가? 병실에 더 누워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잠깐 쉬며 돼요. 그것보다 잠깐 혼자 좀 있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 그래요. 미안해요.”
방 형사는 잠시 송이에게 떨어져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송이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왜 대답이 없는 거예요? 대답하라고요? 괜찮은 거예요?’
그제야 그림자의 목소리가 송이에게 들렸다.
‘어, 난 괜찮아. 갑자기 어딜 간 거야?’
‘미안해요. 형사가 찾아와서 생각 없이 1층 로비까지 내려왔어요.’
‘그랬구나. 난 방금 중환자실에서 나왔어. 더는 멀리가지 말고, 어서 올라와.’
‘그게 안 돼요. 형사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요. 아저씨가 1층으로 내려오세요.’
‘아이, 참. 알았어, 그럼.’
심장을 압박해오는 통증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건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송이는 잠시 여기서 그를 기다릴 생각으로 방 형사에게 힘든 기색을 계속 보였다. 그러면서 비상계단 출입문 쪽을 힐끔 힐끔 살폈다. 그때 방 형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은데 밖에 나가서 얘기 좀 할까요?”
“죄송한데요. 제가 아직은······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겠어요? 아니면 여기서 말씀하셔도 될 듯한데. 사람들도 별로 없고요.”
“그럴까요? 그럼 대신 아까처럼 그렇게 크게 소리치면 안 돼요?”
“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세요?”
“그게··· 오해 없이 들어요. 학생의 엄마와 아빠 사이가 어땠는지 알고 싶어서요.”
“엄마랑 아빠 사이요? 그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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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 작가의말
다음 9화는
내일 밤 10시 0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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