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부릎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4
최근연재일 :
2022.06.08 20: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154
추천수 :
461
글자수 :
138,314

작성
22.05.23 20:20
조회
203
추천
16
글자
13쪽

3편 개인교습(5)

DUMMY

3편 개인교습(5)




숨?

아, 숨을···!

그제야 호흡이 턱 막혀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통과 통증에 진탕이 된 머릿속에 제타의 말, ‘숨’은 내게 새로운 길을 제안했다.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호흡하는 것이다.


“허억―! 헉, 헉!”


시야가 조금 돌아온다.

곧이어 경고창이 또다시 시야를 어지럽혔다.


< ···HP:32% >


“뭐 하고 앉았어! 회복해! 회복! 회복!!”


회복.

회복이다. 회복···.

불타는 듯한 가슴에 정신을 집중하자, 떨어지던 상태로그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 HP:29%···31%···27%········· >


회복력이 죽어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빨리 어떻게든 해야······.

그때, 제타가 목검을 건네 왔다.


“숨이 돌아왔으면 휘둘러라, 시간이 없다!”


그렇다. 이 미친 짓을 멈추려면 훈련을 끝내는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해버린 이상 살고 싶다면 ‘회복’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목검을 받아 들려던 순간,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가슴에 박힌 단검이 비틀리며 심장을 헤집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상흔이 벌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가슴에서 새어나온 피가 옷깃을 적시고 바닥에 고여 간다.

땡그랑거리며 떨어진 목검. 그와 함께 시야가 제멋대로 넘어간다.

앞으로 자빠지는 것을 간신히 땅을 짚어 버텼다. 그러나 그 충격으로 단검이 쑥 움직인다.


“크윽!”


무거운 단검이 중력의 힘에 붙잡혀 슬쩍 빠져버린 것이다. 겨우 1cm정도. 하지만 그 고통은 작지 않았다.

엎드린 아래로 뜨거운 피가 쏘아지듯 튀며 앞섶을 적셨다.

푸슉, 푸슉

붉게 고이는 웅덩이, 가슴 위에서 불규칙하게 두근거리는 단검.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무리다. 심장을 꿰뚫리고 움직이라니.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이미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거센 숨을 몰아쉬던 내게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뭘 멍하니 있는 거냐! 집중하라니까!”


제기랄! 이따위로 어이없이 죽을 수는 없었다.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기듯이 손을 뻗어 목검을 쥐었다. 한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목검을 의지하며 기어코 일어섰다.


“계속 그따위로 버러지같이 한다면 훈련을 멈추겠다!”


제멋대로 넘어가는 세상을 따라 눈앞이 빙글 돌아간다.

나는 억지로 자세를 다잡으며 목검을 들었다.


“···웃기지 마.”


목검이 철근처럼 무거웠다.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HP는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내려베기를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순간, 느려진 혈류가 가속하면서 아찔한 통증이 몰려왔다.

힘 빠진 손아귀에서 목검이 흘러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는 있었다.

세 번, 네 번···.

피가 계속해서 빠져나간다. 움직임이 이어질수록, 내 생명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문득, 세상이 까마득히 멀어지는 감각과 함께,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경고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플레이어 보정 : 노예검사 No.900에게 [평정심]이 부여됩니다. >

< 캐릭터가 상태이상 [빈사]에 빠집니다! >

< 플레이어 보정 : 노예검사 No.900에게 [평정심]이 부여됩니다. >

< 경고! 조속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

< 플레이어 보정 : 노예검사 No.900에게 [평정심]이 부여됩니다. >

< HP:16%··· >


체력이 극도로 떨어져있다. 움직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마나의 작용을 잊은 탓이다. 황급히 정신을 집중해, ‘초회복’을 발동시켰으나 쉽지 않았다.

내려베기를 하는 이유는 혈류를 늘려서 회복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움직임을 등한시하면 혈류가 느려지며 회복의 힘이 약해진다.

그렇다고 초회복에 집중하면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두 행동 사이의 균형을 잡기 어렵다. 그리하여 집중이 분산되고 있었다.


···다섯 번.


“쿠, 쿨럭.”


핏덩이가 올라오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출혈이 너무 심했다. 아무리 움직여도, 혈류가 올라오지 않는다. 출혈과 회복의 줄다리기가 급격히 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간신히 다잡았던 시야가 벌레 먹은 것처럼 가물거리더니, 이내 까맣게 물들어갔다.

점차 어두워지는 시야, 까맣게 물든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 멀어져간다.


< HP:···8%······7%··· >


저 멀리서, 땡그랑거리는 목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송이, 정신 차려라···! 애송이!!”


어? 하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가 얼굴에 닿았다. 비릿한 흙냄새가 코끝에서 느껴지다, 이내 사라졌다.


쿠궁, 쿠궁···


꺼져가는 감각 끝에 남은 것은 일정하게 뛰는 심장소리. 그마저도 잦아들고 있다.


< 플레이어 보정 : 노예검사 No.900에게 [평정심]이 부여됩니다. >


심장이 멈추어간다.


< HP:······3%···1%···>


쿠궁··· 쿠궁···


< HP:·········0% >


쿠궁······.


< 캐릭터가 상태이상 [심정지]에 빠집니다! >


······.


*


“애송이, 이 개자식아―!!”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제타는 빠르게 움직였다. 상처를 지혈하고, 신참의 회복력을 깨우기 위해 마나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제타의 조치에도, 900번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포션을 입에 흘려 넣으려던 제타의 손이 멈췄다.


“······!”


이미 늦은 것인가.

900번의 목에 댄 손에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당연히 있어야할, 박동이 끊어진 상태.

제타는 위대한 검투사였으나, 심장이 멈춘 검투사가 살아 돌아온 역사를 알지 못한다.


“······.”


입맛이 썼다.

이것으로 끝일까.

신참은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일까···.

본디 콜로세움에서 죽음이란 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 넘치는 얼굴로 꿈을 논하던 검투사는 많지 않았다. 하물며 짧은 기간 동안 자신의 [개인 교습]을 이렇게까지 쫓아온 녀석은 더더욱.

검투장에서 목숨이란 능력의 증명이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신참의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죽음을 존재의 약함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제타의 마음속에서, 다시금 이 엿 같은 세상에 대한 분노가 불길처럼 치밀어 오를 때였다.

문득, 제타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


죽어버린 신참의 가슴에서 피가 배어나온 것 같았다.

제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출혈은 심장이 뛴다는 증거. 심장이 멈춰버린, 죽은 인간의 몸에서 일어날 리 없는 현상이었다.

울컥,

잘못 본 게 아니다. 신참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다시 뛴다.


······쿵,


···쿠궁, 쿠궁.


*


< 캐릭터가 상태이상 [심정지]에서 벗어납니다! >


“허억!!”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찢어질 것 같은 가음의 통증이었다.

나를 죽일 듯이 괴롭히던 통증이, 오히려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감각이 하나씩 돌아온다. 거세게 뛰는 심장, 비린내가 올라오는 목구멍, 바싹 마른 입술, 뜨겁게 달아오른 태양빛, 그리고 제타의 목소리.


“애송이! 회복해라!”


아, 회복!

정신이 들자마자 가슴에 의식을 집중한다. 아까와는 달리 심장은 터질 듯이 박동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한 번 죽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모두 이 심장 덕분이다.

정확히는,


< 스킬 [근력폭발 lv.1]를 발동합니다. >


스킬로 심장을 강화한 덕이다.

내가 죽어가던 것은 출혈로 혈류 자체가 줄어버렸기 때문. 줄어버린 회복력은 상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당장 몸속의 피를 늘리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심장이라는 근육을 강화했다.

눈을 감고 회복에 집중하는 중, 제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적이다. 이건 기적이야!”


제타의 말대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도한 것인데 어찌어찌 먹힌 것이니.

심장의 피를 보내는 힘이 강해진다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더 강력하게 뛰는 심장이 혈류를 충당해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어버렸을 테지.

가슴에서 오는 고통은 더 커졌지만, 살아남았다는 게 더 중요한 법이다.

순간, 두려움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방금 나 정말 죽을 뻔한 거구나. 진짜로······.


그때였다. 제타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신참. 네놈은 이제 관두는 게 낫겠어. 이걸 마셔라.”


포션이었다.


“저번이 마지막이라면서···?”

“입 닥치고 마셔라.”


제타가 무시무시하게 정색했다. 내가 방금 죽을 뻔한 것 때문일까.

그나저나, 포션은 있었구나. 하긴, 마지막 단계까지 와서 아무런 대책도 준비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포션 대신, 다른 것을 쥐었다. 목검이었다.


“아니, 계속한다.”

“헛지랄 말고, 포션을 마시란 말이다―! 훈련은 이제 끝났다!”


대답대신, 나는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를 굳건하게 딛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나는 목검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야 이 새끼야!”


세 번. 네 번···.

아찔한 열기가 단련장에 가득하다. 온몸이 바짝 말라비틀어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목검을 휘두른다.


“그만하라니까! 내가 검을 빼앗아야 말을 처 들을 테냐!”


이제 그는 대뜸 내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울컥 소리쳤다.


“저리 가라! 나는 할 수 있다―!!”


심장이 콱 저려오는 고함.

제타의 손길이 멈춘다.


“헉, 헉···.”


그래.

할 수 있다.

해내야만 한다.

한 번 숨이 끊어질 뻔했기 때문일까.

정신을 잃었다 싶었던 순간, 나는 잠시 주마등 따위를 본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물 밀 듯이 몰려왔는데. 대부분은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내가 울거나. 좌절하거나. 겁먹은 표정들.

돌이켜 보면, 나는 참 뻔한 놈이었다.

무얼 하더라도 끝을 보지 못하는 성미였다. 힘들고 어렵다 싶으면 도피하는 일이 많았다.

공부를 해도 어중간했고, 운동도, 취미도, 직장도 마찬가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끝마치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게임조차도 끝을 본 적이 없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검투의 끝은···.’


앞에 있었던 두 번의 시련이 떠오른다. ‘부딪침의 타이밍을 잡은 것’과, 화려한 검술을 구사하는 ‘알브레이의 틈을 잡은 것’은 모두, 집중력의 훈련이었다.

지금까지처럼 살아서는 끝을 볼 수 없다. 검투도 마찬가지. 살아남고 싶으면, 끝장을 봐야한다.

이제 내게 어중간하게 도피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남는 것!’


나는, 기필코 이 콜로세움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여덟 번. 아홉 번. 그리고


열 번.


목검이 떨어진다.

나는 타버릴 것처럼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니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몸속에 갇혀있는 피가 끓어올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야, 야 이 자식아! 일단 앉아라! 앉아!”


제타가 다급하게 외쳤다!


“앉아서 회복의 힘에 모든 의식을 집중해라!!”


.

.

.


나는 주저앉듯이 가부좌를 틀었다. 제타의 인도를 따라, 눈을 감고 명상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무런 잡생각도 들지 않았다. 의식에 가득한 것은 고통도, 죽음도 아닌 심장 박동 하나뿐.


최고조에 오른 초회복의 힘이 심장을 향해 모여든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살이 차오른다.


텅그렁-!


차오른 살에 밀려나, 단검이 뽑히듯 떨어졌다.


순식간에 채워진 상처는 어느 샌가 그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신참 이 새끼야―!”


제타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잘 했 다 ―!!”



< 스탯 [근력 +1.57]을 획득하셨습니다. >


< 스탯 [민첩 +4.50]을 획득하셨습니다. >


< 스탯 [체력 +2.34]을 획득하셨습니다. >


< 세부스탯 [생명력+12] [마나+23] [근지구력+22.5] [감각+5.25] [집중+4.21] [반사신경+7.33] [기본방어력+6.71] [탄력 +0.6] [기술+9.24] [회복력+7.22]가 추가됩니다. >


< 스킬 [초회복 lv.2]을 획득하셨습니다. >


< 스킬 [전투집중 lv.1]을 획득하셨습니다. >


< 스킬 [근력폭발]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 [근력폭발] lv.1 -> lv.2 >


< 2위계 검투사 ‘제타 마브라사’와의 [개인 교습]을 완료하였습니다. >





3편 개인교습 끝.


작가의말

잡생각이 많이 드는 월요일 밤입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노예검투사는 살고싶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공지 +2 22.06.12 116 0 -
공지 연재 일정 22.05.16 153 0 -
24 6편 든든하다 든든해(1) +2 22.06.08 196 11 12쪽
23 5편 후원자(5) +1 22.06.06 125 11 14쪽
22 5편 후원자(4) +4 22.06.04 167 16 11쪽
21 5편 후원자(3) +2 22.06.02 164 14 10쪽
20 5편 후원자(2) +2 22.06.01 167 13 13쪽
19 5편 후원자(1) +2 22.05.31 188 15 15쪽
18 4편 희생양(6) +3 22.05.30 219 18 12쪽
17 4편 희생양(5) +2 22.05.29 219 18 12쪽
16 4편 희생양(4) 22.05.27 189 16 14쪽
15 4편 희생양(3) +1 22.05.26 197 12 15쪽
14 4편 희생양(2) 22.05.25 192 13 12쪽
13 4편 희생양(1) +2 22.05.24 204 15 12쪽
» 3편 개인교습(5) +2 22.05.23 204 16 13쪽
11 3편 개인교습(4) 22.05.22 211 15 12쪽
10 3편 개인교습(3) +2 22.05.21 220 19 13쪽
9 3편 개인교습(2) +2 22.05.20 223 18 14쪽
8 3편 개인교습(1) 22.05.19 258 20 15쪽
7 2편 검투사의 삶(3) +4 22.05.18 274 27 16쪽
6 2편 검투사의 삶(2) +1 22.05.17 321 23 12쪽
5 2편 검투사의 삶(1) +2 22.05.16 311 25 17쪽
4 1편 노예 검투사(3) +1 22.05.13 342 25 13쪽
3 1편 노예 검투사(2) 22.05.12 404 25 14쪽
2 1편 노예 검투사(1) +1 22.05.11 524 37 12쪽
1 프롤로그 22.05.11 603 39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